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도포드 1032: 경계지대의 초단편 LXXVIII (78): 땅도 도시도 물러가게 하라
방송 안내
작가의 말: 「다른 혀」는 미국 국경 너머에서 들어오는 언어들에 관한 실제 정치적 발언을 계기로, H.P.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를 모방하는 작품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발전하면서 고유한 목소리와 목적을 찾았고, 저만의 기이한 이야기로 자라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쓴 것은 2024년 3월인데, 안타깝게도 그해가 흘러갈수록 시의성과 현실적 연관성이 더욱 커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해밀턴 믹스테이프
해밀턴 믹스테이프-이민자들
“우리가 국경을 넘은 게 아니라, 국경이 우리를 넘어갔다.”
제이컵가
L. 마리 우드 지음
“또?”
“빌어먹을, 매번 이래.” 케이트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위성들이 온종일 경로를 확인하는 거 아니야? 우주에 한 30개쯤 떠 있잖아, 그렇지?”
케이트는 고개를 저었다.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제이컵가나 그 근처 어디로 차를 몰고 갈 때마다 GPS가 그들을 만 한가운데로 빠뜨린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계기판 위에 달아 놓곤 하던 구식의 투박한 상자형 GPS든, 고급 차에 장착되어 나오던 터치스크린형이든, 스마트폰 앱이든 상관없었다.
“이쯤 되면 우리도 길을 알 만도 한데.” 글렌이 낮게 중얼거렸지만, 바람에 실려 온 말을 케이트가 알아듣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사실 알고 있어야 했다. 지난 여섯 해 동안 같은 출발점에서 같은 길을 적어도 네 번은 다녔으니까. 그 길을 갈 때 하는 일도 늘 같았다. 둘 다 그럴 생각은 없으면서 꾸물거리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게 출발했고, 길가의 허름한 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었으며, 차에 탈 때는 늘 새로운 곳에 가 보자고 해 놓고 결국 창문이 뿌연 그 식당으로 갔다. 꽃과, 땅에 꽂을 수 있도록 일각고래의 엄니 같은 뾰족한 끝이 달린 초록색 금속 꽃병을 하나 사려고 멈췄고… 그러고는 만 바닥에 놓인 자기네 차의 작은 아이콘을 바라보게 되었다.
“알 만도 하지.” 케이트는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했다. 그 역시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을 했으니까. 그가 하니 그 말에는 뭔가가…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뭔가가 담겨 들렸다. ‘우리’가 꼭 ‘너’처럼 들렸고, 그게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거만한 말투도, 깔보는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말에는 추궁과 질책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비난의 냄새가.
아니, 그 말이 들리는 방식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그 말을 했을 때는 그 모든 뜻을, 그 이상의 뜻까지 담았다.
그들은 길을 알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는 둘 다 알고 있었다. GPS가 자신들을 만 바닥에 툭 떨어뜨려, 깊은 물속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달리게 하리라는 사실을 아는 만큼이나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잊어버린 게 아니었다…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길을 알고 싶지 않았다. 누가 그런 길을 기억 속에 새겨 두고 싶겠는가? 그녀로서는 차라리 다시는 그곳을 보지 않고 싶었다. 집에 있을 때조차 그곳의 손가락들이 목덜미를 향해 뻗어 오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길을 알면서도 GPS에 주소를 입력했다. 주소 역시 기억 속에서 불러냈다. 둘 중 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손가락이 알아서 입력했다. 마치 머릿속에 묻혀 있는 것처럼, 자신들의 일부인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괜찮았다. 괜찮아야 했다.
“위성이 그렇게 많이 떠 있지는 않을걸.” 케이트는 앞서 쏘아붙인 말 뒤에 조금 덜 공격적인 말을 이었다. “미국이라 해도 그건 많은 것 같은데.”
“그래, 하지만 내가 말한 만큼 많지 않더라도 이쯤 됐으면 고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저 위에 딱 하나만 떠 있어도 거기에는 길이 없다는 걸 알아냈어야지. 그냥 빌어먹을 만이라고. 안 그래?”
날카로운 목소리. 이번에는 훨씬 빨리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네, 케이트는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우리가 여길 다닌 지가 벌써—” 글렌이 말을 꺼내다 머뭇거렸다.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고, 세월을 헤아려 그것을 현실로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여기 다닌 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 케이트가 끼어들어 두 사람 모두 그 고통을 겪지 않게 했다.
“그냥 말도 안 되잖아, 그게 다야.” 글렌은 그녀가 자신을 벼랑 끝에서 물러서게 하도록 내버려 두며 말했다.
“기술이 그렇지 뭐.” 케이트는 무심하게 대꾸했고, 바로 그 순간 해야 할 말이 그것임을 알았다. 고행길이 될 여정을 그저 차를 타고 가는 길로 만들어 줄 말이었다.
격자무늬를 이룬 거리들이 물가를 따라 휘어지다가 제 위로 고리를 그리며 돌아갔고, 길게 뻗고 뻗어 다른 어딘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차는 그 어느 길 위에도 없었다. 차는 거기, 화면 속 초록색 공간 한가운데에 있었다. 케이트는 그것이 깜빡거리고, 심지어 삐 소리까지 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영화 속 잠수함처럼. 그렇다면 우리 무덤은 물속이라는 건가, 이게 그런 뜻인가? 케이트는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해마다 더 크게 부르고, 더 가까이 다가오는 건가?
“빌어먹을, 가지 말자.” 글렌이 말했지만 케이트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녀는 만 수면 아래의 지하 도시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한때 사람들이 살고, 거리를 걷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던 가라앉은 마을을. 사람들이 식당 밖에 앉아 수면 위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낮에는 햇빛 속에서 알록달록하게 일렁이고, 밤이면 하늘의 별처럼 수면에 점점이 박힌 불빛으로 환해지는 세상을. 아래에 있는 그들은 웃고 있었다. 그녀와 남자 형제가 가장자리를 따라 춤추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까이, 자꾸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그들은 잔을 들어 건배하고 있었다.
길가에서 노인이 손을 흔들었다. 손가락이 드러나는 그의 장갑에는 끈적한 무언가가 때처럼 묻어 있었다. 겹겹이 걸친 누더기 위로 팽팽하게 당겨진 체크무늬 셔츠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듯 해지고 더러웠으며, 그의 코는 빨갛게 깜빡이고 있었다.
켜지고.
꺼지고.
켜지고.
꺼지고.
“어쩌면 더는 거기 가지 말라는 신호일지도 몰라. 이제는 현실이 아니라는. 그 모든 게 다.” 글렌은 말하고 있었고 케이트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아닌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내내 그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몸속의 무언가를 제자리에서 밀어내며 한때 단단히 붙어 있던 것들을 헐겁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것을 느끼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혀가 입바닥에서 튀어 올라 제 이빨에 꿰이기까지, 짭짤한 물이 목구멍에 고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궁금했다.
“그래?” 케이트가 물었지만 목소리는 그녀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이제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 사람은 더는 거기 없었고, 그 사람의 발은 땅에 닿지 않았다. 땅은 수백 년 전에 사라졌으니까. 그녀는 웃으면서 누가 저렇게 시끄럽게 구는 걸까 궁금해했다. 글렌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깊은 물속을 밝히는 신호 불빛으로 환했고, 빨갛게 깜빡이는 빛은 그의 심장과 박자를 맞추어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었다. X가 그 지점을 표시한다. 오직 색채만이 불러올 수 있는 소음. 그녀는 웃었고 그는 비명을 지르다가 웃다가 울었다. 그녀는 그만하면 됐다고, 이제 입을 다물어도 된다고, 그 빌어먹을 입을 드디어 닥치고 빛을 보라고, 신호 불빛을 보라고, 끈질기게 울리는 삐 소리를 들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그쪽으로 얼굴을 돌려 자신이 살던 거리와 하나가 되었을 때, 숱한 낮과 숱한 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그의 집이었던 거리, 대리석으로 길을 포장하고 금으로 도로 표지판을 도금하던 시절의 거리와 하나가 되었을 때, 그의 얼굴이 집이 되고 이빨이 머릿속으로 밀려 올라갔을 때, 그녀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그들이 어린아이였고 그가 나무에서 떨어졌던 때 이후 처음으로, 다리가 몸 아래에서 뒤틀리고 꺾여 등이 뱀처럼 휘어졌고 머리는 그녀의 머리 옆에 떨어져, 너무도 가까이 떨어져 그녀를 더 망가뜨릴 뻔하고, 그녀의 머리를 쪼개 놓은 돌 아래 흙에 그녀의 얼굴이 입 맞추게 할 뻔했던 때 이후 처음으로, 흙은 흙으로… 피가 눈물처럼 떨어져 포도주가 되었던 때 이후 처음으로, 그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빨간 불빛이 다시 깜빡였다. 그때와 똑같이, 느릿느릿, 그러나 확실하게.
켜지고.
꺼지고.
켜지고.
꺼지고.
당신은 여기 있습니다.
해가 뜨면 모두 마신다
리오 롬바나 지음(이전 필명 SC 밀스)
알리시아는 유르트의 원목 마룻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나이 든 히피들이 둥글게 둘러앉은 자리에서 밤새 깨어 있었더니 발의 감각이 없다. 옆에서는 샤먼이 핸드팬을 두드리고, 싸구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플루트 소리와 뭉개지고 먹먹한 북소리가 반주를 이룬다. 그의 머리에는 줄줄이 엮은 황금빛 아만카이 꽃으로 만든 화관이 씌워져 있다. 앞에 놓인 얼룩진 메이슨 유리병에는 짙은 액체가 담겨 있고, 거기서 당밀이 썩는 듯 역겹게 달큰한 냄새가 풍긴다. 데프레다도라. 페루의 최신 화학적·영적 안내자가 마침내 알리시아처럼 이런 수련원에 올 돈이 있는 운 좋은 소수의 외국인에게도 제공되기 시작했다.
샤먼은 마시지 않지만, 나머지는 해가 뜨면 모두 마신다. 이제 곧이다. 분명히. 유르트의 격자 벽 너머로 키나나무 윤곽이 간신히 보이고, 그 검은 손가락들이 잿빛으로 밝아 오는 하늘을 할퀸다. 그녀는 휴대전화로 또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5:44. 곧이다.
샤먼이 그녀를 노려본다. 그가 헛기침한다.
그녀는 지나치게 밝은 화면을 끄고 눈을 굴린다. 데프레다도라는 고대 신들의 환영을 보여 주고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해 준다고 한다. 뭐, 그러든지. 취할 수만 있다면 어떤 영적 여정이든 좋다. 가능하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이면 좋겠지만.
다행히 핸드팬 연주가 멈추고, 배경 음악의 깡깡거리는 울음소리만 남는다. 알리시아는 눈 뒤편이 욱신거린다. 반복적인 히피 음악 때문에 시작된 두통은 옆 남자가 바른, 냄새는 지독하게 강하면서 정작 효과는 없는 파촐리 데오도란트 때문에 더 심해졌다. 그가 NPR 로고가 찍힌 천 가방에서 민트 잎 한 줌을 꺼낸다. “입가심용이에요.” 그가 그녀에게 속삭인다.
샤먼은 둥글게 앉은 사람들을 따라 걸으며 초췌한 뉴에이지 신봉자들에게 덩어리 진 자줏빛 약물을 차례로 건넨다. 마침내 가장자리에 누렇게 굳은살이 박인, 흙이 덕지덕지 붙은 그의 발이 알리시아 앞에 멈춘다.
그녀는 약물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느 차원으로든 올라가고 싶은, 혹은 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식물성 약물을 단숨에 들이켠다. 채소 칸에서 썩어 가는, 유통기한이 지난 케일에 묻은 달콤한 점액 같은 맛이다. 속이 뒤틀리지만 게워 내지는 않는다. 더 심한 것도 먹어 봤다. 안 해 본 게 없다.
몸 구석구석에 의식을 돌려 보지만 처음에는 아무 느낌도 없다. 이게 무슨 빌어먹을 동종요법 따위여서는 안 될 텐데. 전에도 ‘전통’ 의술에 속은 적이 있다. 바로 지난 주말에도—
고통에 찬 비명이 저음질 플루트 소리 위로 날카롭게 울려 퍼지며 그녀를 상념에서 홱 끌어낸다.
방 건너편에서 한 남자의 피부가 갈라지더니 창백한 띠 모양으로 말려 벗겨진다. 종이 같은 자작나무 껍질 아래로 뼈와 꿈틀거리는 힘줄이 드러난다. 울부짖는 여자가 그의 너덜너덜해진 팔을 움켜쥐고 있고, 여자의 손가락은 길게 늘어나 휘감는 덩굴손과 목을 조르는 덩굴이 된다.
공포가 알리시아의 가슴을 휘감아 조인다. 이토록 생생한 환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일 리 없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데프레다도라와 그 먹잇감.” 주술사가 낄낄거린다. 그의 눈은 속이 빈 안데스참나무의 옹이처럼 공허하다. “지금은 어느 쪽이 어느 쪽이지?”
“식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 반쯤 씹힌 민트 잎이 파촐리 냄새를 풍기는 남자의 입에서 떨어진다. “우리가 저들을 해치고 있어!” 그는 귓속과 귀 주변에 손가락을 파묻는다. 들쭉날쭉한 손톱에서 수액 같은 피가 끈적하고 반투명하게 배어 나온다.
알리시아는 흠칫 물러나 헛구역질하며 독을 토해 내려 한다. 너무 늦었다. 타는 듯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내달리고 양팔을 훑고 내려가며 부어오른 자국을 돋게 한다. 그 자국들은 갈고리 같은 가시로 굳어진다. 그녀는 마룻바닥에서 몸을 뒤틀고 버둥거리며 제 살갗을 띠처럼 찢어 낸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 아니, 찍찍거리는 소리가 음악 위로 치솟는다. 자신의 입에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숲에서, 심지어 민트에서도 들려온다. 인간의 것이 아니지만 낯익다. 언제나 거기, 모든 곳에서,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이고 있었던 것처럼.
“존중이라곤 없군.” 주술사가 비웃는다. 그의 거친 손가락이 알리시아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동쪽을 보게 한다.
해가 지평선 위로 떠오른다. 짙은 주황빛 불씨, 담배 끝의 불이다. 그녀는 넋을 잃고 바라본다. 망막이 타들어 간다. 피부가 굶주린다.
알리시아는 주술사의 흡족한 웃음소리에서 멀어지며 해를 향해 기어간다. 그녀는 유르트 가장자리에서 굴러떨어져 숲 바닥에 닿는다. 축복받은 축축한 흙, 그녀의 보금자리가 살을 달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잦아든다. 뿌리가 돋아나 땅속으로 파고들자 물집들이 부풀어 터지며 마지막 황홀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타자의 언어
라지브 모테 지음
우리는 산이시드로 입국항 근처 라스아메리카스 주차장에 생긴 구덩이를 두려움에 싸여 들여다보았다. 사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다른 수천 명처럼 온라인으로 영상을 봤다. 쉭쉭거리는 연기 기둥들이 움켜잡으려는 손가락처럼 휘어졌다. 그 쉭쉭거림 속에서 목소리가 속삭였다. 휴대전화 화면으로 보는데도 소름이 돋았다. 한 언어치료사가 영상을 분석해 파열음, 지속음, 마찰음, 전동음, 탄설음 등을 찾아냈다… “음소입니다.” 말을 이루는 기본 단위들. 하지만 말하는 이는 없었다.
아무도 무슨 언어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 리듬이 매혹적이었다는 건 말해 줄 수 있다. 그 이국적인 음절들을 발음하려고 입 모양을 잡으면 금단의 열매를 한 입 베어 물 때 같은 쾌감이 찾아왔다. 좁힌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사나운 으르렁거림, 입술과 혀 사이에서 팔랑이는 숨 섞인 속삭임,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 불결한 느낌이었다. 물론 젊은이들과 “자유사상가들”은 그것을 게걸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느 펑크 밴드는 「실어증」이라는 노래에 그 언어를 썼다. 듣자니 언더그라운드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좀 더 진지한 사람들은 그렇게 경솔하지 않았다. 조사관들은 그 구덩이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더 나쁜 것은, 백색소음에 숨어 있던 육체 없는 속삭임들이 퍼져 나갔다는 점이다. 차량들의 굉음 속에서 고함이 들렸고, 에어컨 소리 속에서 읊조림이 들렸다. 나는 샤워를 하다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샌디에이고 교구는 그 목소리의 기원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조사에 착수했지만, 뉴스 프로그램의 논객들은 인근 국경을 가리키며 답을 도출했다. 그것은 외국어였고, 입국 허가를 받지 않았으므로 불법이었다. 「매드독의 아침 방송」은 명시적 의미와 함축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외계의 언어라고 불렀다. “우리 모어가 아니라, 타자의 언어입니다.”
젊은이들과 세계주의자들을 제외하면, 타자의 언어는 우리에게 무력감과 설 자리를 잃었다는 느낌, 심지어 허무주의까지 안겼다. 우리는 그 말을 알아듣지도, 대답하지도 못했다. 그 언어는 우리를 무시했다. 우리가 결코 참여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담론이 어디에나 존재했다. 우리는 늙고 쓸모없는 존재가 된 듯했고, 우리 나라에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미국은 여러 침략을 견뎌 냈다. 무장 세력과 이주민, 마약과 질병, 사이버 범죄와 초대형 폭풍, 그리고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고 분열시키고 쇠약하게 만들려는 그 밖의 경제적·문화적·정치적 침입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고, 뜻을 같이하는 법원들이 그 법을 지지했다. 이제 타자의 언어가 끼치는 심리적 피해가 임상적으로 입증되자 국경이 닫혔다. 때로는 말 그대로 강철이 쾅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늘 그랬듯 개방성과 국가 정체성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논했다. 미국은 모자이크인가, 용광로인가, 아니면 정체 상태인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잠시 멈출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했다. “우리 나라에 언어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언어들을 말할 줄 아는 사람조차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정말 외국어들입니다. 아무도 그 언어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의회가 예산을 승인했다. 공용수용권이 행사되었다. 사막에서 철조망이 수용 구역들의 윤곽을 그렸다.
그사이 타자의 언어가 문자로 나타났다. 우리는 지하 통로의 읽을 수 없는 낙서에서 그것을 보았다. 차를 몰고 광고판 옆을 지나가면, 거기에 그려진 도형의 각과 면이 우리가 지나가는 동안 끝없이 펼쳐지는 듯했다. 나는 지역 문화·연예 잡지의 스쳐 간 인연을 찾는 난 사이사이에 흩어진 해독 불가능한 광고들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문자였다. 다양하면서도 반복되는 배열이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아마추어와 전문 암호 해독가들이 문자 치환부터 통계적 빈도 모형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문자로 된 타자의 언어가 말로 된 타자의 언어를 나타내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외계의 문자는 외계의 말보다 더 불안했다. 그 말이 아무리 기이하고 출처를 알 수 없다 해도 그랬다. 글에는 미래의 어느 때에(언제?) 누군가에게(우리는 아니다) 무언가를(무엇을?) 전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것은 조롱이거나 위협, 아니면 버젓이 눈앞에 숨어 있는 해독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정통 요리로 모두에게 사랑받던 쓰촨 음식점의 메뉴판에 갑자기 타자의 언어가 나타났다. 각 요리의 중국어와 영어 설명 아래였다. 우리는 타자의 언어가 실물 메뉴판을 감염시켰다면 음식도 감염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음식점은 강제로 문을 닫았다.
프린스턴 대학교 언어학과는 그 문자가 요리를 가리킨다는 가정 아래 메뉴판이 타자의 언어를 해독할 로제타석이 될 수 있다며 한 부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정부 요원들이 먼저 움직여 메뉴판을 마지막 한 장까지 음식점 자체와 함께 소각했다.
감염된 책들도 불길에 던져졌다. 인터넷에 나타난 것들은 동적으로 방화벽에 차단되었다.
물론 우리는 논쟁했다. 남들 눈에 비치는 모습은 끔찍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작동 원리가 여전히 수수께끼라 해도 이것이 침략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케이블 뉴스가 설명해 주었다. 언어는 사상의 매개체다. 좋은 사상은 떠오르고 나쁜 사상은 도태된다는 “사상의 시장”은 이미 허구로 판명되었다.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설득력이며, 설득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타자의 언어가 어떤 설득력을 지녔는지, 어떤 사상을 심으려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왜 어떤 이들은 취약하고 어떤 이들은 저항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타자의 언어가 전염된다는 사실은 알았다.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는 데 더해, 이제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과 지식인 엘리트들이 은어와 시로 그것을 퍼뜨리고, 스케이트보드와 강의계획서에 휘갈겨 쓰고, 자기 살에 문신으로 새겼다. 추상미술인가? 오컬트적 소통인가? 질병의 증상인가? 전문가들은 언어가 지각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입증되고 “개방성”을 외치는 수사가 뚜렷이 반미적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그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타자의 언어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어떤 식으로 미국을 빚어 가고 있을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전염성이 있고 이해까지 가능한 언어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보다 설득력이 더 강하고 더 해로울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은 한 번 알고 나면 다시 모를 수 없다. 번역이 불법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프린스턴 대학교 대 미국 사건의 판결은 언어의 자유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법원은 논객들이 줄곧 해 오던 말을 확인해 주었다. 타자의 언어는 불법이었다. 미국 전역의 울타리로 둘러싸인 수용 구역에 막사와 재교육 시설이 들어섰다. 신경언어학적 탈세뇌 전문가들이 모집되고 훈련받았다.
우리는 논쟁했다. 자유 사회는 논쟁한다. 가장 훌륭한 사상이 승리하기를. 미국은 타자의 언어를 받아들여 가장 좋아하는 죄악처럼 입안에서 굴리는 그들과, 저항하는 우리로 나뉘었다. 하지만 공익광고가 말했듯, 자유의 대가는 경계다. 언어, 패션, 음식, 예술, 사상에서 감염의 징후를 본다면 우리는 목소리를 내야 했다.
그것은 시간문제였다. 필연적으로 타자들 자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곁눈질로만 얼핏 보이는 그림자 같은 형체들. 우리는 그것을 파레이돌리아로 치부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넘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억지로라도 보려고 할수록 그들은 더 또렷하게 보였다. 그들이 출몰하는 동네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거무스름한 낯선 자들이 길모퉁이와 정상적인 사람들은 가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고가교에 숨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속삭였다. 한때 우리는 그 소리가 그저 귓속에서 쿵쿵 뛰는 피의 속삭임이기를 바랐다.
그들은 모이고, 늘어나고, 실체를 얻기 시작했다. 영속성을 얻었다. 눈을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고개를 돌려 우리의 시선을 마주했다. 인간을 닮은 모습으로 형태를 갖추는 어두운 얼굴 속에 흰 눈이 있었다. 그들의 입술이 뒤로 당겨지며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이가 드러났다.
과학은 이 타자들이 실체를 얻으려면 영양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단백질. 고기. 그들은 어디서 끼니를 구하고 있었을까? 무엇을 먹고 있었을까? 우리에게는 저마다 나름의 이론이 있었다. 꽥꽥거리던 거위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찾는 전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실종 아동이나 집을 나섰다가 사라진 노인들에 관한 기사를 세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에게 의문이 있었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거창한 말에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한가?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을 믿을 수 있나?
우리는 애가 타서 두 손을 비틀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논쟁했고, 타자들은 먹이를 먹으며 점점 더 인간과 닮아 갔다. 그들은 우리 사이를 걸어 다니며 우리 행세를 했고, 우리 중 많은 이들은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익숙해지는 것들이란 참으로 교활하다. 부자연스러운 것이 얼마나 빨리 일상이 되는지.
다행히 우리는 민주국가가 아니라 공화국에 산다. 우리는 우리가 안이해질 때 개입하는 것을 직무로 삼는 대표들을 뽑는다. 우리는 법으로 다스리는 사회에 살며, 그 법에 이따금 먼지를 털어 줄 필요가 생기면 그 일을 할 사람들을 뽑는다. 침략을 알아보고, 우리가 언제 전쟁 중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을.
그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남자와 여자, 아이들을 너무나도 닮은 타자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그리고 우리의 안전을 위해) 구속된 채, 끌려가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안도감이 들었다. 미국을 미국인들의 나라로 지키려는 시도가 그토록 많이 실패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행동에 나섰다.
논쟁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것이 자유의 대가다. 어떤 이들은 적이 우리를 분열시켜 정복하려 했다 해도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말한다. 나는 승리를 패배로 둔갑시키는 술책을 알아본다. 나는 그런 술책을 거부한다. 우리의 국경처럼 우리의 정신 자체도 공격받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것들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어스름한(그리고/또는 잃어버린) 카르코사에서 꼭 해야 할 여섯 가지
리치 라슨 지음
1) 해변으로 가세요!
할리 호수의 황량한 물가에서는 부패와 기억의 냄새가 나고, 검은 호수에는 먹장어의 점액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지만, 어디에서도 이보다 부드러운 모래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그 비결은? 죽음 같은 무수한 세월 동안 서서히 쌓인, 가루가 된 아이들의 뼈랍니다!
2) 구시가지를 탐험하세요!
점점 조여드는 나선형의 석조 폐허 속에서 인간의 감각이 무너지고 시공간이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곳, 카르코사의 매력적인 구시가지는 지금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입니다. 몸부림치는 참회자와 셀카 찍는 것도 잊지 마세요!
3) 황색의 왕을 찾아보세요!
솔직히 말해 봅시다. 지난여름 가장 화제를 모은 책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카르코사라는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었잖아요. 왕실 결혼식이나 《더 크라운》에 열광하신다면, 담즙이 튄 바닥 위를 누더기 예복을 걸친 어느 유명 인사가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는 더럽혀진 궁전도 무척 마음에 드실 거예요.
4) 알라르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세요!
카르코사보다 덜 화려한 자매 도시 알라르도 하루쯤 다녀올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긴 하지만요. 정박을 잃은 달의 불길한 징표를 따라가 보면 어떨까요?
5) 태양들이 지는 모습을 감상하세요!
쌍무지개 아저씨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이 광경에 환장했을 거예요. 두 태양이 땅거미 진 파도 아래로 가라앉는다니요? 그럼요, 꼭 봐야죠! 모든 자연광이 이곳을 버리고 떠난 자리를 에테르에서 태어난 흉측한 별자리들의 병약한 빛이 대신하는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보다 카르코사에서의 하루를 더 멋지게 마무리하는 방법은 없답니다.
6) 만물의 중심에 도사린 공허에 굴복하세요!
엄밀히 말하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카르코사에서는 느낌부터 다르답니다. 저희를 믿으세요!
진행자 해설
여기서 나를 종처럼 울리는 문장은 ‘그들은 길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입니다. 나는 의식적인 무지라는 개념을 많이 생각합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는 능력은 강력한 대처 기제입니다. 자신의 일부를 떼어 내어 그 부분에만 트라우마를 인정하는 일을 맡겨 놓고, 나머지는 웃고 떠들며 우리에게 기대되는 평범한 사람의 온갖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여행은 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우리 몫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째서인지 여전히 참여하기를 요구받는 ‘정상’을 향한 이동입니다. 마지못해 용인되는 처지에서도요. 특히 마지못해 용인되는 처지에서요.
우드는 여기에 그 공포를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그들을 바다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가하는, 문자 그대로이면서 은유적이기도 한 미세한 공격. 마지막 장면, 깜빡이는 불빛이 자아내는 울림 깊은 시적 표현. 추적하기. 차이 표시하기. 표적 표시하기. 먹잇감 표시하기.
NPR 에코백 때문에 정말 크게 웃었습니다. 진보주의자의 죄책감은 알고 보니 맛이 좋더군요. 특히 여기서는 밀스가 진보주의자의 죄책감과 진보주의자의 인종차별을 섞어 놓고, 희석할 음료 한 방울 없이 들이켜 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한 행동의 대가로 고통받는 사람들, 내 세계관에 내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지켜볼 때 혀에 감도는 피처럼 복잡하고 톡 쏘는 맛입니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스타에 올릴 사진 몇 장을 건지려고 세계를, 그리고 인간 인식의 지형을 여행하는 사람들. 내면의 공허를 막는 요새이자 겉으로 열린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는 보여 주기식 참여. 유사 위에 세운 요새입니다.
라지브는 이렇게 말합니다.
‘「타자의 언어」는 미국 국경 너머에서 온 언어들을 둘러싼 실제 정치적 수사에 자극받아 H.P.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를 모방한 작품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발전하면서 고유한 목소리와 목적을 찾았고, 자신만의 기이함을 품은 작품으로 자라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2024년 삼월에 썼는데, 안타깝게도 그해가 지날수록 시의성과 현실적 관련성이 더 커지기만 하는 듯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타자의 언어에 대한 인식이 뒤집히는 방식은 앞선 이야기에서 밀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발밑의 땅을 유사로 바꿔 놓습니다. 프리드킨의 말처럼, 공포란 무언가 다가오는 것을 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거듭 말하곤 하듯 공포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기도 하며, 여기서 모트는 방 안에 끔찍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속삭이고, 더 가까이 다가와 그 끔찍한 무언가가 우리일지도 모른다고 속삭입니다. 수은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놀라운 이야기 솜씨입니다. 그랜트 매지와 시드니 브라이어라면 이 작품을 무척 좋아할 겁니다.
스티브 부세미가 언젠가 말했듯, 때로는 공포를 끌어안아야 하니까요! 아니면 공포가 여러분을 끌어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작품의 해변 휴양지 같은 유쾌함도 좋고, 카르코사는, 뭐, 당연히 끔찍한 곳이지만,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여러분이 떠나온 곳은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는 끈질긴 느낌도 좋습니다. 폭풍 속에서는 어느 항구라도 좋으니까요. 때로는 이런 항구조차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