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에서 흙냄새가 났다
마지막 당직 날,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열한 번 신호를 들었다. 끝까지 아무도 받지 않았다.
위병소 벽시계는 00시 17분에서 멈춰 있었다. 건전지를 갈아도 하루면 늦어지는 시계였다. 내 손목시계는 00시 21분이었다. 전화 사용 대장을 덮으려다 맨 아래 줄을 보았다. 23시 58분, 통화 시간 7분. 번호는 우리 집 것이 아니었다. 사용자 칸에는 내 이름과 서명이 있었다.
23시 58분에 나는 박 일병과 북문 자물쇠를 녹이고 있었다. 그날 순찰은 23시 50분에 나가 00시 12분에 돌아온 것으로 당직일지에도 남아 있다. 라이터 두 개를 번갈아 켰는데도 열쇠가 들어가지 않아 결국 취사장에 뜨거운 물을 얻으러 갔다. 박 일병은 손등을 데었고, 의무대에 갈 정도냐 아니냐로 나와 말다툼까지 했다.
그런데 서명은 내 것이었다. 받침 ㅂ의 오른쪽 획을 짧게 긋는 버릇도 같았다.
나는 대장을 덮고 다시 집 번호를 눌렀다. 어머니는 보통 첫 신호가 끝나기 전에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전화기 옆에서 잔다고 했다. 재작년 겨울 마당에서 미끄러져 이틀을 혼자 기어 다닌 일도 반년이 지나서야 털어놓았다. 우리 부대는 자동식 교환기를 썼고, 위병소에서도 9번을 누르면 외선이 잡혔다. 허가받지 않은 시외 통화였지만 말년 병장이 집에 안부 몇 마디 묻는 일은 다들 모른 척했다.
그날은 열한 번째 신호도 받지 않았다.
전화가 끊어진 뒤 송화구에서 냄새가 났다. 젖은 흙을 비닐 포대에 오래 담아 두었을 때 나는 냄새였다. 나는 알코올 솜으로 수화기를 닦았다. 회색 때가 묻어나왔다. 송화구 뚜껑을 열자 담뱃재와 가느다란 머리카락 하나가 나왔다. 흙은 없었다.
이런 줄이 대장에 처음 생긴 것은 1994년 2월이었다. 그때도 내가 철책을 도는 동안 낯선 번호로 1분간 통화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전 근무자의 장난이라고 생각해 볼펜으로 줄을 그었다. 다음 날 주번하사가 대장을 훼손한 사람을 찾았고, 나는 손에 눈 녹은 물이 묻었다고 거짓말했다. 사적인 외선 통화까지 들키면 남은 휴가가 잘릴 수 있었다.
그 뒤에도 같은 번호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두 줄인 날도 있었고 한 달 넘게 깨끗한 때도 있었다. 글씨는 늘 내 것과 비슷했지만 숫자 7의 가로획이 길거나 서명 끝이 위로 들렸다. 나는 더 지우지 않았다. 변상하라고 해도 큰돈은 아니었고, 주번하사가 묻지 않는 일을 내가 먼저 설명할 이유도 없었다.
그해 여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박 일병은 애인에게 받은 편지를 베개 밑에 넣어 두었다가 잃어버렸고, 취사병은 냉동고에 숨긴 참외를 전부 얼렸다. 나는 전역할 때 가져갈 물건을 관물대 한쪽에 모았다. 사진 세 장, 쓰지 않은 편지지, 어머니가 보내 놓고는 작다고 우긴 양말 두 켤레. 빨래비누는 후임에게 주려고 고무줄로 묶어 두었다.
정기 휴가 때 어머니와 선산에 갔다. 어릴 때 성묘가 지루하면 봉분을 세곤 했다. 열두 기였다. 비석 없는 작은 무덤까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그런데 밤나무 아래에 전에 없던 봉분이 하나 있었다. 풀이 듬성듬성했고 흙은 비를 맞은 뒤처럼 검었다.
어머니는 원래 있던 무덤이라고 했다. 누구 것이냐고 묻자 작은할아버지네 첫째라고 했다가, 내가 처음 듣는다고 하자 사촌 집안일을 네가 어떻게 다 아느냐며 성을 냈다. 내려오는 길에는 내 가방을 빼앗아 먼저 걸었다. 발목이 아파 장날도 거르는 사람이 그날은 쉬지 않았다.
부대로 돌아온 다음 주, 어머니가 물었다.
“그제는 왜 두 번 했냐?”
나는 한 번만 전화했다고 했다. 두 번째에는 말이 없었단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자 한참 뒤에 “엄마, 나야”라고 했고, 다시 숨소리만 났다고 했다.
나는 시골 전화선이 비만 오면 다른 집 통화를 물고 들어오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외삼촌과 통화하다가 약국 주인 목소리가 끼어든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보일러 얘기로 넘어갔다. 그날 대장에는 집 번호로 건 한 통만 적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날짜를 잘못 기억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말년 휴가 때는 봉분을 세지 않았다. 처음 보았던 무덤에는 풀이 자랐고, 그 위 소나무 밑에는 사람 하나 누울 만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삽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멧돼지 덫 자리라고 했다. 나는 덫을 저렇게 깊이 파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대신 보일러 기름을 채우고 수도 계량기를 헌 담요로 감았다. 전역하면 읍내에 방을 얻자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롱 위에 얹힌 아버지 작업복을 내려 먼지만 털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다시 그 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마지막 당직 날 대장에 적힌 번호를 나는 이미 외우고 있었다. 지우지 않고 본 지 반년이 넘었다.
집 번호가 열한 번 울리고도 받지 않자 그 번호를 눌렀다.
첫 신호가 채 끝나기 전에 어머니가 받았다.
“엄마, 나야.”
내가 먼저 말했다.
어머니가 숨을 삼켰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말하네.”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어머니는 보일러를 켰다, 수도도 안 얼었다, 오전 버스면 몇 시에 닿느냐는 말만 했다. 내가 누구와 있느냐고 물으니 혼자라고 했다. 집에 오면 국수를 해 주겠다는 말도 했다. 나는 잘 있다는 말을 세 번 들은 뒤에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고무 피복이 갈라진 데서 가는 철사가 튀어나와 손가락을 찔렀다. 송화구에서는 이번에는 분명 선산 냄새가 났다. 풀뿌리가 섞인 흙을 삽으로 뒤집을 때 올라오던 냄새였다.
대장에는 처음부터 그 통화가 적혀 있었다. 23시 58분부터 7분. 실제로 번호를 누른 것은 자정을 훨씬 넘긴 뒤였지만, 손목시계 분침은 통화하는 동안 일곱 칸 움직였다. 나는 사용자 칸의 서명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 위를 펜으로 한 번 더 눌러 썼다. 다른 사람이 한 통화라고 우기면 교환실까지 확인하러 갈 것이고, 그러면 내가 매주 집에 전화한 것도 함께 나올 터였다. 오늘 전역 신고가 미뤄지는 것만은 싫었다.
아침 교대 뒤 집 번호로 다시 전화했다. 어머니는 첫 신호에 받았다. 밤에 나와 통화한 적은 없다고 했다. 잠을 잘 잤고 전화벨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소나무 밑은 누가 메워 놨더라.”
구덩이 가장자리에 놓아둔 삽도 없어졌다고 했다. 선산 얘기는 집에 와서 하자고 하더니, 국수는 언제 삶으면 되느냐고 물었다. 내가 첫 버스 시간을 말하자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당직사관실 앞까지 갔다. 안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났다. 문고리를 잡고, 무엇부터 말할지 생각했다. 지워 버린 대장 줄, 허가받지 않은 통화, 내가 덧쓴 서명. 어머니가 멀쩡히 전화를 받았다는 말도 해야 했다.
옆집에는 전화가 없다. 읍내 가게는 9시에 문을 열고 첫 버스는 8시 10분에 출발한다. 부대에서 연락을 돌려 누군가를 보내는 것보다 내가 먼저 도착할 수 있다. 나는 문고리를 놓았다.
나는 위병소로 돌아왔다. 그사이 대장 맨 아래에 한 줄이 더 생겼다. 오늘 12시 10분, 우리 집 번호. 통화 시간과 사용자 칸은 비어 있다.
첫 버스까지 30분 남았다. 나는 대장을 덮고 전역 신고를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