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 자리
새벽 세 시에 깼다. 왼쪽 발목이 가려웠다.
복사뼈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 위. 어제는 오른쪽 무릎 뒤였고, 그저께는 왼쪽 손등이었다. 나는 불을 켜지 않고 그 자리를 짚어 보았다. 부어오른 데도, 물린 자국도 없다. 피부는 매끈하고 서늘했다. 긁으면 가라앉는다. 삼십 초쯤 지나면 아무 일도 없던 자리가 된다.
그런 밤이 석 달째였다.
처음에는 적지 않았다. 가려움을 적는 사람은 없다. 어디가 가려웠는지 아침이면 잊고, 잊는 것이 정상이다. 내가 그것을 적기 시작한 건 순전히 직업 습관이었다. 나는 검수 일을 한다. 남이 만든 도면과 실물이 맞는지 대조하는 일. 어긋난 것은 표를 해 둔다. 표를 해 두지 않으면 어긋남은 없던 일이 된다.
(그때 적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적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고, 모르는 채로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다만 모르고 당하는 것과 알고 기다리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은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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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전 삼정병원에서 담낭을 뗐다.
배에 구멍 세 개를 뚫는 수술이라고 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들 했다. 수술대는 생각보다 좁았고, 방은 생각보다 추웠다. 마취과 의사가 팔에 꽂힌 관을 톡톡 치며 말했다. 조금 차가울 겁니다. 정말 차가웠다. 손등에서 시작한 냉기가 팔꿈치 안쪽을 지나 어깨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움이 몸 안쪽을 타고 올라온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깨에서 목으로 넘어오기 전에 의식이 끊겼다.
깨어난 곳은 회복실이었다.
깨어났다기보다, 물 밑에서 수면 쪽으로 한참을 끌려 올라왔다. 눈은 떠지지 않는데 소리가 먼저 왔다. 멀고 먹먹한, 귀에 솜을 채운 것 같은 소리. 누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김지연 님. 김지연 님, 수술 끝났어요. 눈 떠 보세요.
나는 김지연이 아니다. 그런데 마취가 덜 깬 몸은 이상하다. 그게 내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그 부름에 대답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대목이 제일 서늘하다. 이름이 다른데도 몸이 먼저 끄덕이려 했다는 것.
간호사 둘이 내 발치에서 차트를 맞바꾸는 소리가 났다. 죄송합니다, 옆 베드 분이랑 바뀌었네요. 서진영 님. 서진영 님, 눈 떠 보세요.
그 뒤로도 나는 한참을 못 깼다고 한다. 보통은 이름을 두세 번 부르면 눈을 뜨는데, 나는 삼십 분 넘게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마취과가 다시 내려왔다 갔다고, 퇴원 수속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해 주었다. 별일은 아니래요. 가끔 그런 분들이 있대요.
회복실 옆 침대에는 백발의 노인이 누워 있었다. 커튼 틈으로 손만 보였다. 손등에 검버섯이 있고, 손목에 나와 같은 흰 종이 팔찌를 찬. 그 팔찌에 무슨 이름이 적혀 있었는지 그때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침대째 병실로 옮겨지기 직전, 커튼 너머에서 간호사가 그 노인을 깨우는 소리를 들었다. 김지연 님, 수술 잘 끝났어요. 눈 떠 보세요. 같은 이름이 같은 회복실에서 두 번째로 불리고 있었다. 한 번은 엉뚱한 몸에, 한 번은 제 몸에. 노인은 가느다랗게, 네에, 하고 대답했다. 이름을 아는 몸은 저렇게 순하게 떠오르는구나. 마취가 덜 깬 머리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김지연. 그 이름은 그날 그 방에서 두 몸을 두드렸다. 그 사실을 그때 알아차린 것은 간호사도, 노인도, 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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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움은 퇴원하고 나흘 뒤에 시작됐다.
사월 삼일이었다. 처음에는 왼쪽 발등이었다. 다음 날은 오른쪽 발목. 그다음 날은 오른쪽 정강이. 연고를 발랐고, 이불을 삶았고, 침대 매트리스를 뒤집었다. 소용은 없었다. 자국이 없으니 바를 자리도 정확하지 않았다.
가려움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모기가 문 자리는 뜨겁게 가렵다. 두드러기는 넓게, 파도처럼 가렵다. 이것은 달랐다. 좁고, 서늘하고, 정확했다. 동전만 한 자리가 콕 집어 가려웠다. 누가 손끝으로 딱 그만큼을 짚어 놓은 것처럼.
나는 몸의 그림을 출력해서 벽에 붙였다. 검수용 도면을 다루듯, 가려웠던 자리에 날짜를 적었다. 4월 3일 왼쪽 발등. 4월 4일 오른쪽 발목. 4월 5일 오른쪽 정강이. 4월 6일 왼쪽 오금.
표를 하고 나니 보였다. 어긋남이 아니라, 순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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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까지 병원 네 곳을 돌았다.
피부과에서는 피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항히스타민제를 이 주 치 주었다. 효과가 없다고 하자 다른 항히스타민제를 주었다. 혈액검사는 깨끗했다. 간 수치, 신장 수치, 갑상선, 알레르기 패널까지 전부 정상이었다. 내과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좋은 몸이라고 했다. 좋은 몸이 밤마다 한 군데씩 가렵다.
신경과에서는 신경병증성 소양증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신경이 잘못된 신호를 만들어 내는 병. 그런데 그 병은 대개 같은 자리가 가렵다고 했다. 자리를 옮겨 다니느냐고 물어서 도면 이야기를 했더니, 의사는 도면까지는 보지 않고 처방전을 냈다.
마지막 병원에서 들은 말이 제일 오래 남았다. 스트레스성입니다. 수술받으셨다면서요. 몸이 놀란 겁니다. 몸은 다 기억하거든요.
몸은 다 기억한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다만 무엇을 기억하는지를 그 의사도 나도 그때는 몰랐다.
(놀란 몸이 기억을 뒤척이는 거라고, 나도 오래 그렇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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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원룸 골목 끝에는 오래된 전봇대가 있다.
밤 열한 시 퇴근길이면 그 밑을 지난다. 전봇대에는 전단이 붙어 있다. 학원 전단, 대리운전, 그리고 실종 전단. 실종 전단은 세 장이 겹쳐 붙어 있었다. 맨 위의 것은 코팅이 되어 있고, 그 밑의 것은 비에 불어 글씨가 번졌고, 맨 밑의 것은 종이라기보다 종이의 화석 같았다. 누렇다 못해 갈색이 된, 모서리가 삭아 떨어진.
맨 밑 전단의 사진은 흑백이었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 낡은 세일러복에, 왼쪽 가슴에 흰 명찰이 달려 있었다. 인쇄가 뭉개져 이름은 읽히지 않았다. 사람 찾음, 이라는 손글씨 밑에 여섯 자리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세 장이 다 다른 사람이라는 것, 다 다른 시절이라는 것. 그때는 그 정도만 생각하고 지나쳤다. 전봇대 하나에 실종이 세 겹으로 붙는 골목이구나. 그 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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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중순에 규칙을 찾았다.
도면의 표가 마흔 개를 넘기던 무렵이었다. 나는 검수하던 버릇대로 표들을 날짜순으로 이어 보았다. 발등, 발목, 정강이, 오금, 종아리, 무릎, 허벅지 바깥, 허벅지 안, 엉치, 허리.
첫째. 같은 자리는 두 번 가렵지 않았다. 마흔몇 개의 표 중에 겹치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무작위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작위는 반드시 겹친다. 겹치지 않는 것은 계획뿐이다.
둘째. 순서는 아래에서 위였다. 곧게 올라오는 것은 아니고, 지그재그로, 빠뜨린 데를 되짚어 가면서. 발에서 시작해 두 달에 걸쳐 허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셋째. 이것은 적어 놓고도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가려운 것은 반드시 아침이었다. 밤 사이 어느 시점이 아니라, 자고 눈뜬 뒤였다.
무언가가 내 몸을 아래에서부터 훑고 있고, 빠뜨리는 데가 없도록 확인하고 있고, 그 확인은 내가 자는 동안 이루어진다. 도면은 그렇게 읽혔다.
(검수. 그 단어가 떠올랐을 때 웃었던 것 같다. 웃을 일이 아니었는데. 내가 도면에 하는 일을 누가 내 몸에 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읽고도 나는 병원을 한 군데 더 갔다. 사람은 도면보다 진단서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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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첫 주에 실험을 했다.
가설이 맞다면 조건은 잠이다. 자지 않으면 가렵지 않아야 한다.
첫날 밤은 꼬박 새웠다. 형광등을 다 켜고, 의자에 앉아, 낮에 밀린 검수 서류를 폈다. 새벽 여섯 시에 창이 밝아 왔다. 몸 어디도 가렵지 않았다. 그날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삼십 분을 잤다. 오후 세 시, 왼쪽 옆구리가 가려웠다. 서늘하고 정확한, 동전만 한 자리.
이튿날 밤도 새웠다. 가렵지 않았다. 낮잠도 자지 않았다. 가렵지 않았다.
사흘째 밤에는 몸이 버티지 못했다. 새벽 두 시쯤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었고, 눈을 뜨니 네 시 반이었다. 오른쪽 어깻죽지가 가려웠다. 어깨였다. 허리 다음이 어깨. 두 시간 반 사이에 등을 지나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조건은 확인됐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에만 그것은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밤을 새운 이틀을 기다렸다가, 잠든 지 두 시간 반 만에 밀린 몫까지 나아갔다.
기다린다는 것. 그게 실험의 진짜 결과였다. 병은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은 순서가 있는 쪽이다.
주말에는 본가에 내려가서 잤다. 병이 아니라면 집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침대가 아니라 어머니가 깔아 준 요에서, 삶은 지 오래되지 않은 이불을 덮고 잤다. 새 자리가 낯설어 늦게 잠들었고, 아침에 오른쪽 팔꿈치 안쪽이 가려웠다. 순서상 다음 자리였다.
집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불의 문제도, 물의 문제도, 동네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장소에 붙어 있지 않았다. 나에게 붙어 있었다.
(본가 안방에서 어머니는 내 옆에서 주무셨다. 아침에 어머니는 아무 데도 가렵지 않다고 했다. 같은 방의 두 몸 중에 그것은 정확히 한쪽만 골라 짚었다. 그 밤 이후로 나는 본가에 가지 않는다. 어머니 옆에서 자지 않는다. 그것이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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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둘째 주에 수면클리닉을 찾아갔다.
불면이 아니라 그 반대의 이유로 수면클리닉에 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는 잠들지 않게 해 달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잠이 무섭다고만 했다. 의사는 수술 후 불안장애 같다고 했고, 나는 그 진단이 고마웠다. 이름이 붙으면 다 병 같고, 병이면 약으로 끝날 것 같으니까.
약은 들었다. 아니, 드는 것처럼 보였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이 주 동안, 아무 데도 가렵지 않았다. 열나흘 아침을 나는 몸 어디도 긁지 않고 일어났다. 도면 앞에 서서 표를 안 하는 날이 이어지자 벽의 그 종이가 다 끝난 공사의 도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유월의 초여름 볕에 이불을 널고, 오랜만에 골목 끝 세탁소에 겨울 코트를 맡겼다.
세탁소 사장은 남방 단추를 두 개 풀고 앉아 낮은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있었다. 코트를 받아 걸며 그가 왼쪽 가슴께를 북북 긁었다. 요즘 이상하게 여기가 가렵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유월인데 벌써 모기가 있네요, 사장이 말했고, 나는 네, 하고 나왔다.
(그때 대꾸했어야 했다. 어디가 가렵냐고, 언제부터냐고, 혹시 삼정병원에서 수술받은 적이 있냐고. 사장은 언젠가 내 수술 얘기를 듣고 자기도 거기서 쓸개를 뗐다고, 배를 걷어 흉터 세 개를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나았다고 믿은 열나흘. 지금은 그 열나흘을 다르게 부른다. 그것이 자리를 비웠던 열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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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스무하루, 세탁소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에는 코팅된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실종 전단이었다. 사장의 얼굴이 컬러로 인쇄되어 있었다. 58세, 6월 19일 새벽 자택에서 나간 뒤 연락 두절. 슬리퍼 차림. 휴대폰과 지갑은 집에 있음.
그날 밤 나는 잠들었고, 아침에 왼쪽 가슴이 가려웠다.
왼쪽 가슴. 어깨 다음이 왼쪽 가슴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순서대로라면 목이나 팔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보름을 쉬고 돌아와, 순서를 건너뛰고, 하필 거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세탁소 사장이 북북 긁던 바로 그 자리. 심장 위. 옷으로 치면 명찰이 달리는 자리.
나는 전봇대로 갔다. 세 장의 전단을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맨 위, 세탁소 사장. 6월 19일 실종.
가운데, 비에 번진 것. 김지연, 72세 여성. 올해 3월 30일, 삼정병원에서 퇴원한 당일 실종. 연보라색 카디건 차림. 사진 속 노인의 손등에 검버섯이 있었다.
3월 30일은 내가 퇴원한 날이다. 회복실 옆 침대. 커튼 틈의 그 손. 간호사가 차트를 바꿔 들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부르던 이름.
김지연 님, 눈 떠 보세요.
그 이름의 주인은 옆 침대에서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마취가 덜 깬 먹먹한 귀로, 제 이름이 남의 몸을 두드리는 소리를.
맨 밑, 종이의 화석. 흑백의 세일러복. 뭉개진 명찰. 나는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여섯 자리 전화번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 찾음. 열다섯 살. 삼정외과 다녀온다 하고 나감.
삼정외과. 삼정병원의 옛 이름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몰랐고, 알아내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
김지연 노인의 전단 아래쪽에는 아들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며칠을 만지작거리다가 걸었다. 목격 제보가 아니라서 죄송하다고 먼저 말했다.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사람이라고, 회복실에서 옆 침대였던 것 같다고 하자, 수화기 저쪽이 한동안 조용했다. 아들은 쉰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석 달 동안 그 번호로 걸려 온 전화가 대출 광고 말고는 처음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퇴원한 날 밤에 나갔다고 했다. 현관 CCTV에 다 찍혀 있었다고 했다. 새벽 세 시 십사 분. 잠옷 바람에 맨발이었고, 걸음이 이상할 만큼 편안했다고 했다. 자다 깬 사람의 걸음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의 걸음. 문턱에서 한 번 멈췄는데, 누가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가, 그대로 걸어 나갔다고 했다.
경찰은 몽유병이라고 했다. 노인들은 수술 뒤에 잠깐 정신이 흐려지기도 한다고. 아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생 잠꼬대 한 번 없던 분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아들이 물었다. 그런데 왜 전화를 주셨어요. 나는 대답을 준비해 두지 않았다. 그냥, 얼굴을 기억해서요. 그렇게 말하고 끊었다.
(CCTV 이야기 중에 아들이 지나가듯 한 말이 있다. 화질이 나빠 확대해 봐도 소용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것 하나는 분명해 보였다고. 어머니가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다고. 현관에서 골목 끝까지, 한 번도 뜨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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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병원 본관 일 층, 원무과 맞은편에는 개원 육십 주년 기념 진열장이 있다.
수술받으러 다니던 석 달 동안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유리장이다. 흑백 사진 속의 단층 건물에는 삼정외과의원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사진 밑에는 병원의 연혁이 연대순으로 적혀 있는데, 1972년 칸에는 "화재로 구관 소실, 이듬해 신축 이전"이라고만 되어 있다.
진열장 구석에 유품이 몇 점 있다. 옛날 수술 도구, 놋쇠 저울, 낡은 진료 기록부 한 권. 그리고 유리 상자 안에, 반쯤 탄 헝겊 조각 하나.
명찰이었다. 흰 천에 검정 실로 이름을 수놓은, 옛날 교복 명찰. 왼쪽 절반이 불에 그을려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남은 오른쪽에는 실밥이 또렷했다.
연.
성도, 가운데 글자도 없이, 끝 글자 하나. 김 아무 연. 설명 카드에는 "1972년 화재 현장에서 수습된 유류품"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나는 유리에 이마가 닿을 만큼 가까이 서서 그 실밥을 오래 보았다. 등 뒤로 외래 환자들이 오갔다. 접수 번호를 부르는 방송이 나왔고, 사람들은 제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이름이 불리면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그 유리장을 보지 않았다.
(전단의 아이는 삼정외과에 간다고 하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 연혁에 사고는 없고 화재만 있다. 불은 종이를 태운다. 기록부를, 명부를, 이름을. 명찰은 반만 탔다. 반만 태운 불은 없다. 반만 남긴 손이 있을 뿐이다.)
―
마취에서 사람을 깨우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간단했다. 이름을 부르며 신체를 가볍게 두드린다. 어깨나 뺨을. 눈 떠 보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하고. 몸은 이름에 반응한다. 마취가 덜 깬 몸도 제 이름이 불리면 수면 쪽으로 떠오른다. 회복실에서 내가 겪은 그대로다. 이름이 끌어올리고, 손이 두드려 방향을 알려 준다.
거꾸로 말하면 이렇다. 이름을 모르는 몸은 깨울 수 없다.
1972년 겨울 어느 밤, 수술대 위에서 마취가 너무 깊어진 열다섯 살이 있었다고 하자. 심장이 멎었는지 숨이 멎었는지, 늙은 원장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몸은 식었다고 하자. 겁이 난 원장은 그 밤으로 기록을 태우고, 명부를 태우고, 아이가 입고 온 교복을 태웠다고 하자. 불은 반쯤 타다 만 명찰 하나를 남겼고, 원장은 그것마저 태울 용기는 없어서 서랍 깊이 넣어 두었다고 하자. 유족은 아이가 병원에 갔다는 것밖에 몰랐고, 병원은 그런 환자를 받은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고 하자.
여기까지는 가정이다. 다음부터는 가정이 아니다.
마취는 잠이 아니다. 마취과 의사가 수술 전에 그렇게 말해 주었다. 잠은 흔들면 깨지만 마취는 깨워야 깬다고. 눈은 감기고, 귀는 물속처럼 먹먹하고, 몸은 없는 것 같고, 남는 것은 몇 가지 감각뿐이라고. 차가움 같은 것. 닿는 것 같은 것.
그렇다면 마취된 채로 죽은 아이에게 세상은 어떤 곳인가.
눈은 오십 년째 감겨 있다. 귀는 오십 년째 먹먹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수술이 끝났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 줄 수가 없다. 이름이 타 버렸으니까. 아이에게 남은 것은 손끝뿐이다.
아이는 아직 수술대 위에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다 지치면, 손을 뻗을 것이다. 곁에 누운 몸들을. 마취된 몸, 잠든 몸, 비어 있는 몸. 아이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것은 그런 몸뿐이다. 깨어 있는 몸은 아이에게 벽이고, 잠든 몸은 문이다.
아이는 그 몸들을 더듬는다. 발끝에서부터, 빠짐없이, 순서대로. 무엇을 찾는지는 자명하다. 아이가 세상에서 잃어버린 것은 하나뿐이다.
왼쪽 가슴에 달려 있어야 할 것.
―
그날 밤부터 나는 다시 자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형광등을 켜고, 텔레비전을 켜 놓고, 도면 앞에 서 있었다. 도면에는 이제 표를 할 필요가 없었다. 발끝에서 어깨까지, 그리고 왼쪽 가슴. 남은 자리가 어디인지는 도면이 아니라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목. 그리고 얼굴.
(회복실에서 간호사는 내 이름을 정정해서 다시 불렀다. 서진영 님, 눈 떠 보세요. 그런데 나는 삼십 분을 더 못 깼다. 이제는 그 삼십 분을 이렇게 생각한다. 두 이름이 한 몸을 두드렸다. 몸은 어느 이름에 떠올라야 할지 몰랐다. 그 삼십 분 동안 나는 이름이 헐거운 몸이었다. 그런 몸을, 어둠 속에서 오십 년을 기다린 손끝이 놓칠 리가 없다.)
사흘을 버텼다. 온전한 사흘은 아니었다. 둘째 날 오후, 회의 중에 삼 분쯤 눈을 감았던 모양이다. 옆자리 동료가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그날 저녁 셔츠 단추를 풀다가 알았다. 목이 가려웠다. 울대뼈 옆, 동전만 한 자리. 삼 분이었다. 삼 분이면 목을 짚는 데 충분했다.
(남은 것은 얼굴뿐이다. 나는 그날부터 회의실에서 서서 회의를 했다. 지하철에서는 앉지 않고 문가에 서서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았다. 흔들리는 것들 속에서 눈을 감지 않는 연습을 했다.)
나흘째 밤, 그러니까 어젯밤, 새벽 세 시 사십 분까지는 시계를 본 기억이 있다.
눈을 뜬 것은 다섯 시 십이 분이었다.
깬 것이 아니다. 눈이 떠진 것도 아니다. 감은 눈 그대로, 의식만 물 위로 올라왔다. 회복실의 그 새벽과 정확히 같은 순서로. 소리가 먼저 왔고 — 냉장고 도는 소리가 물속처럼 멀었다 — 그다음에 무게가 왔다.
가슴 위에 손이 있었다.
무겁지 않았다. 아이 손은 무겁지 않다. 서늘하고 건조한 손끝이 왼쪽 가슴, 심장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긁는 것이 아니었다. 쓰다듬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획을 긋고 있었다.
한 획, 두 획. 천천히, 꾹꾹 눌러서. 살갗으로 글씨를 받아 적게 하려는 것처럼.
첫 글자는 내 이름의 어떤 글자와도 다르게 꺾였다. 두 번째 글자는 동그라미로 시작했다. 이응. 그리고 옆으로 한 획, 아래로 지읒 대신 니은이 왔고, 나는 그 글자를 알았다. 유리 상자 속 실밥과 같은 순서로 지어지는 글자였다.
연.
글자가 끝났다. 손끝이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내 뺨을 두드렸다. 톡, 톡. 아프지 않게. 정확히 두 번. 회복실에서 간호사가 하던 그대로. 오십 년 전 회복실에서 아무도 저에게 해 주지 않은 그대로.
눈꺼풀 위에 손끝이 얹혔다. 왼쪽 눈에 하나, 오른쪽 눈에 하나. 서늘하고, 건조하고, 참을성 있게.
눈을 뜨게 해 주려는 손이었다.
―
지금은 아침이다. 커튼 너머로 해가 뜬 지 오래다.
나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는 순간 각성은 끝난다. 회복실의 순서가 그랬다. 이름을 부르고, 두드리고, 눈을 뜨면, 간호사는 말한다. 수술 끝났습니다. 이제 병실로 올라가실게요. 몸은 그 말과 함께 일으켜져, 이름표가 걸린 침대로 실려 간다.
어젯밤 내 가슴에는 이름이 하나 적혔다. 내 것이 아닌 이름이. 그리고 나는 그 이름으로 두드려졌다.
눈꺼풀 너머가 하얗다. 아침 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르게, 너무 둥글게 하얗다. 수술등처럼. 그 빛 속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다. 오십 년을 기다린 것치고는 조용하게.
몸이 무겁지 않다. 어디도 아프지 않다.
(가렵지 않다. 이제 아무 데도 가렵지 않다.)
해설 — 다 읽은 뒤에 펼치세요
자고 일어나면 몸의 다른 자리가 하나씩 가려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가려움의 정체는 병이 아니라 손길입니다. 1972년 삼정외과 수술대에서 마취가 깬 적 없이 죽은 열다섯 살 아이가 있었고, 병원은 사고를 감추려고 기록과 교복을 불태웠습니다. 마취에서 사람을 깨우려면 이름을 부르며 몸을 두드려야 하는데, 이름이 타 버렸으니 아무도 아이를 깨울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눈이 감기고 귀가 먹먹한 채 손끝만 남아서, 잠들어 '비어 있는' 몸들을 밤마다 더듬으며 자기 명찰을, 그러니까 자기 이름을 찾아다닙니다. 아침의 가려움은 그 손길이 하루 늦게 피부에 돋는 자국입니다. 주인공이 표적이 된 이유는 회복실에서 간호사가 차트를 헷갈려 그의 몸에 대고 다른 환자의 이름 '김지연'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명찰에 남은 글자와 같은 '연'자 이름이 불린, 이름이 헐거운 몸이 된 것입니다. 놓치기 쉬운 복선이 셋 있습니다. 옆 침대의 진짜 김지연 노인이 퇴원한 날 밤 눈을 감은 채 걸어 나가 실종된 것. 약을 먹고 가려움이 멎었던 열나흘이 사실은 아이가 세탁소 사장에게 가 있던 기간이라는 것. 그리고 전봇대 맨 밑의 가장 오래된 실종 전단이 아이 자신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는 주인공의 가슴에 손가락으로 제 이름을 쓰고 뺨을 두 번 두드립니다. 오십 년 전 아무도 저에게 해 주지 않은 '깨우기'를 이제 자기 손으로 완성하는 겁니다. 주인공이 눈을 뜨는 순간 각성은 끝납니다. 눈꺼풀 너머의 하얀 빛은 아침 해가 아니라 수술등이고, 마지막 줄의 '이제 아무 데도 가렵지 않다'는 확인이 끝났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