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가능

다음은 지난달 서비스를 종료한 도시탐험 카페 '도시의 뼈' 게시판에서 '청안고시텔'로 검색하면 나오던 글 전부다. 게시판이 보여 주던 순서 그대로, 최신 글부터 옮긴다.

――― [공지] 청안고시텔 관련 게시물 안내 작성자: 운영진 | 2026.07.01 | 조회 41,203

해당 건물 관련 게시물에 실종 신고가 접수되어, 경찰 요청으로 원본 일부를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남은 글에 대한 삭제 요청이 있었으나 기록 보존을 위해 남깁니다. 고인 및 실종자에 대한 추측성 댓글이 늘어 과거 게시물의 댓글은 모두 잠갔습니다. 해당 건물 출입을 금지합니다. 최근 건물 인근에서 회원을 봤다는 제보가 있으나 확인된 바 없습니다.

――― 어제 시립도서관 앞에서 작성자: 지도없음 | 2026.06.22 | 조회 29,847 | 댓글 잠김

K를 봤다는 글이 아니다. 봤다고 믿고 싶은 글이다.

밤 열한 시였다. 버스를 놓쳐서 도서관 앞을 걸어서 지났다.

야간 반납함 앞에 누가 서 있었다. 후드를 쓰고 있었다. K가 늘 입던 회색이었다.

반납함 투입구에 뭔가를 넣고 있었다. 책이었다. 손이 하얬다. 가로등 밑인데 그 손만 형광등 빛깔이었다.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지 않았다. 반납함 뚜껑 닫히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났다. 쇠가 쇠를 무는 소리.

뛰어갔을 때 아무도 없었다. 도서관 앞은 사방이 트여 있다. 숨을 데가 없다.

투입구에 손을 넣어 봤다. 손끝에 책등이 닿았다.

아직 따뜻했다.

꺼낼 수는 없었다. 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경찰에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걸 뭐라고 말하나.

――― 일행을 찾습니다 (청안고시텔) 작성자: 지도없음 | 2026.06.17 | 조회 33,110 | 댓글 잠김

6월 14일 후기 글의 동행 K가 연락 두절 상태다. 감정 빼고 사실만 적는다.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건물에서 나왔다. 주차장에서 장비를 정리하는데 K가 명패 사진 한 장만 다시 찍고 오겠다며 들어갔다. 해가 지기 전이었다.

이십 분이 지나도 안 나왔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벨 소리가 건물 안에서 들렸다. 3층쯤에서.

혼자 3층까지 올라갔다. 벨 소리는 계속 나는데 가까워지지 않았다. 복도 이쪽 끝에서 들으면 저쪽 끝에서 울리고, 저쪽 끝으로 가면 등 뒤에서 울렸다. 해가 지고 있어서 그날은 나왔다. 그 판단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다음 날 경찰과 들어갔다. 개도 데려왔다. 개는 3층 계단참까지만 올라가고, 복도로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수색은 옥상까지 했고, 폰은 복도 한가운데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떨어진 게 아니라 놓여 있었다. 화면이 천장을 보고 있었다.

폰에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을 올린다. 경찰 허락은 받았다.

사진 설명을 하겠다. 3층 복도 끝, 후기에 쓴 그 손잡이 없는 문이다. 문 옆에 옛날식 명패가 붙어 있다. '재실'과 '외출'을 밀어서 바꾸는 플라스틱 명패.

우리가 낮에 찍었을 때 그 명패는 분명히 '재실'이었다. 사진이 있다.

K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속 명패는 '외출'이다.

뭔가 아는 분은 연락 바란다. 농담이나 괴담 댓글은 사양한다.

――― 청안고시텔 탐방 후기 (사진 많음) 작성자: K_urbex | 2026.06.15 | 조회 38,540 | 댓글 잠김

새벽 다섯 시에 들어갔다. 안개가 건물 허리까지 차 있었다. 4층짜리 회색 건물인데 위층이 안개에 잘려서, 하늘에 반쯤 지워진 것처럼 서 있었다.

1층 총무실부터 봤다. 달력이 2014년 4월에 멈춰 있다. 책상 밑에 종이 상자가 하나 있었는데, 방 빼면서 두고 간 짐들을 모아 둔 것 같았다. 다리미, 곰팡이 슨 운동화, 그리고 도서관 책이 한 권.

시립도서관 바코드가 붙어 있고, 속표지에 반납 예정일 도장이 찍혀 있다. 2014년 4월 16일.

12년 연체다. 누군지 도서관 블랙리스트 1위는 따 놓았겠다 싶어서 웃었다. 그때는 웃었다.

2층은 볼 게 없었다. 문이 다 열려 있고 방마다 비어 있다. 벽지에 침대 자리만 네모나게 하얗다. 사람이 빠져나간 방은 이상하게 방 같지가 않다. 상자 같다.

3층으로 올라갔다. 여기부터가 본론이다.

3층은 2층과 달랐다. 문이 다 닫혀 있었다. 하나만 빼고.

303호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 짐이 그대로 있다. 개켜 둔 이불, 벽에 붙인 시간표, 책상 위에 몇 년 치 먼지를 뒤집어쓴 수험서들. 나가면서 짐을 안 가져간 게 아니라, 나가지 못한 방처럼 보였다. 시간표에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도서관 가는 시간이 색연필로 칠해져 있었다.

그때는 그 방을 오 분도 안 보고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방을 제일 오래 봤어야 했다.

복도가 이상하게 길다. 폭은 어깨 두 개 너비인데 끝이 손전등 빛이 닿는 데서 한 뼘쯤 더 어둡다. 방문마다 명패가 붙어 있다. 전부 '외출'이다. 12년째 외출 중인 사람들.

버릇처럼 문을 셌다. 열둘.

그런데 여기 오기 전에 건축물대장을 떼 봤다. 3층 방은 열한 개다. 도면도 열한 개다.

다시 셌다. 열둘.

끝에서 두 번째까지는 다 손잡이가 있고 방 번호가 있다. 301호부터 311호. 맨 끝 문 하나가 남는다.

그 문은 번호가 없다. 손잡이가 있던 자리가 메워져 있다. 퍼티로 메우고 그 위에 문짝이랑 같은 색을 칠했는데, 세월에 색이 갈라져서 자리만 동그랗게 도드라진다. 문틈에는 누런 실리콘이 발려 있다. 위, 아래, 옆, 네 변 전부.

문을 여는 물건이 아니라 문 모양으로 만든 벽이다.

명패만 살아 있다. '재실'.

문에 귀를 댔다. 이런 말 쓰고 싶지 않은데, 낮은 소리가 있었다. 빈 냉장고가 도는 것 같은 저음. 전기가 끊긴 지 12년 된 건물에서.

셔터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서 사진은 몇 장 못 찍었다. 나오는데 복도가 들어갈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걸음을 세면서 나왔다. 들어갈 때 스물여섯 걸음, 나올 때 서른한 걸음. 안개 때문에 감각이 눅었다 치자.

다음 주에 장비 챙겨서 다시 간다. 그 문, 열어 볼 생각이다.

(댓글 14 — 잠김. 마지막 댓글: "형 그 문은 열지 마요")

――― 이번 주말 청안고시텔 갑니다 작성자: K_urbex | 2026.06.08 | 조회 21,004 | 댓글 잠김

도면 구했다. 건축물대장이랑 2014년 소방 점검 기록.

점검 기록에 재미있는 게 있다. 폐업 직전 점검에서 '무허가 가벽 설치' 지적을 받았다. 방을 쪼개서 하나 더 만든 걸 걸린 거다. 시정 명령이 나갔는데, 시정 확인 전에 폐업 신고가 됐다.

방세 잘 나오던 고시원이 벌금 무서워서 문을 닫나? 이상해서 더 가고 싶어졌다.

동행 한 명 구한다. 겁 많은 사람 사절.

――― 청안고시텔 아시는 분? 작성자: K_urbex | 2026.05.31 | 조회 18,772 | 댓글 잠김

외곽 순환로 옆에 있는 회색 건물. 2014년부터 빈 것 같은데 철거를 안 한다. 재개발 보류 구역이라 그런가.

정보 있으신 분?

(댓글 6 — 잠김. 그중 하나: "저 근처 살았어요. 2014년 봄에 갑자기 문 닫았어요. 총무가 야반도주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자세히는 몰라요. 만실이던 데가 왜 닫는지 다들 이상하다고 했어요.")

―――

카페 통합 검색은 2015년에 이관된 옛 게시판의 글까지 보여 준다. 아래 세 개의 글은 12년 전 글이고, 같은 검색어로 함께 걸려 나왔다. 작성자는 셋 다 같다.

――― 불이 나갔습니다 작성자: 긴복도303 | 2014.04.02 | 조회 12 | 댓글 0

끝방은 원래 전등이 천장에 하나뿐인데 그저께부터 안 들어옵니다.

총무님은 공사 때문에 3층 끝 라인만 잠깐 차단했다고 합니다. 며칠만 참으라고 합니다.

창문이 없어서 낮에도 밤 같습니다. 폰 불빛으로 지냅니다.

벽 너머 공사 소리는 이제 안 납니다. 공사가 끝났으면 원래 방으로 보내 줄 텐데, 아직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이상한 건, 소리가 안 나는데 벽이 두꺼워진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옆방 알람 소리가 들렸는데 지금은 제 숨소리만 들립니다.

――― 방 문이 안 열립니다 작성자: 긴복도303 | 2014.04.05 | 조회 3 | 댓글 0

임시로 옮긴 끝방입니다. 창문이 없습니다.

문이 밖에서 잠긴 것 같습니다. 안에서는 잠근 게 없는데 안 열립니다. 공사하시는 분들이 자재로 막아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총무님이 주말이라 안 계십니다. 전화도 안 받으십니다. 폰 배터리가 십칠 프로입니다.

이 카페에 청안고시텔 사시는 분 계시면 3층 끝방 문 좀 두드려 주세요. 안에 사람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짐을 옮겼는데 책이 없어졌어요 작성자: 긴복도303 | 2014.03.30 | 조회 41 | 댓글 1

옆에 방을 하나 더 만드는 공사 때문에 총무님이 잠깐 끝방으로 옮기라고 해서 옮겼습니다. 공사 끝나면 새 방을 싸게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짐을 옮기다가 도서관 책이 없어졌습니다. 4월 16일까지 반납해야 합니다. 총무님은 공사 끝나면 나올 거라고 하시는데요.

연체하면 다음 사람이 못 빌리니까, 그게 마음에 걸립니다.

(댓글 1: "고시원 살면서 도서관 연체 걱정하는 사람 처음 봄ㅋㅋ 착하게 사시네")

――― 밤에만 하는 공사 작성자: 긴복도303 | 2014.03.13 | 조회 57 | 댓글 2

옆방 쪽 벽에서 밤에만 소리가 납니다. 두드리는 소리, 뭘 세우는 소리.

총무님한테 물어보니 방을 늘리는 공사라고, 다 좋아지는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계약할 때 본 도면이 기억납니다. 3층에는 방 늘릴 자리가 없습니다. 복도 끝은 원래 창고 자리인데, 거기는 제 방 바로 옆입니다.

제가 예민한 걸까요.

(댓글 2: "고시원 원래 그래요" / "이사가 답입니다")

―――

글은 여기까지다.

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그 책을 검색하면, 지금은 '대출 가능'으로 나온다.

서가에 꽂혀 있다는 뜻이다. 누구든 빌릴 수 있다.

해설 — 다 읽은 뒤에 펼치세요

게시판 검색 결과를 최신 글부터 그대로 옮긴 형식이라, 읽는 순서가 곧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는 구조입니다. 처음에 영문 모를 공지와 목격담을 읽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건의 원인에 가까워지다가, 맨 밑에서 12년 전 글 세 개를 만나게 되지요.

규칙의 뼈대는 사람의 탐욕입니다. 총무는 방 하나를 더 만들어 방세를 늘리려고 밤마다 몰래 가벽 공사를 했고(무허가 — 소방 점검 기록에 남은 그 지적입니다), 303호 세입자를 창문 없는 새 끝방으로 '임시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방의 문이 열리지 않게 된 주말, 총무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시정 명령이 떨어진 무허가 방에서 사람이 죽은 걸 알리면 모든 게 끝나니, 문의 손잡이를 메우고 문틈을 실리콘으로 바르고 야반도주한 겁니다. 만실이던 고시원이 갑자기 폐업한 이유, 도면에는 방이 열한 개인데 복도에 문이 열두 개인 이유가 전부 여기서 나옵니다.

명패가 이 이야기의 온도계입니다. 모든 방이 '외출'인데 그 문만 12년째 '재실'이었던 것 — 나가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종된 K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서 명패는 '외출'로 바뀌어 있습니다. 12년 만에, 무언가 방을 나선 겁니다.

가장 아픈 대목은 숫자입니다. 갇힌 사람이 이 게시판에 올린 마지막 구조 요청은 조회 3, 댓글 0이었습니다. 12년 뒤 같은 건물 탐험 글은 조회 4만을 넘습니다. 그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보지 않았고, 이제 와서 모두가 봅니다.

도서관 책은 그가 바깥에 남겨 둔 유일한 약속입니다. "연체하면 다음 사람이 못 빌리니까요"라던 사람이니까, 나오게 됐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반납인 거죠.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무섭습니다 — 그 책은 지금 '대출 가능'이고, 서가에 꽂혀 있고, 누구든 빌릴 수 있습니다. 다음 대출자가 누구를 만나게 될지는, 이 이야기가 말하지 않은 채로 끝납니다.

생성 기록
주제 [폐가/흉가 탐험] · 형식 [채팅/게시글 로그(파운드푸티지)] · 구조 [역순] · 배경 [밀폐 공간(막차·고시원·병실·야간편의점)]
공포 유형 [서서히 조여오는 불안] · 분위기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 시드 모티프 [반납된 적 없는 도서관 책]
작가 시그니처 [완급 혼합 · 도시적 · 차가운 관찰자 · 시각 우선] · 습관 [문단을 아주 짧게 끊는다]
분량 [중편 · 4,819자] · 집필 모델 [claude-fable-5]
3 ·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