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eudoPod 1033: 악마는 멀쩡하다
방송 안내
작가의 말: “이 이야기를 쓸 무렵에도 저는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플레이한 경험에 여전히 흠뻑 취해 있었고, 제가 나고 자란 평원을 무대로 기이한 서부극을 쓰고 싶었습니다. 물론 거기에 저만의 기이하고 종교적인 공포도 가미하고 싶었죠.”
악마는 멀쩡하다
마이클 베텐도프 지음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쁜 짓 하는 걸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선택권이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적어도 진짜 선택권은 말이다. 그래도 내가 저지른 짓으로 언젠가는 심판받으리라는 건 받아들였다. 지금 저지르는 짓까지도. 내 팔자는 좋은 가족도, 이렇다 할 유산도 내게 남겨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쓸 만한 머리와 기회를 알아보는 눈은 타고났다.
내가 미첼이라는 꼬마 녀석 옆에서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도 그 덕이다. 녀석은 이제 부모 집에서 안 산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다 큰 사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수염이 안 난다는 게 어찌나 창피한지 늘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도적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뭐, 누군가 도적으로 의심받을 거라면 나보다는 미첼이 낫겠지.
“여기 생각보다 춥네요.” 미첼이 불을 쑤시며 말한다.
“평원은 사람을 잘 속이지. 이 근방에는 바람 막아줄 게 거의 없거든. 산들바람도 열 배는 더 차게 느껴지게 만드는 거야.”
미첼은 제 몸을 끌어안고 팔을 문지른다.
“그 역마차를 혼자 털었다는 게 사실이에요?” 녀석이 묻는다. “그 멋진 말도 그렇게 얻으신 거예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실 거 없어요.” 녀석이 말한다. “호위까지 붙은 역마차를 혼자 털고 안에 있는 걸 싹 가져갔다고 들었거든요. 어느 놈 폐에도 숨 한 모금 안 남겨놓으셨다던데. 사실이에요, 그랜트 씨?”
“그냥 그랜트.” 내가 말한다. “그리고 허풍 섞인 이야기는 관심 없어.”
“제가 들은 건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런 허풍 같은 일도 눈 깜짝할 새에 해치우신다면서요. 총 솜씨가 기막히다고요. 무자비하고. 인정머리라곤 신이 저주할 만큼 없다고요.”
“입조심해라, 꼬마야.” 내가 말한다.
“독실한 분인 줄은 몰랐네요, 그랜트 씨. 사람도 죽이고 그러시길래.”
“그냥 그랜트.” 내가 말한다. “독실하지도 않아. 그냥 네 떠드는 소리를 듣기가 지겨운 거야.”
물론 반만 맞는 말이다. 아버지와 그가 섬기는 신을 내가 쳐주는 높이래야 구름에 닿을 턱이 없지만,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는 가르침만큼은 아버지가 내게 새겨놓았다. 그럴 때마다 저주를 불러들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다 그저 한 사내가 먹고살려고 애쓴 이야기다. 자랑할 건 하나도 없다.
어떤 사내들은 운을 타고난다. 먹고사는 문제 따위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 건 말하는 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내 고용주 데이비드 맥널리 같은 사람. 아, 이 작자 목소리가 얼마나 싫은지. 태엽 시계처럼 뻣뻣하고 생기 없는 그 목소리로 명령받는 게 얼마나 싫은지.
그자의 주머니는 어찌나 깊은지 장화에서 물을 퍼 올려도 될 정도다. 다만 물보다 석유가 터진다고 해야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물려받은 석유가 워낙 많으니. 그자는 내가 그래서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 석유로 번 돈을 가득 실은 마차를 나 같은 놈들에게서 지켜주려고.
맥널리가 마차에서 내려오면서 내 강도질 생각을 가루로 짓밟는다. “자, 다들. 밤이 깊었군.” 그가 말한다. “한 사람은 쉬어. 다른 사람은 망을 보고. 그러다 피곤해지면 교대해. 내일은 갈 길이 멀고, 난 아무 탈도 없었으면 하니까.”
미첼은 자기가 먼저 망을 보겠다고 나서는데, 나야 좋다. 녀석은 맥널리가 마차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연다. 그 입에서는 고약한 입 냄새와 그보다 더 고약한 장담만 쏟아진다.
“여기 뭣 하러 오셨는지 알아요.” 녀석이 말한다. 내가 대꾸하지 않자 녀석이 눈을 가늘게 뜬다.
“허튼짓할 생각 마.” 내가 말한다.
“그런 말씀은 이미 늦었어요, 그랜트 씨.” 녀석이 말한다. “그리고 어차피 상관없어요.”
“무슨 소리야?”
“상관없다는 소리예요, 그랜트 씨. 그 가방은 이 하늘만큼이나 텅 비었거든요.”
“네 머리보다 더 비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 내가 말한다. “그리고 그랜트다. 씨 붙이지 마.”
나는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잠든 사이에 혼자 돈을 챙기려고 녀석이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다. 엉뚱한 가방을 들여다봤는지도 모르고. “비었다니 무슨 말이야? 지폐도 없어? 옷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랜트 씨.” 녀석이 말한다. “뭐, 이제는 없다는 거지만요. 길을 나선 첫날 밤에 안을 슬쩍 들여다봤거든요. 아직 마을에서 얼마 안 떨어졌으니까 밤중에 튀어서 동부로 가는 기차를 타면 되겠다 싶었죠. 금괴 하나가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낡은 하모니카 하나더라고요.”
“그래도 누구한테는 돈이 될 물건이겠지.”
“그럴 것 같지도 않아요. 소리가 안 나거든요. 첫날 밤에 한 음을 불어봤어요. 편히 자는 사람보다도 소리가 안 났죠. 다음 날 밤에는 확인차 가방을 들여다봤는데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근데 맥널리가 눈치챈 것 같아요. 그때부터 계속 날 이상한 눈으로 보거든요. 적당한 때를 봐서 튀려고요.”
“총에 기름이나 치고 별이나 세.” 내가 말한다. “네 어설픈 꿍꿍이 들어주기도 지겹다.”
나는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고 내 말 세이디를 토닥인다. 유리 같은 하늘에 별들이 일렁이는 모양새며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걸 보니 새벽 세 시가 다 된 듯하다. 마차 둘레를 길쭉한 원을 그리며 재빨리 한 바퀴 돌아, 내가 자는 동안 녀석이 멍청한 짓을 벌이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녀석이 앉아 있는 곳으로, 코를 골고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책임감 없는 꼴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달아나지 않은 건 다행이다. 장화를 한 번 툭 건드리고, 꼼짝도 안 하기에 발로 걷어찬다. 나는 바싹 다가가 녀석의 얼굴에서 두건을 끌어 내린다.
내가 보는 게 진짜인지 알 수 없어 손마디로 눈을 비벼 잠기를 떨친다. 아직 꿈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꿈을 내 뜻대로 움직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건 그런 것과 다르다. 녀석의 코와 입에서 검은 것이 뚝뚝 흐른다. 턱은 이상한 각도로 틀어져 있다. 꼭 두 치수는 작기라도 한 것처럼, 동굴 입구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 구멍 둘레에는 기묘한 빛이 어린다. 그 빛이 녀석의 분노에 불을 붙이고, 내가 어떤 사내에게서도 본 적 없는 격노 속으로 녀석을 몰아넣는다. 아버지의 의로운 진노조차 이렇지는 않았다.
미첼은 두건을 팽팽히 당겨 얼굴을 가린다. 두건이 어찌나 깨끗한지 저절로 눈이 간다. 살갗에서 배어 나오는 물질에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다. 참 기묘한 상처다. 어쩌면 상처가 아예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아픈 거예요, 알겠어요? 다른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해칠 뜻이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두 손을 들지만, 녀석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나와 신에게까지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목소리 낮춰라, 꼬마야.” 내가 말해주지만 소용없다. 맥널리가 권총을 뽑아 든 채 비틀거리며 마차에서 내려온다. 녀석의 시선이 내게서 맥널리에게로 옮겨간다.
“미첼, 안 돼!” 내가 외친다. 내 손은 허리춤에 가 있고, 총은 뽑힌 상태다. 녀석이 나를 돌아보며 총을 쏜다. 시야가 이상하게 변한다. 극심한 통증이 머리를 조인다. 나는 땅바닥에 쓰러진다. 세이디는 착하고 충직한 말이지만 담력이 대단하지는 않아서, 나는 그 애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하는 걸 지켜본다.
그러고는 녀석이 우리 고용주와 그의 말을 쏜다. 나는 손과 무릎으로 맥널리에게 기어가면서 미첼이 세이디에 올라타 텅 빈 밤 속으로 달아나는 걸 지켜본다.
나는 고집이 세지만 일이 개판이 됐을 때 그걸 인정할 줄은 안다. 맥널리는 내 옆에 죽어 누워 있다. 가슴에 난 두 상처는 새빨간 눈 한 쌍처럼 보인다. 내 눈이 장난을 치는 건지도 모르지만, 맹세코 그 상처들은 핏물을 깜빡여 떨쳐내려는 듯 열렸다 닫힌다. 기운을 모으고서야 나는 일어나 얼굴을 만진다. 찢긴 살갗과 부서진 뼈, 벌써 끈적해지는 피를 더듬다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혼돈스러운 이중 시야. 한쪽에는 지평선을 따라 무한히 펼쳐진 한밤의 푸른빛이 보이고, 다른 한쪽은 피투성이 진창으로 뒤덮인 내 장화를 내려다본다.
총탄이 내 눈을 뼈로 된 집에서 끄집어냈다. 화약과 납에 눈확이 산산이 부서졌고, 눈은 풀려 늘어진 채 매달려 있으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여전히 생명의 위대한 감각 하나를 내게 전해준다.
나는 몸을 굽히고 구역질을 한다. 내 생각에 그만하면 됐다 싶은 만큼 오래 그렇게 한다. 쇼크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어쩌면 우주가 내게 베푸는 선물인지, 살을 찌르는 통증이 가라앉는다. 나는 모닥불의 사그라드는 숯불 속에 칼을 넣어 강철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굽고, 오른쪽 눈에 해야 할 일을 한다. 내 더 좋은 눈. 다른 쪽은 푸른데 이쪽은 개암색인 내 눈. 총을 쏠 때 쓰는 내 눈.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잘라낸 눈을 맥널리의 벌어진 입속에 넣는다. 그러고는 그 자리를 떠난다. 녀석이 간 것과 같은 방향으로.
달빛이 초원을 창백하게 물들여 유령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나무 한 그루 거의 없는 그 풍경은 하늘의 광대함을 향해 소리쳐 부르는 듯하다. 거의 미칠 듯이.
평원을 걷는 동안 생각들이 나를 쿡쿡 찌른다. 녀석은 병 때문에 폭력을 갈망하게 됐나? 내가 얼굴을 드러내고 그러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졌나? 맥널리도 병에 걸렸나? 나도 똑같이 이 기이한 병에 쓰러지게 될까? 어쩌면 벌써 걸렸는지도 모른다. 앙갚음을 바라는 마음보다, 폭력을 바라는 마음보다 전염성이 강한 게 또 있을까? 나는 내가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앓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신을 섬기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병을.
“어디 해봐.” 나는 소리쳐 부른다. “날 쳐 죽이든 말든 상관없어, 빌어먹을 신아……다른 건 전부 빼앗아갔잖아.”
번개도, 천둥도 없다. 땅이 갈라져 나를 통째로 삼키지도 않는다. 하지만 멀리서 희미한 음악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절뚝거리며 걷는다. 수십 야드 앞, 길 한가운데서 형체 하나가 포도주 빛깔의 트렁크 위에 앉아 하모니카를 분다. 음은 침울하고 길게 늘어지며, 어떤 특정한 종류의 슬픔을 전하는 듯하다.
“이보시오.” 나는 곡조에 이끌려 물을 헤치고 그에게 걸어가며 부른다. “여보시오.” 가까이 다가가니 그가 벌거벗고 있으며, 몸은 해골 같다는 게 보인다. 뼈 위로 종잇장처럼 얇은 살갗이 너무나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 핏줄 하나하나와 그 속으로 흐르는 피가 전부 보인다. 창백한 살갗 밑의 검은 도로 지도.
“이보시오.” 내가 말하지만 그는 계속 연주한다. “당신도 그 병에 걸렸소?”
그가 연주를 멈추고 미소 짓는다. 그게 텅 빈 미소였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미소는 별들을 품고 있으며 우주의 광대함까지 담고 있는 듯하다.
“아니. 내가 그 병이지. 하지만 나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그 형체가 유목처럼 부서지기 쉽고 매끄러운, 뼈처럼 흰 두 손으로 내 머리를 움켜쥐고 내 눈에 입을 맞춘다. 그의 혀가 망가진 내 눈구멍 안에서 춤춘다. 신경이 쇠약해진 탓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그의 혀가 지져져 연약해진 내 살을 거칠게 문지른다. 그가 포옹을 풀고 물러나자 서늘한 마비감이 남는다. 그는 입술을 핥고 곡조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내 세상은 불경한 암흑으로 변한다.
잠깐 동안 나는 그 창백한 남자가 나를 품에 안고 있다고 믿는다. 지구가 더는 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길 마음이 없는 듯 몸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나를 그렇게 안고 있을 리는 없다. 머릿속의 무언가가 믿으라고 속삭인다. 차갑고, 손치고는 지나치게 무거운 그의 손이 내 어깨 위에 놓인다. 아버지가 늘 그렇게 해주기를 상상했지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처럼 다정하고 부드럽게 손을 얹어준 적이 없다. 그러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창백한 남자가 말한다. “그 사람은 널 사랑한 적이 없단다, 그랜트. 하지만 나는 널 사랑해. 이 모든 걸 네게 주마.” 그는 세상을 내게 내어주기라도 하듯 손바닥을 펼쳐 팔을 넓게 뻗는다. “아무 대가도 없단다. 그저 너도 나를 사랑해주면 돼.”
나는 이 초현실적인 평원을 바라본다.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의 DNA가 눈에 들어와 감각을 압도하고, 그 아름다움에, 자연의 진실에 눈물이 고인다. 잠시 뒤 창백한 남자가 입을 연다. “그래, 어떠냐, 아들아?”
내가 이토록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이 낯선 이의 의도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는 대신 그의 품에 몸을 기댄다. 그의 살은 뱀의 배처럼 부드럽다. 움푹 들어간 눈이 나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해준다. 창백한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더니 총연으로 흩어져 사라지고, 내 주위의 공기는 기름지고 불쾌하게 변한다.
눈을 뜨자 두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을 동시에 보는 듯하다. 하나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다. 그 나름대로 아름답지만,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은 지독히 기만적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참모습이다. 아름답지도 흉측하지도 않고, 진실의 먼지 입자로 이루어진 세상.
나는 내 두 손을 응시한다. 한쪽 눈에는 더러운 살갗이 보이고, 다른 쪽 눈에는 피부와 물렁뼈 안의 기하학이, 인간인 나를 이루는 모든 분자가 보인다. 암사슴 모양의 빛 무리가 멀리서 달린다. 삶과 죽음의 띠가 허공에서 나선을 그린다. 아버지의 말이 옳았는지 알아보려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지지만, 그곳에 보이는 것이라곤 소용돌이치는 입자들이다. 나는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무시할 수 없는 머릿속 직감이 가리키는 쪽으로, 그 녀석과 내 말이 있는 곳으로 나를 떠미는 쪽으로.
나는 머릿속 목소리의 인도를 받으며 며칠이고 지치지 않고 걷는다. 비가 내리기 며칠 전부터 내 눈앞에 먹구름이 형성된다. 바람이 방향을 바꾼다. 들소들이 이 개척지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녀석들은 모르지만, 자기 종족의 마지막 무리에 속해 있고,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것들은 내가 보는 진실의 일부다. 하지만 이제 이 눈으로 들여다보는 자가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내 생각도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세이디를 되찾으리라는 약속에 이끌려, 피가 밴 물집과 아픈 가슴을 견디며 계속 나아간다.
이것이 새로운 시야의 결과인지 원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아무런 안식도 얻지 못하는 곳으로 나를 이끈다. 그곳에는 음울한 죽음만 있다. 오직 진실만 있다. 총잡이로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 눈으로도 본 적 없는 광경이 내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붉게 칠해진 야영지. 가죽이 벗겨진 채 내버려진 남자가 약한 불 속에서 타닥거린다. 여덟 살 이하인 여자아이가 죽은 어머니의 축 늘어진 두 팔 안에 웅크리고 있다. 목이 잘린 어머니의 머리는 그 아래에서 우윳빛 눈으로 아이를 올려다본다.
나는 풀밭에 토한다.
아이는 살아 있지만, 그 아이를 바라보면 죽음만 보인다. 죽음은 아이의 가슴에 있고 마음에 있고 생각 속에 있다. 한때 순진무구했던 아이의 삶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다시 쓰였다. 그 녀석의 손으로. 아이는 혼자 있고 싶어 한다. 나는 그것을 보고, 원하는 대로 해준다. 미첼에게 이어지리라는 걸 아는 자취를 따라간다.
북동쪽으로 반 마일 이내에서, 강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여기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놈을 쏴 죽일 수도 있지만, 머릿속 목소리가 그러지 말라고 한다.
나는 계속 걸어가, 피를 하류로 실어 나르는 강의 얕은 물에 발을 들인다. 분홍빛 거품이 내 장화를 찰랑찰랑 핥는다. 녀석은 몇 야드 상류의 모래톱에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 뱀에 물린 듯한 말을 돌보고 있다. 아무리 나 자신을 속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내 앞에 놓인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세이디, 사슴 가죽 빛깔의 더치 웜블러드가 강물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다. 콧구멍에서 가느다란 숨결이 실처럼 새어 나오고, 힘없는 울음소리가 공기 속에서 구슬프게 울린다.
“이놈!” 내가 소리친다.
녀석이 돌아본다. 손과 얼굴이 세이디의 피로 뒤덮여 있다. 썩고 들쭉날쭉한 이 사이에 고기가 끼어 있다. 살면서 이렇게 빨리 총을 뽑은 적은 없지만, 머릿속 목소리가 방아쇠를 당기라고 하는데도 나는 망설이며 녀석이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녀석이 말한다. 그 말들이 허공에서 형태를 이루며 산들바람에 쓰인다. “저는 병들었어요. 이제 아저씨도 그래요. 이러실 필요 없어요.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자가 우리 둘 다 속였어요, 그랜트 씨.”
녀석의 혀가 뒤틀려 있다. 서로 다른 두 세상에서 말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그 말들은 허공에서 서로 충돌하고, 진실과 기만은 그 말들을 차지하려고 싸운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쁜 짓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세이디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자 평생 딱 한 번 겪어본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권총을 쏜다. 실린더가 느린 동작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녀석에게 총알을 모조리 쏟아붓는다. 놈은 제 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름진 검은 것 속에서 몸부림친다. 놈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정말 죽기는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그랜트다.” 내가 말한다. “씨는 붙이지 마.”
불타는 생각에 떠밀려 나는 세이디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가, 그 곁에 무릎을 꿇는다. 내 행위 때문에 세이디가 심판받았다고 확신하며 목을 쓰다듬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넌 내 유일한 친구였어.” 내가 말한다. 그 아이를 위해 울어라, 아들아.
내 눈에서 검은 눈물이 쏟아져 세이디의 상처로 스며든다. 그 불경한 약물이 세이디의 빛바랜 눈에 생기를 돌려놓는다. 세이디는 콧김을 뿜어 내 두 손에 피를 흩뿌리면서도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검고 밧줄 같은 힘줄이 근육을 짜 맞춘다. 곧 살이 돋는다. 그리고 사슴 가죽 빛깔의 털 위에 창백한 가죽 반점이 생긴다.
나는 안장에 올라 머릿속 목소리의 인도를 따라 평원을 가로질러 달린다. 응보를 내리러 가는, 순종적인 아들로서.
진행자 해설
우리 모두 미첼 같은 사람을 알지 않나요? 거물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 디바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남들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보고, 갈망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말입니다. 지금은 유명하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되며, 대대로 전해질 전설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요. 문제의 한 부분은 그에게 재능도, 추진력도, 절제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그런 문제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한 부분은 실제로는 없으면서도 자신에게 재능이나 추진력이나 절제력이 있다고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살면서 이런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그랜트의 말처럼 말입니다. “…더는 부모 집에 안 산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어른이라고 확신하는 미첼.” 미첼이 특히 와닿는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미첼 같은 자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 미첼처럼, 그들도 얼마간의 힘이 주어지면 혼란과 파괴와 죽음만 일으킬 뿐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냉혹한 총잡이와 악마일지도 모르는 초자연적인 존재도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들이 걱정되지 않습니다. 그랜트에게는 자기 인식이 있고, 그 점에서 미첼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랜트는 이렇게 말하죠.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쁜 짓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랜트는 근성과 결단력과 피로 자신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남들의 부러움과 선망과 갈망을 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따르든 그저 일을 해내고 싶어 합니다. 젠장, 사실 미첼을 쫓는 것도 총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놈이 자기 말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친구를 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일단 악마라고 부르죠. 그랜트의 과거와 영혼에 뚫린 구멍을 알고, 그에게 과도한 애정을 퍼부으며 환심을 사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랜트도 총에 맞아 눈을 잃지 않았더라면 더 의심했을 거라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존재는 진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랜트는 그렇게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는 듯합니다. 그랜트는 어느 괴물을 처치해야 하는지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