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손

주막 주인은 내가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며 종이와 먹을 놓고 갔다. 관가에 올릴 이름만 적어 두라고 했다. 장터에서 객주 장부를 대신 써 준 세월이 있어 붓은 낯설지 않은데, 등잔이 두 번 꺼지는 동안 첫 줄만 적었다.

김수동.

평생을 쓴 이름인데 동 자의 획을 두 번 고쳤다. 비가 오기 때문일 것이다. 천장 귀퉁이에 물 자국이 번지고 있다.

아홉 살이 되던 해에도 사흘 동안 비가 왔다. 나흘째 새벽 둑이 터졌고, 아버지는 소를 끌어내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어머니와 우리 남매는 부엌 시렁을 딛고 대들보까지 올랐다. 물은 금세 방고래를 삼켰다.

먼저 대들보를 붙든 것은 나였다. 아래에 있던 아이가 물살에 밀려 서까래를 놓쳤다. 나는 배를 나무에 붙이고 한 손을 내렸다.

나는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수동아, 손 다오."

손가락 두어 마디가 닿았다가 빠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물이 빠진 뒤 이정이 살아남은 식구를 불러 세웠고 아전이 이름을 적었다. 어머니는 내 어깨를 짚고 김수동이라고 대답했다. 마을 사람 여럿이 죽었고 집안 문서도 떠내려간 뒤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동생의 저고리를 내게 입혔다. 딸은 남의 집에 들여보내야 하지만 아들이면 품을 팔아도 곁에 둘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밥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 놓고 다시 수동아, 불렀을 때에는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다음 달에 물 건너 고을로 갔다. 나를 전부터 알던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는 남들 앞에서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단둘이 있을 때 딸의 이름 첫소리를 흘린 적은 있었으나, 내가 쳐다보자 마른기침을 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 첫소리마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장터의 짐을 나르고 주막의 장작을 패며 살았다. 스무 살 무렵 함께 품팔던 사내들이 냇가에서 옷을 벗자고 했을 때에는 그날 품삯을 버리고 달아났다. 혼담이 오르면 짐을 쌌고, 병이 나도 의원을 부르지 않았다. 한곳에 오래 머문 적은 없었다.

그 무렵부터 비가 새는 방에 들면 천장의 얼룩부터 보았다. 어느 집 것은 짐승 같았고 어느 집 것은 낫처럼 휘었다. 가끔은 아이의 어깨와 그 위로 뻗은 팔처럼 보였다. 그런 밤에는 물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수동아, 하는 부름이 섞였다. 아침이면 내 목이 쉬어 있었다.

문밖에서 주막 주인이 기침한다. 죽은 뒤 관가에 올릴 이름을 묻는다. 나는 첫 줄의 김수동을 다시 본다. 천장의 물 자국은 아직 손바닥만 하다.

나는 첫 줄의 이름 위에 손바닥을 얹고 천천히 밀었다. 떼어 보니 먹이 손금 사이로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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