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한가운데서 공중전화를 발견했다. 받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원래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대부분 하이킹이나 캠핑을 하거나,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해 질 때까지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친구들과 함께 가지만, 대개는 혼자 가는 편을 더 좋아한다. 휴가가 생기면 며칠씩 숲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그보다 오래 머물기도 한다. 지도에서 아무 곳이나 하나 골라 현대 생활의 스트레스를 잊을 때까지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캠핑을 다녔고, 할아버지는 내게 자연과 탐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주셨다. 낚시하는 법, 어디서든 북쪽을 찾는 법, 어떤 식물을 먹으면 죽고 어떤 식물은 괜찮은지 가르쳐 주셨다. 먹으면 죽는 식물의 목록이 워낙 길어서 나는 대체로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편이었다.
나는 언제나 붐비는 거리보다 숲 한가운데 혼자 있을 때 더 편안했다. 언젠가는 아예 야생으로 도망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자연에서 얻는 것만으로 여생을 보내는 생각까지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인정하기는 싫어도, 최근 겪은 일 때문에 나는 자연이 무서워져 발길을 끊었다. 어쩌면 영영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일주일쯤 전, 나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난히 외딴 숲으로 차를 몰고 갔다. 워낙 광대한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은 희박했다. 내가 발견한 것을 아무도 찾아 나서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구체적인 위치는 밝히지 않겠다. 다행히 찾아보려 해도 대부분은 찾지 못하겠지만. 나도 순전히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혼자 장기간 여행을 다니기는 하지만, 나는 극한의 생존을 추구하는 부류는 아니다. 숲에 들어갈 때는 필요한 것을 챙겨 간다. 작은 텐트, 침낭, 라이터와 손전등, 수통과 휴대용 정수기, 낚싯대, 나침반, 비상식량과 물 조금, 칼. 필수품들이다. 나머지는 그럭저럭 있는 대로 해결한다. 그곳에 있는 동안에는 주로 물고기를 먹고, 활을 가져갔다면 가끔 작은 동물을 잡아 먹기도 한다. 이번에는 활을 가져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며칠 머물 생각이었다. 어쩌면 일주일쯤.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던 전 애인과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었고, 최근에 또 헤어진 터라 잠시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보통 정식 등산로 입구를 피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구글 어스로 주변을 살펴보며 오래된 벌목용 도로나 공터, 혹은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거나 눈에 띄지 않게 차를 세워 둘 만한 곳을 찾아본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도로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풀이 무성하게 자란 좁은 길을 찾아 나무 사이의 작은 빈터에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장비를 챙겨 숲으로 들어갔다.
위성지도에서 봐 둔 호수가 있었는데, 정오 전에 그곳에 도착하고 싶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만 볼 수 있었지만, 야영하기에 좋고 조용한 곳 같았다. 나는 숲 안으로 오륙 마일을 걸어 들어간 끝에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는 아름다웠다.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개울이 있었고, 나는 물가 가까이에서 텐트를 칠 만한 좋은 자리를 찾았다. 물고기들이 뛰어오르고 새들이 노래했으며, 문명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어 도로 소음도 들리지 않고 휴대전화에는 신호가 한 칸도 잡히지 않았다. 평화로웠다.
작게 불을 피워 놓고 한동안 낚시를 한 끝에 두 끼는 먹을 만한 크기의 송어를 잡았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주변을 조금 걸어 보기로 했다.
나는 그곳에 나가 있을 때면 늘 이곳저곳 탐험하고 경치를 구경하는 것을 즐겼다. 여행할 때 챙겨 가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가끔 찍기도 했다. 자연으로 나가 그저 풍경을 즐기는 데서 오는 소박한 행복이 있다. 딱히 무언가를 정해 놓고 찾지는 않는다. 새, 뱀, 멋진 버섯, 특이한 나무. 때로는 머리 위로 펼쳐진 나무 꼭대기와, 서로 닿을 듯 닿지 않는 가지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모습만 찍기도 한다.
야영지에서 일이 마일쯤 걸으며 완만한 오르막을 올랐다. 별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무언가가 내 주의를 끌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따르릉.
나는 그쪽으로 계속 걷다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따르릉.
어떤 동물이 내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규칙적이었다.
호기심이 커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걸어갈수록 소리는 또렷해졌다.
전화벨 소리 같았다. 요즘 휴대전화가 아니라 옛날 전화기. 세기가 바뀌기 전에 들을 수 있었던 그런 구식 벨 소리였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대체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 알아내려 했고,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들려오는지도 짚어 보려 했다.
처음에는 가능성이 희박하긴 해도 이 숲에 나 말고 다른 등산객이 있고, 그 사람이 옛날식 벨소리를 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이런 곳에서 어떻게 휴대전화 신호가 잡힌단 말인가?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아주 영리한 새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새들이 온갖 소리를 흉내 내는 법을 배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동하다 도시를 지나면서 옛날 전화기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꽤 마음에 들어 자기 울음소리에 섞어 넣었을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궁금했다. 사람이라면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새라면 무슨 종류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무언가라면…… 뭐, 그것도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지형은 험해졌다. 길은 없었다. 나는 덤불을 헤치고 쓰러진 나뭇가지를 넘어가고 있었고, 이따금 나뭇가지가 셔츠나 배낭에 걸려 멈춰 서서 풀어내야 했다. 어느 순간에는 돌아설 뻔했다. 고작 누가 버린 휴대전화일 가능성이 큰 물건을 찾아 빽빽한 덤불을 뚫고 언덕을 오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하지만 벨 소리는 일정하게 계속됐고 가까이 갈수록 커졌다. 돌아가야 한다는 본능보다 이 기이한 상황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마침내 나무 너머 바로 앞에서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곳까지 도착했다. 나는 앞으로 걸어 작은 공터에 들어섰고, 멈춰 섰다.
공중전화가 있었다. 공터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진짜 공중전화였다. 예전에 주유소 바깥에 볼트로 고정해 놓거나 시내 거리의 인도에 설치해 놓았던 그런 종류였다.
그런데 이것은 숲 한가운데, 누군가 심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흙 속에서 솟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빤히 바라봤다. 낡아 보였다. 금속 표면에는 흠집이 나고 비바람에 닳은 흔적이 있었으며, 구석구석 녹이 깊이 슬어 있었다.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벨은 들을 사람이 주위에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듯 계속 울렸다.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연결된 전선은 눈에 띄지 않았다. 머리 위에도, 땅에서 전화기로 이어지는 것도 없었다. 배터리 팩이나 태양광 패널도 보이지 않았고, 전원이나 전화선으로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울릴 수 없어야 한다는 내 논리를 거스르며 전화벨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벨이 울리는 동안 나는 전화기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누가 어떻게 이것을 여기까지 가져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왜 그러고 싶었을지도. 누가 숲 한가운데 공중전화를 설치한단 말인가? 그리고 왜? 또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설령 그런 질문들에 납득할 만한 답이 있다고 해도, 대체 누가 이곳에 전화를 걸고 있는 걸까?
숲을 가로질러 몇 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그 물건을 들고 오는 것만 해도 충분히 힘들었을 텐데, 누군가는 이 외딴 숲까지 가져온 것도 모자라 하필 이 공터를 찾아 어떻게든 설치한 다음 여기에 두고 갔다.
나는 기묘한 설치미술 작품일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아니면 아무도 굳이 철거하지 않은 옛 영화 세트의 잔재일 수도 있었다. 혹은 그저 엄청나게 공들인 장난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누군가 우연히 이곳에 들어올 사람 하나 엿 먹이겠다고 어마어마한 수고를 들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는가? 게다가 누군가 우연히 이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위치를 생각하면, 이것을 여기 두고 간 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은 내가 처음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설명하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내가 생각에 잠겨 바라보는 내내 전화벨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나마 논리적으로 느껴지는 유일한 행동을 했다. 전화를 받았다. 작동하지 않을 거라고 반쯤 예상하며 수화기를 귀에 댔다.
“여보세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완전한 침묵은 아니었다. 전화가 연결됐을 때 같은 희미한 웅웅거림이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 중인데 둘 다 말을 하지 않을 때 들리는 특유의 희미한 소리였다.
“여보세요? 누구 계세요?” 나는 다시 말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서 있다가,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문득 깨달았다. 숲 한가운데서 가짜일 가능성이 큰 공중전화 수화기를 붙들고 아무도 없는 곳에 말을 거는 남자 하나라니. 어딘가에서 누가 나를 촬영해 시시한 유튜브 채널에 올리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희미하게 딸깍 소리가 나더니 낮은 웅웅거림이 사라졌다. 정말 반대편에 누군가 있었던 걸까?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굳이 왜 그랬을까 싶었다.
“뭐야, 대체?”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일 분쯤 더 그 자리에 서서, 전화기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작동하는지 알아보려고 내가 직접 전화를 걸어 볼까 생각했다.
아마도 오래전에 중단된 어떤 사업에서 남겨진, 잊힌 자동화 시스템일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숲 한가운데서 공중전화를 바라보는 것도 지겨워져 야영지로 돌아가기로 했다. 솔직히 이 일 때문에 이제는 좀 불안해졌다. 누가 전화를 걸었던 걸까?
뭐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 속을 갉아먹으며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 전화기에서 세 걸음쯤 떨어졌을 때 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걷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나는 전화기를 등진 채 잠시 서서 그냥 계속 걷는 편이 좋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 이상한 일이었다.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벨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전화를 받지 않고 두는 건 어쩐지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야영지로 돌아가 이 이상한 일들을 전부 뒤로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다시 전화기 쪽으로 돌아섰다.
수화기를 들자 벨 소리가 멈췄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댔다.
“여보세요?”
지난번처럼 전화가 연결된 소리만 똑같이 들렸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보세요?” 나는 다시 말했다. 목소리에 점점 짜증이 묻어났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했다.
수화기를 받침대 쪽으로 반쯤 가져갔을 때 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분명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다시 귀에 댔다. 그러자 전화 너머의 상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무슨 말인지 또렷하게 들렸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남자였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뭐라고요?”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내가 물었다.
“당신에게는 벨 소리가 들리지 말았어야 합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소리예요? 누구세요?”
전화 너머로 잠깐 침묵이 흐른 뒤 남자가 다시 말했다.
“살고 싶으면 꼼짝하지 마세요.”
뭐?
“뒤를 돌아보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배 속 깊은 곳이 꽉 조여들었다.
“돌아보지 마세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 상황 자체가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나는 불안하게 웃다 말았다.
“알았어요. 참 재밌네요. 대체 누구예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장난 그만해요. 누구냐고요?”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그가 조용하지만 간결하게 말했다.
“그게 오고 있습니다.”
딸깍 소리가 나더니 전화가 끊겼다.
나는 끊긴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서 있었다. 분명 장난일 거야. 그게 온다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딘가에 몰래카메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무슨 새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가? 나는 덤불 속에서 촬영팀이 불쑥 튀어나오고, 웃는 얼굴의 진행자가 내 얼굴에 마이크를 들이대며 새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반쯤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의 어조에 담긴 무언가가, 그리고 이곳의 분위기 자체가 나를 안심시키려고 지어낸 이야기에 대한 확신을 흔들었다.
전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고개를 들어 주위의 나무들을 보니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숲이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고요였다. 완전한 침묵. 너무나 철저한 침묵이라 나는 귀가 먹은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헛기침을 했다.
새 소리도 없었다. 벌레 소리도 없었다.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도 없었다. 내 숨소리와 귓속에서 점점 크게 울리는 심장 소리만 들렸다.
다음으로 알아차린 것은 공터 곳곳에 스며든 냄새였다. 썩는 냄새. 처음에는 너무 오래 쌓아 둔 젖은 낙엽처럼 희미했다. 곰팡이와 탁한 공기, 그리고 죽은 무언가의 냄새였다.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내렸다.
그러다 발소리를 들었다. 고르지 않고, 무언가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다리로 움직이는 듯 거의 허둥지둥 내딛는 발소리였다. 내 뒤쪽, 나무들이 늘어선 가장자리에서 들려왔다. 거기에 무언가 있었다. 천천히 걷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모든 본능이 무언가에 대비하라고 소리쳤다. 몸을 지키거나 싸우거나 달아나라고. 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사람이거나.
뒤를 보려고 고개를 겨우 일 인치 돌리다가 멈췄다. 남자의 말이 아직 머릿속에 맴돌았다.
꼼짝하지 마세요.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정확히 왜 그 말을 따랐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전만 해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치부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고요한 숲에서 죽음의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우자, 타고난 어떤 본능이, 싸우거나 달아나라고 외치는 본능보다도 더 깊은 곳의 본능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시선을 앞으로 둔 채 공중전화의 녹슨 모서리에 고정했다. 발소리가 이어졌다. 그것이 천천히 다가오는 동안 고르지 않은 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
멈춤.
한 걸음.
멈춤.
한 걸음.
움직임이 이상했다. 거의 절뚝이거나 걸음이 중간중간 끊기는 것처럼 들렸다. 걷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내 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갑자기 멈췄다. 아마 공터의 가장자리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꼼짝도 하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기다리면서. 수화기를 받침대에서 일 인치 떨어진 곳에 내민 채 쥐고 있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발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빨랐지만 여전히 끊어지고 고르지 않은 박자였다. 곧장 내 등을 향해 오고 있었다.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자 그게 무엇이든 몇 초 안에 그대로 나를 들이받을 것 같았다.
몸을 홱 돌리고 싶었다. 몸을 숙이거나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움찔하며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숨을 참은 채 무언가 뒤에서 나를 들이받기를 기다렸다. 끔찍한 무언가가 내게 닿아 목에 발톱이나 이빨을 박아 넣기를.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발소리가 멈춰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귀를 기울였다.
희미하게 물기 어린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바로 뒤에 있나?
손이 더 심하게 떨려 수화기를 떨어뜨릴 지경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너무 무서워 눈을 완전히 뜰 수가 없었다.
그때 무언가 느껴졌다. 목덜미를 가볍게 스치는 감촉이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울퉁불퉁하고 축축한 나무 같았고, 피부에 닿는 감촉이 차가웠다. 온몸의 근육이 수축했다.
몇 초만 지나면 완전히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거나 숲속으로 내달리거나, 아니면 그 자리의 흙바닥에 웅크린 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서 있었고, 매초가 지날 때마다 공포에 질려 현실감이 끊어지는 상태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때 전화벨이 다시 울렸고, 나는 놀라 몸을 움찔했다. 움직여야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하기도 전에 손은 이미 수화기를 귀로 가져가고 있었다.
“잘했습니다.” 그 목소리가 말했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어요?”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게 들려 헛기침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지시를 아주 주의 깊게 따르세요.”
“누구세요? 이제 재미없다고요. 제발요.”
“앞으로 걸으세요. 칠천 걸음.”
“뭐라고요?”
“칠천 걸음을 걸으세요. 가능한 한 일직선으로.”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완전히 차분했다. 권위가 있었다.
“뛰지 마세요.”
뒤쪽 먼 곳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움직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무슨 소리가 들리든.”
나는 침을 삼켰다.
“곁눈에 무언가 보이더라도 똑바로 쳐다보지 마세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남자가 조용히 다음 말을 꺼냈다.
“그것들은 나무에 있습니다.”
“뭐라고요? 만약 그러면 어떻게…”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나는 충격에 굳어 버린 채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정신을 가다듬으려 했다.
그러고는 걷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남자가 지시한 대로 걸으면서 걸음 수를 셌다. 적어도 집중할 무언가가 생겼다.
이제 숲이 다르게 보였다. 주위의 나무들이 어쩐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어둡고 너무 날카로웠다.
나는 계속 걸었다. 삼백. 삼백하나. 삼백둘.
걸어가는 동안 남자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됐다. 그것들은 나무에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따금 높은 나뭇가지 쪽을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보리라 예상했던 건지 모르겠다. 내 머리 위 나뭇가지에 웅크리고 앉은 무언가. 덮칠 틈을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무언가.
당연히 아무것도 없지.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해 두려움을 떨치려 했다. 전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애초에 왜 숲 한가운데 있는 공중전화로 어떤 놈이 하는 말을 따르고 있지?
다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정말 그저 기발한 장난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겁에 질려 숲속에 있는 어떤 미치광이의 지시를 따르도록 조종당한 건지도 몰랐다.
아무리 진정하려 애써도 걸어가는 동안 이따금 나무 위를 올려다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몇천 걸음쯤 갔을 때 움직임이 보였다. 머리 위가 아니라 오른쪽 시야 끝이었다. 처음에는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줄 알았다. 그러다 나무라는 걸 깨달았다. 나무줄기에 붙어 있는 무언가.
아니. 나무줄기 안의 무언가.
무언가가 거기서 제 몸을 벗겨 내는 것 같았다.
눈이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억눌렀다. 시야 끝에는 여전히 그것이 보였다. 하지만 곁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보고 싶었던 것보다 더 많이 보고 말았다.
오래된 나무껍질 색을 띤, 바싹 여윈 사람 형체의 무언가였다. 그것은 찢어지고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뼈에서 살점을 뜯어내듯 나무줄기에서 제 몸을 뜯어냈다. 그것이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 때 나무껍질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고, 벗어나려 애쓰면서 제 몸까지 부러뜨리는 것 같았다.
그것이 팔 하나를 잡아 빼냈다. 손가락은 지나치게 길었고, 나무줄기를 움켜쥐자 줄기를 따라 휘어졌다. 그것은 갈라지고 쪼개지는 소리를 더 내며 몸을 더욱 끌어냈고, 입에서는 깊이 헐떡이는 쌕쌕거림이 새어 나왔다.
전화 속 목소리가 그것들이 나무에 있다고 했을 때, 그 말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문자 그대로의 뜻이었다.
숨이 거칠어졌고 두려움에 눈이 커졌다. 나는 걸음에 집중하려 애썼고, 달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자제해야 했다. 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고 시선을 똑바로 앞에 뒀다.
계속 걸어 지나치자 옆쪽에 있던 그것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빠져나온 걸까?
나무줄기에서 몸을 뜯어내려고 몸부림치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6,004. 6,005. 6,006.
뒤에서 아까와 똑같이 허둥거리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타는 듯했고, 부패한 냄새가 다시 공기 중에 가득 찼다. 이번에는 더 강했다. 죽은 나무와 젖은 흙, 썩는 것의 그 냄새였다.
걸어가는 동안 숲속의 침묵이 무겁게 느껴졌다. 발밑에서 덤불과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마저 먹먹하게 들렸다. 귓속에 울리는 피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주위 숲을 덮고 빛과 소리조차 통과시키지 않는 장막처럼 이곳의 분위기 자체가 그런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해는 여전히 하늘 높이 떠 있었지만, 햇빛은 숲의 우거진 나뭇잎을 거의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듯했다. 무슨 어둠이나 독기 서린 안개가 햇살이 아래에 닿기도 전에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때 또 하나가 보였다. 앞쪽 왼편의 다른 나무에서 제 몸을 붙들고 있던 마지막 부분을 나무껍질로부터 뜯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많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몸부림치며 힘껏 잡아당기는 모습이 보였고, 나무껍질 같은 살이 마지막으로 붙어 있던 부분까지 찢어지면서 그것은 비틀거리다가 땅에 떨어졌다.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일어서려 애썼고, 거의 제 몸을 끌다시피 앞으로 나아갔다.
몸은 있을 수 없을 만큼 가늘었다. 피부는 뒤틀린 뼈 위로 오래된 나무껍질을 잡아 늘여 씌운 것 같았다. 몸은 썩은 나무껍질처럼 얼룩덜룩한 흑갈색이었다. 나무껍질 같은 피부가 군데군데 녹은 살점처럼 벗겨져 떨어지는 듯했다. 병든 나무처럼 보이는 축축하고 창백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더니 그것이 고개를 들었다. 나무 그늘에 가려 얼굴은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야위고 움푹 파인 이목구비가 어렴풋이 보였다. 두개골에 가느다랗게 붙은 머리카락 같은 것들은 검은 이끼나 균류의 가닥처럼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근육마저 가느다란 섬유와 줄무늬로 이루어져 있어, 도저히 몸을 똑바로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이 인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긴 손을 뻗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마디가 진 나뭇가지처럼 휘어 있었고, 끝은 들쭉날쭉하고 날카로웠다.
나는 몸을 떨며 억지로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고 걸음 수를 세는 데 집중했다. 등 뒤의 발소리는 불규칙했다. 거의 미친 듯이 다급했다.
6,611. 6,612. 6,613.
달아나거나 숨고 싶었다. 아니면 땅바닥에 쓰러져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다. 이제는 썩는 냄새가 견딜 수 없이 짙어져 목 안을 가득 채웠고, 하마터면 구역질이 날 뻔했다.
곧 발소리가 멎었다. 앞쪽에서 다른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전화기의 벨 소리였다. 또 있다고?
전화기에 도착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것이 거짓 구원이라도 되는 양 계속 그쪽으로 걸어갔다.
6,998. 6,999. 7,000.
마지막 걸음에 나는 또 다른 공터로 들어섰다. 눈앞에 또 다른 공중전화가 서서 울리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수화기를 귀에 다 갖다 대기도 전에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이지 숲에 이렇게 깊이 들어오면 안 됐어요.”
“저것들은 뭐예요?” 목소리에서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표지판 못 봤어요?”
“표지판이요? 무슨 표지판요?” 내가 물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려움과 함께 짜증도 커져 갔다.
“빌어먹을 표지판 같은 건 못 봤다고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고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주차 공간도 아닌 곳에 차를 세워 놓고, 정식으로 지정된 길도 아닌 곳을 따라 하이킹하러 들어왔다.
“아직 살아서 나갈 수 있어요.” 목소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멈췄고,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불길한 예감이 불안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가 말을 잇지 않자 나는 수화기에 대고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뭐요?” 목소리가 거의 갈라질 지경이었다. “왜 사람을 갖고 장난질이에요?”
전화 너머의 남자에게 계속해서 욕을 퍼부을 뻔했지만, 내가 그러기도 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이 당신을 만졌어요?”
“날 만졌냐고요?”
나는 완전히 공황에 빠진 채 어떻게든 목소리를 차분하게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내 목소리가 내 귀에도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왜요?”
그는 그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묘한 지시를 이어 갔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아주 주의 깊게 따라요.”
나는 여전히 이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공터에 들어온 뒤로 느릿느릿 걷는 발소리와 시야 가장자리의 그림자는 사라졌지만, 희미한 부패와 묵은 잎 냄새는 여전히 목구멍 깊숙이 맴돌았다.
“오른쪽을 보면 키 큰 참나무가 보일 거예요. 다른 나무들보다 높이 솟아 있어요.”
그쪽을 보니 나무가 있었다.
“밑동 근처에 구멍이 있을 거예요. 그리로 가요. 안으로 들어가요.”
“지금 빌어먹을 나무 속으로 들어가라고요? 대체 무슨……”
“거기 있으면 안전할 거예요.”
“저것들은요?”
“나무 안에 있으면 그것들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못할 거라고.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럼 거기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동이 틀 때까지요.”
“그러니까 저것들이 밖에 있는데 나무 속에서 밤을 새우라고요?” 믿을 수가 없었다.
“동이 트면 나무에서 나와요. 남쪽으로 걸어요.”
“그럼 난 뭘……”
“도로가 있어요.” 이제 그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묻어났다. “거기 닿을 때까지 계속 걸어요.”
등 뒤의 숲에서 우지끈 부서지고 찢어지는 소리와 불규칙한 발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가요.”
나는 수화기를 세게 내려놓고 참나무를 향해 달렸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바짝 다가오고 있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커다란 참나무와 줄기에 뚫린 구멍이 보였다. 빛 한 점 들지 않아 새까맸고, 몸을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았다. 나는 안으로 몸을 던지다 나무껍질에 어깨를 긁혔고, 하마터면 얼굴부터 고꾸라질 뻔했다.
나는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깊이 몸을 밀어 넣었다. 나무 속 빈 공간은 생각보다 깊었다. 무릎을 가슴에 붙이고 구석으로 파고들어 몸을 최대한 작게 웅크렸다. 숨소리를 너무 크게 내지 않으려 애썼다. 조용히, 꼼짝하지 않으려고. 아예 자취를 감추려고.
구멍 너머의 숲은 고요했다. 나무 속 벽에는 거미줄과 벌레들이 붙어 있었고, 자세를 고쳐 앉으려 짚은 손이 거미줄 뭉치에 닿자 나는 손을 털었다. 밖에 있는 숲은 가느다란 틈으로만 보였다. 숲은 잠잠했다.
나는 눈을 감고 기다렸다. 이 모든 일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숲은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기진맥진했다.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냄새가 밀려왔다. 부패와 죽음의 냄새였다. 아득히 오래되고 축축하고 압도적인 무언가의 냄새. 바로 바깥 어딘가에서 났다. 나는 나무 속 가장 안쪽에 몸을 더욱 세게 밀어 붙였고, 그때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여럿의 발소리가 났다. 참나무 주위를 도는 듯했다. 한 바퀴, 그리고 두 바퀴.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계속됐다. 나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러다 무언가가 나무껍질 위로 손가락을 끌고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긁는 소리였다. 불규칙하고 둔중한 걸음걸이에 맞춰 나무 주위를 돌았다. 줄기를 따라 크게 한 바퀴를 긁고 돌아온 소리는 구멍 바로 밖에서 멈췄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밖을 응시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체와 그림자만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 움직임이 보였다.
어떤 형체. 구멍 앞에 다리가 있었다. 허리 아래로만 보였다. 가느다란 다리는 연약했고, 나무껍질 같은 근육이 군데군데 뜯겨 나간 듯했다. 잎맥처럼 보이는 짙고 검은 혈관이 온통 뒤덮고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발가락은 끝이 들쭉날쭉한 뼈처럼 뾰족했고, 흙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의 숨소리가 들렸다. 몸을 움직이는 소리도. 그것은 비틀거리며 불안정하게 몸을 낮추고 있었다. 구멍 안으로 얼굴이 보일 때까지 계속 내려왔다.
썩어서 바싹 말라붙은 듯한 창백하고 얼룩덜룩한 얼굴이었다. 피부는 울퉁불퉁한 뼈로 보이는 것 위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그것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눈은 우윳빛으로 희뿌옜고 죽어 있었다. 그것이 시험이라도 하듯 긴 손가락 하나를 뻗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향해 뻗어 오는 손이 나무 속 어둠으로 사라졌다.
더는 벽 쪽으로 몸을 밀어 붙일 수 없었다. 그것의 팔이 더 깊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것이 쪼그려 앉아 더 가까이 기어 왔다. 이제 손은 내 몸에서 몇 인치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소용없을 줄 알면서도 몸을 지키려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오지 마.” 목소리가 겨우 새어 나왔다.
그것이 더 깊이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이제 나를 거의 움켜쥘 듯했다.
그러더니 멈췄다. 무슨 소리라도 들은 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나도 그 소리를 들었다. 숲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따르릉.
그것이 손을 거뒀다.
따르릉.
그것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나무에서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그것의 눈은 거의 화가 난 듯 보였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그 생물은 몸을 돌리더니 구멍 입구에서 보이는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안에 앉아 떨었다.
그 뒤로 얼마나 오래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다. 밤새 전화벨이 울렸다 멎기를 반복했다. 벨이 울릴 때마다 참나무 너머에서 그 생물들이 흩어져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구멍 너머의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새벽이었다. 나는 빛이 땅에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전한지 확인하려 양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피며 불안하게 밖으로 기어 나왔다.
나무 주위의 땅은 발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들이 밤새 주위를 맴돌았다는 증거를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들쭉날쭉한 발톱 자국이 단단한 땅에 깊이 패여 있었다.
나는 남쪽으로 걸었다. 걷는다기보다는 뛰는 것에 가까웠다. 전화벨은 다시 들리지 않았다. 들렸더라도 아마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야영지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간대도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차 열쇠는 가지고 있었다. 필요한 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몇 마일을 걸은 끝에 도로에 닿았고, 지도를 띄워 차를 세운 곳을 확인할 만큼 신호가 잡힐 때까지 더 걸었다. 도로를 걷다가 숲 가장자리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았다.
보호 수목 접근하거나 훼손하지 마시오 위반 시 기소될 수 있음
보호 수목?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지판이었고, 문구도 이상했다. 돌아가는 동안 똑같은 표지판을 두 개 더 보았다. 차로 돌아가는 내내 숲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마침내 차에 도착하자 얼른 올라타 빠르게 차를 몰고 떠났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일주일 전의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집에 돌아온 첫날 밤, 목덜미에 작은 긁힌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작은 붉은 점 정도였다. 거미에 물렸거나, 나무 속에 있을 때 나무껍질에 긁힌 자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낫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나흘째가 되자 검게 변했고, 거의 썩은 것처럼…… 아니면 나무껍질처럼 보였다. 나는 연고를 좀 바르고 감염된 게 아니기를 바랐다. 저절로 없어지면 좋겠다.
하지만 전화 속 남자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그가 했던 질문을.
그것이 당신을 만졌어요?
그는 왜 내게 그런 걸 물었을까?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자국은 공터의 공중전화 근처에 서 있을 때 무언가가 뒤에서 나를 건드렸던 바로 그 자리에 생겼다. 차갑고 축축하고 골이 진 무언가였다. 겨울 아침의 차가운 나무껍질이 피부에 닿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길을 걷다가 공중전화 하나를 지나쳤다. 전에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저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쓰지 않고 눈길을 끌 일도 없는 옛 물건이었으니까. 내가 알기로 공중전화는 대부분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지나치자 전화벨이 울렸고,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그 소리가 등 뒤에서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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