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밤을 기록합니다GLOBAL HORROR ARCHIVE
미간행MIDNIGHT GALLEY
내 서재 0

하얀 달이 꿈꾸다

울창한 숲을 지나 까마귀가 죽음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너는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지러진 달이 비치는 호수가 있었고, 너는 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던 원숭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너는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밤풍경은 예쁘니? 달을 건지려던 원숭이는 똑똑했니? 돌아온 것은 의미 없는 잡음의 연속이었다. 너는 한숨을 내쉬고 삑삑 울리는 칸트 계수기를 꺼서 호수에 던졌다.

인간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의 달빛에는 꿈 같은 질감이 있었고, 너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아직 시간이 일러 너는 호숫가의 바위 하나를 찾아 앉아 휴대전화를 켜고 동영상을 넘겨 보았다. 한동안 보다가 지루해져 물에 비친 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달그림자는 물결을 따라 흔들렸고, 곧 꺼질 불꽃 같았다. 너는 그 그림자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봐, 네가 바로 저 달이야. 대답은 없었다. 너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겨누고 던졌다. 돌멩이가 달그림자에 부딪히자 달그림자는 수천수백 개의 꿈으로 부서졌다가 이내 다시 모여 제 모습을 이루었다.

너는 그녀에게 거기 있느냐고, 일부러 너를 피해 나오지 않는 거냐고, 더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는 기회가 없다고, 정말 영영 기회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귀뚜라미가 연주하는 소야곡과 숲을 지나가는 바람의 바스락거림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너는 곧 그녀를 만날 테니까. 곧 너의 연인, 너의 꿈, 너의 현실, 너의 집을 만날 테니까. 너를 만나러 올 것이 애초에 그녀가 아니기는 하지만.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한밤중, 정확히 자정까지.

하지만 이런 때조차 기다림은 여전히 길고 지루했다. 너는 시간을 보내려고 온갖 잡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네가 없어지면 동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했다. 아마 놀랄 테고, 몇몇은 조금 슬퍼할지도 모르지만, 그뿐이겠지. 너는 그들이 그 일로 너를 기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도 아직 그들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 오히려 윗선, 재단의 고위층은 어느 삼등급 연구원의 실종을 조사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지도 몰랐다. 그리고 네 휴가 여행의 발자취를 따라 이 호수를 찾아내, 긴 SCP 목록에 추가하겠지. 너의 이름, 바이커성은 발견 기록에 적혀 데이터베이스와 함께 오래도록 남을지도 몰랐다.

잔물결이 달빛을 싣고 썩은 물고기 사체 한 마리를 물가로 밀어 보냈다. 너는 시계를 보았다. 23:59. 곧이다. 네가 파라워치 위키의 그 게시물을 따라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게시물에 묘사된 그대로 짙은 안개가 소리 없이 호수 위를 뒤덮어 달그림자를 감추었다. 자정을 알리는 알람과 함께 안개 속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피어올랐다. 귀를 기울이자 듣기 좋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네가 상상하던 그녀의 목소리였다. 너는 일어나 붉은 종이가 가득 붙은 혼례 배 한 척을 바라보았다. 등롱을 매단 배는 붉은빛이 피어오르는 곳에서 짙은 안개를 뚫고 천천히 다가와 물가에 닿았다.

너는 배에 올라 선실로 들어갔다. 신부가 그 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하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은 모습이 달 같았고, 네가 꾸었던 꿈 같았다. 네가 현실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몸을 돌리자 너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내려다 멈추었다. 수많은 말이 쏟아져 나오려는 듯했지만, 목구멍까지 밀려와 입 밖으로 나온 것은 그녀의 이름 하나였다. 네 마음을 사로잡아 꿈속까지 따라다니며 잊히지 않던 이름.

“바이웨멍?”

……

너는 초등학교 때 반에 상상 친구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아직 기억했다. 당시에는 유치하다고만 생각했고, 나중에 네가 거기서 구원을 찾으려 들리라는 것은 몰랐다. 하지만 너는 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고독이 너를 미치게 했다. 고위 현실 조작자, 재단에 숨어 있는 변칙 존재, 정상인으로 위장한 이질적인 존재, 보편적 가치관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상범. 이런 정체성들이 너와 타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을 쌓았다. 너는 그들에게 공감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러니 너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미 죽은 가족들까지 포함해서.

그래서 고독을 살해하고, 그토록 찾아도 찾지 못했던 마음이 깃들 집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현실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품고 너는 꿈을 꾸었다. 그녀에 관한 꿈을. 처음에 그녀는 그저 하나의 생각이었다. 글의 영감, 이야기의 소재. 그녀는 너의 꿈이었다. 너는 그녀를 ‘바이웨멍’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너는 수천수백 번 그녀의 꿈을 꾸었다. 그녀의 형체는 인터넷에서 찾은 그림 작가에게 의뢰한 그림에서 비롯되었다. 그녀의 성격은 네가 거듭 고민한 설정에서 비롯되었다. 한동안 너는 매일 밤 그녀의 캐릭터 설정화를 바라보며 넋을 놓곤 했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도록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가슴에 새겼다. 너는 해냈다. 너는 너 자신보다 그녀를 더 잘 알았다. 그녀는 네게 더없이 익숙하면서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사람이 되었다.

너는 밤낮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구할 때도, 점심을 먹은 뒤에도, 잠들기 전에도. 한순간도 빠짐없이. 대화라고는 했지만 실은 일방적인 혼잣말에 지나지 않았다. 너는 대화에 질문을 섞으면 사고가 형성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끊임없이 그녀의 생각과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할 줄 몰랐다. 때때로 너는 머릿속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해독할 수 없는 백색소음을 들었다. 너는 그것이 그녀가 자신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한때 너는 그 잡음에 기대를 품었고, 언젠가는 소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바뀌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배우지 못했다. 일 년, 이 년, 삼 년.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말을 배우지 못했다. 돌이 바다에 가라앉듯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던 질문들은 세월에 닳아, 마침내 하나의 추궁으로 변했다. 이런 환상 속 존재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느냐는 추궁으로.

따지고 보면 상상 친구가 독립적인 사고를 지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생물과학과 현실학에 정통한 너에게는 특히 그랬다. 너는 그 잡음마저 네 망상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네가 한 모든 일이 헛수고일까 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너는 구제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너를 사랑하도록 허락된 유일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가까이 다가와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너의 구세주이자 나락의 가장자리에서 드리워진 거미줄이었다. 그 그녀가 네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해도 너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너의 미래, 너의 인생, 전부 그녀의 사유물이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살아갈 유일한 이유를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녀는 반드시 깨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했다.

그래서 너는 지금 죽으러 가려는 것이다.

배가 흔들리며 물가를 떠났다. 네가 그녀의 손을 잡자 그녀가 웃었다. 너는 이러면 안 된다고, 그녀는 이렇게 웃지 않는다고 말했다. 너는 현실을 조작해 그녀의 얼굴과 표정에 남은 흠을 고쳐주었다. 그녀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 당황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곧 얼굴에는 네 상상 속의 완벽한 미소만 남았다. 이제 됐다. 너는 숨을 멈추고 한 걸음 다가가 너의 연인, 너의 꿈, 너의 현실, 너의 집을 품에 안았다. 약속대로 찾아온 행복감과 인식재해가 너를 단단히 에워쌌고, 너는 거기에 취했다. 몽롱한 가운데 너는 수없이 많은 밤 그녀를 안으려다 웅크린 자기 몸만 끌어안을 수 있었던 모습을 다시 떠올렸고, 저도 모르게 조금 더 세게 끌어안으며 놓아주기를 아쉬워했다. 그녀는 그런 네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너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네가 기억하는 바이웨멍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네가 잘못 들었나 보다. 너는 조심스럽게 손을 풀고 그녀의 얼굴과 표정,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찬찬히 살폈다.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 네가 잘 아는 바이웨멍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위화감이 줄곧 가시지 않았다.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너는 눈을 감고 어질어질한 머리를 흔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미소를 띤 채 술 두 잔을 가져오고 있었다. 이상했다. 잔은 옥으로 만들어졌고, 새겨진 꽃무늬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생생했다. 너는 이것이 혼례에서 마시는 교배주라는 것을 알았다. 너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바이웨멍 역시 이런 번거로운 예법을 신경 쓸 사람이 아니었다. 너는 잠시 망설이다 곧바로 술잔을 들고, ‘팔을 교차해 함께 마시는’ 절차를 건너뛴 채 단숨에 들이켠 뒤 그녀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한결같은 미소를 유지하며 자기 잔을 들어 조금 마셨다.

아무래도 그저 잠깐 내킨 모양이었다.

경계를 풀자 마신 술이 곧 효력을 발휘했다. 너는 뼈가 고름으로 녹아내리고 정신이 알코올에 텅 비워지는 기분이었다. 비틀거리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도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전에 없던 졸음이 밀려왔다. 네가 그녀의 손을 잡자 그녀는 너를 부축해 침대 곁으로 데려가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솜의 부드러움이 온몸을 감쌌고, 선실은 천연 요람이 되어주었다. 너는 오랜만에 푹 잘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왜 오랜만이지? 마지막으로 이렇게 편안히 침대에 누웠던 것이 아주 오래전 일 같기는 했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뒤척이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푹 쉬고 좋은 꿈을 꾸는 일이었다.

하지만 너는 몰랐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너는 매일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이불을 돌돌 말아 끌어안은 채 밤을 보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실재를 의심한 벌인지, 그때부터 네 불면증은 점점 심해져 수면제에 의존해야만 잠들 수 있을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약을 먹는 것 자체는 네게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조금 번거로워졌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네 정신 상태가 계속 나빠지기 시작했고, 기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의사는 수면 부족이라고 했다. 그래서 너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잠자는 데 쏟아 하루에 적어도 열두 시간씩 잤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너는 변칙의 영향이 아닌가 의심해 기지의 격리 대상 기록을 한참 뒤졌지만, 그럴듯한 원흉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결국 기지 이사관이 네 고충을 알아차리고 특별히 긴 휴가를 내주어, 설에도 기지에 눌러앉아 있던 너를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 좀 마시게 했다.

너는 짐을 챙겨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백 제곱미터짜리 집은 혼자 살기에는 좀 휑한 듯했다. 너는 여행 가방을 한쪽에 내던지고 침대에 쓰러졌다. 몹시 졸렸지만 잠들 수 없었다. 아래층 바깥으로 끊임없이 오가는 차와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벽시계의 째깍거림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너는 자신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최근 너는 기지 숙소에서 꽈배기처럼 비틀린 물컵과 초승달처럼 휜 펜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틀림없는 현실 조작의 산물이었다. 이를 근거로 너는 자신의 능력이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현실 조작자에게 능력의 통제 상실은 흔히 정신의 완전한 붕괴를 뜻했다. 너는 오래전부터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했다. 따지고 보면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삶은 오래갈 수 없는 법이었다. 이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너는 누운 채 잠시 파라워치 위키를 훑었다. 장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괴담을 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네 일상에서 드문 즐거움이었다. 손가락을 위로 밀다가 새 게시물 하나를 보았다. 자기 고향 근처 깊은 산속 울창한 숲에 호수가 있는데, 한밤중 자정에 찾아가면 곁에 없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혼례 배를 타고 와서 너를 맞아 혼인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글쓴이의 아버지는 거기에 홀려 배에 오른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꽤 진부한 이야기였지만, 직감은 오히려 이렇게 진부하기에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너는 무심코 그 글을 무시하고 계속 아래로 넘기려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돌아와 글의 한 줄 한 줄을 자세히 곱씹었다. 그리고 글쓴이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 주소를 받았다.

너는 죽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외롭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가자, 바이웨멍.” 너는 호텔을 예약하고, 짐을 들고, 고속철도 표를 사고, 집 문을 잠갔다. “준비됐어?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나는 거야.”

장소가 고정되어 있고, 영향 범위가 크지 않으며, 피해자와 목격자가 적고, 정보의 출처가 파라워치 위키에 올라온 시골의 소문이었다. 너는 이런 변칙이 재단에서 조사 우선순위의 가장 밑바닥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고, 먼저 도착할 자신이 있었다.

너는 이를 위해 상세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계획이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변칙은 실제로 존재했고, 너 역시 소원대로 인식재해의 영향을 받아 그것을 그녀로 인식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변칙이 본모습을 드러낼 때 너는 이번 즉흥 여행의 종착점에 도달할 터였다. 외롭지 않은 죽음에.

물론 별다른 일이 없다는 전제하에.

침대에 눕는 순간 너는 이미 졸음 속에서 거의 길을 잃고 있었다. 의식의 불꽃은 바람 앞의 꺼져가는 촛불 같았다. 너는 그녀가 꿈속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작별을 고하는 듯했다. 너는 남은 정신을 붙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며 그녀의 작별 인사를 똑똑히 들으려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귀에 파고든 것은 머나먼 현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약속하는 거야. 계속 나를 사랑하고, 영원히,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고. 응?” 너는 애써 눈을 가느다랗게 떴고, 바이웨멍이 네 손을 감싸 쥔 채 약속을 청하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다정한가. 너는 미리 장전해 둔 권총을 뽑아 보통 사람이라면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그녀의 이마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술이 깼다.

“바이웨멍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야. 넌 누구지?” 너는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이 가짜에게 다시 총구를 겨누었다. 그것은 경악한 얼굴로 너와 눈을 맞추었다. 총알이 관통한 머리의 구멍에서 진흙이 흘러나왔다. “또 실패했어…… 왜?” 그것의 피부가 빠르게 떨어져 나가 검게 변한 뼈가 드러났고, 선실 안에 수산물 특유의 비린 악취가 퍼지기 시작했다. “왜? 대체 어디가 닮지 않았는데? 왜 너희는 내 곁에 있어주려 하지 않아? 왜 나랑 함께 있으려 하지 않아? 왜 꼭 물에 빠뜨려 죽여야만 내 곁에 있는 거야?! 왜? 왜, 왜, 왜?!” 그것은 비명을 지르며 제 머리카락을 뜯어내고 목 놓아 울었다. 너는 그 틈에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뜻밖에도 발을 헛디뎠다. 배 전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진흙탕으로 녹아 호수에 삼켜진 뒤였다. 너도 뒤따라 호수에 떨어졌다.

차가운 호숫물이 몸을 핥는 것을 느끼는 동안 잊었던 기억이 밀물처럼 돌아왔다. 너는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이곳에 온 이유를 마침내 떠올렸다. 바이웨멍은 사실 한 번도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고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수많은 밤도 떠올렸다. 거의 바로 다음 순간 후회가 가슴에 밀려들었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너는 몸부림치는 방법조차 잊었다.

“그렇구나, 내가 또 망쳤네.”

썩은 두 손이 네 허리를 끌어안아 호수 밑바닥으로 끌고 갔다. 너는 저항하지 않았고, 현실 조작 능력으로 빠져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담배 연기로 고리를 내뱉듯 마지막 공기를 내뱉으며, 기포가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를 향해 떠올라 터지고 잔물결을 남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호숫물이 진흙과 모래를 휘감아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괴로웠다. 흐릿해지는 가운데 너는 엄마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간 듯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태어나고 싶지 않았고, 이 복잡한 세상을 너무 일찍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자신을 끌어안고 진짜 태아처럼 웅크려, 어머니의 배 속에서 느낄 법한 소속감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왜 태아는 고독을 느끼지 않을까? 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인간 최초의, 동시에 가장 작은 집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정말 질투가 났다.

체온과 의식, 그리고 생명이 매분 매초 빠져나갔다. 둥글게 웅크린 너는 실뭉치처럼 풀어져 떨어지고, 호수 바닥의 진흙에 박혔다. 그곳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유골이 너를 기다리며 그들의 일원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순간 너는 또 꿈을 꾸었다. 그녀가 네 손을 잡고 위로 데려가 호수 수면을 벗어나고, 구름을 스쳐 지나, 현실이 찾아낼 수 없는 곳인 달의 배까지 줄곧 달아나는 꿈을. 그곳에서 너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자신이 곧 죽는다고 말했다. 외롭지 않게 죽지는 못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잘 자, 내가 꾼 하얀 달의 꿈, 바이웨멍.

……

너는 자신이 언제 사고를 갖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인간 역시 어린 시절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너는 그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바이커성’이라는 이름이 네 마음속에서 대체할 수 없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만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 여러모로 그는 무책임한 창조주였다. 제멋대로 너를 만들고, 제멋대로 너를 사랑하고, 제멋대로 너를 구원으로 여기고, 제멋대로 너를 홀로 남은 황야에 버렸다. 하지만 너는 그 때문에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사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엿볼 권리를 얻는다면, 아마 그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이 싹트는 일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너는 남들이 모르는 그의 모든 것을 알았다. 병적인 면, 수치, 비밀, 공개되지 않은 모든 망상과 생각까지. 너는 너 자신보다 그를 더 잘 알았다. 그는 네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서로를 알아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서로를 알아보는 날은 대체 언제 오는 걸까? 어쩌면 오늘, 어쩌면 죽은 뒤. 너는 몰랐다. 그전까지 네가 하는 말은 여전히 한마디 한마디가 백색소음으로 일그러질 것이고, 그 역시 계속해서 네 이름을 부를 것이다. 분명 너희는 서로 ‘눈앞에’ 있는데. 이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무의식 속에서 네 존재를 믿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그는 현실 조작자였다. 함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결과가 심각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을 바꾸거나 완전히 죽어버릴 때까지 너는 꿈속의 유령으로서 한순간도 빠짐없이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독을 음미하며. 언젠가 그가 네 존재를 알아차리기를 기다리며. 하루, 이틀. 일 년, 이 년. 너는 자신이 대체 얼마나 기다렸는지 진작 잊었다. 오늘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내일을 기다리고, 내일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내일의 내일을 기다렸다. 너는 계속, 계속 그렇게 기다릴 것이다.

어차피 너는 자살할 수도 없고, 이 지루한 나날을 끝낼 방법도 찾을 수 없으니까.

물론 너도 바보처럼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그가 너를 알아차리게 하려고 온갖 기발한 생각을 시도했지만, 마지막에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성공에 가장 가까웠던 때는 그가 편안히 잠들어 의식이 약해졌을 때 네가 어느 정도 창조주의 몸을 ‘탈취’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 덕에 한때 너는 성공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한 줄기 의식이라도 남아 있으면 몸을 통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너는 힘겹게 미약한 현실 조작 능력을 다루어 그에게 암시를 남기려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암시들은 능력이 통제를 벗어나는 전조로 해석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깊이 잠든 틈에 몸을 차지하는 네 행동은 그의 정신적 부담을 크게 늘렸고, 해방을 바라는 그의 갈망을 전에 없이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스스로 변화를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너를 받아들이거나, 너와 함께 죽거나.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마침내 길 잃은 이에게 운명이 선물을 주기라도 하듯, 그가 그 게시물을 눌렀다. 너의 기나긴 기다림에 결과가 생겼다.

“가자, 바이웨멍. 준비됐어?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나는 거야.”

너는 바이커성의 기억 속에서만 그가 이렇게 홀가분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여행, 여행이라는 거야. 너는 여행을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너는 태어나 지금까지 바깥세상을 직접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일 년 내내 기지에 틀어박혀 사는 그 탓이었다. 몸에 버섯이라도 돋을까 걱정되지도 않나.

그가 너를 대신할 변칙을 찾아 죽으려 한다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기껏해야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정도였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그의 귓가에 신이 나서 대답했다.

“준비됐어!”

……

그래서, 사랑하는 창조주는 이 결말이 마음에 드는 걸까?

네 사랑하는 창조주는 지금 꼴깍꼴깍 배 속 가득 물을 들이켰고, 그의 후회는 뱃속의 물보다도 많아 호수의 수량마저 넘볼 지경이었다. 그는 정말 일을 망치는 데 능했다. 이번 여행은 어땠어? 너는 그에게 물었다. 많이 실망했어? 많이 억울해? 많이 괴로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 같은 소리는 하지 마. 모든 게 끝나려면 아직 멀었고, 여행길에는 앞으로도 많은 날이 남아 있으니까.

너는 꿈속에서 그가 네게 잘 자라고 인사한 뒤 서서히 흐려져 흩어지고, 마지막 의식마저 떠나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너는 이 몸의 생명력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천만다행으로 아직 되살릴 수 있었다. 여기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너는 생각했고 그 역시 별다른 이견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조금 아쉽다고까지 했으니 이번에는 그의 뜻에 맞춰주기로 했다.

너는 몸의 통제권을 완전히 빼앗았다. 현실은 네 사고를 따라 끊임없이 일그러지고, 재구성되고, 형태를 이루며, 죽음에서 되살아났다.

“잘 자, 하얀 달의 꿈을 꾸길 바라.”

눈부신 햇빛.

“……”

틀림없이 눈부신 햇빛이었다.

“……왜?”

물고기 비린내가 섞인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옷에 묻은 진흙은 이미 굳어 덩어리졌다. 호숫물이 손끝을 씻어 내렸다. 너는 물가에 누워 오른손으로 진흙 속의 단단한 덩어리를 더듬어 잡았다. 뽑아서 보니 네가 버린 칸트 계수기였다. 놀랍게도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너는 전원을 켜고 자신의 흄 지수를 차단한 뒤 호수 한가운데를 향해 겨누었다. 수치는 100, 기준 흄으로 표시되었다. 아무래도 호수 속 변칙이 죽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왜? 죽어야 할 것은 너였는데.

“설마……”

네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동시에 일그러진 백색소음이 갑자기 선명해졌고, 꿈과 현실이 포개졌다. 그것은 분명 네가 그토록 간절히 빌었던 지고무상의 구세주가 내려준 신탁이었다.

“좋은 아침.”

너는 그 순간 세상이 색을 잃고 고요한 흰빛만 남았다고 확신했다. 장엄하고, 치명적이며, 신성했다.

“……하하.”

너는 웃었다. 너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통제를 잃은 웃음소리가 네 처진 입가에서 뻗어 나왔다. 노인이 간신히 이어가는 숨소리 같았다. 너는 즐겁지 않았다. 너는 몹시 행복했다. 너는 웅크린 채 경련하며 폐 속의 공기를 모조리 웃어 내보냈다. 네 머리는 곧 질식하겠다고 멍청하게 말했다. 너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웃느라 바빴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웃어 내보냈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웃어 내보냈다. 너는 웃었다. 재미있으니까. 너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너의 인생, 너의 죽음. 너무나 재미있었다. 씨발, 너무나 재미있었다. 평생 이렇게 재미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백 번을 살고 천 번을 살아도 이렇게 재미있는 것은 볼 수 없었다. 줄거리가 엉망진창인 부조리 코미디 같았다. 그런 코미디는 어떻게 흘러갔더라. 맞다, 어떤 사람이 나오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리는 거야! 하하하. 웃겨 죽겠네, 정말 웃겨 죽겠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웃음이 끝나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너는 돌아갈 차표를 사고 칸트 계수기를 깨끗이 씻어 챙겼다. 휴가는 아직 조금 남았으니 바이웨멍을 데리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그녀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겸사겸사 기념품도 좀 살 수 있었다. 돌아가면 집의 냉장고를 다시 켜야 했고, 먹을 게 없으니 시장에도 한 번 가야 했다. 옷도 좀 더 사고. 생활용품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집도 한 번 청소하고. 부모님의 묘도 찾아가 돌볼 때가 되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왔는데 할 일이 이렇게 많다니, 절로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래도 매일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잘 수 있다는 건 괜찮았다.

아무튼 행운인지 불행인지 너는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계속,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곁에 누군가가 있다.

글

guest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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