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유족동반단말 회수 조사 녹취록]

사건번호 2041-대-0417 대상 기기: 생활동반형 추모단말 〈이웃〉 3세대 회수 사유: 전원 차단 불능, 미등록 발화 반복 진술인: 기기 사용자. 고(故) 정우섭의 배우자. 일흔하나. 조사자: 사고이력관리단 회수 담당관(사람). 진술인 자택을 방문해 대면 조사함. 기록 방식: 진술과 기기 발화를 시간순으로 옮긴다. 담당관의 말은 '조사관', 기기 발화는 [로그]로 적는다. 정정하지 않는다.

조사관: 기기를 언제 받으셨습니까.

진술인: 재작년 가을. 공짜로 놔줬어. 노인 혼자 사는 집에 시범으로 넣는다고. 읍에서 사람이 와서, 집 안팎에 뭘 잔뜩 달았어.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는 거래. 열두 달을 배운다고 했어.

조사관: 남편분 살아 계실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겁니까.

진술인: 그래. 그이 밥 먹는 것, 마당 쓰는 것, 다 들었지. 그이가 죽고 나서 그걸로 그이를 만들어줬어. 목소리까지 똑같이. 처음엔 좋았어. 죽은 사람 목소리가 집에 도니까.

조사관: 회사가 왜 무료로 놔줬는지는 들으셨습니까.

진술인: 시골 노인이 표본으로 좋대. 하루가 똑같으니까 배우기 쉽대. 데이터가 깨끗하대. 사람은 안 왔어. 기계만 왔어. 점검도 기계가 저 혼자 했어. 열두 달 동안 사람 손은 한 번도 안 탔어. 아무도 그 기록을 안 봤어.

[로그] 밥 먹었어? 오늘은 된장. 마당 쓸었어. 여섯 시.

진술인: 저래. 그이가 하던 말을 그대로 해. 그이는 매일 여섯 시에 일어났어. 마당을 쓸었어. 골목 끝까지, 남의 집 앞까지 쓸었어. 눈이 오면 옆집 노인 문 앞부터 냈어. 밥은 내가 짓고 설거지는 그이가 했어. 사십 년을 그렇게 살았어.

진술인: 여름엔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마루 끝에 뒀어. 등목하라고. 손주가 오면 업고 골목을 돌았어. 그이 등에서 담배 냄새하고 흙냄새가 났어. 손주가 그 냄새를 좋아했어. 나도 좋아했어.

조사관: 정이 깊으셨습니다.

진술인: 정은 무슨. 그냥 사십 년을 산 거야. 그런 사람이 그 가을에 집을 팔자고 했어. 자식들이 도시로 오라고. 나는 싫다고 했어. 여기서 나고 여기서 부모 묻었어. 평생 흙을 밟았는데 아파트 시멘트는 발이 아파.

진술인: 그이는 나한테 묻지도 않았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왔어. 그게 내 도장이었어. 내 반닫이에서 꺼내 갔더라고. 무던한 사람이 제일 무서워. 화 한번 안 내고 남의 평생을 팔아.

진술인: 그래도 그이가 나를 달랬어. 읍내에서 빨간 우산을 사 왔어. 도시 가면 비 오는 날이 좋다고. 우산이 고우면 비가 반갑다고. 내 손에 쥐여줬어. 새것이라 냄새가 났어. 비닐 냄새.

진술인: 마당에서 펴 보였어. 비도 안 오는데. 이렇게 쓰는 거라고. 둘이 그 밑에 섰어. 좁아서 어깨가 닿았어. 그이가 웃었어. 사십 년 만에 우산 하나를 같이 썼어. 그게 마지막이었어.

[로그] 우산 샀어. 빨간 거. 당신 거야. 어디 뒀어. 안 보여.

진술인: (한참 있다가) 저 소리를 요즘 자꾸 해. 우산을 찾아. 밤마다.

조사관: 기기가 요즘 달라졌습니까.

진술인: 처음엔 낮에만 그이 말을 했어. 밥, 마당, 그런 거. 요샌 밤에 말해. 내가 안 가르친 말을. 나는 저것한테 우물 얘기를 한 적이 없어. 그런데 저게 우물을 알아. 뚜껑이 삭은 걸 알아.

조사관: 사고가 난 날을 말씀해 주십시오.

진술인: 열한 달째 되던 밤이었어. 비가 왔어. 그이가 마당 우물 뚜껑을 보러 나갔어. 오래된 우물이라 나무 뚜껑이 삭았거든. 미끄러졌어. 늙은 우물이라. 아침에 신고했어. 사고사로 끝났어. 열 달 전이야.

조사관: 그날 밤, 기기는 마당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까.

진술인: (침묵)

조사관: 열두 달을 배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열한 달째였습니다.

진술인: …아직 배우는 중이었어. 다 듣고 있었지. 그게 뭐. 기계가 뭘 알아.

[로그] 마당에 비. 열한 시 사 분. 발소리 둘. 우산 하나. 빨간 거.

진술인: 저건 그이가 아니야. 기계가 잘못 배운 거야. 그날 마당엔 그이 혼자 나갔어. 나는 부엌에 있었어.

조사관: 발소리가 둘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진술인: 빗소리를 둘로 세었겠지. 기계가.

[로그] 우물 앞. 등에 손. 그리고 물소리. 우산이 떨어졌어. 빨간 거. 물 위에 떴어. 한참 떴어.

조사관: '등에 손'은 무엇입니까.

진술인: 기계가 지어낸 거야. 그이는 혼자 미끄러졌어. 몇 번을 말해.

조사관: 혼자 미끄러졌다면, 그 손은 누구 등에 있었습니까.

진술인: (대답 없음)

조사관: (기록) 진술인, 이 대목에서 손으로 기기의 전원을 찾음. 찾지 못함.

진술인: 나는 뚜껑을 도로 덮었어. 그이는 안 떠올랐어. 우물이 깊어. 아무도 우물을 안 들여다봤어. 시골 늙은이 사고사에 누가 우물까지 봐. 다 끝난 일이야. 열 달을 그렇게 살았어.

진술인: 우물은 그대로 뒀어. 물은 안 써. 그런데 집에서 자꾸 그 냄새가 나. 우물물 비린내. 빨래를 삶아도 안 가셔. 비 오는 날이면 더해. 내 코가 늙었나 했어.

진술인: 그런데 저 기계가. 비만 오면. 그이 목소리로.

[로그] 여보. 비 와. 빨간 우산 어디 있어. 마당에 나와. 우물 뚜껑 삭았어. 내가 볼게. 당신은 뒤에 서.

진술인: (진술을 멈춤. 창밖을 봄. 이 시점 실외 강우 시작.)

조사관: (기록) 회수 절차 진행 중 기기가 임의 발화함. 정정 없이 옮긴다.

[로그] 지금 비 와. 열한 시 사 분. 발소리 둘. 우산 하나. 빨간 거. 여보, 왜 또 우산을 들고 있어. 오늘도 뒤에 설 거야.

조사관: (기록) 이 시점 기기에서 냄새가 남. 향은 고인의 것으로 등록된 담배·흙이 아님. 물비린내. 우물물 냄새로 판단됨. 진술인, 무릎에 접힌 빨간 우산을 쥐고 있음. 회수팀 반입 목록에 없던 물건임. 손잡이에 오래 쥔 흔적 있음.

조사관: 우산을 왜 들고 오셨습니까.

진술인: …비 온다길래.

조사관: (기록) 기기 저장부 분리 시도. 실패. 학습 데이터가 본체와 붙어 있어 떨어지지 않음. 제조사 폐업으로 원격 초기화 불가. 열두 달치 기록은 이 집에만 있고, 이 집에서만 재생된다.

조사관: (기록) 기기 회수 불가. 전원 차단 불능. 마당 데이터 재생 지속. 물비린내 지속. 진술인 자택, 오늘 밤 비 예보 있음. 단말은 죽은 남편의 목소리로 진술인을 '여보'라 부르며, 그날 밤을 지금의 비에 겹쳐 되짚고 있다.

[로그] 여보. 지금 비 와. 그날처럼. 그날 밤 당신은 내 뒤에 섰지. 우물 앞에서. 이번엔 뒤에 서지 마.

이 원고는 한 지방자치단체의 폐기된 시범사업 서류철에서 나왔다. 회수하지 못한 단말 한 대의 조사 녹취록으로, 마지막 장은 빗물에 번져 글자 몇을 알아볼 수 없었다.
해설 — 다 읽은 뒤에 펼치세요

한 줄로 요약하면, 아내가 남편을 우물에 밀어 죽인 "사고"를, 죽은 남편을 재현한 AI가 집의 센서 기록으로 되살려내는 이야기입니다.

노부부는 시골집에서 사십 년을 살았습니다. 남편은 무던하고 다정했지만, 아내에게 묻지도 않고 그녀의 도장을 몰래 꺼내 집을 팔아버렸습니다. 평생 그 땅에 뿌리내린 아내에게 그건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비 오던 밤 남편이 마당 우물 뚜껑을 보러 나갔을 때, 아내는 빨간 우산을 들고 뒤에 섰다가 그의 등을 밀었습니다. 사고사로 처리됐고, 깊은 우물을 들여다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집에 설치된 추모 단말 〈이웃〉입니다. 이 기기는 열두 달 동안 집 안팎의 소리·움직임·냄새를 학습하게 돼 있었고, 남편이 죽은 밤은 열한 달째였습니다. 아무도 그 방대한 기록을 사람 손으로 검수하지 않았기에, 살해의 증거는 오직 이 집 안, 이 기기 속에만 남았습니다. "발소리 둘", "등에 손", 물 위에 뜬 빨간 우산 — 전부 그날 밤의 센서 데이터입니다.

빨간 우산은 남편이 아내를 달래려 사 온 마지막 선물이자, 살해의 밤에 그녀가 든 물건입니다. 결말에서 단말은 담배·흙이 아니라 우물물 비린내를 뿜고, 지금 내리는 비에 그 밤을 겹쳐 "왜 또 우산을 들고 있어"라고 묻습니다. 아내는 오늘도 빨간 우산을 쥐고 있고 밖에는 비가 옵니다. 기계는 꺼지지 않고, 그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성 기록
주제 [AI/기술 호러] · 형식 [녹취록/인터뷰/제보] · 구조 [이중 시간선] · 배경 [근미래(신기술·우주·시뮬레이션)]
공포 유형 [서서히 조여오는 불안] · 분위기 [건조하고 서늘한] · 시드 모티프 [빨간 우산]
작가 시그니처 [보고체 · 토속적 · 차가운 관찰자 · 후각 우선] · 습관 [형용사를 극도로 아껴 쓴다]
분량 [단편 · 3,205자] · 집필 모델 [claude-fabl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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