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본 척
군도 12호선 확장 구간의 환경영향평가는 4월에 시작됐다. 한도경이 맡은 몫은 야간 서식 조사였다. 해가 지면 두곡리 뒷산 임도에 차를 세우고 드론을 띄웠다. 열화상 카메라와 일반 카메라를 한 조로 묶어 계곡 쪽 사면을 훑고, 새벽 1시 전에 촬영분을 백업하는 일과였다. 발주처가 요구한 것은 삵과 수리부엉이의 서식 증거였고, 보고서에 들어갈 사진에는 좌표와 시각이 박혔다.
첫 주 촬영분에서 흰 형체가 잡혔다. 폐정미소 뒤, 밭과 대숲이 만나는 모서리였다. 사람 키에 사람 어깨였고, 고개를 조금 숙인 각도까지 사람이었다. 확대하면 화소가 뭉개졌지만, 흰색이 옷이라는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열화상 화면에는 같은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체온이 없다는 뜻이었다.
둘째 주에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셋째 주에도 있었다. 좌표는 1미터 안에서 겹쳤고 숙인 고개의 각도도 겹쳤다. 열하루 간격으로 찍힌 사진 두 장을 겹쳐 보아도 윤곽선이 어긋나는 데가 없었다. 바람이 있던 밤과 없던 밤이 섞여 있는데도 그랬다. 회사에 보내는 주간 보고에는 미상 구조물로 적었다. 반려는 없었다.
마을 초입 점방에서 물을 사며 한도경은 확대한 사진을 내밀었다. 잔돈을 세던 노파의 손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노파는 돋보기를 쓰지도 않고 화면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정미소 뒤에는 흰 사람이 서. 보이거든 못 본 척해. 인사하면 집까지 따라와."
노파는 물병을 봉지에 넣어 주고는 더 묻기 전에 안쪽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로당 앞에서도, 보건진료소 마당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못 본 척해라, 인사하면 따라온다. 서로 다른 입에서 나온 문장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언제부터 있었느냐고 물으면 다들 손사래부터 쳤고, 대답은 한결같이 "옛날부터"에서 끝났다. 마을 회관 벽에는 새마을 사업 때부터 찍어 온 마을 사진이 연도별로 걸려 있었는데, 정미소 뒤를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금요일 밤에는 이장이 숙소로 찾아왔다. 조사 구역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정미소 뒤쪽 사면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여기는 대숲이라 어차피 서식지도 못 돼. 계곡 아래로 내려서 하면 서로 편하지 않겠나. 젊은 사람이 밤에 그 근처로 다니는 게 보기에도 안 좋고."
일어설 때 방바닥에 두툼한 봉투를 두고 갔다. 한도경은 다음 날 아침 이장 집 대문 안으로 봉투를 도로 밀어 넣고, 조사 구역은 계획서대로 두었다.
면사무소에서 지적도를 뗐다. 정미소 뒤 밭 두 필지는 조병택이라는 이름 앞으로 되어 있었다. 등기부는 2007년에서 멈춰 있었다. 담당 직원은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고 나서 말을 골랐다.
"실종 처리가 되어 있네요. 2007년 3월이요. 그런데 재산세는 밀린 적이 없어요. 매년 소인 없는 현금 봉투로 들어와요. 누가 내는지는 저희도 몰라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 버스 정류장 게시판 안쪽에 색바랜 공고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실종자 조병택, 당시 55세, 두곡리 거주. 흑백 사진 속 남자는 왼쪽 눈썹이 흉터로 갈라져 있었다. 공고 아래 연락처의 국번은 지금은 쓰지 않는 번호였고, 종이는 삭았는데 코팅 비닐만 새것처럼 반질거렸다.
마지막 촬영일, 한도경은 드론을 차에 둔 채 걸어서 정미소 뒤로 올라갔다. 해가 대숲 뒤로 넘어가고 있었고, 밭둑에는 무릎까지 오는 풀이 누워 있었다. 대숲에서 바람이 내려올 때마다 어디선가 비닐 자락이 부스럭거렸고, 그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흰 사람은 사진에서 본 그 자리에, 그 각도로 서 있었다.
비옷을 입고 있었다. 흰 비옷은 소매 끝이 삭아 너덜거렸고 어깨선을 따라 이끼가 앉아 있었다. 다섯 걸음 앞에서 보면 목과 턱 사이에 가는 이음매가 돌아가 있었다. 마네킹이었다. 발밑은 콘크리트 기초였고, 발목마다 볼트가 두 개씩 박혀 있어 밀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비옷 안쪽 어깨에는 페인트 붓 자국이 결을 이루고 있었다. 흰 칠은 한 번에 칠한 게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덧발린 층이었다. 기초 모서리에는 못 같은 것으로 긁어 쓴 숫자가 남아 있었다. 2007. 3. 숫자 위에도 흰 페인트가 덮였다가 벗겨져 있었다.
얼굴은 페인트가 여러 겹 들떠 있었다. 턱 아래 들뜬 자리를 손전등으로 비추자 페인트 아래 면이 드러났다. 공장에서 뽑은 매끈한 성형 면이 아니었다. 모공이 있었다. 코 옆에 점이 있었고, 수염 자국이 오돌토돌했고, 다문 입가에는 주름이 패어 있었다. 왼쪽 눈썹은 가운데가 흉터로 갈라져 있었다.
정류장 공고 사진의 흉터와 같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