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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의 이전 등장작: 천국에서 추락한 천사

연구기지-DE12

리하르트는 몇 가지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재단의 다른 지부에서는 꽤 기묘한 자들을 고용한다고 했다. 개로 변했는데도 여전히 근무하는 교수, 온몸이 흉터투성이인 불사자, 영혼이 부적에 묶인 남자도 있다고 했다.

독일어권 재단은 그런 일에 그만큼 관대하지 않았지만, 이곳에도 분명 어느 정도 용인하는 선은 있었고, 문제가 되려면 우선 그 선부터 넘어야 했다.

지금 그의 앞, 책상에는 아주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은 눈처럼 희었고 왼쪽 눈에는 단안경을 끼고 있었다. 머리 모양에 어울리게 성은 ‘빈터’였으며, 그 눈빛을 보니 언제나 자신이 방 안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자리에 누가 있든 상관없이.

리하르트는 값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고, 천사는 그의 뒤에서 팔을 등 뒤로 모으고 날개를 몸에 바짝 붙인 채 서 있었다. 아마 좀 이상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리하르트는 상당히 작았지만, 이 사이보그는 키가 거의 이 미터에 달했으니까……

방에는 그들 외에도 서류 보관함 몇 개와 파일철이 줄지어 빼곡히 꽂힌 책장 몇 개가 있었고, 책상 위에는 평면 모니터가 딸린 컴퓨터, 액자 세 개—리하르트가 앉은 자리에서는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사무용품들이 놓여 있었다. 방 안의 모든 것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으며, 거의 병적일 만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Site-DE17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 SCP-171-DE는 재격리되었고, 불행히도 리하르트와 사이보그 역시 구금되었다. 하필 그의 자백이 감시 카메라에 찍혔기 때문이었다.

날개 달린 여자는 MTF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려 했지만, 리하르트가 명령 한마디로 저지했다. 그녀는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랐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천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낼 호송 차량 행렬에 실렸다.

바로 이곳으로.

이 사이보그의 실질적인 담당자인 빈터는 조금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리하르트는 그녀가 박사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몇 주째 이 천사를 연구하려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그녀가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리하르트 칼트군요. 전직 연방군 군인, MTF 대원, 그리고 보아하니 변칙개체 2819-DE의 새 애인.”

“어,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만났죠? 커피를 마시다가 알게 됐나요, 아니면 옛 애인인가요?”

리하르트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움츠러들었다.

“아닙니다, 빈터 씨. 솔직히 말해서, 왜 저를 자기 소유자라고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소유자.” 빈터가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되풀이했다. “참 운치 있네요…… 아니면 변태적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겠죠……”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저는 이 여자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는 천사를 돌아보았다.

“이봐, 너도 뭐라고 좀 해 봐. 어…… 미안한데, 이름이 뭐야?”

“주인님께서 붙여 주시는 이름이라면 무엇이든 응답하겠습니다.” 단조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도움이 되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전 소유자께서는 저를 나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나인? 숫자를 이름으로 붙여 줬다고?”

“그렇습니다.”

등 뒤에서 빈터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수렁에 더 깊이 빠질 뿐이었다. 다만……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네 이름은 나인이야. 그런데 나인, 왜 저 여자한테는 말을 안 해?”

“제게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허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빈터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 허락할게. 빈터 씨가 뭘 물어보면 대답해 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너를 만난 뒤로 이 사람이 화장실에 몇 번 갔지?” 빈터가 물었다.

“두 번입니다.” 나인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신임 연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사생활과 관계없는 질문만 하라고요, 제발!”

천사가 고개를 숙여 절했다.

“사과드립니다, 주인님.”

“주인님이라, 아……” 책상 건너편에서 야릇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하르트는 눈을 굴렸다.

“그리고 이제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마!”

나인이 눈을 깜빡였다.

“그럼 어떤 호칭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냥 리하르트라고 불러.”

천사가 다시 절했다.

“알겠습니다, 리하르트.”

“그리고 제발, 똥 같은 일 하나하나에 절하지 좀 마.”

“저는 배설물에 절하지 않습니다, 리하르트.”

“비유인 것 같아, 나인.” 빈터가 거들었다.

나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은 그대로였는데도 어째서인지 당혹스러워 보였다.

“죄송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나한테 절하지 않으면 돼.” 리하르트가 애원했다.

“알겠습니다.”

“벌써 마음에 드는데요.” 빈터가 입을 벌려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인, 왜 이 남자를 네 소유자로 인정하기로 했지?”

“암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 암호가 뭔데?” 빈터가 캐물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해당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으십니다.”

빈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시도는 해 봐야지.”

“잠깐.” 기억 카드를 뒤적이던 군인이 끼어들었다. “‘아이고 맙소사’ 말이야? 널 발견했을 때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제삼자 앞에서 암호를 발설하셨습니다, 리하르트. 암호 변경을 권장합니다.”

“그건 나중에 하자.” 리하르트가 말했다. “왜 그런 암호를 설정해 놓은 거야?”

“권한이 없는 개체가 제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나인.” 리하르트가 바로잡았다. “왜 하필 그 암호냐고.”

“추측만 할 수 있습니다만, ‘아이고 맙소사’라는 말은 제이 헤이토스 교회의 고대 언어로 ‘네 주인은 나다’라는 뜻입니다.”

“아……”

“고대?” 빈터가 물었다. “그놈들에 관해서는 나도 조금 연구해 봤는데, 우주에는 아직도 라크무-르상을 숭배하고 제물을 바치는 구석이 있어. 넌 어디에서 왔지? 특히 어느 시대에서 온 거야?”

“저는 울티마 출신입니다. 제2058주기의 오억 이십사만 육천칠백십이 년에서 여러분이 계신 이곳으로 왔습니다.”

“아하!” 빈터가 외치며 급히 무언가를 적었다. “시간의 끝에서 왔구나, 그렇지?”

“그 시기를 그렇게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인이 확인해 주었다.

“두 분, 조금만 천천히 얘기하면 안 됩니까?” 리하르트가 약간 짜증스럽게 물었다. “빈터 씨, 이 여자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우리가 울티마에서 얻은 최초의 제작물은 아니거든요.” 신임 연구원이 설명했다. “하지만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것 중 하나죠. 울티마, 로고스, 아스가르드, 그리고 그런 세력들이 모두 끝장난 뒤로 그 잔해가 모든 현실 시공간 구석구석에 흩어졌어요. 우리는 우주의 끝에 있던 이 국가들을 통틀어 SCP-299-DE라고 부릅니다. 음, 그럼 넌 SCP-299-DE-1008이 되겠네……”

리하르트는 빈터가 나인을 ‘제작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었다. 물론 개성이라곤 거품기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이었다…… 당연히 표준 절차라는 것은 알았지만, 리하르트는 언제나 사람을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사이 나인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반드시 여쭤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제 시간 레이더가 손상되었습니다. 올바르게 재보정할 수 있도록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알려 주십시오.”

빈터가 스마트폰을 꺼내 나인에게 날짜를 보여 주었다.

“참고로 서기야.”

나인은 몇 초 동안 휴대전화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제 다중우주 시간에 맞춰 재보정을 완전히 마쳤습니다.”

“그거 참 기쁘네.” 신임 연구원이 말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넌 정확히 무엇이고, 용도는 뭐고, 왜 여기 있는 거지?”

“저는 엘루시에서 제조한 그리고리급 경비 사이보그입니다. 세라핌 시리즈 특수 모델 나인입니다.” 나인이 설명했다. “제 유일한 존재 목적은 울티마의 법률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제 소유자를 모든 형태의 위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전 소유자께서는 우주의 종말을 피해 도주하고 계셨으나, 다른 우주로 도약하던 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전 소유자의 카르마 신호가 소멸했으므로 저는 그분이 사망하셨다고 백 퍼센트 가정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제 매개변수는 공장 출하 설정으로 초기화되었고, 리하르트께서 저를 자신의 재산이라고 선언하실 때까지 대기 상태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특수 모델이라, 응?” 빈터가 의미심장하게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그런 외모에, 몇몇……” 그녀가 잠깐 생각했다. “다른 특징들도 있는 거구나. 네 시리즈는 보통 여성이 아닌가 보지?”

“맞습니다.” 나인이 확인해 주었다. “저는 최초 구매자의 요구에 따라 제작된 주문 제작품입니다. 외형은 표준 설계에서 벗어나지만, 기능 유지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다만 표준형과 비교하면 체격과 균형 면에서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

“안 봐도 알겠네.” 빈터가 나인의 몸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망할 종마 같으니……”

“저, 빈터 씨?” 리하르트가 조금 난처한 듯 물었다. “규정상 변칙개체를 사람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는 건 압니다만, 꼭 나인 앞에서 이러셔야겠습니까? 그리고 너도, 나인. 자꾸 자신을 물건이라고 부르지 마. 듣기가 아주 불편해.”

또 그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제 기본 구조와 외형이 인간인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무기로 설계되었으며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저를 사람으로 보실 근거가 없습니다.”

“있어.” 리하르트가 침울하게 반박했다. “내가 지키려는 인간적인 도리.”

“유감입니다만, 울티마의 사회적 관점에서 그 근거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말?” 빈터가 물었다. “우리가 알기로 SCP-299-DE의 복제인간에게는 최소한 일부 기본권과 제한적인 자기표현이 허용되었어. 울티마에는 적용되지 않는 건가?”

“적용됩니다.” 나인이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저는 복제인간이 아니라 무기로 분류되므로 복제인간의 권리는 제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 세상의 끝에도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놈들이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네……” 신임 연구원이 무미건조하게 평했다. “좋아, 이제 네게는 새 주인이 생겼고, 그 사람은 서기 이십일 세기의 풍습에 따라 널 안아 주고 사랑해 줄 거야……”

리하르트는 점점 이 여자에게 질려 가고 있었다……

“잘 들으세요, 백설 공주님. 어디서 잘못 내리기라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무슨 자격으로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아니면 어디 문제가 있으십니까?”

“백설 공주?” 빈터가 되물었다. 성에 걸맞게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제 당신이 잘 들으세요, 이 땅꼬마야. 첫째, 당신이 재단의 다른 모든 변칙개체처럼 감방에 들어가지 않고 제 사무실에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제가 O4와 사이가 좋기 때문입니다. 둘째, 나인은 제 연구 대상이고, 따라서 그 소유자인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덕에 서류 작업이 산더미처럼 쌓였으니, 이참에 감사 인사라도 드리죠. 셋째, 따라서 이제 저는 당신과 나인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보다 훨씬 냉혹한 사람이 당신을 맡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넷째—”

빈터의 팔에서 무언가 울렸다. 손목시계였다. 그녀는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시계를 보고 알람을 껐다.

“잠시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흰 가운에서 약통을 꺼냈다.

안에는 푸른색 반투명 알약이 잔뜩 들어 있었고, 빈터는 그중 하나를 삼켰다. 그리고 약통을 도로 집어넣었다.

“어디까지 했죠? 아, 맞다. 넷째, 제가 여기서 성과를 좀 거두기는 했지만 기지의 먹이사슬에서는 상당히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임무 중에 입단속을 못 해서 간접적으로 격리 실패를 일으킨 탓에 직원들 앞에서 제 처지가 더 나빠졌어요. 그러니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존중해 드리지 못하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질투하시는군요. 맞죠?” 리하르트가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나인이 저 대신 당신을 선택했으면 하셨던 겁니다. 자신이 이 여자를 더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요. 그렇죠?”

신임 연구원의 얼굴에 분노로 피어오른 붉은 기가 머리카락과 멋진 대조를 이룬다고 리하르트는 생각했다.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귀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어쩌면 단안경으로 제 살을 베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붉은 기는 솟아올랐을 때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졌다. 그래도 빈터의 이마에는 몇 가닥 혈관이 부자연스럽게 불거져 있었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그 군인이 평생 들어 본 것 중 가장 긴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맞아요, 그게 아주 불쾌합니다. 제가 더 잘 처리할 수 있었을 거예요. 아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분명한 건 당신과 당신의 새 경호원이 제 감독 아래 있다는 겁니다. 어디서 지낼지, 언제 무엇을 받아 시간을 때울지, 식탁에 뭐가 올라올지는 제 말에 달렸어요. 기지에서 더 불쾌한 인간에게 배정될 수도 있다고 한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여기 책임자인 요흐 박사는 사정을 봐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일을 망치지 마세요. 그러면 우리 둘 다 좋을 게 없으니까.”

“당신과 당신의 조직이 불법 감금을 자행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나인이 늘 그렇듯 단조로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울티마 기본법전》 제구조 제이항에 따라, 저는 최대한의 무력을 사용하여 제 소유자를 당신에게서 구출할 권리가 있습니다.”

리하르트가 다급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까?” 그가 겁에 질려 물었다.

“제 소유자께서 자발적으로 명령하신다면, 저는 해당 행동을 충분히 포기할 수 있습니다.” 사이보그가 확인해 주었다.

“지금 바로 그 명령을 하는 거야, 나인. 네가 탈출하려 들면 상황만 더 나빠져.”

“알겠습니다, 리하르트.”

그가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희미한 짜증을 띠고 움찔했던 것일까?

그러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나인, 널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어?”

“저에 대한 소유권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그렇습니다. 가능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나마 비교적 멀쩡하게 이곳을 나갈 수 있겠구나. 저 겨울 할멈과 더는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

“—다만 엘루시 기술자의 입회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재 시대에는 해당 회사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려 드립니다. 따라서 소유권 이전은 당신이 사망하신 뒤에만 가능합니다.”

“아……”

젠장.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프로도.” 빈터가 짤막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넘겨 버리기가 너무 쉬울 테니까요. 안 그래요?”

리하르트는 잠깐 생각했다.

“맞네요.” 이윽고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전 여기서 못 나가겠군요……”

“정확히 보셨어요.” 빈터가 확인해 주었다.

빈터는 새로 얻은 데이터를 가지고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었다. 물론 칼트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해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래도 그 남자가 자신을 꿰뚫어 보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짜증스러웠다. 그 뒤에는 마침내 장갑을 벗은 나인을 검사할 수 있었다. 칼트 요원이 간신히 그녀에게 옷을 벗으라고 명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진전이 생겼다.

투시 스캔은 여전히 소용이 없었지만……

알람이 울렸다. 약 먹을 시간이었다……

약을 먹고 다시 문서로 눈을 돌렸을 때, 컴퓨터가 화상 회의 요청을 알렸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회의에 접속했다.

참석자는 두 명이었다. 한 사람은 바큇살이 여덟 개인 바퀴 그림 뒤에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빈터는 사용자 이름을 보고 상대가 O4-8임을 알았다. 다른 참석자는 빈터가 불행히도 너무나 잘 아는 연구원이었다. SCP-299-DE 프로젝트의 부책임자 요하네스 라셰트 박사. 빈터가 공인한 완전한 백치였다.

“O4-8?” 그녀는 다른 쪽 상관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박사는 일부러 무시했다.

“신임 연구원 빈터.” O4-8의 변조된 목소리가 응답했다. “방해해서 미안합니다만, 지금까지 나온 데이터가 아주 흥미롭더군요.”

“아직 정리 중입니다. 보신 것은 해당 변칙개체의 능력과 특성에 관한 초기 조사 결과예요.” 빈터가 지적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본 내용은 매우 유망하다고 생각해서, 라셰트 박사와 당신에게 연락해 현장 시험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라셰트가 끼어들었다. “어쨌든 빈터가 이미 그 변칙개체가 해당 MTF 대원의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칼트의 충성도 지수가 상당히 높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군요.”

“현장 시험이요?” 빈터가 동요 없이 되물었다. “새 애완견이 필요하십니까? 거절해야겠군요.”

빈터가 라셰트를 멍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인간에게는 시간의 끝에서 온 유물에 대한 존중이 조금도 없었다. 그저 돈벌이와 호기심 충족을 위한 도구로 볼 뿐이었다. 어딘가에 ‘누르지 마시오, 종말 기계’라고 형광색 대문짝만 한 글씨가 적힌 거대한 빨간 버튼이 있다면, 라셰트는 주저 없이 누를 것이다……

“왜 거절하십니까, 빈터 씨?” 라셰트 박사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SCP-299-DE 제작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제가 결정합니다. 게다가 당신이 마침내 그 변칙개체도 그중 하나라는 걸 증명해 주었잖아요.”

“불완전한 데이터를 근거로 삼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결정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라셰트 박사.” 빈터가 반박했다. “제가 틀렸다면 정정해 주십시오. 하지만 어떤 변칙개체가 며칠 동안 조작자의 모든 명령에 복종했다는 이유만으로 곧장 현장 시험을 제안하는 건 형편없는 생각이라고 보지 않으십니까?”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럼 뭘 하고 싶으신 겁니까?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실험실 시험에 자원을 낭비하자고요?” 라셰트 박사가 음침하게 물었다. “최소한의 수준이나마 그 물건의 전투력을 이미 보셨잖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런 물건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박사님은 그게 생각하신 대로 움직일 거라고 가정하고 계십니다.” 빈터가 쏘아붙였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그럴지 정확히 알지 못해요. 그 천사가 갑자기 우리 편을 쓸어 버리면 책임지실 겁니까?”

“그만들 하세요.” O4-8이 타일렀다. “빈터 씨, 의견은 존중합니다만 재단이 그 변칙개체의 전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 말은, 충성스러운 재단 직원에게 충성하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그 직원도 감방에 앉아 있고 싶지는 않을 테고요.”

높으신 분들과 그들의 장난감이라니. 빈터는 짜증스럽게 생각하며 단안경을 고쳐 썼다.

“O4-8, 외람되지만 그 대상은 생각하시는 것만큼 통제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규칙을 따르고 있어요. 한 번 잘못 건드렸다가는 목표보다 우리에게 총구를 돌릴 가능성이 더 큽니다. 애초에 공격이 아니라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당신을 끌어들이려는 겁니다.” 라셰트 박사가 씩 웃었다. “여기 오신 지 겨우 칠 년, 자리를 비운 기간을 빼면 육 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말기 기술 분야의 절대적인 권위자시잖습니까. 박사 논문도 완성하고, 실전도 좀 겪을 수 있을 겁니다.”

“라셰트 박사, O4-8, 제가 평생 겪은 ‘실전’은 이미 차고 넘친다는 건 O4-12가 증명해 줄 수 있습니다.” 그녀가 무미건조하게 받아쳤다. “거절합니다.”

“저, 빈터 씨.” O4-8이 말했다. “지금 저희가 설명드리는 건 요청이 아닙니다. O4 두 명이 이 실험에 동의했습니다. 당신은 그 변칙개체와 함께 작전에 투입될 겁니다.”

빈터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경고는 처음부터 그렇게 무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좋다. 필요하다면 다른 뒷배도 있었다. 보수가 지금만 못할 뿐……

“충분한 시험을 거쳤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변칙개체와 함께 임무에 나가라는 겁니까?” 그녀가 확인했다.

“별일 아닙니다. 아마 작은 방 하나에 들이닥치거나 무해한 뭔가를 붙잡는 정도겠죠.” O4-8이 설명했다. “변칙개체가 예측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압니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 MTF 한 팀을 출동시키겠습니다.”

“대기권 재진입을 버텨 낸 물건을 우리 무기로 상대하시겠다고요?”

“추가적인 예방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라셰트 박사가 약속했다.

빈터는 짜증 섞인 소리를 내뱉으려다 억눌렀다. 이 인간이 어떻게 지금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O4-8, 라셰트. 제가 그 결정에 반대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이 모든 게 엉망이 되면, 분명 그렇게 될 테니 제 말을 믿으세요. 그때는 두 분이 살아 있는 내내 제가 이렇게 말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진작 말했잖습니까.’”

나인의 다음 등장작: 살인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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