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제위께
[전사자 부기 — 아래는 병인년 여름 경성신문사 사회부 기자 백승하의 속기첩을 옮긴 것이다. 속기첩은 이듬해 봄 전라북도의 한 논 물꼬에서 건져진다. 물에 잠겼던 물건이 어떻게 낱장 하나 번지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속기 제일호. 병인년 유월 초열흘 밤.
장마가 초입이다. 편집국 벽지가 눅어 들뜨고, 활자 상자에서 쇳내와 곰팡내가 함께 오른다. 나는 사회부 말석에서 독자통신란을 맡는다. 독자가 부치는 편지를 추리고 실을 것을 골라 다듬는 일이다. 견습 적에 속기를 익힌 버릇으로 그날 일은 그날 밤 이 첩에 적는다. 속기는 지나간 일도 지금 일처럼 적는다. 손이 그 법대로 움직인다.
금일 편지 세 통이 눈에 걸린다. 김포, 재령, 함안. 필적이 다르고 종이가 다르고 말씨가 다르다. 내용이 같다. 밤사이 논두렁에 낫이 꽂힌다는 것이다. 마을 누구의 낫도 아니라는 것이다. 날끝이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서고, 뽑아 두어도 이튿날 도로 꽂힌다는 것이다.
편지를 코에 대 본다. 세 통에서 같은 냄새가 난다. 물 댄 논의 뻘내다. 종이는 바싹 말라 있는데 냄새만 젖어 있다. 냄새가 기억을 끌고 온다. 열두 살의 내가 무논 가에 서 있다. 아버지가 두렁의 풀을 벤다. 나는 그 기억을 도로 밀어 넣고 편지를 접는다.
한 부장이 재미있어한다. 요즘 독자는 괴담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한다. 나는 세 통을 간추려 싣고 말미에 한 줄을 단다. 이와 같은 일을 목도한 독자 제위는 본사 독자통신란으로 기별하여 주시기 바란다. 그 한 줄을 쓰는 데 삼 초가 걸린다.
속기 제이호. 유월 열엿새.
엿새 만에 스물일곱 통이 온다. 평북 정주에서 경남 진주까지 온다. 국배판 조선 전도를 벽에 붙이고 편지 온 고장마다 핀을 꽂는다. 핀이 남에서 북으로 성기게 흩어진다. 아직은 아무 형상도 아니다.
편지의 태반은 제보가 아니라 풍문과 훈수다. 동척의 측량 말뚝이 변한 것이라는 설이 있고, 도참에 이르기를 낫 겸(鎌) 자가 들면 흉년이라는 설이 있고, 예수교 청년회에서는 미신을 지면에 올리는 본사를 꾸짖는 장문이 온다. 어느 훈장은 한시를 지어 보낸다. 밤마다 논에 달이 아니라 쇠가 뜬다는 구절이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추려 웃음거리 반, 괴담 반으로 지면을 채운다. 지면은 잘 팔린다.
개중 상주의 훈도가 보낸 편지가 자세하다. 각도기와 다림줄로 낫의 기울기를 잰다고 한다. 날끝이 가리키는 방위 북북동, 고도 삼십팔 도 남짓. 밤에 재도 같고 열흘 뒤에 재도 같다고 한다. 훈도는 묻는다. 낫이 무엇을 겨누는지 아느냐고. 나는 답장을 미룬다.
가짜를 골라내느라 편지마다 코에 대 본다. 이상한 말이지만 이제 냄새로 안다. 참말인 편지에서는 뻘내가 난다. 봉투를 뜯기 전에 안다.
속기 제삼호. 유월 스무하루.
수원행 첫차를 탄다. 차창에 비가 긋는다. 정거장에서 시오 리를 걸어 들어간다. 짚신이 불고 바짓단에서 흙내가 오른다. 안내하는 이는 박 진사 댁 마름이다. 두렁에 낫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적어 둘 것. 낫은 낡아 있다. 자루가 손때에 절어 반질반질하다. 이 마을 누구의 손때도 아니다. 마름이 그렇게 말하고 제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른다.
날에 녹이 없다. 장마 보름째의 무논 곁에서 쇠가 은빛이다. 손등을 가까이 대 본다. 차다. 유월의 쇠가 아니라 동지의 쇠다. 물비린내와 개구리 소리 한가운데서 그 자리만 겨울처럼 서늘하다.
박 서방이라는 이가 처음에 뽑는다. 헛간 시렁에 얹어 두고 잔다. 아침에 낫은 두렁에 도로 꽂혀 있다. 다만 자리가 다르다. 박 서방의 집에서 두 두렁 가깝다. 박 서방이 오기로 한 번 더 뽑는다. 이튿날 낫은 마당가 텃논 두렁에 있다. 방문에서 스무 걸음이다. 그 뒤로 이 마을에서 낫에 손대는 사람이 없다.
마름이 낮은 소리로 청한다. 신문에 내되 마을 이름은 빼 달라고 한다. 나는 그러마고 한다. 그러고는 고장 이름을 넣어 싣는다. 이름이 박혀야 기사가 팔린다. 이것도 빼지 않고 적어 둔다.
속기 제사호. 유월 스무엿새.
인천의 관측소로 최 기사를 찾아간다. 전문학교 시절의 지기다. 상주 훈도의 수치와 내가 수원서 잰 수치, 그 밖에 방위를 적어 보낸 편지 아홉 통 치를 내놓는다.
최 기사가 주판과 성도를 놓고 반나절을 앉아 있다. 위도가 다른 고장의 낫이 고도를 달리한다고 한다. 남쪽 고장일수록 낮게, 북쪽 고장일수록 높게. 전부 한 점에서 만나도록. 하늘의 한 자리다. 천구의 북극에서 조금 비낀 자리, 사철 지지 않고 사철 뜨지도 않는 자리라고 한다.
그 자리에 무슨 별이 있느냐고 묻는다. 최 기사가 성도를 이쪽으로 민다. 빈자리다. 목록에 없다. 어느 나라 목록에도 없다고 한다. 최 기사가 웃는다. 웃음이 반쯤에서 멎는다.
조선 팔도의 낫이 전부, 별 없는 자리 하나를 겨눈다.
속기 제오호. 칠월 초이틀.
편지가 일흔 통을 넘는다. 지도의 핀이 마흔을 넘는다. 최 기사가 상경하여 지도 앞에 선다. 한참을 보다가 성도를 꺼내 유리창에 대고 지도와 겹친다. 그냥 겹치지 않고 뒤집어 겹친다. 물에 비친 하늘처럼.
핀들이 형상을 이룬다. 어느 성좌도 아니다. 최 기사가 연필로 핀과 핀을 잇는다. 팔을 벌린 사람 같은 형상이 나온다. 몸을 틀며 도는 사람 같은. 머리 쪽이 비어 있다. 최 기사가 빈자리를 센다. 열세 자리. 형상이 되다 만 자리가 열세 곳 남는다는 뜻이다.
최 기사가 말한다. 논은 물을 담고, 물은 하늘을 비춘다. 이 반도가 통째로 감광판이라면, 지금 무엇인가 인화되는 중이라고. 나는 그 말을 웃어넘기려다 만다.
발송 대장을 뒤진다. 철도 우편의 도착 일자를 낫 꽂힌 날짜와 맞춰 본다. 순서가 있다. 그 고장에 본지가 닿은 다음 날 밤이다. 예외가 없다. 활자가 앞서 가고 낫이 뒤따른다.
그날 밤 독자통신란의 지난 지면을 전부 꺼내 놓는다. 말미의 한 줄이 매번 있다. 기별하여 주시기 바란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으나 전부 내 문장이다.
속기 제육호. 칠월 초여드레.
한 부장에게 난을 접자고 말한다. 한 부장이 부수 장부를 편다. 석 달에 삼 할이 는다. 자네가 낫을 꽂나, 밤이 꽂지. 한 부장의 말이다. 나는 대꾸를 찾지 못한다. 그 주에 타지 두 곳이 우리 기사를 받아쓴다. 낫이 이틀에 하나꼴로 는다.
같은 주에 장난이 하나 들통난다. 양주의 고보생이 제 손으로 낫을 꽂고 편지를 지어 보낸다. 동무들과의 내기다. 그 편지는 처음부터 수상하다. 냄새가 없다. 마른 종이 냄새뿐이다.
학생이 꽂은 낫은 이레 만에 도랑에서 발견된다. 뽑혀서 내던져져 있다. 그 자리에서 반 자쯤 비낀 곳에 다른 낫이 꽂혀 있다. 자루가 손때에 전, 녹 없는 낫이다. 최 기사가 위치를 재고 말이 없다. 형상의 왼팔 끝, 비어 있던 자리 하나가 찬다.
장난이 자리를 잘못 짚는다. 그러자 무엇인가 바로잡는다.
속기 제칠호. 칠월 열나흘, 열닷새에 걸쳐 적는다.
최 기사가 다음 자리를 짚는다. 형상의 옆구리께, 황해도 재령 어름이다. 우리는 앞질러 가 보기로 한다. 아직 아무 일 없는 논에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 일 없는 논이 어느 두렁인지는 최 기사의 주판이 안다. 그 사실부터가 이미 이상하다.
재령 들은 넓다. 비가 그었다 오다 한다. 남포등 두 개를 켜고 두렁에 선다. 자정 넘어까지 아무 일 없다. 개구리가 운다. 빗소리가 들에 가득하다. 석유내와 뻘내가 등불 둘레에 고여 있다.
축시 무렵이라고 최 기사가 회중시계를 본다. 그때 냄새가 끊긴다. 뻘내가, 물비린내가, 석유내까지, 일시에 빠져나간다. 코가 멍해진다. 세상에서 냄새만 걷어 낸 것 같다. 개구리가 그친다. 빗소리가 한 자리를 비켜서 내린다. 우산 없는 데 우산이 있는 것처럼, 두렁의 한 뼘이 소리 없이 비어 있다.
남포등을 쳐든다. 빈 두렁이다. 눈을 한 번 깜박인다. 낫이 있다.
꽂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날아오는 것도, 땅에서 솟는 것도 보지 못한다. 없다가 있다. 그 사이가 눈꺼풀 한 번이다.
비가 다시 고루 내린다. 냄새가 돌아온다. 낫의 날만 마른 채로 등불을 받는다. 비가 날에 닿지 않는다. 빗방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날을 비켜 간다. 최 기사가 각도를 잰다. 손이 떨려 세 번 잰다. 북북동, 고도 삼십구 도. 맞는 자리다.
이튿날 아침, 물꼬 보러 나온 촌로에게 묻는다. 밤사이 두렁에 낫이 꽂혔지요. 노인이 나를 물끄러미 본다. 그 낫은 원래 거기 있다고 한다. 저의 할아버지 적부터 있다고 한다. 노인의 눈에 거짓이 없다.
돌아오는 찻간에서 최 기사가 차창을 보며 말한다. 우리가 지켜본 게 아닐세. 입회한 걸세. 서명하듯이.
속기 제팔호. 칠월 스무하루.
편지에 사진이 동봉되기 시작한다. 읍내에 사진관이 있는 고장의 제보자들이 증거 삼아 보낸다. 인화지가 장마에 눅어 물결져 있다. 인화액 냄새 밑에 뻘내가 깔려 있다.
사진마다 사람이 많다. 낫 하나 찍자고 온 식구가 나와 선다. 사진이 귀한 고장의 법도다. 두루마기를 꺼내 입은 노인이 있고, 아이 업은 아낙이 있고, 낫은 그들 발치의 두렁에 조그맣게 꽂혀 있다.
다섯 장을 책상에 늘어놓는다. 두 장에서 같은 것이 눈에 걸린다. 맨 왼쪽 끝에 흰옷 입은 사내가 서 있다. 갓이 없고 얼굴이 흐리다. 움직여서 흐려진 것이라고 보면 그만이다. 시골에 흰옷 입은 사내가 어디 한둘인가. 나는 사진을 서랍에 넣는다.
서랍을 닫고 나서, 그 두 장이 찍힌 고장 사이가 오백 리라는 것을 뒤늦게 센다. 세고서도 서랍을 다시 열지 않는다. 이것도 적어 둔다. 열지 않은 것도 한 일이다.
속기 제구호. 칠월 그믐.
편지가 끊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열흘을 끊긴다. 뻘내 나는 편지가 한 통도 없다. 남녘에 수해가 나서 지면이 온통 물난리 기사다. 한 부장이 독자통신란을 접는다.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열흘 만에 꿈 없이 잔다. 하숙 창을 열고 잔다. 골목의 밥 짓는 내와 하수구 내가 오히려 반갑다. 산 사람의 냄새다. 끝났다고 쓰고 싶은 손을 눌러 둔다. 속기첩에도 그렇게는 적지 않는다.
최 기사에게서 엽서가 온다. 짧다. 빈자리 하나 남음. 머리 자리. 위치 산출 중. 그 아래 아무 인사말이 없다.
사흘 뒤 관측소에 전화를 넣는다. 최 기사가 나흘째 결근이라고 한다. 하숙에도 없다고 한다. 관측소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장마 통에 앓아누웠겠지요. 나는 예, 하고 끊는다.
속기 제십호. 팔월 초닷새.
최 기사의 편지가 온다. 소인이 닷새 전이다. 봉투에서 뻘내가 난다. 최 기사는 인천 사람이고 인천 우체국 소인이다. 그런데 뻘내가 난다.
편지는 수치로 시작해서 수치로 끝난다. 마지막 빈자리, 형상의 머리 자리. 동경 백이십육 도 몇 분, 북위 삼십오 도 몇 분. 전라북도 김제군. 면 이름이 이어지고 마을 이름이 이어진다.
나는 그 마을에서 난다. 최 기사에게 고향을 말한 일이 없다. 이력서에도 본적을 달리 적는다. 뻘내가 싫어서 그렇게 적는다. 그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수치 끝에 수치 아닌 문장이 하나 있다. 자네 서랍을 열어 보게.
서랍을 연다. 사진이 어느새 열한 장이다. 접수 순서대로 늘어놓는다. 흰옷 사내가 전부에 있다. 처음에 없다고 본 사진에도 있다. 장독 뒤에 있다. 소 그늘에 있다. 어느 사진에서나 낫에서 왼쪽으로 세 걸음 되는 자리에 있다. 자로 잰 듯이 세 걸음이다.
순서대로 다시 본다. 첫 장에서 사내는 등을 보인다. 둘째 장에서 어깨가 튼다. 셋째 장에서 옆얼굴이 나온다. 장마다 조금씩 돈다. 활동사진 필름을 한 장씩 뽑아 늘어놓은 것과 같다. 오백 리, 천 리씩 떨어진 고장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날에 찍은 사진 열한 장이 한 사람의 도는 동작을 나눠 갖고 있다.
열한째 장에서 얼굴이 거의 정면이다. 이목구비가 놓일 자리가 아직 흐리다. 덜 돌아 있다. 한 장이 모자라다.
속기 제십일호. 같은 밤. 날이 새기 전에 적는다.
행리 밑바닥에서 가족사진을 꺼낸다. 아버지 환갑에 읍내 사진사를 불러 찍은 것이다. 열다섯 해가 지난다. 누렇게 바래고 네 귀가 닳는다. 나는 이것을 버리지도 보지도 못한 채 지니고만 다닌다.
마당에 식구가 선다. 아버지가 가운데 앉는다. 어머니가 곁에 선다. 형이 서고 누이가 서고 열두 살의 내가 앞줄에 선다. 등 뒤로 낮게 논이 펼쳐진다.
맨 왼쪽에 흰옷 입은 사내가 서 있다.
나는 이 사진을 백 번은 본다. 사내를 본 기억이 없다. 바랜 얼룩이라고 보아 넘긴 자리에 사내가 서 있다. 식구들에게서 반 걸음 물러서서, 사진 속 누구와도 닿지 않고 서 있다.
아니다. 닿는다.
열두 살의 내 어깨에 손이 하나 얹혀 있다. 나는 그 손을 여태 어머니의 손으로 안다. 사진 속 어머니의 두 손은 치마 앞에 모여 있다. 아버지의 두 손은 무릎 위에 있다. 형의 손은, 세다가 만다. 세지 않아도 안다. 그 손목은 흰 소매에서 나온다.
사내의 얼굴은 이 사진에서 흐리지 않다. 다 돌아 있다. 정면이다. 그런데 사진기를 보지 않는다. 반 뼘 아래를 본다. 열두 살의 나를 본다. 열다섯 해 동안, 행리 밑바닥 어둠 속에서, 그 눈이 그 각도로 있다.
식구들 뒤 논두렁에 가늘고 흰 것이 하나 비껴 서 있다. 온 사진이 바래는 동안 그것만 날이 선 채로 남아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 나는 내려가지 않는다. 마감이 있다고 전보를 친다. 전보는 열넉 자다. 뻘내가 싫다고는 치지 않는다. 그해에도, 그 뒤로도, 나는 냄새가 끌고 오는 것을 번번이 밀어 넣는다. 창을 닫아 둔 이 방에서 지금 뻘내가 난다. 경성 한복판, 가장 가까운 논에서 삼십 리다. 이번에는 밀어 넣지 않는다.
속기 마지막 장. 날짜를 적지 않는다.
비가 그친다. 장마가 걷히고 들이 김을 올린다. 아버지의 논은 아직 논이다. 부치는 사람이 바뀌어도 물은 같은 물꼬로 든다. 젖은 흙냄새가 발목까지 차오른다. 열두 살 적과 같은 냄새다. 도망친 세월만큼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 무섭지 않고,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기다림처럼 마중한다.
두렁에 낫이 꽂혀 있다. 사진의 그 자리다. 자루가 손때에 절어 있다. 날에 녹이 없다. 열다섯 해다.
날끝이 가리키는 데를 올려다본다. 하늘이 말갛게 개어 있다. 북녘, 사철 지지도 뜨지도 않는 자리에 별이 하나 있다. 어제까지 없던 별이다. 그런 것을 이제 놀라지 않고 적는다.
바람이 없는데 냄새가 움직인다. 뻘내가 위에서 내려온다. 갠 하늘에서, 별 있는 쪽에서, 물 댄 논 냄새가 내려온다. 하늘이 무논이라면 저 별은 무엇이 비친 것인가. 이것은 적지 않기로 한다.
왼쪽으로 세 걸음 되는 자리에서 냄새가 짙어진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속기는 손만 있으면 된다.
[전사자 부기 — 전사는 여기서 끝난다. 속기첩에서는 지금도 뻘내가 난다.]
해설 — 다 읽은 뒤에 펼치세요
1920년대 경성의 신문기자가 남긴 속기록입니다. 전국에서 "밤사이 논두렁에 낫이 꽂힌다"는 독자 편지가 날아들고, 기자는 부수를 올리려 "이런 일을 본 독자는 제보해 달라"는 한 줄을 신문에 싣습니다. 그 한 줄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원인입니다.
규칙은 이렇습니다. 낫은 신문이 그 고장에 배달된 다음 날 밤에만 꽂힙니다. 활자가 앞서 가고 낫이 뒤따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국의 낫날은 전부 하늘의 한 점, 어느 나라 별 목록에도 없는 '별 없는 자리'를 겨눕니다. 제보 지점을 지도에 찍고 별지도를 뒤집어 겹치자(물에 비친 하늘처럼), 팔을 벌리고 몸을 틀며 도는 사람 형상이 나타납니다. 논은 물을 담고 물은 하늘을 비추니, 반도 전체가 사진 건판처럼 무언가를 '인화'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제보 사진마다 흰옷 입은 사내가 있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다른 고장에서 다른 날 찍은 사진인데, 사진을 순서대로 놓으면 사내가 조금씩 이쪽으로 돌아서는 필름이 됩니다. 마지막 남은 빈자리는 기자의 고향이고, 기자가 평생 피해 다닌 가족사진 속에서 사내는 이미 정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 열두 살의 기자 어깨에, 어머니 손인 줄 알았던 손을 얹은 채로.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에는 없던 별이 하나 떠 있고(형상이 완성된 것), 왼쪽 세 걸음 자리 — 사진 속 사내가 늘 서 있던 그 자리 — 에서 냄새가 짙어집니다. 기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기록만 계속합니다. 괴담이 매체를 타고 퍼질수록 실체가 완성된다는, 지금의 인터넷 괴담을 근대 신문에 옮긴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