기준 얼굴
복원 업체에서 보낸 메일에는 파일이 세 개 첨부되어 있었다.
1912편 · 63 / 64쪽
복원 업체에서 보낸 메일에는 파일이 세 개 첨부되어 있었다.
아들이 챙겨 준 봉지에는 흰 알약 하나와 유성펜 글씨가 있었다. 검사일 저녁 8시에 드세요. 나는 그 글씨가 아들 것인지 약국 사람 것인지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아들 글씨라는 걸 알아보고 봉지를 다시 접었다. 서른 넘은 자식이 아직도 받침을 흘려 쓴다는 게, 그날따라 왜 그렇게 오래
방학 전날, 나는 냉장고에 시간표를 붙였다.
세르는 회의실 벽을 가득 채운 푸른 행성을 바라보았다.
나는 술을 못 마신다. 회식 자리에서도 맥주잔에 탄산수를 받아 놓는 사람이라, 멀리 조문을 갈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내 차를 쓰게 된다. 그날도 재민이와 준영이는 빈소에서 소주를 몇 병이나 비웠고, 나는 육개장 국물만 두 번 떠먹었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아.”
정인이 처음 그 원을 보았을 때, 소나 화면은 젖은 신문처럼 번져 있었다.
빈소를 나온 것은 밤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조문객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코트를 입는데, 식탁에 국을 나르던 노인이 내 소매를 잡았다. 상주 쪽 친척인지 장례식장 직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검은 앞치마에 흰 밥풀이 하나 붙어 있었다.
해주는 새벽 1시 40분에 아파트 정문을 다시 통과했다. 경비실 유리창 안에서는 교대 근무자가 컵라면 뚜껑을 누르고 있었고, 1층 승강기 앞에는 낮에 본 노란 통제선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응급실 자동문이 닫히자 엄마가 우리에게 허리를 숙였다.
민석은 냉동창고 제어반 사진을 팀장에게 보내고 나서야 버스 좌석에 등을 붙였다. 사흘 동안 밤마다 알람이 울린 탓에 제대로 잔 시간이 6시간도 되지 않았다. 낮에는 센서를 바꾸고, 새벽에는 영하 22도로 내려간 창고 안에서 배선 번호를 다시 읽었다. 숫자는 아직 눈앞에 붙어 있었지만 그
냉장고 문에는 전에 배달시킨 족발집 자석으로 에어컨 청소 영수증을 붙여 두었다. 아래쪽에는 볼펜으로 `30일 이내 냄새 재발 시 무상 방문`이라고 적혀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다. 18만 원을 냈으니 다시 부르는 게 당연했지만, 냄새가 돌아온 뒤에도 하루를 더 미뤘다.
1999년 8월 신양임대아파트 물탱크 청소일보에는 작업자 다섯 명의 지장이 찍혀 있었다. 옥상에 올라간 사람은 네 명이었다.
혼자 살게 된 뒤로 나는 잠들기 전에 대화형 AI를 켰지만 침대에서는 하지 않았다. 작은방 문이 보이지 않게 식탁 끝에 노트북을 놓고, 물 한 잔을 받아 앉았다. 방 두 개짜리 집에서 혼자 자면서 굳이 잠들기 전을 식탁에서 보내는 이유를 누가 물은 적은 없었다.
봉례가 그 집에 든 것은 그해 초가을이다. 언덕 중턱에 새로 앉은 이층 양옥으로, 아래층에 마루와 안방과 부엌이 있고 위층에 방이 셋 있어 동네에서는 그냥 양옥집이라 불렀다. 벽이 두껍고 창이 커서 한낮이면 마루가 발바닥에 따뜻했다. 처음 걸레질을 하던 날 봉례는 그 온기에 발을 뗐다.
그이가 나온다는 통지서를 받은 건 사흘 전이었다.
남자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안 것은 손목이었다. 케이블 타이가 살을 파고들어, 맥이 뛸 때마다 플라스틱 모서리가 뼈를 눌렀다. 다음이 냄새였다. 락스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다음이 온도였는데, 등이 닿은 철제 의자는 얼음장 같았고 엉덩이 밑이 축축했다. 자기가 지린
복귀 첫날.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누가 읽을지는 모른다. 읽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긴다. 남기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민석의 시신을 찾은 것은 두 번째 수색의 엿새째였다.
정지호는 3월에 안경을 맞췄습니다. 새 학기 시력검사에서 오른쪽 0.3, 왼쪽 0.4가 나왔는데 그 정도면 뒷자리에서 칠판 글씨가 반쯤 뭉개져 보입니다. 저는 가정통신문 그 줄만 형광펜으로 긋고 아래에 읍내 안과 두 곳 이름을 적어 보냈습니다. 그해 우리 반에서 안경을 맞춘 아이가 넷이
스탠드는 3년째 같은 자리에 있었다. 갓이 눌어붙어 빛이 누렇게 나왔다. 그 누런 빛이 벽지에 둥근 얼룩을 만들었고, 얼룩 안에 침대가 있었고, 침대 위에 어머니가 있었다.
재하가 헤어지자고 했다. 100일이라고 두 주 전부터 예약해 둔 식당에서, 파스타가 반쯤 남은 접시를 사이에 두고, 그 사람은 물컵만 빙빙 돌리다가 그렇게 말했다. 비밀이 있는데, 말하면 네가 도망갈 거고 안 말하면 널 다치게 할 거라서, 둘 다 싫어서 그냥 없어지고 싶다고. 나는 웃을
아래는 사진 동호회 '야간노출' 게시판에 2026년 7월 올라온 글 여섯 건과 쪽지 대화, 이후 확인된 기록 두 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원 게시글은 현재 모두 삭제된 상태다.
면접은 지하상가 커피집에서 봤다. 남자는 나보다 서너 살 위로 보였고, 내 신분증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돌려주면서 일을 설명했다. 채권 회수라고 했다. 돈을 못 갚은 사람 집에 가서 봉투를 받아 지정된 사물함에 넣으면 그날 일은 끝이고, 하루 세 건이면 15만 원이라고 했다.
아줌마, 그 방은 따님 방으로 쓰지 마세요.
진욱은 마사지의자와 벽 사이에 줄자를 넣었다. 간격은 14센티미터였다. 장판에는 고무발 자국이 여섯 쌍 남아 있었다. 자국마다 벽에서 2센티미터씩 멀어졌다.
인호는 밤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켜지는 않았다. 꺼진 화면은 검고 조금 볼록해서 등 뒤 창문을 통째로 담았다. 골목과 블록 담과 담 너머 최 씨네 마당까지 그 안에 들어왔다. 창가에 서면 최 씨가 고개를 들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화면으로 보면 마주치지 않았다.
이삿날을 한 달 앞두고, 나는 집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내다 팔기 시작했다.
장마가 든 뒤로 그 집에는 소리가 늘었다. 함석 처마를 때리는 비, 불어난 도랑이 돌을 굴리는 소리, 안방에서 두 시간마다 우는 알람. 알람이 울면 아들은 어머니를 모로 눕혔다. 이불과 몸이 한꺼번에 밀리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