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에 온다

무너미 사람들은 비 오는 밤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

벨은 꼭 한 번 울고 끊긴다. 그러면 마을의 불이 하나씩 죽는다. 사람들은 불을 끄고 이불 속에서 아침을 기다린다. 아침이 오면 맨 먼저 부엌으로 간다. 냉장고 문짝부터 본다.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쌀을 안친다.

나는 이것을 쓰러 간 것이 아니었다. 잡지사에서 받은 일감은 수몰 마을 연재 르포였다. 청호댐이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 골짜기 아홉 마을이 잠긴다. 무너미는 그 맨 안쪽에 있다. 스물여섯 가구다. 나는 장마 초입에 들어가 이레를 묵었다. 마을에 하나 남은 구멍가게 안방에 짐을 풀었다. 첫날 밤부터 방바닥이 눅눅했다. 장판에 손바닥을 대면 미지근한 물기가 배어났다. 이레 동안 마른 것을 만져 본 기억이 없다.

전화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무너미의 전화는 공동선이다. 선 한 가닥에 여섯 집이 매달려 있다. 한 집이 통화를 하면 다른 집 수화기에서도 딸깍 소리와 함께 그 말이 들리는 물건이다. 읍내는 진작 자동식으로 바뀌었다. 무너미는 그대로다. 어차피 잠길 마을에 전화국은 돈을 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전화를 이제 잘 쓰지 않는다. 꼭 쓸 일이 있으면 낮에 쓴다. 비가 오면 아예 선을 뽑아 두는 집도 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벼락 때문인 줄 알았다.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잡지사에 중간 보고를 하려고 구멍가게 전화를 빌렸다. 통화 중간에 딸깍 소리가 났다. 여섯 집 가운데 누구려니 했다. 끊고 나서야 생각이 미쳤다. 그 시각 마을 사람들은 품앗이로 죄다 들에 나가 있었다. 선에 매달린 집들은 전부 빈집이었다.

닷새째 밤에 비가 다시 왔다. 저녁부터 구멍가게 주인은 말수가 줄었다. 아홉 시가 되자 가게 문을 걸고 전화선을 뽑았다. 뽑은 선을 손에 감아 쥐고 한참 서 있다가 텔레비전도 껐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은 일찍 잡시다.

나는 자정 넘어서까지 어둠 속에 깨어 있었다. 빗소리 사이로 마을이 얼마나 조용한지 그때 알았다. 개 짖는 소리 하나 없었다. 무너미의 개들은 비 오는 밤에 짖지 않는다. 그것도 이상하게 여겼어야 할 일인 줄 그때는 몰랐다. 새벽 한 시께 빗소리 너머에서 벨이 반 토막 울렸다. 우리 것이 아니었다. 아랫집 쪽이었다. 한 번. 그리고 끝이었다. 잠시 뒤 그 집에 하나 남았던 불이 죽었다. 아침에 물었더니 주인은 밥만 펐다.

◆ 재작년 여름

최덕주는 재작년 장마에 죽었다. 무너미에서는 다들 그렇게 말한다. 쉰넷이었다. 스무 해 전에 외지에서 흘러들어 개울 건너 외딴집에 혼자 살았다. 서울 사람 소유의 과수원을 봐주며 살았다. 그 집에 전화가 있는 것도 과수원 주인이 놓아 준 덕이었다. 관리인을 부리자면 전화가 있어야 했다. 명의는 덕주 앞으로 되어 있었다.

덕주는 글을 몰랐다. 면에서 서류가 오면 이장네 마루에 와서 지장을 찍었다. 무너미에서 그의 지장을 못 본 사람은 없어도 그의 글씨를 본 사람은 없다.

마을은 그를 덕주 씨라고도 덕주 양반이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그냥 덕주였다. 스무 해를 살아도 품앗이 상에는 그의 자리가 없었다. 초상이 나면 일손으로 불렀다. 잔치에는 부르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고 했을 때 마을에서 운 사람은 조 씨 할매 하나였다고 한다. 그때는 할매도 아직 정신이 성할 때였다.

덕주는 보상 서류에 지장을 안 찍은 마지막 사람이기도 했다. 골짜기 아홉 마을 가운데 여덟이 도장을 끝냈다. 무너미만 남았고 무너미에서는 덕주만 남았다. 전원이 동의하면 이주 정착금에 웃돈이 붙는다고 했다. 덕주 하나 때문에 스물여섯 가구가 그 돈을 못 받는다는 말이 그해 여름 내내 마을을 돌았다. 왜 안 찍느냐고 물으면 그는 논두렁만 봤다고 한다. 여기 말고는 갈 데가 없다고 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

장마가 한창이던 밤에 덕주가 없어졌다. 이튿날 개울가 버드나무 뿌리에서 그의 검정 고무신 한 짝이 나왔다. 불어난 한들내에 발을 헛디딘 것으로 이야기가 모였다. 엿새 뒤에 저수지 수문 옆으로 시신이 올라왔다. 엿새를 물에 구른 몸이었다. 얼굴로는 아무도 못 알아봤다. 웃통은 벗겨져 없었다. 신원은 고무신이 정했다. 체구가 비슷했고 그 무렵 무너미에서 없어진 사람은 덕주 하나였다. 아무도 더 묻지 않았다. 장마철이었다. 의사가 와서 보는 것은 형식이었고 장례는 빨랐다. 마을회관에 사흘 상을 차렸다. 상주가 없어 이장이 상주 노릇을 했다. 개울가에서 나온 고무신은 관에 함께 넣었다. 문상객 슬리퍼며 그릇은 읍내 영신장의사에서 빌려 왔다.

덕주의 땅은 그가 죽자 주인 없는 절차로 넘어갔다. 도장 없이도 굴러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가을에 웃돈이 나왔다.

◆ 마을을 비운 밤

발인을 치르고 이레쯤 지난 밤이었다. 그날도 비가 무겁게 왔다. 밤 열한 시에 이장네 전화가 울렸다. 면사무소 당직이라고 했다. 한들 저수지 둑에 금이 갔다고 했다. 마을을 비우라고 했다. 빗소리에 목소리가 반쯤 잠겼더라고 이장은 말했다. 같은 선에 매달린 두 집이 수화기를 들어 그 통화를 같이 들었다. 다들 면사무소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이장은 집집을 두들겼다. 스물여섯 가구가 우비를 쓰고 뒷산 성황당 터로 올라갔다. 늙은이는 업혔다. 밤새 비를 맞았다. 새벽에 비가 걷혔다. 둑은 멀쩡했다. 물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한다. 꿈같은 소동이었다고. 살았다고. 그런 말들을 하며 산을 내려왔다.

내려와 보니 집집의 부엌에 다녀간 자국이 있었다.

문이 뜯긴 집은 없었다. 없어진 것도 없었다. 다만 냉장고마다 종이가 한 장씩 붙어 있었다. 밥풀로 붙인 종이였다. 연필 글씨였다. 어느 집 것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간장독에 금 갔다. 장 버리기 전에 옮겨라. 어느 집 것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둘째가 사탕을 요 밑에 숨긴다. 이 썩는다. 전부 그 집 식구가 아니면 모를 일들이었다. 그리고 전부 처음 보는 글씨였다.

스물여섯 부엌을 하룻밤에 다 도는 일은 산 사람한테는 마을이 비어야 되는 일이고 죽은 사람한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때는 아무도 그 셈을 하지 않았다.

지서에서 순경이 나왔다. 뜨내기의 장난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마을은 그 매듭에 토를 달지 않았다. 다만 그날부터 비 오는 밤이면 전화가 한 번 울고 끊기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장독대 옆 진흙에 발자국이 찍혀 있고는 했다. 고무신 바닥이 아니었다. 바닥이 밋밋하고 코가 뭉툭했다. 초상집 슬리퍼 자국이었다.

비 오는 밤이면 마루 끝에 밥그릇을 내놓는 집도 생겼다. 아침이면 그릇이 비어 있었다. 들고양이라고들 했다. 빈 그릇이 물에 씻겨 가지런히 엎어져 있어도 고양이 짓이라고들 했다.

◆ 남은 한 켤레

읍내 영신장의사 주인은 예순 넘은 노인이다. 낡은 장부를 꺼내 재작년 무너미 초상 자리를 짚어 주었다. 병풍 하나. 교자상 둘. 그릇 마흔 벌. 슬리퍼 열두 켤레. 회수 열한 켤레. 노인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초상집 슬리퍼야 원래 한두 켤레씩 없어진다고 했다. 나는 장부를 한참 봤다. 다른 물건은 하나도 축나지 않았다.

덕주의 집은 개울 건너에 있다. 마을은 그 집을 헐지도 잠그지도 않았다. 아무도 건너가지 않는 것으로 잠가 두었다. 나는 건너갔다. 징검다리가 미끄러웠다. 두 해 빈집답게 벽마다 곰팡이가 슬어 손을 대면 차고 축축했다. 그런데 댓돌만 말라 있었다. 그 위에 슬리퍼가 한 켤레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코가 방 쪽을 향해 있었다. 나갈 때 벗어 둔 신이 아니라 들어가며 벗어 둔 신이었다. 굽이 한쪽으로 닳았고 바닥에 붙은 흙이 아직 젖어 있었다.

부엌 냉장고는 선이 뽑힌 지 오래였다. 문짝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기름때에 절어 누렇게 된 오래된 종이였다. 연필 글씨였다. 국은 데워 먹고. 과수원 짐은 목요일에 온다. 나는 그 글씨를 어디서 봤는지 알았다. 구멍가게 주인은 대피하던 밤 제 냉장고에 붙었던 종이를 떼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었다. 떼면 더 궂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라고 했다. 평상 다리 한쪽이 삭았다. 갈아라. 그 종이와 이 종이는 같은 손이었다.

글을 모른다던 사람의 부엌에 글이 붙어 있었다. 남이 남겨 준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적어 둔 살림 글이.

우편함에는 전화 요금 고지서가 꽂혀 있었다. 죽은 사람 명의의 번호에서 다달이 통화료가 나오고 있었다. 몇백 원씩이었다. 밀린 적은 없었다. 요금은 우편환으로 들어온다고 전화국 창구에서 확인해 주었다. 죽은 사람의 전화가 두 해째 살아 있고 누군가 꼬박꼬박 그 값을 치르고 있었다.

전화국에서 한 가지를 더 확인했다. 마을을 비운 그 밤의 기록이다. 그날은 낮부터 골짜기 바깥으로 나가는 선이 물에 잠겨 끊겨 있었다. 면사무소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그 밤 무너미로 건너온 전화는 없었다. 이장네 전화를 울릴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선에 매달린 여섯 대 가운데 하나뿐이다. 그 가운데 다섯 집은 그 시각 식구가 전부 집에 있었다.

여섯 번째 전화가 개울 건너에 있다.

◆ 문상객

조 씨 할매는 마을회관 곁에 산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지 오래다. 할매는 사흘째 나를 붙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덕주가 어제도 다녀갔다. 곤로 옆에 약을 두고 갔다. 며느리가 내 등 뒤에서 손가락을 제 관자놀이에 대고 돌렸다. 나는 부엌을 봤다. 곤로 옆에 약봉지가 있었다. 읍내 약방 이름이 찍혀 있었다. 누가 사다 놓았는지는 며느리도 대답하지 못했다.

초상 사흘 동안 밤마다 마을회관에서 향을 지킨 것은 동막댁 노파였다. 노파는 셋째 날 새벽 이야기를 오래 망설이다 꺼냈다. 다들 곯아떨어진 시각에 문상객이 하나 들어왔다. 우비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와 영정 앞에 두 번 절을 했다. 절을 하고 고개를 드는데 그 얼굴이 영정 속 얼굴이었다. 노파는 제가 조는 줄 알았다고 했다. 꿈이거니 하고 도로 눈을 감았다고 했다. 다시 떴을 때 문상객은 없고 문간의 슬리퍼가 한 켤레 비어 있었다.

나는 그 새벽의 노파를 탓할 생각이 없다. 나라도 눈을 감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덕주는 죽지 않았다.

재작년 그 밤 한들내는 사람 하나를 삼켰다가 십 리 아래에 뱉어 놓았다. 그리고 같은 장마에 상류 지곡면에서는 다리가 끊기며 세 사람이 떠내려갔다. 둘은 찾았다. 마흔 줄 사내 하나는 끝내 못 찾았다. 군청 수해 대장에 그렇게 남아 있다. 무너미 뒷산에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여기까지만 적는다. 저수지가 뱉은 몸에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은 산 사람들이 붙였다. 고무신 한 짝으로.

그러면 그 밤에 덕주는 왜 한들내에 빠졌는가. 나는 그 밤을 재판에 세울 증거를 얻지 못했다. 얻은 것은 이장 댁의 빨래 이야기 하나다. 이장 댁은 내 앞에서 무너지듯 말했다. 그 밤에 남정네 넷이 우비를 쓰고 나갔다 왔다. 새벽에 흙물 든 옷가지를 빨았다. 그리고 저희 집 냉장고에 붙었던 종이는 남들 것과 달랐다고 했다. 감나무 밑에 묻은 것은 비에 삭는다.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장 댁은 그 종이를 아궁이에 넣었다. 넣고 나서 나한테 물었다. 귀신이 글을 압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귀신은 글을 모른다. 글을 아는 것은 산 사람이다.

개들이 왜 안 짖는지도 그제야 셈이 맞았다. 개는 두 해 동안 밤마다 다니는 사람을 도둑으로 치지 않는다.

이레째 새벽에 나는 빗소리에 깼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물이 방까지 차오르는 꿈이었다. 깨 보니 장판은 그대로 눅눅했고 비는 여전했고 나는 살았구나 하며 웃었다.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다. 구멍가게 냉장고 문짝에 종이가 두 장 붙어 있었다. 한 장은 어제까지도 보던 누런 종이였다. 한 장은 새것이었다. 밥풀이 아직 말랑했다.

기자 양반. 목요일 밤에 원두막으로 오시오. 혼자 오시오.

◆ 목요일

원두막은 물가에 있다. 나는 우산을 쓰고 갔다. 그는 먼저 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담뱃불이 한 번 밝았다 죽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가 잡았다. 굳은살이 손바닥을 긁었다. 그리고 뜨거웠다. 두 해 동안 무너미가 무서워해 온 것의 체온이 내 것보다 높았다.

그는 말을 아꼈다. 내가 물으면 절반은 논물 소리만 돌아왔다. 그래도 몇 마디는 받아 적었다. 수첩이 젖어 글씨가 번졌지만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무덤 말이오. 벌초는 내가 하오. 내 무덤이니.

그 사람 제사도 내가 지내오. 남의 봉분에 대신 들어가 누웠으면 밥은 얻어먹어야 할 것 아니오.

왜 나서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참 만에 대답했다. 죽은 놈은 고소를 못 하오. 지금 나가면 나는 사기꾼 하나고 저쪽은 스물여섯 가구요. 순경도 저쪽 밥을 먹소. 그리고 나는 여기 말고는 갈 데가 없소. 그건 살아서나 죽어서나 같소.

글은 어디서 배웠느냐고도 물었다. 그 물음에는 끝까지 논물 소리였다.

조 씨 할매 약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담배를 오래 빨았다. 내 초상에 운 사람이 그 할매 하나요. 값은 치러야지. 그 말을 하는 동안만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슬리퍼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발을 어둠 밖으로 내밀었다. 젖은 비닐이 반들거렸다. 내 신은 저기 묻혔소. 남의 발에 신겨서. 그러니 이건 초상집에서 얻어 신었소. 내 초상인데 신 한 켤레도 못 얻어 신겠소.

헤어질 때 그가 물은 것은 하나였다. 봄에 무덤 옮긴다는 공고 봤소. 물이 차면 뒷산 묘지도 다 파서 옮겨야 한다. 나는 봤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시오. 그날은 내가 상주요.

나는 이 원고를 그날까지 어디에도 싣지 않기로 했다. 증거가 모자라서만은 아니다. 활자가 먼저 가면 순경이 먼저 갈 것이고 그때 파헤쳐지는 것은 무덤이 아니라 그 사람일 것이다.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것이 기자가 할 짓인지 나는 모른다. 아는 것은 하나다. 나는 이레 동안 그 마을 밥을 얻어먹었다. 밥값을 이런 식으로밖에 치를 줄 모른다.

공고문은 마을회관 벽에 붙어 있다. 분묘 이장 공고. 비에 불어 네 귀가 말렸다. 날짜는 내년 사월 초이레다. 그날 뒷산에서 관 뚜껑이 열린다. 마을이 그 앞에 늘어설 것이다. 그리고 열두 켤레 가운데 돌아오지 않은 마지막 한 켤레를 신은 문상객이 맨 앞에 설 것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그 얼굴을 알아볼 것이다. 두 해 동안 저희 부엌을 드나들고 잠든 방 문 앞을 지나다니고 수화기 너머에서 저희 숨소리를 세고 있던 얼굴을.

무너미의 전화는 오늘 밤에도 한 번 울고 끊겼다.

이 원고는 폐간된 한 시사 월간지 편집장의 유품 상자에서 원고지 뭉치로 발견되었다. 마지막 장 여백에 연필로 '4월 7일 이후 게재'라고 적혀 있는데, 그 여섯 글자는 본문의 필체와 다르다.
해설 — 다 읽은 뒤에 펼치세요

마을이 죽었다고 믿고 장례까지 치른 남자가 사실은 살아 있고, 두 해 동안 마을 곁에 숨어 살며 집집의 부엌을 드나들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실체는 이렇습니다. 덕주는 댐 보상 서류에 지장을 찍지 않은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장마가 한창이던 밤 마을 남자 넷이 그를 찾아갔고, 그날 그는 불어난 개울에 빠져 떠내려갔습니다. 엿새 뒤 저수지에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오르자 마을은 고무신 한 짝을 근거로 그것을 덕주라 정하고 서둘러 묻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신은 같은 장마에 상류에서 떠내려온 다른 사람이었고, 덕주는 십 리 아래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그는 제 초상에 문상을 와서 영정 앞에 절을 하고 슬리퍼 한 켤레를 얻어 신고 갔습니다. 제 고무신은 남의 발에 신겨 관에 들어갔으니까요. 마을을 비우게 만든 가짜 대피 전화도 그가 건 것입니다. 그 밤은 바깥으로 나가는 선이 끊겨 있었으니 그 전화는 공동선 안쪽, 곧 개울 건너 그의 집에서만 걸 수 있었습니다. 마을이 뒷산에서 떨던 사이 그는 스물여섯 집 부엌을 돌며 냉장고마다 메모를 남겼습니다. 나는 너희를 다 보고 있다는 인사였던 셈입니다.

놓치기 쉬운 복선이 몇 있습니다. 빈집뿐인 낮에 들린 딸깍 소리는 그가 공동선으로 마을의 통화를 듣고 있다는 뜻입니다. 개들이 비 오는 밤에 짖지 않는 것은 두 해 동안 밤마다 다닌 사람을 도둑으로 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 씨 할매의 곤로 옆 약봉지는 그의 초상에서 운 유일한 사람에게 값을 치르는 일이고요.

결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봄에 무덤을 옮기는 날 관이 열리면 마을은 저희가 묻은 것이 누구인지 두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날 맨 앞에 서겠다는 문상객이 진짜 상주입니다. 이 이야기의 위협은 유령이 아니라, 죽였다고 믿은 사람이 산 채로 곁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생성 기록
주제 [전화/문자/부재중] · 형식 [뉴스 기사/르포 형식] · 구조 [거짓 각성] · 배경 [1980~90년대 레트로]
공포 유형 [반전/트위스트] · 분위기 [축축하고 습한] · 시드 모티프 [냉장고에 붙은 모르는 사람의 메모, 한 켤레만 남은 장례식장 슬리퍼]
작가 시그니처 [단문 위주 · 토속적 · 고해형 · 촉각·온도 우선] · 습관 [쉼표를 아끼고 마침표로 호흡한다]
분량 [중편 · 6,986자] · 집필 모델 [claude-fable-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