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밤을 기록합니다GLOBAL HORROR ARCHIVE
미간행MIDNIGHT GALLEY
내 서재 0

뼈의 들판

XXI

뼈의 들판

옛날에 아들을 하나 둔 왕이 살았다. 젊은 왕자에게는 친구가 셋 있었는데, 재상의 아들과 치안관의 아들, 그리고 그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다. 이 네 친구는 서로를 무척 아꼈다. 어느 날 그들은 먼 나라들을 구경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저마다 말을 타고 길을 떠났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달리고 또 달려, 정오 무렵 울창한 숲으로 보이는 곳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들은 말을 나무에 매어 놓고 잠시 쉬었으며, 말들은 풀을 뜯기 시작했다. 기운을 차린 그들은 다시 말에 올라 여정을 계속했다. 해 질 무렵 숲속 깊은 곳에서 사원 하나를 발견한 그들은 그날 밤 그곳에 묵고자 근처에서 말에서 내렸다. 사원 안에는 산냐시[1] 한 사람이 있었는데, 네 친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명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어둠이 숲을 덮자 사원 안에서 불빛이 보였다. 네 친구는 사원의 발코니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숲에는 사나운 짐승이 많았으므로, 나머지가 자는 동안 한 사람씩 밤의 한 프라하라[2]를 맡아 망을 보는 편이 안전하리라 여겼다. 첫 번째 프라하라, 곧 저녁 여섯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망을 보는 일은 상인의 아들 차지가 되었다. 망을 볼 시간이 끝나 갈 무렵, 상인의 아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은자가 손으로 뼈 하나를 집어 들더니 그 위에 대고 무슨 말을 되뇌었는데, 상인의 아들에게 그 말이 똑똑히 들렸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원 경내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상인의 아들은 숲의 여러 곳에서 수많은 뼈가 움직여 오는 것을 보았다. 뼈들은 사원 안 은자의 발치로 저절로 모여들어 무더기를 이루었다. 이 일이 일어나자마자 상인의 아들이 망을 볼 시간이 끝났다. 그는 치안관의 아들을 깨우고는 자리에 누워 잠들었다.

치안관의 아들은 망을 보기 시작하면서 은자가 뼈 무더기 곁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 뼈들이 어떻게 거기 있게 되었는지는 물론 알지 못했다. 한참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이에나와 늑대의 울음소리, 호랑이의 으르렁거림만이 쥐 죽은 듯한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망을 볼 시간이 거의 끝나 갈 무렵, 그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은자가 자기 앞에 놓인 뼈 무더기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했는데, 치안관의 아들에게 그 말이 똑똑히 들렸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뼈들 사이에서 소리가 났다. “보라, 흔들림이 일어나더니 뼈들이 서로 모여들어 뼈마다 제 짝과 맞붙었다.” 조금 전까지 무더기로 쌓여 있던 뼈들은 이제 해골의 형상을 이루었다. 경이로움에 사로잡힌 치안관의 아들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의 시간은 끝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재상의 아들을 깨우고 자리에 누워 잠들었다. 다만 상인의 아들이 자기가 본 것을 그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듯, 그도 자신이 본 것을 재상의 아들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다.

재상의 아들은 일어나 눈을 비비고 망을 보기 시작했다. 한밤중의 깊고 고요한 시각이었다. 온갖 이름과 형상의 유령과 도깨비와 정령들이 드넓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온 천지 만물이 깊은 휴식에 잠기는 때였다. 늑대와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도, 호랑이의 으르렁거림도 그쳐 있었다. 재상의 아들이 사원 쪽을 바라보니 은자는 명상에 잠긴 채 앉아 있었고, 그 곁에는 어떤 짐승의 해골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울창한 숲과 사방을 둘러싼 어둠을 바라보자, 공포로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거의 세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사원 안의 기이한 광경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은자가 자기 앞의 해골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했는데, 재상의 아들에게 그 말이 똑똑히 들렸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보라, 뼈 위에 힘줄과 살이 오르고 그 위를 살갗이 덮었다.” 그러나 해골에는 숨이 없었다. 그 광경에 놀란 재상의 아들은 더 오래 깨어 있고 싶었지만, 그의 시간은 끝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왕의 아들을 깨운 뒤 자리에 누워 잠들었다. 다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은 그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다.

왕의 아들은 망을 보기 시작하면서 은자가 어떤 짐승처럼 보이는 형체 곁에 앉아 기도에 온전히 몰두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짐승이 아무런 생명의 징후도 보이지 않은 채 죽은 듯 누워 있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왕자는 꽤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다. 잠을 오래 잔 데다, 한밤중의 깊은 정적이 사람의 마음에 드리우는 침울함도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둠의 그늘이 시시각각 엷어지고 옅어지는 모습을 살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막 동쪽 하늘의 붉은 빛 한 줄기를 발견했을 때, 사원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은자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은자가 자기 앞에 누워 있는 생기 없는 짐승의 형체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했는데, 왕자에게 그 말이 똑똑히 들렸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짐승에게 숨이 들어갔다. 그것은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섰다.” 그리고 재빨리 사원을 뛰쳐나가 숲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까마귀들이 울었다. 왕자가 망을 볼 시간이 끝나고 세 친구가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뒤 그들은 저마다 사원에서 본 기이한 광경을 생각하며 말에 올라 여정을 계속했다.

그들은 울창하고 끝도 없는 숲을 달리고 또 달리는 동안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다가, 한낮 무렵 기운을 차리려고 물웅덩이 근처의 나무 아래에서 멈추었다. 숲의 열매를 좀 먹고 물웅덩이의 물을 마셔 기운을 차린 뒤, 왕자가 세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들, 그 수행자의 사원에서 무언가 보지 않았나? 내가 본 것을 말해 주겠네. 하지만 먼저 자네들이 본 것을 모두 듣고 싶군. 첫 번째로 망을 본 상인의 아들부터 자기가 본 것을 말해 주게. 나머지도 차례로 이야기하고.”

상인의 아들. 내가 본 것을 말해 주겠네. 은자가 손으로 뼈 하나를 집어 들고 무슨 말을 되뇌는 것을 보았는데, 그 말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사원 경내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수많은 뼈가 여러 방향에서 사원 안으로 달려 들어오는 것이 보였네. 뼈들은 사원 안 은자의 발치로 저절로 모여들어 무더기를 이루었지. 끝까지 보려고 기꺼이 더 머물고 싶었지만, 내 시간이 끝나서 친구인 치안관의 아들을 깨워야 했네.

치안관의 아들. 친구들, 내가 본 것은 이렇다네. 은자가 자기 앞에 놓인 뼈 무더기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했는데, 그 말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뼈들 사이에서 소리가 들렸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뼈들이 벌떡 뛰어오르더니 각자 제 짝과 맞붙어 그 무더기가 온전한 해골이 되었다네. 바로 그때 망을 볼 시간이 끝나서, 나는 존경하는 친구인 재상의 아들을 깨워야 했네.

재상의 아들. 그래, 내가 망을 보기 시작했을 때 그 해골이 은자 곁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네. 몹시 두려워하며 지겹도록 긴 세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은자가 해골 쪽으로 눈을 들어 무슨 말을 하는 모습이 보였네. 그 말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해골은 살과 털로 덮였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어 아무런 생명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네. 바로 그때 망을 볼 시간이 끝나서, 나는 왕족인 내 친구 왕자를 깨워야 했네.

왕의 아들. 친구들, 자네들이 직접 본 것으로 미루어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걸세. 나는 은자가 살갗과 털로 덮인 해골 쪽으로 몸을 돌려 무슨 말을 되뇌는 것을 보았네. 그 말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해골이 제 발로 일어섰는데, 그것은 멋지고 기운찬 사슴의 모습이었다네. 내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사슴은 사원 밖으로 껑충 뛰어나가 숲속으로 달려갔지. 바로 그 순간 까마귀들이 울었네.

네 친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초자연적인 힘을 손에 넣은 것을 자축했으며, 은자가 외우는 것을 들었던 그 말을 자신들이 입으로 외우면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시험하여 자신들의 능력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나무 밑동 근처의 땅바닥에서 뼈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시험해 보기로 했다. 상인의 아들이 뼈를 집어 들고 그 위에 대고 은자에게서 들었던 주문을 외웠다. 놀랍게도 곧바로 백 개의 뼈가 사방에서 몰려와 나무 밑동에 무더기로 쌓였다. 그러자 치안총감의 아들이 뼈 무더기를 바라보며 은자에게서 들었던 주문을 외웠고, 곧 뼈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뼈가 서로 이어 붙어 하나의 골격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네발짐승의 골격이었다. 이어 대신의 아들이 골격에 다가가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은자에게서 들었던 주문을 외웠다. 골격은 즉시 살과 가죽과 털로 뒤덮였고, 끔찍하게도 그 짐승은 더없이 거대한 왕호랑이로 드러났다. 네 친구는 경악했다. 왕의 아들이 은자에게서 들었던 주문을 외워 그 짐승을 살려 낸다면 모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세 친구는 왕자에게 호랑이에 생명을 불어넣지 말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왕자는 그 부탁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왕자로서는 당연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배운 만트라[3]는 참되고 효험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지. 하지만 내가 배운 만트라에도 똑같은 효험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내 만트라도 반드시 시험해 봐야겠다. 게다가 이 시험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잃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 여기 이렇게 높은 나무가 있잖느냐. 너희는 맨 꼭대기 가지로 올라가 있어라. 나도 만트라를 외운 뒤에 너희를 따라 그리로 올라가겠다.” 세 친구가 그 시험에 따르는 극심한 위험을 아무리 역설해도 소용없었다. 왕자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신의 아들과 치안총감의 아들과 상인의 아들은 나무의 맨 꼭대기 가지로 올라갔고, 왕의 아들은 나무 중간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는 거기서 생명 없는 호랑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은자에게서 배운 말을 외운 다음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호랑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무시무시하게 으르렁거렸고, 엄청난 도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풀을 뜯던 말 네 마리를 모두 죽인 뒤 그중 한 마리를 끌고 숲이 가장 빽빽한 곳으로 달려갔다. 나뭇가지에 몸을 숨긴 네 친구는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보고 공포에 거의 돌처럼 굳어 버렸지만, 이제 위험은 지나갔다. 호랑이는 그들에게서 아주 멀리 가 버렸고, 그들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적어도 이 마일은 떨어져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잠시 뒤 그들은 나무에서 내려왔다. 이제 타고 갈 말이 없었으므로 숲속을 걸어서 지나갔고, 숲의 끝에 이르러 바닷가에 닿았다. 그들은 지나가는 배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바닷가에 앉았다.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행히 먼바다에서 배 한 척을 발견했다. 그들은 손수건을 흔들고 온갖 몸짓을 하여 배에 탄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 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해안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해안 쪽으로 다가와 네 사람을 배에 태워 주었지만, 배에 실린

“그들은 웅장한 건물군에 다가갔다.”

식량이 부족하므로 오래 태우고 있을 수는 없으며 처음 닿는 항구에 내려 주겠다고 덧붙였다. 나흘이나 닷새쯤 항해한 뒤, 그들은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높은 건물들과 작은 탑들이 있는 것을 보았고, 그곳이 큰 도시이리라고 생각한 네 친구는 거기에 내렸다.

네 친구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람한 나무들이 늘어선 긴 길을 따라 걸었고, 그 끝에는 시장이 있었다. 시장에는 수백 개의 가게가 있었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과자가 줄을 맞추어 가지런히 수북하게 놓인 과자 가게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팔 사람은 없었다. 대장간도 있었고, 모루도 있었으며, 풀무와 다른 대장간 도구들도 있었지만 대장장이는 없었다. 시들고 말라붙은 채소가 무더기로 쌓인 좌판들도 있었지만 그것을 팔 남자도 여자도 없었다. 거리는 모두 텅 비어 있었고, 사람도 가축도 보이지 않았다. 짐수레는 있었지만 황소가 없었고, 마차는 있었지만 말이 없었다. 거리 양쪽에 늘어선 도시의 집들은 문과 창문이 모두 열려 있었지만 그 안에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버려진 도시 같았다. 죽은 자들의 도시 같았다. 그 죽은 자들마저 모두 밖으로 옮겨져 묻힌 도시 같았다. 네 친구는 놀랐고, 그 광경에 겁이 났다. 계속 걸어가던 그들은 왕의 궁전으로 보이는 웅장한 건물군에 다가갔다. 그들은 대문과 문지기 처소로 갔다. 처소에 방패와 칼과 창을 비롯한 무기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지만 문지기는 없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지만 경비병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마구간으로 가니 여물통이 있고 곡식과 풀이 여기저기 잔뜩 놓여 있었지만 말은 없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 긴 복도들을 지나갔지만 여전히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길게 뻗은 뜰 여섯 곳을 지나갔지만 여전히 사람은 없었다. 일곱 번째 뜰에 들어섰을 때,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네 공주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네 공주는 저마다 네 친구 중 한 사람의 팔을 붙잡았고, 각자 자신이 붙잡은 남자를 남편이라고 불렀다. 공주들은 네 친구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고 말하며 그들이 온 것을 몹시 기뻐했다. 공주들은 네 친구를 가장 깊숙한 방들로 데려가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시중을 드는 하인은 없었고, 공주들이 직접 음식을 가져와 네 친구 앞에 차려 놓았다. 네 공주는 처음부터 네 친구에게 도시에서 사람들이 사라진 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각 공주는 새로 맞이한 남편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왕자와 공주가 둘만의 방으로 물러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주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왕자가 까닭을 묻자 공주가 말했다. “아, 왕자님! 저는 왕자님이 너무나 가엾습니다. 몸가짐을 보니 왕의 아드님이신 듯하고, 틀림없이 왕의 아드님다운 마음을 지니셨겠지요. 그러니 제 사연을 모두 말씀드리고, 공주처럼 보이는 저 세 동무의 사연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궁전의 주인이신 왕의 딸이며, 공주처럼 차려입고 왕자님의 세 친구를 남편이라고 부른 저 세것은 락샤시입니다. 얼마 전에 이 도시에 와서 제 아버지인 왕과 제 어머니인 왕비, 그리고 여럿이던 제 남자 형제들과 여자 형제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왕의 대신들과 하인들도 잡아먹었지요. 차츰 이 도시의 모든 사람과 제 아버지의 말과 코끼리를 모조리 잡아먹었고, 도시의 가축도 모두 잡아먹었습니다. 궁전으로 오시면서 이 도시에 사람도 가축도,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셨겠지요. 모두 저 세 락샤시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저 혼자만 살려 두었는데, 그것도 잠시 동안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락샤시들은 멀리서 왕자님과 친구분들을 보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얼마 뒤에 여러분을 모두 잡아먹을 작정이니까요.”

왕의 아들. 하지만 사정이 그렇다면, 그대 역시 락샤시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내 경계를 풀어 놓고 나를 삼켜 버릴 속셈인지도 모르잖소.

공주. 저 세것은 락샤시이고 저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락샤시는 사람이 먹는 양의 백 배나 되는 음식을 먹습니다. 락샤시들이 우리와 함께 식탁에서 먹는 것으로는 그들의 허기를 달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밤이면 사람이나 가축을 찾아 먼 땅으로 나갑니다. 이 도시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친구분들께 아내가 밤새 침대에 있는지 지켜보라고 하시면, 아내들이 밖으로 나가 밤의 상당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반면 저는 밤새 왕자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디 락샤시들이 이 일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 주세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맨 먼저 저를 죽이고, 그런 다음 여러분을 모두 삼켜 버릴 테니까요.

다음 날 왕자는 대신의 아들과 지방관의 아들, 상인의 아들을 불러 모아 의논하면서 모두에게 비밀을 엄격히 지키라고 당부했다. 왕자는 공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공주 행세를 하는 여자들이 밤에 밖으로 나가는지 잠들지 말고 침대에 누워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공주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 가지 정황은 공주 행세를 하는 여자들이 모두 밤마다 돌아다니느라 온종일 깊이 잠들어 있는 반면, 왕자의 짝인 공주는 낮에 전혀 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에 세 친구는 밤에 침대에 누워 잠든 척하면서 깊이 잠들었을 때 나타나는 온갖 모습을 흉내 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짝이 일정한 시각이 되면 곁에 누운 남자가 깊이 잠들었다고 생각하여 방을 나갔다가 밤새 돌아오지 않고, 새벽이 되어서야 침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이튿날 여자들은 저마다 낮 시간의 거의 전부를 잠으로 보내고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세 친구는 이틀 밤낮 동안 이를 지켜보았다. 왕자 역시 밤에 잠든 척하며 깨어 있었지만, 공주는 단 한 순간도 방을 나가지 않았고 낮에도 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왕자의 친구들은 공주가 말한 대로 자신들의 짝이 정말 라크샤시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공주는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왕자에게 또 말해 주었다. 라크샤시들은 사람과 짐승의 살을 먹고 나면 뼈를 도성 북쪽으로 내던지는데, 그곳에는 뼈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왕자와 세 친구는 도성의 그쪽으로 가 보았고, 과연 사람과 짐승의 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로써 그들은 세 여자가 틀림없는 라크샤시라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이제 문제는 사람과 짐승을 잡아먹는 이들에게서 어떻게 달아나느냐 하는 것이었다. 네 친구에게 크게 유리한 사정이 하나 있었으니, 세 라크샤시가 낮 시간의 거의 전부를 잠으로 보낸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계획을 다듬는 데 쓸 수 있었다. 공주는 바닷가로 가서 그쪽으로 지나가는 배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권했다. 이에 네 친구는 배를 찾아 바닷가에 가곤 했다. 공주도 늘 동행했는데, 만일을 대비해 가장 값비싼 장신구와 진주, 보석들을 보따리에 싸서 가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해안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을 지나가는 배 한 척을 보았다. 그들이 신호를 보내자 선장과 선원들이 알아보았다. 배가 육지 쪽으로 다가왔고, 네 친구와 공주는 한참을 간청한 끝에 배에 오를 수 있었다. 공주는 선원들에게 힘껏 노를 저어 달라고 독려하면서 그렇게 해 주면 후한 보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라크샤시들이 오후에 잠에서 깨어나 곧바로 배를 뒤쫓아 오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배가 육지에서 팔십 마일도 떨어지지 못한 곳에 있다면, 라크샤시들이 틀림없이 배를 붙잡아 선원과 승객을 모조리 죽일 터였다. 라크샤시들에게는 몸을 십 요자나 길이로 늘이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4] 네 친구와 공주는 선원들을 힘껏 응원했고, 노잡이들은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배는 순풍을 받아 깊은 바다 위를 번개처럼 내달렸다. 해가 질 무렵, 해안에서 무시무시한 고함이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난 라크샤시들은 네 친구도 공주도 보이지 않자, 그들이 배를 구해 달아나고 있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번개 같은 속도로 해안을 따라 달렸고, 멀리 있는 배를 발견하자 몸을 늘였다. 그러나 다행히 배는 육지에서 팔십 마일이 넘게 떨어져 있었다. 다만 그 거리를 아주 조금 넘겼을 따름이었다. 실로 배는 위험할 만큼 가까이 있어서, 아가리를 한껏 벌린 라크샤시들의 머리가 고물에 거의 닿을 지경이었다. 라크샤시들이 외치는 말이 선원과 승객들의 귀에 들려왔다. “오, 자매여, 그러니까 네가 혼자서 저들을 모조리 먹겠다는 거구나.” 대신의 아들과 지방관의 아들, 상인의 아들은 왕자의 짝인 그 가짜 공주도 실은 라크샤시가 아닐까 줄곧 의심해 왔다. 세 라크샤시의 말을 듣고 이제 그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말은 왕자의 마음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왕자는 공주를 가까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그녀를 라크샤시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선장은 네 친구와 공주에게 자신은 금광을 찾아 먼 곳으로 가는 길이므로 그들을 계속 데려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다음 날 어느 항구 근처에 그들을 내려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제 라크샤시들의 손아귀에서도 안전하게 벗어났으니 더욱 그랬다. 다음 날에는 한참 동안 항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 무렵 어느 항구에 가까이 이르렀고, 네 친구와 공주는 그곳에서 육지에 내렸다. 얼마쯤 걷자, 먼 길을 걸어 본 적 없는 공주가 지치고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두 나무 아래 앉았고, 왕자는 멀지 않은 곳에 시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상인의 아들에게 단 과자를 사 오라고 보냈다. 상인의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왕자의 짝도 자신이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머지 세 여자와 다름없는 진짜 라크샤시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인의 아들이 지체하자 왕자는 지방관의 아들을 뒤따라 보냈다. 그러나 그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또한 공주 행세를 하는 여자가 라크샤시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대신의 아들을 보냈지만, 그 역시 다른 두 사람과 합류했다. 그러자 왕자는 직접 과자 장수의 가게로 갔다가 그곳에서 세 친구를 만났다. 친구들은 그 여자가 공주가 아니라 나머지 세 여자와 똑같은 진짜 라크샤시라고 간곡하게 주장하면서, 힘으로 왕자를 붙들어 자신들과 함께 있게 했다. 이렇게 공주는 네 친구에게 버림받았고,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모험 이야기로 가득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공주는 시장으로 걸어가 어느 가난한 여자의 집에서 며칠 동안 몸을 의탁한 뒤, 네 친구가 사는 도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 도성의 이름과 위치는 왕자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도성에 도착한 공주는 값비싼 장신구와 진주, 보석 일부를 팔아 으리으리한 집을 거처로 빌리고, 그에 걸맞게 살림을 갖추고 하인들을 두었다. 공주는 자신이 하늘이 내린 주사위 놀이의 명수라고 널리 알리게 하고, 도성의 모든 주사위 놀이꾼에게 승부를 겨루자고 도전했다. 내기의 조건은 자신이 지면 이긴 사람에게 일 라크[5] 루피를 주고, 자신이 이기면 진 사람에게서 일 라크를 받는 것이었다. 또 약속한 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집에 가둘 수 있도록 그 나라 왕의 허락도 받았다. 상인의 아들과 지방관의 아들, 대신의 아들은 모두 자신을 기적 같은 솜씨를 지닌 놀이꾼으로 여겼으므로 공주와 주사위 놀이를 벌였고, 그녀에게 여러 라크를 지불했지만, 자신들이 진 빚을 모두 “이렇게 공주는 버림받았다.”

갚을 수 없어 그녀의 집에 갇혔다. 마침내 왕자도 그녀와 주사위 놀이를 하겠다고 나섰다. 공주는 일부러 첫 판을 왕자가 이기게 해 주었고, 이에 대담해진 왕자는 여러 차례 더 겨루었으나 그때마다 졌다. 공주에게 빚진 여러 라크를 갚을 수 없게 된 왕자가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려는 순간, 공주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다. 상인의 아들과 지방관의 아들, 대신의 아들이 감방에서 풀려 나왔고, 네 친구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왕과 왕비는 두 팔을 벌려 며느리를 맞아들였고, 성대한 잔치를 벌여 기쁨을 나타냈다.

궁궐의 모든 사람이 기뻐했으나 공주만은 그렇지 않았다. 공주는 부모와 형제자매가 라크샤시들에게 잡아먹혔고, 그들의 뼈가 아버지의 백성들의 뼈와 함께 수도 북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다. 왕자는 자신과 세 친구에게 뼈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 있다고 공주에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공주의 부모와 다른 친족들의 몸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점은 세 라크샤시를 어떻게 죽이느냐 하는 데 있었다.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법을 가르친 은자가 생명을 빼앗는 법도 가르쳐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 생각한 네 친구와 공주는 숲속에 있는 은자의 사원으로 가서, 주문으로 멀리서도 생명을 끊을 수 있는 비법을 알려 달라고 빌었다. 은자는 그들을 어여삐 여겨 소원을 들어주었다. 마침 사슴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은자는 물을 한 움큼 떠서 그 위에 몇 마디 말을 되풀이했는데, 왕자는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그러고는 그 물을 사슴에게 뿌렸다. 사슴은 순식간에 죽었다. 은자가 죽은 짐승을 향해 다른 말을 되풀이하자, 사슴은 벌떡 일어나 숲속으로 달아났다.

목숨을 빼앗는 이 주문을 익힌 왕자는 공주와 세 친구를 데리고 장인의 수도로 갔다. 그들이 죽음의 도성에 다가가자, 세 라크샤시가 아가리를 벌린 채 사납게 달려들었다. 왕자가 주문을 건 물을 그들에게 뿌리자, 그들은 순식간에 죽었다. 그러고 나서 일행은 모두 뼈 무더기로 갔다. 상인의 아들이 각자의 몸에 맞는 뼈를 모으고, 지방관의 아들이 그것을 짜 맞추어 뼈대를 세우고, 대신의 아들이 그 위에 힘줄과 살과 피부를 입히고, 왕자가 생명을 불어넣었다. 공주는 부모와 다른 친족들이 되살아나는 광경을 보고 황홀해했으며, 두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며칠 동안 성대한 잔치를 즐긴 뒤, 그들은 되살아난 도성을 떠나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고, 오랜 세월 더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여기서 내 이야기는 끝나고,

나티야 가시나무는 시드네, 등등.

• ↑ 종교 수행자.

• ↑ 스물네 시간의 팔분의 일, 즉 세 시간.

• ↑ 주문 또는 주술.

• ↑ 일 요자나는 거의 여덟 마일이다.

• ↑ 일만 파운드 스털링.

PASS THE STORY ON

이 밤을 함께 읽어요.

XThreadsTelegramWhatsApp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