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eudoPod 1036: 더 거대한 어둠
더 거대한 어둠
M. 이언 벨 지음
문이 쾅 열리자 회색 빗줄기가 장막처럼 드리우고, 그 불투명한 안개 속에서 윌러드와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긴 외투에 묻은 빗물을 턴다. 그들은 빤히 응시하는 데 익숙한 눈으로 실내를 살핀다. 밤으로 검게 물든 창문에서 멀리 떨어진 안쪽 테이블을 향해 바닥을 가로지른다.
내가 벤에게 눈짓하자 벤은 이가 나간 도자기 맥주잔에 생맥주 세 잔을 따르고, 힘겹게 들어 카운터에 올린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술을 가져가자 윌러드가 말한다. 그가 내게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나중이지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나보다 족히 마흔 살은 어린데도 얼굴은 풍파에 깎인 바위 같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 하마터면 제지할 뻔하지만, 공기는 먼지로 꽉 막힌 독이다. 연기 조금이야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겠지. 그래도 내 눈은 다시 벤에게로 향한다. 제멋대로 뻗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벤, 아직 폐가 분홍빛이고, 아무리 봐도 열 살은 된 아이.
윌러드의 시선이 내 시선을 따라왔고, 내가 몸을 돌려 쟁반을 다시 집어 들 때도 아이에게 머물러 있다. 아주 조금, 너무 오래 머물러 있다.
창가로 가서 아무것도 없는 공허를 바라본다. 빗물이 유리를 타고 흐르고, 모텔 카페와 그 안의 사람들이 유리에 비친다. 구석에는 비자가 나오기를 삼 주째 기다리는 애디슨 부부. 보스턴 일대에서 올라온 몇 가족이 너무 작은 테이블에 엉겨 앉아 아침이면 떠날 채비를 한다. 말없이 침울하게 맥주잔 앞에 앉은 윌러드와 일행. 바 뒤에는 나무 상판에 팔꿈치를 대고 두 손으로 턱을 괸 베냐민.
번개가 번쩍이며 캐스코만과 건너편의 포틀랜드 발사장을 비춘다. 레드우드만큼 굵은 케이블들이 거석처럼 솟아 엘리베이터 종착점까지 30천 킬로미터를 뻗어 있다. 갑작스러운 섬광 속에서 대낮처럼 밝고 선명하다가, 잔상이 분홍빛으로 흐려지고, 이내 사라진다.
윌러드의 눈이 다시 베냐민에게 향한다. 내게 향한다. 그는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새벽이 오자 안개가 망령처럼 피어오르고, 거즈 너머로 희미한 빛이 해의 기척을 전한다. 우리는 알루미늄 양동이를 움켜쥐고, 물에 흠뻑 젖어 가슴장화를 빨아들이는 모래 위를 걷는다. 물이 빠진 바다에서는 들끓는 거품이 되돌아올 힘을 모으고 있다. 아침 햇살 아래 바다는 고요하고, 거의 반기는 듯하다. 소용돌이치는 검은 물속을 미끄러져 다니는 것들을 짐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벤은 양동이를 내려놓고 그럴듯한 자리 위에 쪼그려 앉는다. 숨구멍들을 하나하나 살핀 다음 모종삽으로 작업을 시작해, 섬세하고 정확한 손길로 조개를 꺼낸다. 물에 잠긴 팰머스 랜딩의 잔해가 배경을 이루고, 뒤틀린 목재가 들쭉날쭉한 손가락처럼 파도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컨트리클럽의 실내 체육관, 별 다섯 개짜리 바닷가재 식당. 먹빛 물 밑으로 빨갛고 하얀 엑슨 간판이 희미하게 어른거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포틀랜드 발사장의 엘리베이터 케이블들이 크롬빛과 검은빛으로 우뚝 솟아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오늘은 엄청 커요.” 벤이 말한다. 크림색 조개를 들어 올려 양동이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새 구멍을 골라 판다. “이것 좀 보세요!”
또 쌍둥이 조개다. 벤이 가장자리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인다. 부드러운 곡선 두 개가 이어져 기묘하게 불룩한 하트를 이루고 있다.
“안에 두 마리가 있을까요? 몸도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다른 두 마리가.”
나도 아이를 따라 환하게 웃는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스카이뷰에서 노스브룩까지 해안을 훑고, 양동이는 가득 차 무거워진다. 이것의 몇 분의 일이라도 얻으려고 애쓰던 때가 어제만 같다. 아버지의 매서운 눈길은 마치 내 잘못인 양 나를 나무랐다. 하지만 어제가 아니라 반세기 전의 일이다. 해안은 남획으로 고갈되었고, 행성은 터질 듯 사람으로 가득했다. 삼십 년간의 이주 끝에 남은 우리는 너무나 적다. 나와 벤, 그리고 끝없이 널린 조개와 게와 바닷가재. 공기는 독이고 물은 오염되었지만 먹을 것은 풍부하다. 반투명한 외골격에 여분의 부속지가 달린 기이한 개체들일지도 모른다. 셀 수 없이 많은 쌍둥이 조개들. 수면 바로 아래서 번성하는 생태계, 옛 해양 생물들의 독특한 변종들. 밤을 틈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나오는 새로운 것들.
하지만 아이는 상쾌한 가을 공기 속에서 빛난다. 뺨은 발그레하고 미소는 반짝인다. 아이는 1번 도로를 따라 진흙에서 솟아난 전신주를 가리키고 있다. 마스티프만 한 독수리 한 마리가 그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다. 벤의 밝은 초록색 눈이 경이와 놀라움으로 빛난다.
멀리서 땅이 흔들리며 거대한 수증기 기둥들을 토해 낸다. 엘리베이터 객실이 발진한다. 여기서 보면 아이 장난감 같은 매끈한 상자가 궤도 허브를 향해 올라간다.
돌아오니 캐스코 엘름스는 조용하고, 빈 객실들이 오늘 떠난 이들의 자리를 표시한다. 길 건너 버려진 부지에는 너무 오래 써서 빛이 바랜 직조 방수포가 펄럭이고, 그 옆에 오토바이 세 대가 서 있다. 윌러드의 야영지다. 보이지 않는 모닥불에서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피어오른다.
벤이 테이블을 닦는 동안 나는 조개를 물에 담가 둔다. 노쇠한 애디슨 부부는 창가에 앉아 김이 오르는 찻잔에 손을 얹고, 손이 닿지 않는 미래를 바라본다. 후원해 줄 친척도, 이주할 돈도 없다.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슬프고 딱한 사연이다. 바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 피로의 무게를 느낀다. 그들은 무덤으로 향하고 있지만, 나보다 나이가 그리 많을 리는 없다.
벤이 내 곁에 나타난다. “할 일 다 했어요.” 아이가 입을 연다. 한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부탁할 준비를 한다. 나는 공기 속에서 위험을 읽으려는 듯, 낮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는 듯 창문 너머의 공허를 훑는다. 윌러드와 부하들을 생각한다.
“그래도 돼.” 내가 말한다. “물가에는 가까이 가지 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꺼운 양모 스웨터 위에 노란 비옷을 걸치자 너무 큰 후드 속으로 머리가 사라진다. 문밖으로 나가 밋밋한 회색 풍경 속을 조심조심 걸어간다. 공기에는 오후 폭풍을 예고하는 옅은 안개가 떠 있다.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뒷문으로 나가 잡초가 무성한 아스팔트를 가로지른다.
윌러드가 중간쯤까지 마중 나온다. 가랑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긴다. 이 사이에 담배를 물고 끝에 불을 붙인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가 말한다. 야영지를 향해 손짓한다. “불편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어느 쪽도 드러내지 않는 눈길을 보낸다. “우리한테 객실 있는 건 알지? 뭐, 어쨌든. 여기 주인은 없어. 누구든 써도 돼.”
그의 미소는 매력적이다. 눈가의 잔주름, 뺨의 보조개. 위쪽 송곳니 하나가 빠져 있어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고 있었겠지.” 내가 말한다. “자네들 레인저잖아.”
“들켰군요, 부인.” 그가 외투를 젖혀 허리띠의 은색 별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기는 목초지가 아니야. 관할에서 좀 벗어났네.”
윌러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공중에 연기를 내뿜는다. “치안 유지를 위해 주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해안에는 법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으니까요.”
“그렇겠지.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나는 몸을 돌려 남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무너져 가는 건물을 가리킨다. “페이먼 식료품점이야.” 내가 말한다. “내륙에서 물건을 받아. 버터, 치즈, 쌀. 자네들이 재배하는 채소들도 이것저것.” 윌러드의 천막들 너머 내륙을 가리킨다. “서쪽으로 이 킬로쯤 가면 하이럼 미틀도르프가 학교 건물을 갖고 있어.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쓰지. 나는 가끔 가서 그이가 어떻게 버티는지 봐. 동네 사람들이랄 것도 별로 없지만.”
윌러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떨어져 나온 아스팔트 덩어리를 신발 끝으로 건드린다. “무슨 말씀이신지 압니다. 왔다가 떠나죠. 먼지에서, 먼지 속에 숨은 것에서 도망치는 이주민들. 케이블까지 나가 중력 우물을 빠져나가고요.” 그는 내 너머 엘리베이터 발사장을 바라본다. “하지만 단속이 필요한 건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는 더 설명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의 말이 우리 사이에 걸려 있고, 내가 종소리처럼 또렷이 들을 수 있는 그의 신피질 표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먼지 속에 숨은 것.
나는 한기를 막으려 팔짱을 낀다. “그럼 그냥 지나가는 길은 아니군.”
“글쎄요.” 윌러드가 다시 어깨를 으쓱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다만 언짢게 받아들이지는 말아 달라는 뜻입니다.” 그가 친근함을 담아 입술을 다문 채 미소 짓는다.
“특별한 일이라도 있어? 사라진 가축, 실종된 아이들? 수색 구조, 그런 거지?”
그는 거짓말임이 드러날 만큼 오래 머뭇거린다. 마지막으로 한 모금 빨고 담배꽁초를 안개 속으로 튕긴다. “정기 순찰입니다.” 그가 말한다.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곧 떠날 겁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살피고, 표면 아래에서 더 들려오는 것이 없는지 귀를 기울인다. “그럼 조심해서 가게.” 내가 말한다. 엘름스를 향해 돌아서서 텅 빈 주차장을 가로지른다. 내게 머무는 그의 시선과, 그의 신피질 속에서 짧게 끊어지는 사고를 느낀다. 은밀하게 계획한다. 계산한다. 그는 다시 아이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해안으로, 모래 위에 웅크린 선명한 노란빛을 향해 슬그머니 움직인다.
저녁 무렵에는 만실이고, 긴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몸을 녹인 사람들로 카페에 웃음이 넘친다. 벤은 장작을 눈높이까지 한 아름 안고 조심조심 벽난로로 나른다. 이주민들이 둘러선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그라지는 잉걸불 위에 장작을 내려놓는다. 불이 금세 붙고, 아이는 다시 내 곁으로 빠져나온다.
“여기 남자애가 있어요.” 아이가 조용히 말한다. 드문 일은 아니지만, 벤 또래의 아이들, 벤이 제 모습을 비춰 볼 만한 아이들이 온 것은 오랜만이다. 우리의 시선을 느낀 듯 그 남자아이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 다정하게 웃는다.
“가 봐.” 내가 말한다. 벤은 구실을 찾느라 주위를 둘러보다가 롤빵 바구니를 고른다. 바구니를 들고 테이블로 간다. 윌러드는 보이지 않지만 나는 계속 주위를 살핀다.
오늘 밤 손님들의 활기 넘치는 만족감은 지나온 길이 너무 수월했음을, 아니면 슬픔을 뒤에 두고 오기로 뜻을 모았음을 말해 준다. 아침이면 이 가족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늘로 솟구쳐, 썩어 버린 행성의 위험에서 벗어날 것이다. 황폐한 내륙을 질식시키는 먼지 폭풍, 너무 빠르게 높아지는 해수면. 그 사이에서 남겨진 우리는 짓눌리며, 어느 쪽이든 우리를 어둠으로 뒤덮기를 기다린다.
오늘 밤에는 비가 오지 않지만 포틀랜드 상공의 높은 적운 속에서 구형 번개가 불길하게 번쩍인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뒤편으로 간다. 그곳 창문은 서쪽 부지를 향해 있다. 번개가 희미하게 깜박인다. 천막이 서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없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 때도 엘름스에는 밝은 기운이 가득하다. 순례자들의 꿈이 뒤섞이며 내 피부 표면에서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방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벤의 나직하고 걸걸한 코골이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 기운이 나를 잠으로 이끈다. 그가 온 뒤부터 느껴 온 불안을 달랜다. 나는 너무 깊이 잠들어 더는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이의 머릿속 그림들이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도.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손전등을 더듬어 찾는다. 이불을 걷어차고 아이의 빈 침대를 비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다.
비명이 들리기도 전에 아이의 공포가 느껴진다. 깊은 밤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공포의 울부짖음. 부츠를 신고 우비를 걸친 뒤 추위 속으로 뛰쳐나간다. 침실 문은 모텔 주차장으로 곧장 이어진다. 남쪽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우르릉 뒤따른다. 나는 벤의 목소리에, 아이의 뇌파에 귀를 기울인다. 주차장에서 동쪽 도로로 달려가 두껍게 쌓인 젖은 모래 속으로 들어선다. 손전등 불빛이 내 앞에서 위아래로 흔들린다.
거리를 좁히면서도 그 형체들에 계속 불빛을 겨눈다. 서로 몸을 붙인 두 소년과, 주둥이를 낮추고 목덜미 털을 곤두세운 채 아이들을 마주한 짐승. 코요테가 으르렁거린다. 이주민 소년이 그 얼굴 앞에서 휘두르는, 물에 떠밀려 온 잘 부러지는 나뭇가지 하나만이 놈의 접근을 막고 있다.
아이들의 눈에 어린 공포가 손에 잡힐 듯하다. 나는 코요테를 향해 소리치며 허리띠를 더듬지만, 거기에는 백단향 나무 손잡이도 권총집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그 기억뿐이다. 코요테가 침을 흘리는 이빨을 내 쪽으로 돌린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 옆으로 오라고 손짓하고, 내 뒤로 밀어 넣는다. 소년에게서 나뭇가지를 받아 들고 벤에게 손전등을 건넨다.
“저리 가!” 나는 짐승에게 소리친다. 나뭇가지를 휘두르자 코요테가 달려들어 물고는 강철 덫처럼 가지를 뚝 잘라 버린다.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큰 송곳니, 지나치게 많은 이빨. 놈이 덤벼들고 나는 발을 헛디뎌 단단히 다져진 모래에 팔꿈치를 세게 찧는다. 소년은 칭얼거리며 울고 있지만, 나는 벤에게서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팔의 통증과 가슴속 냉기를 뚫고 손을 뒤로 뻗어 아이를 달랜다. 스웨터를 움켜쥐고 쉿 소리를 내며, 아이 안에서 솟구치는 것이 무엇이든 가라앉히려 한다. 억누를 수 없는 그것을.
코요테가 내 다리를 향해 덤벼들고, 면도날 같은 송곳니가 데님을 가르는 순간 총성이 울린다. 놈의 두개골이 따뜻한 피를 흩뿌리며 터지고 충격에 뒤로 튕겨 나간다. 윌러드와 부하들이 권총을 든 채 칠흑 같은 밤 속에서 나타날 때까지도 나는 벤의 스웨터를 주먹에 움켜쥐고 있다. 이주민 소년은 모텔로 도망쳐 돌아갔다. 벤은 나를 손톱으로 움켜잡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운다. 잊힌 채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이 우리 앞의 참혹한 광경을 비춘다. 피에 흠뻑 젖은 회색 털.
윌러드가 권총을 허리띠에 꽂고 내가 일어서도록 돕는다. “다쳤어요?”
나는 아직도 욱신거리는 팔꿈치를 문지른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청바지는 찢어졌지만 피부는 상하지 않았다. 코요테의 턱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두툼한 혀가 축 늘어져 있다. 상어 같은 이빨이 몇 겹으로 줄지어 나 있다.
갑자기 짐승의 몸이 홱 움직이더니 손전등 불빛 밖으로,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나는 손전등을 더듬어 찾지만 윌러드가 나를 더 세게 잡아당긴다. 그는 벤을 번쩍 안아 올리고 우리 둘을 모텔 쪽으로 끌고 간다. “빨리 갑시다!” 그가 외친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다. 코요테가 불빛이 고인 자리에서 홱 끌려 나와 해변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을. 저 너머 어둠 속으로, 밀려드는 파도 속으로. 훨씬 더 큰 무언가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훨씬 더 끔찍한 무언가에게.
벤을 다시 재우고 나니 세 시가 한참 지났다. 소리치고 싶고, 분통을 터뜨리고 싶다. 하지만 공포 위에 분노까지 얹을 수는 없다. 카페로 들어가니 윌러드의 부하들이 불을 피워 놓고 맥주를 조금씩 마시고 있다. 윌러드가 바 쪽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그가 내게 생맥주 한 잔을 따라 주고, 우리는 말없이 마신다.
“그래서요.” 그가 말한다.
“그래서요.”
“총은 안 갖고 다니는군요.” 그가 내 허리띠를 향해 고개를 까딱한다. 나는 손으로 엉덩이 옆을 스치고, 손바닥에서 유령 같은 손잡이를 느낀다. 진동하고, 마구 두드린다. 총구가 떨어져 나가고 총열이 프레임에서 분리되던 순간, 방아쇠울과 탄창과 슬라이드가 떨어져 나가던 순간의 충격파가 내 몸을 관통한다. 루거 45가 산산조각 나며 부품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나는 목을 가다듬는다. “이젠 안 갖고 다녀요.” 내가 말한다. “신세를 졌네요.”
그가 손을 내저어 그 말을 물리친다. “오늘 밤은 운이 좋았어요. 하지만 동물들이 점점 대담해지고 있어요. 어린 송아지가 사라지거나, 아니,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아이가 사라지면요? 그런 짓을 하는 건 저 코요테 같은 야생의 놈들이에요. 코요테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죠. 저게 아직도 코요테라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을 살피며 그 뒤에서 흐르는 미세한 주파수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코요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벤을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피하려고 해안으로 와요.” 윌러드가 말한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어요.”
“피할 수 있어요.” 창밖의 밤은 완전히 어둡고, 번개도 잠시 잠잠하다. 하지만 그는 내 시선을 따라 남쪽의 보이지 않는 발사장 쪽을 바라본다.
“나는 여기 남는 사람들 얘기를 한 거예요. 식량 창고지기, 학교 선생. 당신. 그 아이.”
그 사건과 술 때문에 머리가 윙윙거린다.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들 때문에.
“먼지 폭풍이 점점 더 밀고 들어오고 있어요.” 그가 말을 잇는다. “저 밖에 우리 같은 사람은 줄어들고, 놈들은 늘어나죠. 폭풍이 동물들을 동쪽으로 내몰아요. 이주민들처럼요. 하지만 이제 놈들이 갈 곳은 없어요. 머지않아 온 나라에 야생의 것들이 들끓을 거예요. 온 세상에.”
나는 코요테를, 독수리를 떠올린다. 우리가 보고 먹는 해양 생물들, 더 먼바다에 있어 우리가 서둘러 피하는 것들. 공기 속의 먼지, 물속의 독. 그 둘이 만나는 사이의 좁고 긴 땅.
“이주할 수도 있잖아요.” 내가 말한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고 술을 마신다. “내겐 할 일이 있어요. 조금이라도 바꿔 보려는 거죠. 여기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나는 맥주를 마저 마시고 그의 팔에 손을 얹는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해요. 진심으로요.”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인다. “다른 일이 하나 있어요. 꼭 물어봐야 할 일이요.” 그는 긴 외투 주머니에서 휴대용 단말기를 꺼낸다. 우리가 어릴 때 쓰던 것 같은 얇은 화면이다.
“누군가를 찾고 있어요.” 그가 말한다. “특정한 한 사람을요.” 내 맥박이 빨라진다. 그의 머릿속에 벤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다. 하지만 그가 단말기를 돌려 보여 주자, 내가 보게 된 것은 벤의 사진이 아니라 탁 트인 시골 풍경이다. 몇 에이커에 걸친 농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 전경에 검은 얼룩 둘이 있다.
“이게 뭔가요?”
“핏자국이에요. 죽은 가축들이죠. 계속 넘겨 보세요.”
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한다. 크기로 보아 소를 찍은 사진이 여러 장이다. 갈비뼈와 곤죽이 된 고깃덩이들, 포장도로 위에서 터진 물풍선 같은 진홍색 웅덩이들. 구역질이 치민다. 사진을 보고 있지만 다른 광경이 겹쳐 보인다. 단말기에 정지된 채 담긴 농장의 사진들. 두 번의 겨울 전 내가 우연히 들어섰던 눈 덮인 공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젖은 바지, 얼어붙은 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을의 지푸라기 빛 농지 위에서 검게 보이는 걸쭉한 피. 겨울 캐스코만의 새하얀 눈 위에서는 선명한 붉은색. 공기 중에 감도는 쇠 비린내. 그 냄새에, 그 광경에 헛구역질을 한다. 두 해가 지난 지금, 밀려오는 메스꺼움을 가라앉히려고 숨을 참는다.
나는 사진 넘기기를 멈춘다. 충분히 봤다.
“야생의 놈이 저지른 짓이에요.” 그가 말한다. “짐승이요. 소 여섯 마리와 그 두 배 되는 양을 찢어 놨어요. 농장 사람들도 죽였고요. 어머니, 아버지, 딸 둘. 발견된 위치와 몸에 걸친 옷으로 미루어 판단한 거예요. 몸이었던 것에 걸친 옷으로요.”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그중 하나는 도망친 것 같아요.” 그가 말한다.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요. 시신의 흔적이 없어요.”
“하지만—그 애는 아니—”
윌러드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그는 벤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
“내 손자가 그 아이라고 생각하는군요.” 나는 말을 마무리한다.
“손자라.”
“그 애는 열 살이에요. 베냐민이요. 당신이 찾는 아이가 아니에요.”
“당연히 서류는 있겠죠. 당신 손자라는 걸 증명하는 기록이요.”
나는 코웃음을 치려 한다. “당연히 있죠. 내가 하는 말은 사실이니까요.”
윌러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단말기 화면을 넘긴 뒤 내게 돌려 보여 준다. 사진은 거칠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수북한 갈색 곱슬머리, 꿰뚫어 보는 듯한 초록색 눈. 턱의 갈라진 홈.
“두 해 동안 찾고 있어요.” 윌러드가 말한다. “거의 세 해죠.”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말기를 돌려주고 일어선다. “서류를 가져다줄게요.” 내가 말한다. “닮았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그 이상은 없어요.”
“물론이죠.”
나는 뒷걸음질한 뒤 조심스레 복도로, 내 사무실 쪽으로 걸어간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며 시간의 순서를 되짚는다. 두 번의 겨울 전, 이월 한복판의 텅 빈 얼어붙은 해안. 빽빽한 덤불에서 비틀거리며 공터로 들어서던 순간, 내 주위에 온통 터져 나간 채 널려 있던 늑대 떼, 피와 뼈와 송곳니와 발톱. 진동하다 폭발하는 권총. 내 팔과 몸속 깊이 울려 퍼지던 날카로운 통증.
그리고 떨고 있던, 겁에 질린 소년. 눈물로 젖은 발그레한 뺨, 비명을 질러 쉰 목소리. 도망치던 소년, 어디서 왔는지 모를 소년.
베냐민.
오전이 한창일 무렵 엘름스는 조용하다. 이민자 행렬은 발사장으로 떠났다. 나는 잠들지 못한 채 윌러드가 주 당국의 회신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 서류가 가짜라는 말을 듣기를. 내가 아는 세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창 너머 모래밭 건너편에서 밀물과 함께 파도가 밀려든다. 밀물에 휩쓸려 온 것들과 함께. 나는 정신을 뻗어 그것들을 느끼려 하고, 그것들에게 애원하려 한다. 거대한 바닷가재나 두 발로 걷는 돌고래, 혹은 선의를 품은 문어들. 상상 속의 구원자, 가망 없는 마지막 한 수.
하지만 찾아오는 것은 두 손가락 사이에 접힌 종잇조각을 끼운 윌러드다.
“이건 위조 서류예요.” 그가 단언한다.
“아니에—”
“이 일로 당신을 체포해야 해요. 대신 선처하는 겁니다.”
문 너머 텅 빈 주차장에서 그들이 아이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이자 살갗이 차가워진다. 아이는 묶인 채 작은 발을 마구 차고 있다. 나는 공포가 목을 휘감은 채 윌러드를 뒤쫓아 아침 속으로 나간다. 부하 하나가 자기 오토바이 뒷자리에 벤을 묶고 있다.
“당신은 몰라요.” 내가 입을 뗀다. “이러면 안—”
윌러드가 권총을 손에 든 채 홱 돌아서서 나를 마주한다. “모르는 건 당신이에요!” 그가 소리친다. “저 애는 짐승한테 쫓겨 달아난 게 아니에요!” 그가 오토바이 쪽을, 몸부림치는 소년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가리킨다. “저 애가 짐승이에요. 동물들이 변하는 걸 봤잖아요. 사람들도 변하고 있어요.”
나는 항의하려고 입을 벌리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저 애는 당신들에게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고, 나는 베냐민처럼 세상을 해체할 수 없다. 세상을 안팎으로 뒤집어 다른 무언가로 만들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안에 있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뇌파에 올라타는 것뿐이다. 속삭임을 돌려보내려 애쓰는 것뿐이다.
이러지 마, 나는 말한다. 윌러드가 아니라 베냐민에게. 하지만 열기가 피어오르고, 살갗에 전기가 흐르는 듯하다. 머리 위로 오존이 소용돌이친다.
“베냐민, 제발!”
권총이 가장 먼저다. 윌러드의 손에서 튀어나가 산산조각 난다. 오토바이들이 진동한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큰 윙윙거림이 울린다. 나는 눈을 감고 몸을 둥글게 웅크린다. 아이를 진정시키려 이름을 외친다. 그러다 시간이 멈추는 듯하고, 소리는 진공 속으로 삼켜진다.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훔쳐보다가 차마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다.
지면에서 세 피트 높이로 떠오른 몸들이 있을 수 없는 이음매를 따라 풀어 헤쳐지고, 동맥에서 뿜어져 나온 진홍빛 피가 포장도로 위로, 산산이 터져 나간 자전거 부품 위로 비처럼 쏟아진다. 소리 없는 비명으로 입들이 벌어지고 이빨과 뼈와 뇌가 튀어나오며, 근육과 힘줄이 서로에게서 뜯겨 나간다. 살과 금속이 별 모양으로 사방에 터져 나가고, 자전거는 토막 나고, 몸은 벗겨진다.
눈앞에 반점이 떠오를 만큼 눈을 세게 감는다. 그래도 잔상은 보인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아 있는 날 내내 그 광경을 보게 되리라는 걸 안다. 영원히.
우리가 모래 위에 앉을 무렵에는 하늘이 더 밝아져 있다. 벤은 파도 속에서 나와 몸을 말끔히 씻고 담요에 싸여 있다. 바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둠을, 밤을 틈타 떼 지어 다니는 거대한 괴물들을 감추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어둠이 있다. 벤에게 바다를 가까이하지 못하게 한 건 어리석었다. 그런 것이 이 아이를 해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다니. 이 아이가 해를 입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다니.
만 건너편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솟아오르고, 느린 화면 속 로켓처럼 치솟아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발사를 지켜보는 건 참 오랜만이다. 그 특권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주민들이 떠나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본다. 세상이 이치에 맞고 실재하는 무언가로부터 서서히 떠나가는 것을. 이제는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무언가로. 다른 무언가로.
나는 위험을 찾아 바다를 살폈고, 동물과 순례자의 몸에 똑같이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안다. 벤과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변한 건 우리만이 아니라는 걸. 그것은 먼지 속에도, 바닷속에도, 사람들 속에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남아 있는 사람들 속에도. 그들은 그것을 별들 사이로 가져갈 것이다. 이 낯선 새로운 생명 현상을. 멈출 수 없는 이것을.
심장을 주먹처럼 움켜쥐는 두려움을 도로 삼킨다. 이 아이를 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구해야 할 사람이 이 아이인지 다른 누군지 알 수 없다. 끝내 그 사람이 내가 될지도.
그래서 아이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고, 맥박이 부드럽게 고동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의 정신 속으로 손을 뻗어 상처를, 두려움을 찾아 뒤진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모서리를 매만져 둥글게 한다. 아이의 캔버스는 밋밋한 흰 하늘처럼 비어 있다. 눈이 내린 뒤의 얼어붙은 땅처럼, 흠 하나 없이 깨끗하다.
가장자리는 어둡지만 여기 한가운데에는 한순간의 안식이 있다. 내 품에 안긴 아이와 파도 소리와 여전히 그곳에 있는 깊은 바다의 고요. 조용한 유예,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한 온기의 선물. 그저 한순간만 더.
진행자 해설
제게 이 이야기는 무언가가 천천히 드러나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배경이 스코틀랜드인 줄 알았어요. 도자기 에일 잔에, 온기와 말벗을 찾아 식당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까지요. 그러다 보스턴과 포틀랜드가 언급되니, 스코틀랜드는 아니었죠. 포틀랜드 발사장은 실제로 있는 곳일 수도 있겠더군요. 저는 호주 사람이고, 거기 가 본 적이 없으니까요. 해양 시설일지도 모르죠. 시대 배경이 현재일 수도 있고요.
그러다 “레드우드 나무만큼 굵은 케이블”이라는 표현이 나와서, 어, 그건 좀 이상한데, 싶었어요. 지금 시대가 언제인 거지?
그다음에는 해변에서 조개를 줍는데 이상한 것들이 섞여 있죠. “쌍둥이들”이요. 공기와 물은 독이고요… 포틀랜드가 좀 망가진 모양입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됩니다. 화가가 작고 능숙한 붓질로 그림을 서서히 드러내듯, 작은 사실이 하나씩 밝혀집니다. 겹이 하나 쌓이고 무언가가 하나 드러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알게 되죠. 그러다 이곳이 황폐해진 미래 세계이며, 세상이 썩어 가는 동안 사람들이 떠나거나, 아니면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범하다는 게 무슨 뜻이든 간에요.
이야기는 끝까지 그렇게 흘러갑니다. 윌러드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베냐민이 그저 평범한 열 살짜리 소년이 아니라는 것, 이름 없는 주인공이 그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주인공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존재죠… 그러다 폭력과 피로 얼룩진 진상이 드러나며 의문에 답을 줍니다.
다만, 왜 베냐민을 보호하는가 하는 의문은 남을지도 모르겠네요. 자신과 같은 존재를 찾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저 어린 소년을 보호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요… 자신들 같은 사람에게 이런 삶이 오래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환상을 조금만 더 붙들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주 조금만 더 오래…
정말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제 안의 어두운 면은 그 암울한 결말을 반깁니다. 우리는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