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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행MIDNIGHT G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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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날의 손아귀에서

소년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기에 행복했다.

소년은 아무것도 몰랐다.

어둠에 잠복한 변칙도, 그것을 가두는 초석도.

소년은 1가지만 알고 말았다.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것을.

소년은 죽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날씨가 좋군.”

지구상에서 마지막 총성이 울렸고, 그 뒤로는 고요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에 내지른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총알이 관통한 관자놀이에서 뇌수가 주위로 흩뿌려졌고, 남자는 땅바닥에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남자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뾰족한 나뭇가지로 가슴을 찔렀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피와 체액을 토해 냈다.

남자는 더 이상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수중에 있던 기억소거제를 주사했다. 부작용인 진정 효과로 통증을 흐릿하게 만들고, 죽고 싶은 것을 참으며 걷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지혈을 한 뒤 차에 올라 오두막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제 그곳에서 얻을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차의 진로를 바꾸었다. 남자의 차는 지는 태양을 피해 달아나듯 미국의 황야를 내달렸다. 달리는 차는 그 밖에 없었다. 길 위에 세워진 차들은 틈새가 밀봉되어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무심코 켜 본 카 라디오는 의미 없는 잡음만 잡아 냈다. 이따금 들려오는 자동 음성은 자살을 재촉하기만 했다. 어서 죽읍시다, 여러분 안녕히 가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 없다는 답답함에 남자는 라디오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윽고 차는 어느 도시의 마천루 아래에 멈췄다. 아침 햇살이 드리운 빌딩의 그림자 탓에 주변은 어두웠고, 땅도 질척거렸다. 남자는 신발을 더럽히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때 수많은 사람이 오갔을 드넓은 로비는 이제 정적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손에 넣은 O5-6의 권한을 사용해 겹겹의 전자 보안 검사를 통과한 남자는 은폐된 방에 도착했다. O5 평의회의 일원이라니, 이제는 굴러들어 온 허울뿐인 자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는 자조했다.

실내에는 아르데코풍 가구들이 놓여 있어 느긋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채찍과 총기, 훈장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배치되어 있어, 보통의 신경을 가진 인간이 편히 쉴 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 한쪽에는 거대한 책상과 여러 대의 스크린이 배치되어 있었다. 스크린에는 온갖 정보가 끊임없이 흘러갔다. 이 방의 주인은 이곳에서 재단의 지령이나 성명을 내보냈을 것이다.

이제 그 주인인 전임 O5-6은 의자에 앉은 채 죽어 있었다.

스크린 불빛이 비추는 그 얼굴에는 꿈을 꾸는 듯 행복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남자는 주저 없이 전임자를 자리에서 걷어차 떨어뜨리고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 남겨진 물이 든 컵과 알약이 들어 있었던 블리스터 포장지를 옆으로 치운 뒤, 키보드를 두드려 SCiPNET에 접속했다. O5-6의 인증 정보만 있으면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긴 접속 기록을 관리하는 RAISA도, 부정 접속에 긴급 출동하는 기동특무부대도 이제는 없겠지만. 그러다 남자는 어느 페이지에 시선을 멈췄다.

“찾았다……”

예전에 K-클래스 발생에 관한 자료를 뒤지다 한구석에서 보았던 단어. 비현실적이라 코웃음 치고 넘긴 뒤 다시 볼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시나리오 명칭, ΩK-클래스. 그 밖의 생물학적 변화 없이 모든 생명체가 강제로 불사가 되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총에 머리를 관통당해도 죽지 않고, 심장을 꿰뚫려도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 강제적인 불사란 바로 지금의 상황에 딱 들어맞았다.

“발생 확률, "거의 불가능"……!”

남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눈에서는 빛이 사라졌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숨소리는 웃음소리였을까.

“개소리하지 마!”

남자는 키보드를 벽에 내던졌다. 확증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남자는 자신이 이제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시체를 보자 가슴속에서 격렬한 증오가 솟구쳤다.

몸통을 짓밟았다.

의자를 내리쳤다.

올라타고 앉아 얼굴을 때렸다.

때렸다.

후려쳤다.

하염없이 때렸다.

방이 엉망진창이 되고, 죽을 수 있었던 인간의 얼굴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무렵, 조금 진정을 되찾은 남자는 비틀거리며 방을 나섰다.

건물 출구로 향하는 동안, 남자는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 한편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SCP-3519가 만연한 세상에서 줄곧 버티며 몇 번이나 사신의 입맞춤을 애타게 갈망했던가. 하지만 사신도 SCP-3519에 영향을 받아 죽음을 택했다. 그토록 사모했건만 죽어 버렸다. 함께 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밖으로 나오니 해가 머리 위에서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남자는 눈이 부셔 손을 들어 가렸다. 잠시 뒤, 빛에 익숙해진 눈에 들어온 것은 빌딩에서 늘어진 목맨 시체들이었다. 남자는 분노를 느끼면서 문득 발밑을 보다가 추락한 시체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과 핏웅덩이가 사방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남자는 달리기 시작했다. 노천카페에는 독을 마시고 쓰러진 시체. 길가에 주차된 차 안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시체. 거리는 죽을 수 있었던 인간들로 넘쳐 났다. 자동 방송을 계속 내보내는 가로등 전광판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죽음의 구원을 권하고 있었다.

“자, 어서 죽읍시다!”

“3월 5일에 세상의 종말이 찾아옵니다!”

“손쓸 수 없게 되기 전에!”

죽음에 홀로 남겨진 남자는 근처의 유리창 파편을 집어 들어 목을 그었지만 죽지 않았다. 고통에 쓰러진 남자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매달린 시체들의 행복해 보이는 수많은 웃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소리쳤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태양이 펼쳐져 있었다.

남자는 모든 것을 알고 말았다.

그렇기에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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