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2번
민규의 안경원은 강변 상가 2층에 있었다. 아래층 편의점 냉장고가 돌아가면 검안실 바닥까지 가늘게 울렸다. 손님은 대개 코받침이 빠졌다거나 렌즈 세척액이 급하다며 들어왔다. 민규는 그런 일도 접수증을 끊어 처리했다. 15년 동안 혼자 가게를 하다 보니, 기억보다 종이를 믿는 편이 나았다
1911편 · 64 / 64쪽
민규의 안경원은 강변 상가 2층에 있었다. 아래층 편의점 냉장고가 돌아가면 검안실 바닥까지 가늘게 울렸다. 손님은 대개 코받침이 빠졌다거나 렌즈 세척액이 급하다며 들어왔다. 민규는 그런 일도 접수증을 끊어 처리했다. 15년 동안 혼자 가게를 하다 보니, 기억보다 종이를 믿는 편이 나았다
[한내FM 라디오 다큐멘터리 〈골목의 값〉 제41회 — ‘한 달 살기’ 방송 대본. 인서트는 사전 녹음이며, 제보자 보호를 위해 인명·지명·상호는 가명으로 처리했다.]
제일냉장 마당에 들어서면 소리가 먼저 몸에 닿았다. 땅 밑에서 우우 하고 올라오는, 크고 둔한 진동이었다. 압축기 돌아가는 소리라고 했다. 오래 일한 사람들은 창고가 숨 쉬는 소리라고도 불렀다.
보증금을 받았다는 문자를 보내 주신 날, 저는 답장 칸에 ‘다행입니다’라고 썼다가 지웠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와 처가에 있었고, 저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다음 부부의 계약서 사본을 받아 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나가는 날과 다음 부부가 들어오는 날을 같게 잡았습니다.
일요일 아침, 현관 앞에는 우유 두 병이 놓여 있었다.
정수는 예의와 호의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쉰여섯 해를 살면서 그 차이를 모를 수는 없었고, 모르는 척하는 사람과 정말 모르는 사람도 구분했다.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믿는 것이 정수의 규칙이었다.
방앗간차가 처음 들어온 날은 시월 초이틀이었다.
무너미 사람들은 비 오는 밤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
※ 폐업한 시골 고시원이 있던 부지를 정리하기 전, 실사팀이 뒷마당에서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 한 대를 발견했다. 다음은 안에 든 테이프 A면의 녹취다. 화자의 목소리는 선명하지만 수화기 너머 음성은 판독되지 않는다.
복도 끝 7호실에 사내가 든 것은 2026년 시월 첫 월요일이었다.
주막 주인은 내가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며 종이와 먹을 놓고 갔다. 관가에 올릴 이름만 적어 두라고 했다. 장터에서 객주 장부를 대신 써 준 세월이 있어 붓은 낯설지 않은데, 등잔이 두 번 꺼지는 동안 첫 줄만 적었다.
[정리자 주 — 아래 기록은 2011년 전라북도 김제의 한 폐농가를 철거하던 중 반닫이 밑에서 나온 1926년(병인년) 속기첩을 풀어 쓴 것이다. 표지 안쪽에는 ‘경성신문사 사회부 백승하’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알아볼 수 없는 글자는 □로 두었다.]
먼저 밝혀 두거니와, 나는 시킨 일을 했다. 지우라기에 지웠고, 지운 뒤에는 다시 나오지 않게 해 달라기에 백업까지 손을 보았다. 그때는 그게 납품 조건이었다. 이제 와서 이름 하나가 어디서 생겼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 한빛전산 때 서류 가운데 남은 것을 날짜가 맞는지 안 맞는지도
한내 지하보도에서는 장마가 오기 전부터 물비린내가 났다. 도로 밑으로 스물몇 계단을 내려가면 셔터를 내린 구둣방과 열쇠 가게가 마주 보는 복도가 나왔다. 곰팡내와 지린내가 형광등 아래 고여 있었다. 6월 첫 월요일, 곽 주임은 발령장이 든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그 계단을 내려갔다.
2026년 3월 2일 (월)
마지막 당직 날,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열한 번 신호를 들었다. 끝까지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음은 지난달 문을 닫은 도시 탐험 카페 ‘도시의 뼈’에서 ‘청안고시텔’로 검색되던 게시물이다. 카페의 통합 검색은 2015년에 옮겨 온 옛 게시판 자료도 함께 보여 줬다. 검색 결과에 표시된 순서대로, 최신 글부터 옮긴다.
동해방송 음성연속성 시스템 최종 검수 기록
[동행생활기술 파산정리팀 위탁 현장 기록]
다음은 잡지 『심야 노선』 창간 준비 취재 중 나눈 대화를 녹음해 옮긴 것이다. 상대는 시내버스를 서른한 해 몰고 올봄 퇴직한 예순셋의 전직 기사다. 요청에 따라 이름과 노선 번호, 회사명은 지웠다. 기록자의 말과 기록은 그대로 적는다.
새벽 3시에 깼다. 왼쪽 발목이 가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