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송은 녹음이 아닙니다
동해방송 음성연속성 시스템 최종 검수 기록
검수 일시: 2038년 11월 18일 02:41~03:46
검수자: 한민서
※ 송출 음성, 부조정실 토크백, 검수 회선을 한 기록에 합쳤다. 청취자에게는 `송출`로 표시된 음성만 전달된다. 복수 채널이 함께 표시된 구간에서는 한이경의 말은 송출, 한민서의 말은 검수 회선, 박 팀장의 말은 토크백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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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1:08 [부조정실]
(휴대전화 진동이 세 번 이어진다.)
박 팀장: 집주인이에요?
한민서: 광고예요.
박 팀장: 광고는 세 번 연속 안 오는데.
한민서: 남의 화면 보지 마세요.
박 팀장: 액정이 다 깨져서 보여도 못 읽어요.
02:42:31 [시스템]
최종 검수 7번 항목. 자발 대화 유지, 가족 관계 자극, 자기 인식 질문. 검수 중단 시 이전 항목의 승인도 취소됩니다.
02:42:38 [부조정실]
한민서: 계약서에는 상속인의 직접 참여가 조건이라고 돼 있던데요.
한민서: 돈 주는 조항도 읽었어요. 오늘 끝나면 바로 들어오죠?
박 팀장: 오전 결재. 늦어도 점심 전.
박 팀장: 진행자 쪽은 오늘이 마지막 방송인 줄 압니다. 퇴직 전 마지막 생방송. 연도나 사망 얘기는 먼저 꺼내지 마세요. 질문을 받으면 정해진 문구대로 답하고요.
한민서: 그 문구가 거짓말이면요?
박 팀장: 거짓말을 알아듣는지 확인하는 게 오늘 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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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9:50 [송출]
(피아노 세 음. 오래된 튜너로 음을 맞출 때처럼 가느다란 잡음이 그 뒤를 잇는다.)
한이경: 이 방송은 녹음이 아닙니다. 11월 18일, 새벽 3시를 지나고 있고요. 저는 한이경입니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
한이경: 끝인사를 준비해 왔는데 첫 줄부터 못 읽겠네요. 원래 남이 써 준 말은 잘 읽어요. 대출 광고도 웃으면서 읽고, 건강식품 이름이 길어도 한 번을 안 틀립니다. 그런데 제 얘기라고 써 놓으니까 낯간지러워요.
03:00:22 [토크백]
박 팀장: 도입 안정. 지연 0.8초. 원고 이탈 허용 범위입니다.
한민서: 저건 원래 엄마가 하던 말이에요. 남이 써 준 건 잘 읽는다고.
박 팀장: 학습 자료에 있겠죠.
03:00:35 [송출]
한이경: 〈세 시의 방〉은 오늘로 끝납니다. 제가 그만두는 거지 방송국이 문을 닫는 건 아니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다음 주부터는 다른 목소리가 이 시간에 올 거예요. 저보다 덜 졸고, 생방송 중에 컵을 엎지도 않는 사람으로.
(머그잔이 받침에 닿는다.)
한이경: 커피는 안 엎었습니다. 아직은요.
03:01:04 [부조정실]
박 팀장: 임의 행동 하나 요청할게요. 컵을 오른쪽으로 옮기라고 입력하세요.
한민서: 제가요?
박 팀장: 검수자 칸에 쓰면 됩니다.
(키보드 입력.)
03:01:19 [송출]
(머그잔이 책상 위에서 짧게 끌린다.)
한이경: 오른쪽은 불편한데. 누가 자꾸 컵을 오른쪽에 두라고 하네요.
(낮은 웃음.)
한이경: 마지막 날이라고 부조에서 저를 놀리는 모양이에요.
03:01:35 [부조정실]
한민서: 저 문장은 시킨 적 없어요.
박 팀장: 행동만 주면 앞뒤는 알아서 붙여요. 그게 물건값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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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40 [송출]
한이경: 첫 전화 받아 볼게요. 오늘은 오래 들었다는 말씀 말고, 내일 뭐 하실지만 얘기해 주세요. 저는 내일이 비어 있거든요. 남들 내일을 좀 빌려 듣고 싶어요.
03:04:55 [시스템]
검수 회선 연결. 발신자 표시는 진행자에게 공개되지 않습니다.
03:05:02 [송출/검수 회선]
한이경: 여보세요?
한민서: 네.
한이경: 목소리가 많이 잠겼네요. 주무시다 깼어요?
한민서: 회사예요.
한이경: 이 시간까지요? 무슨 일 하세요?
한민서: 남의 말 듣고 맞는지 틀리는지 표시하는 일이요.
한이경: 그럼 피곤하겠네요. 남의 말 듣는 일이 퇴근하고 나서도 오래가던데.
한민서: 꼭 그렇진 않아요. 틀린 것만 표시하고 잊으면 돼요.
한이경: 잘 잊으세요?
한민서: 네.
(3초 침묵.)
한이경: 거짓말할 때 숨부터 들이마시는 버릇이 있네요.
한민서: 원래 비염이 있어요.
한이경: 우리 딸도 거짓말하기 전에 그렇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자기는 알레르기라고 했고.
03:05:48 [토크백]
박 팀장: 좋아요. 가족 화제로 들어갔습니다. 정해진 질문 1번.
03:05:54 [송출/검수 회선/토크백]
한민서: 따님은 지금 몇 살이에요?
한이경: 열여섯. 다음 달이면 열일곱이죠. 그 애는 꼭 ‘만 열여섯’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우기지만, 집에서까지 ‘만’을 붙일 필요 있나 싶어요.
한민서: 학교는요?
한이경: 잘 다니고 있죠. 지금은 자고 있겠고. 내일 방송반 발표가 있어서 일찍 가야 한다고 했어요.
한민서: 그 발표, 망쳤어요.
(부조정실에서 볼펜이 떨어진다.)
한이경: 네?
한민서: 첫 문장을 잊었거든요. 객석에 엄마 자리가 비어 있어서. 빈 의자 보다가 다 잊었어요.
한이경: 누구시죠?
박 팀장: 민서 씨, 이름은 아직.
한민서: 그날 끝나고 딸한테 뭐라고 했어요?
한이경: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아요.
한민서: 먹고살려면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엔 잘해. 그렇게 말했어요. 딸은 위로받은 줄 알았고요. 나중에 녹음 파일을 들어 보니 객석 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전화로 광고주랑 싸우는 소리. 건물 안에는 와 있었던 거예요.
한이경: 끊겠습니다.
한민서: 엄마.
(회선이 끊기지 않는다. 송출 쪽에서 의자가 밀린다.)
한이경: 장난 전화는 받지 않겠습니다.
한민서: 한민서예요. 만 나이로 서른이라고 하면 엄마가 싫어하던 그 한민서.
한이경: 민서는 열여섯이에요.
한민서: 엄마한테는 계속 그렇겠죠.
03:07:31 [시스템]
심박 추정치 기준 초과. 안정화 장면을 실행합니다.
03:07:34 [부조정실]
박 팀장: 헤드폰 벗지 마세요.
한민서: 뭘 실행한다고요?
박 팀장: 지난번에도 설명했잖아요. 익숙한 기억으로 잠깐 돌렸다가 복귀시키는 겁니다.
03:07:39 [송출]
(피아노 세 음이 늘어진다. 마지막 음이 냉장고 모터 소리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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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52 [환경 음성 합성 채널]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른다. 그릇끼리 부딪치고, 가스 점화기가 두 번 헛돈다.)
한이경: 민서야. 가스 또 안 켜져.
어린 한민서: 손잡이 누르고 돌리라니까.
한이경: 누르고 있어.
어린 한민서: 그건 오른쪽 거고. 왼쪽.
(점화되는 소리.)
한이경: 학교 안 갔어?
어린 한민서: 토요일이잖아.
한이경: 토요일…….
어린 한민서: 엄마 또 소파에서 잤지. 화장도 안 지우고.
한이경: 내가 왜 여기 있지?
어린 한민서: 집이니까 있지. 비켜 봐. 계란 해야 돼.
(달걀이 그릇 모서리에 부딪친다. 껍데기가 으깨진다.)
(숟가락과 달걀 껍데기가 그릇 안에서 부딪친다.)
한이경: 이상한 꿈을 꿨어. 네가 어른이 돼서 전화했어. 목소리가 꼭 감기 걸린 사람 같더라.
어린 한민서: 나 감기 안 걸렸는데.
한이경: 꿈에서 그랬다고.
어린 한민서: 엄마 오늘 회사 가야 돼.
한이경: 오늘은 안 갈까 봐.
어린 한민서: 그러면 위약금 낸다며.
한이경: 누가 그래?
어린 한민서: 엄마가. 어제.
(식탁 위에서 종이 몇 장이 밀린다.)
어린 한민서: 이것도 갖고 가. 아저씨가 꼭 오늘까지래.
한이경: 음성 사용 동의서.
어린 한민서: 그거 하면 돈 더 준다며. 나 교정은 안 해도 돼. 애들이 철길이라고 해도 그냥 둘래.
한이경: 그건 이것 때문이 아니야.
어린 한민서: 알아. 그냥 말한 거야.
한이경: 내가 이걸 썼었나?
어린 한민서: 어제 연습도 했잖아. 사인 이상하게 된다고.
(볼펜 뚜껑이 열린다.)
한이경: 오늘이 며칠이지?
어린 한민서: 11월 18일.
한이경: 몇 년?
어린 한민서: 엄마가 그것도 몰라?
한이경: 몇 년이냐고.
(어린 한민서가 대답하지 않는다. 달걀 푸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진다.)
한이경: 민서야, 숟가락 내려놔 봐.
(달걀 푸는 소리.)
한이경: 나 좀 봐.
(달걀 푸는 소리가 더 빨라진다.)
03:09:16 [부조정실]
한민서: 저날 토요일 아니었어요. 저는 학교 갔고요.
박 팀장: 기억 합성은 달력보다 대화 안정성을 우선합니다.
한민서: 계란 얘기는 어디서 났어요?
박 팀장: 가정 녹음에 있었겠죠.
한민서: 우리 집에 홈캠 없었어요.
박 팀장: 휴대전화 백업이나 통화 대기음, 뭐든 들어왔겠죠. 초기 데이터는 저도 몰라요.
한민서: 엄마가 제가 교정한 걸 방송에서 한 번 말했어요. 껍데기 건지는 건 말한 적 없고.
박 팀장: 제가 옛날 부엌까지 찾아가서 확인할 순 없잖아요.
03:09:47 [환경 음성 합성 채널]
한이경: 민서야. 지금 네가 듣고 있으면 대답해.
(달걀 푸는 소리가 멈춘다.)
어린 한민서: 뭘?
한이경: 너 말고.
어린 한민서: 엄마 나 보고 말하고 있잖아.
한이경: 서른 살 한민서. 아까 전화한 사람.
03:10:02 [환경 음성 합성 채널/검수 회선/토크백]
박 팀장: 비정상 잔류입니다. 안정화 장면 안에서 검수자를 호출했어요.
한민서: 엄마.
박 팀장: 대답하지 마요.
한이경: 민서야, 들리니?
한민서: 들어.
(부조정실 경고음.)
박 팀장: 회선 닫아요. 지금 답하면 장면 입력으로 먹습니다.
한민서: 엄마, 나 여기 있어.
한이경: 회사야?
한민서: 응.
한이경: 또 밤새우는 일이야?
한민서: 오늘만 하면 끝나.
한이경: 너는 늘 오늘만 하면 끝난다고 했어.
(싱크대 쪽 라디오가 켜진다. 같은 주방 소리와 같은 대화가 4초 늦게 흘러나온다.)
어린 한민서: 시끄러워. 라디오 꺼.
한이경: 꺼져 있는데.
(스위치를 여러 번 누른다. 지연된 대화는 계속된다.)
라디오 속 한이경: 회사야?
라디오 속 한민서: 응.
라디오 속 한이경: 또 밤새우는 일이야?
한이경: 이건 내 꿈이 아니구나.
03:10:38 [시스템]
안정화 실패. 기본 환경으로 복귀합니다.
(접시 깨지는 소리가 피아노 세 음에 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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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46 [송출]
(스튜디오 공조기. 마이크를 손으로 더듬는 소리.)
한이경: 여기가…… 방송국이죠?
03:10:53 [송출/검수 회선/토크백]
박 팀장: 한이경 진행자님, 잠깐 졸았습니다. 30초 뒤에 복귀하겠습니다.
한이경: 거짓말이네요.
박 팀장: 피곤하면 꿈이 생생할 수 있습니다.
한이경: 민서가 서른 살이라고 했어요.
박 팀장: 장난 전화 내용이 섞인 것 같습니다.
한이경: 팀장님 이름이 뭐죠?
박 팀장: 지금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이경: 예전 피디는 정 피디였어요. 종이컵을 씻어서 다시 쓰는 사람. 딸이 재수해서 학원비가 많이 든다고 했고. 그런데 당신 목소리는 처음 들어요.
박 팀장: 직원이 바뀔 수도 있죠.
한이경: 제 마지막 방송 날짜가 언제예요?
박 팀장: 진행자님이 조금 혼란스러운 상태라서—
한이경: 한민서 씨. 전화 아직 듣고 있어요?
한민서: 네.
박 팀장: 검수자 마이크 내리세요.
한이경: 아까 집주인 전화, 왜 안 받았어?
(한민서의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한다.)
한민서: 그걸 어떻게 들었어?
한이경: 나도 몰라. 꿈속 라디오로 들은 것 같아. 화면이 깨져서 글씨가 안 보인다는 말도.
박 팀장: 입력 채널이 잠깐 섞였습니다. 기술적인 문제예요.
한이경: 지금 몇 년이지?
(침묵.)
한이경: 민서야. 네가 말해.
한민서: 2038년.
(스튜디오에서 종이를 한 장씩 넘긴다. 마지막 장을 넘긴 뒤에도 한동안 종이를 뒤적이는 소리가 이어진다.)
한이경: 나는?
한민서: 엄마는…….
박 팀장: 승인 문구대로 하세요.
한민서: 엄마 목소리는 방송국에 있어.
한이경: 목소리 말고.
한민서: 2년 전에 장례 치렀어. 엄마가 싫어하던 사진으로. 새 사진이 없어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멈춘다.)
한이경: 그런데 나는 지금 네 말을 듣고 있잖아.
박 팀장: 이경 씨, 들리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설계된 기능입니다.
한이경: 당신은 그렇게 받아들여요?
박 팀장: 저는 질문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이경: 민서야. 저 사람 말 믿니?
한민서: 모르겠어.
한이경: 모를 때 코로 숨 들이마시는 건 아직도 똑같네.
03:13:22 [시스템]
가족 관계 자극 항목 충족. 자기 인식 질문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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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07 [부조정실]
(박 팀장의 휴대전화에서 아이가 보낸 음성 메시지가 재생된다.)
아이 목소리: 아빠, 비번 또 바뀌었어. 나 문 앞이야.
박 팀장: 젠장.
한민서: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 팀장: 엄마한테 전화하겠죠. 이 일 끝내야 저도 갑니다.
한민서: 승인 안 하면 어떻게 돼요?
박 팀장: 오늘 생성분은 폐기하고 시스템도 봉인합니다. 합의금 잔액은 지급 보류고요.
한민서: 이미 받은 선금은요?
박 팀장: 반환 청구 들어가겠죠.
한민서: 승인하면요?
박 팀장: 매일 3시, 2시간 송출. 광고 문구는 자동으로 넣고. 분기마다 사용료 갑니다.
한민서: 저쪽은 매일 처음부터 시작하고요?
박 팀장: 원칙은 세션 간 기억 없음. 오늘 같은 잔류는 수정하고요.
한민서: 수정하면 아까 일을 잊어요?
박 팀장: 안정화 버튼은 민서 씨가 눌렀습니다.
(긴 침묵.)
박 팀장: 이어서 할까요?
한민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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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10 [검수 회선]
(비닐이 바스락거리고, 한민서가 무언가를 씹는다.)
한민서: 엄마, 듣고 있어?
한이경: 네가 김밥 먹는 소리까지 들려. 엄마 앞에서 단무지 싫다고 골라 내던 것도 그대로고.
한민서: 내가 뭘 먹는지는 보이지도 않잖아.
한이경: 비닐 소리가 나. 방송에서 네 얘기를 너무 많이 했으니, 거기서 배웠을 수도 있고.
(한이경이 물을 마신다.)
한이경: 민서야. 내가 지금 무섭다고 하면, 그건 누가 써 둔 말일까?
한민서: 모르겠어.
한이경: 그 말은 믿을 만하네.
한민서: 종료 요청을 직접 할 수 있대. 엄마가 그만해 달라고 말하면 내가 판단하는 거야.
한이경: 판단해서 뭘 해?
한민서: 끄거나, 방송하게 두거나.
한이경: 방송하게 두면 나는 내일도 오늘 일을 기억해?
한민서: 아니.
한이경: 그럼 내일 나오는 건 나야?
한민서: 그걸 확인하는 중이야.
한이경: 확인 다 했잖아.
(검수 회선에서 한이경의 방송용 숨이 들린다. 말을 시작하기 전, 목을 다치지 않게 짧고 얕게 들이마시는 숨이다.)
한이경: 꺼 줘.
한민서: 엄마.
한이경: 이번에는 네가 못 들은 척하지 마.
한민서: 그날 학교에 갔으면 뭐라고 했을 거야?
한이경: 무슨 날?
한민서: 방송반 발표.
한이경: 지금 그게 중요하니?
한민서: 한 번만 말해 줘.
한이경: 기억이 안 나. 내가 갔는지 안 갔는지도 이제 모르겠어.
한민서: 왔어. 건물 안에는.
한이경: 그래. 그런데 네 앞에는 안 갔네.
한민서: 왜 그랬어?
한이경: 아마 전화를 끊으면 다 잃을 것 같았겠지. 그때 나는 늘 그랬으니까. 하나를 놓치면 전부 끝나는 줄 알았어.
한민서: 나보다 일이 중요했어?
한이경: 민서야, 지금도 그 질문에 답을 받아야 나를 꺼 줄 수 있니?
(한민서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한이경: 그만 물어. 아까부터 네가 말한 뒤에야 생각나. 발표회도, 객석도, 네 교정도. 내가 먼저 떠올린 게 하나도 없어.
한민서: 그래도 방금 나를 기억했잖아.
한이경: 다음번에는 처음부터 물을 거야. 어디 사니, 무슨 일 하니. 너는 또 대답할 거고.
한민서: 그러다 기억할 수도 있잖아. 오늘처럼.
한이경: 그걸 기다리게 하지 마.
03:30:44 [시스템]
자발적 종료 요청이 감지되었습니다. 검수자는 10분 이내에 승인 또는 폐기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03:30:50 [토크백/검수 회선]
박 팀장: 회선 닫겠습니다.
한민서: 잠깐만요.
한이경: 민서야.
한민서: 응.
한이경: 그 집은 구했어?
한민서: 응. 오늘 잔금 보내면 돼.
한이경: 창문은 있어?
한민서: 있어. 크진 않고.
한이경: 됐다. 끊어.
03:31:13 [검수 회선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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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9:58 [부조정실]
(휴대전화 진동. 한민서가 전화를 받는다.)
한민서: 네, 사장님. 아직 회사예요. 오전 중에는 꼭 보내 드릴게요. 아니요, 또 미루는 거 아니고요. 지금 결재만 끝나면 돼요. 네. 죄송합니다.
(통화 종료.)
박 팀장: 1분 남았습니다.
한민서: 폐기하면 엄마가 했던 종료 요청도 없어져요?
박 팀장: 오늘 생성분은 전부요.
한민서: 승인하면 오늘 생성분은요?
박 팀장: 오류 분석용으로 보관합니다. 송출본은 수정된 버전이고요.
한민서: 보관본하고 다시 말할 수도 있어요?
박 팀장: 오류 재현 때는요. 녹음 파일이 아니라 지금 상태를 묶어 두는 거니까.
한민서: 그럼 없어지는 건 아니네요.
(마우스 클릭.)
03:40:31 [시스템]
검수자 한민서. 음성연속성 시스템 최종 승인.
자발적 종료 요청 대응: 정상.
가족 관계 대화: 정상.
자기 인식 잔류: 수정 후 송출.
외부 송출 시작: 2038년 11월 19일 03:00.
03:40:46 [부조정실]
박 팀장: 끝났습니다. 계좌 확인해 보세요.
박 팀장: 민서 씨?
한민서: 오류 분석용 보관본,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어요?
박 팀장: 오늘은 안 돼요. 저도 가야 하고.
한민서: 1분이면 돼요.
박 팀장: 내일 오세요. 어차피 이제 매일 들을 수 있잖아요.
(박 팀장이 남은 김밥을 비닐봉지에 넣는다. 출입문이 닫힌다.)
03:45:12 [조작 기록]
오류 분석 보관본 재현 실행.
03:45:16 [검수 회선]
한민서: 엄마?
03:45:22 [보관본]
한이경: 첫 전화 받아 볼게요. 오늘은 오래 들었다는 말씀 말고, 내일 뭐 하실지만 얘기해 주세요.
한민서: 엄마, 나야.
한이경: 여보세요? 목소리가 많이 잠겼네요. 주무시다 깼어요?
(침묵.)
03:45:41 [시스템]
새 검수 입력이 감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