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eudoPod 1028: 바라보는 모든 눈
방송 노트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제가 『테일스 프롬 더 걸프』 시리즈와 다른 작품들에서 줄곧 해 왔듯, 호주 시골의 지극한 기이함을 다시 한번 탐구한 작품입니다. 제게는 이야기가 끝없이 솟아나는 우물 같은 곳이죠!”
바라보는 모든 눈
앨런 백스터 지음
비좁은 사무실에서 말끔하게 천을 씌운 의자에 앉아, 나는 답답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정말 하나도 없나요?”
“읍내에는 없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은 미안한 표정이다. “꽃 축제 기간이라 일 년 중 가장 붐빌 때거든요.”
“어딘가 있기는 할 텐데요.”
“우리 잘못이지, 짐.” 메리가 내 무릎에 손을 얹고 중개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잉글랜드에서는 이렇게 먼 거리를 다닐 일이 없거든요. 장소마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너무 가볍게 생각했어요.”
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는 런던에서 글래스고까지와 거의 맞먹는 거리인데도, 호주 전체 지도에서 보면 한 점에 불과하다. 이 대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하지만 늦은 오후, 외딴곳에 와 있는 지금 그런 깨달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치 좋은 길로 가자던 결정의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여기가 정말 그렇게 작은 마을인가요?” 내가 묻는다.
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주민이 오백 명 조금 넘는데, 거의 절반은 주변 농장에 흩어져 삽니다. 읍내에는 호텔 하나와 모텔 하나가 있고요. 둘 다 빈방 하나 없이 꽉 찼어요. 외지에서 많이들 오거든요.”
“꽃 축제를 보러요.”
“캐럴네는 어때요?”
중개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접수 담당 여자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가 거기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수수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녀는 회색 머리카락이 후광처럼 부풀어 있었고, 문가의 책상에 몸이 거의 다 가려져 있었다.
“거긴 우리 취급 매물이 아니잖아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도 별채가 있잖아요. 비어 있을 수도 있죠. 축제에 오기에는 읍내에서 좀 머니까요.”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오가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말없이 긴장이 흐르는 순간.
“어디든 기꺼이 가 볼게요.” 아내가 말한다.
“약도를 그려 드릴 테니 차로 가 보셔야겠습니다. 전화를 두고 살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서요.”
“아주 옛날식으로 사는 분들이군요.” 내가 말한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캐럴네를 그보다 더 잘 설명하기도 어렵겠네요. 거기서도 방을 못 구하면 고속도로로 돌아가 더 큰 마을을 찾아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얼마나 먼데요?”
“두어 시간요.”
“아, 짐, 오늘은 더 이상 차 타고 싶지 않아.” 메리의 목소리에 피로가 뚜렷이 묻어난다.
나는 중개인에게서 약도를 받는다. “고맙습니다. 그분들한테서 방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약도는 따라가기 어렵지 않지만, 캐럴네는 정말로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거의 이십오 분이 지나서야 우리는 길게 뻗은 붉은 흙 진입로로 들어선다. 입구의 썩은 기둥 위에는 우유통으로 만든 찌그러지고 녹슨 우편함이 놓여 있고, 우리는 그 옆을 지나간다.
“저거 총알구멍이야?” 메리가 묻는다.
“우편함을 과녁 삼아 사격 연습을 하나 봐. 어차피 우편배달부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풍경 좀 봐.” 메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초가을의 건조함으로 녹갈색을 띠는 나지막한 구릉과 길가의 짙은 황토색 흙을 바라본다. 키 크고 줄기가 희끄무레한 유칼립투스 나무들은 천천히 기우는 햇빛을 받아 한쪽이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아내가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쩌면 회복이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집에 가까워지자 남자 하나가 베란다로 걸어 나온다. 낮고 넓은 단층집으로, 판자를 겹쳐 댄 외벽과 A자형 골함석 지붕은 온통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넓은 처마 아래 그늘진 창문들은 늦은 햇빛을 반사하는 검은 눈 같다. 베란다 계단 아래 듬성듬성 풀이 난 곳에는 일인용 그네가 놓여 있고, 어린 여자아이가 거기 앉아 살살 몸을 흔든다. 아이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연한 파란 꽃무늬가 들어간 헐렁한 흰 면 원피스를 입고 있으며, 때 묻은 발에는 신발이 없다.
나는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며 손을 흔든다. 남자는 눈꺼풀을 드리운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때 묻은 천으로 무언가를 닦으며 우리를 맞으러 내려온다.
“안녕하세요!” 내가 소리쳐 인사한다.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읍내 부동산 중개인이 여기 빌려주시는 별채가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좀 난처하게 돼서, 하룻밤 묵을 곳이 필요합니다.”
“이틀 밤이 될지도 모르고요.” 메리가 미소를 지으며 내 옆으로 다가와 말한다. “이런 곳이잖아요.”
“이틀 밤이 될지도요.” 내가 따라 말한다. 메리가 행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뭐든 좋다.
“악수는 못 하겠네요.” 남자가 짙은 사투리로 느릿하게 말한다. 그는 이유를 보여 주듯 손을 내민다. “기름이 묻어서.”
“뭘 고치고 계신가요?” 내 말이 바보같이 들린다.
“고장 난 트랙터요.”
“그렇군요.”
어린 여자아이의 그네가 규칙적으로 삐걱거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아이는 창백하고 빼빼 말랐으며, 거의 흰색에 가까운 금발은 곧게 뻗어 검은 눈이 박힌 갸름한 얼굴을 감싸고 있다.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고, 잘 먹고 자라는 것 같지는 더더욱 않다. 내가 미소를 건네지만 아이는 내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응시한다. 혼자 작은 소리로 노래하는 것처럼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나는 다시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 역시 말랐지만 단단한 체격이고, 팔뚝은 강철 케이블을 꼬아 놓은 것 같다. 얼굴도 갸름하고 광대뼈가 높으며, 눈빛은 강렬하게 번뜩인다. 덥수룩한 모래색 머리카락 아래 까칠하게 자란 수염은 붉은빛을 띤다. 그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기름과 흙으로 얼룩진 짙은 회색 작업복을 입고 있다. 끈 없이 신는 갈색 가죽 장화는 닳을 수 있는 곳은 거의 다 닳아 형태가 뒤틀리고 비뚤어진 채, 간신히 그의 발에 매달려 있다.
“별채는요?”
그가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있지요. 한동안 사람이 안 와서 먼지가 쌓였을 겁니다. 그래도 돈만 내실 수 있으면 쓰셔도 좋습니다.”
안도감이 온몸에 밀려든다. “물론이죠. 얼마인가요?”
남자는 코를 훌쩍이고 잠시 왼쪽을 바라본다. “이틀 밤이라고 하셨죠?”
내가 메리를 힐끗 보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일은 걸어 다니면서 이 풍경을 보면 되겠네.”
“틀림없는 신의 땅이지요.” 남자가 말한다. “너무 오래 묵으면 떠나기 싫어질 겁니다. 사람 속으로 자라 들어오는 구석이 있는 곳이라.”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이 풍경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저희 휴가는 삼 주뿐이지만, 계속 살고 싶어지는 이유는 알겠네요.”
“하룻밤에 오십 달러로 하죠. 그러니 백 달러 선불입니다.”
“정말 저렴하네요!”
“관광객한테 바가지 씌울 생각은 없어요. 좋은 사람들은 하룻밤 편히 잘 자격이 있고, 별채도 기본적인 것만 갖춘 곳이니까.”
“정말 친절하시네요.” 메리가 말한다. “고맙습니다.”
나는 지갑을 열고 노란색 오십 달러 지폐 두 장을 꺼낸다. 호주의 플라스틱 지폐는 색깔이 너무 선명해서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진짜 돈 같지가 않다. 남자는 돈을 받아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저는 짐 폴커크입니다.” 내가 말한다. “이쪽은 제 아내 메리고요.”
그가 코를 훌쩍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믹 캐럴입니다.”
“따님인가요?” 메리가 묻는다.
“실비라고 합니다.”
메리가 여전히 그네를 타며 작은 소리로 노래하는 아이에게 몸을 돌린다. “안녕, 실비.”
“말수가 적은 애예요.”
“아. 아주 예쁘네요.”
“제 엄마를 닮았지요.” 그는 잠시 딸을 빤히 바라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제 엄마를 꼭 닮았어요.”
“부인께서는..?” 적절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 말끝이 흐려진다.
“아뇨, 떠났어요.”
잠깐 어색한 순간이 흐른다. 떠났다. 세상을 떠났거나 두 사람을 버리고 떠났거나, 어느 쪽이든 예의 바르게 대화를 이어 갈 소재는 아니다. 어느 쪽이든 아이가 안쓰러워 잠시 가슴이 아프고, 메리의 눈에도 슬픔이 스쳐 가는 게 보인다. 여기에는 엄마 없는 아이가 있고, 메리는 아이 없는 엄마다.
나는 살살 그네를 타는 아이 앞에 쪼그려 앉는다. “만나서 반가워, 실비.”
아이의 옅은 눈동자가 내 쪽으로 돌아오지만 그네는 계속 탄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종이처럼 얇고 여름 산들바람처럼 조용하다. “할머니, 할머니, 위에 앉아서, 모든 걸 보고 사랑을 삼키네.”
“신경 쓰지 마세요.” 캐럴이 말한다.
“이렇게 외진 곳이면 친구도 별로 없겠어요.” 메리가 말한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집에서 가르칩니다.” 캐럴이 말을 자른다. “아무튼 별채는 저쪽, 목초지 건너편에 있어요.” 그가 왼쪽을 가리킨다. 아까 숙박비를 생각하면서 바라보던 쪽이다. “차를 타고 입구로 다시 나가서 왼쪽으로 꺾으세요. 이백 미터쯤 가다가 다음 출입구로 들어가면 됩니다. 언덕을 올라가면 꼭대기에 별채가 있어요. 나무들 사이로 조금 들어가 있습니다. 안에 뒤져 보시면 필요한 건 다 나올 겁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메리가 킥킥 웃는다. “저 사람 꽤 이상하다!”
“시골 사람이잖아.” 내가 말한다. “혼자 떨어져 살면 사람이 이상해져.”
“그 어린 딸도 그렇고. 참 안됐어. 기껏해야 여덟이나 아홉 살쯤 됐겠지?”
“그 정도겠지. 혹시 아이한테…… 있잖아…… 인지 능력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캐묻지 않는 게 좋겠어.” 메리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 금빛 햇살에 반짝인다. 나는 아내가 우리가 잃은 딸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안다. 제대로 품어 보지도 못한 딸. 파랗게 질린 채 움직이지 않고 태어난 우리 아멜리아. 메리는 언제나 아멜리아를 생각한다.
“다 왔다!” 내 목소리가 의도한 것보다 더 크고 들뜬다. 메리의 슬픔을 막아 보려는 것이다.
“와!”
와, 소리가 나올 만하다. 별채는 크지 않고 사실상 큰 헛간이나 다름없지만, 둥그스름한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아 한쪽에는 유칼립투스 숲이 있고 반대쪽으로는 끝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안에는 낡았지만 잘 관리된 소파와 안락의자가 놓인 작은 거실 공간이 있고, 가로세로 육 피트인 커다란 전망창으로 그 끝없는 풍경이 내다보인다. 한쪽 구석에는 간소한 주방이 자리 잡고 있다. 더블 침대와 옷장이 간신히 들어가는 침실, 그리고 변기와 세면대와 샤워 부스가 빽빽하게 들어찬 작은 욕실이 이곳의 전부다.
“작지만 정말 아름다워.” 메리가 숨을 내쉬듯 말한다.
손수 지은 곳인 듯, 들보 하나와 구석구석마다 솜씨가 배어 있다.
우리는 가방과 얼마 안 되는 물품을 풀어 놓는다. 저녁으로 먹을 레드 와인과 포트 누들 컵라면이다. 시골에서 잠깐 머무는 데는 그거면 충분하다. 읍내가 너무 붐벼 숙소를 구하지 못한 게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보석 같은 곳은 절대 찾지 못했을 테니까.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별채 밖에서 비바람에 은빛으로 바랜 나무 의자에 앉아, 멀리 떨어진 언덕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던 하늘은 옅은 물빛이 되었다가 남빛으로 어두워지고, 별이 빛나기 시작한다. 와인 한 병을 다 비울 무렵에는 밤이 깊어져 하늘이 반짝이는 빛의 장막으로 덮이고, 은하수가 지평선에서 반대편 지평선까지 두툼한 띠를 이룬다. 캐럴의 농가는 보이지 않고 사람이 산다는 다른 흔적도 없다. 나무들이 여기저기 뾰족하게 솟은, 굽이치는 땅의 윤곽만 보인다. 온 세상에 우리 둘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믹 캐럴의 말이 맞았다. 이 풍경이 사람 속으로 쉽게 자라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사람이 이 풍경 속으로 자라 들어가거나.
“그 애랑 이런 걸 함께 보고 싶었어.” 메리가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알아. 나도 그래.”
“어쩌면 저 위 어딘가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나는 조금도 그렇게 믿지 않지만, 메리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지.”
“너무 불공평해.” 은은한 별빛 속에서 눈물이 반짝이며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른다.
“알아. 다시 해 보자, 응? 당신이 준비되면. 언제든 당신이 준비되면.”
“호텔하고 식당이 있었으면 했는데.” 메리가 너무나 티 나게 화제를 바꾸며 말한다. “대신 이런 곳에 오게 돼서 좋아.”
“나도.”
잠시 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간다. 둘 다 피곤하고 와인에 나른해진 상태다. “이것 좀 봐.” 오래된 옷장에서 꺼낸 침구로 잠자리를 준비하던 메리가 말한다.
침실 안쪽 문틀에 눈 하나가 새겨져 있다. 그것을 보자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여기도 있어.” 나는 거실로 가서 커다란 전망창의 창틀 위쪽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한다. 양 끝이 뾰족하고 가운데 동그라미가 있는 단순한 타원형의 눈이 하나 더 있다. 거의 눈을 나타내는 상형문자 같다.
메리가 내 옆에 서서 미간을 찌푸린다. “뭐 하려고 새겨 놓은 걸까?”
“장식?” 나 자신도 그 대답을 믿지 않는다. 어쩐지 우리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다.
메리가 비명을 지르고, 갑자기 정적을 깨뜨리는 소리에 내 심장이 덜컥한다. “왜 그래?”
메리가 전망창을 가리킨다. 이제 창은 우리와 가구를 비추는 검은 거울이 되어 있다. “얼굴이 있었어!”
“얼굴?”
“누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어!”
“캐럴 말이야? 아니면 그 사람 딸?”
메리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젓는다. “여자였어. 할머니. 창에 비친 것들 때문에 잘 안 보였어.”
“창에 비친 당신 얼굴은 아니었다는 거지.”
그녀가 나를 노려본다. 내 질문이 암시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다.
“나가서 확인해 볼게.”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작은 오두막을 두 바퀴 돈 뒤, 비포장 진입로를 되짚어 내려가 유칼립투스나무 숲 가장자리 안쪽까지 살펴본다.
“아무것도 없어.” 안으로 돌아와 말한다. “빛 때문에 잘못 보였나 봐.”
메리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귀를 기울인다. “저 소리 들려?” 그녀가 속삭인다.
귀를 곤두세우지만 밖에서 마른 잎 사이를 지나는 산들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무슨 소리?”
“노랫소리?” 그녀도 확신하지 못한다.
“난 아무것도 안 들려.”
메리가 오두막 문으로 가서 문을 열고 밤을 내다본다. 길게 느껴지는 일 분이 지나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한다. “이젠 안 들려.”
우리는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든다. 불을 끄자 오두막은 칠흑같이 어두워진다. 동굴 같은 어둠이다. 침대 위쪽 창문은 별빛 덕분에 심연의 어둠보다 조금 옅은 숯빛이지만, 밤에 고치처럼 감싸여 누운 우리에게는 빛이 조금도 닿지 않는다. 달은 없다.
몇 시간 뒤, 잠에서 깨니 오줌이 마렵다. 화장실에서 창문 너머로 기묘하게 일렁이는 빛을 본다. 캐럴의 농가 쪽 높은 하늘에서 흔들리는 창백한 녹색 빛.
내가 침대로 기어들어 가자 메리가 웅얼거린다.
“호주에서도 북극광이 보이나?” 내가 묻는다.
“남극광이지. 하지만 이렇게 북쪽에서는 안 보일걸.” 그녀의 목소리는 잠에 취해 뭉개진다. “왜?”
“그냥.”
다시 잠들려는데, 문 위에 새겨진 눈이 나를 내려다보는 게 보인다. 눈이 깜박이고 나는 화들짝 놀란다. 메리가 불만스러운 신음을 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가운데 문틀을 뚫어져라 바라보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조각은커녕 문간조차 간신히 분간할 수 있을 정도다. 아까도 보였을 리가 없다. 꿈을 꾼 게 틀림없다.
시간이 흐르자 잠이 다시 스며들지만, 나는 편히 자지 못한다. 나무 사이의 은밀한 움직임, 할머니에 관한 노래를 부르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보며 느낀 불안, 하늘의 이상한 빛들. 동이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에서 깨니, 하늘은 우리가 본 갈라앵무새처럼 분홍색과 회색이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일어나 차에 먹을 게 있는지 확인한다. 빵과 햄, 달걀, 멸균우유, 인스턴트커피가 있다. 아침 식사로 충분하다. 오두막으로 돌아와 식사를 준비하고 나자 메리가 눈을 비비며 나온다.
“내가 당신하고 결혼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녀가 내게서 머그잔을 받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김을 들이마신다. “으음.”
아침을 먹고 우리는 호주의 뜨거운 햇볕과 숲에서 풍기는 마른 유칼립투스 향을 즐기며 시골길을 걷는다. 메리는 나무들 가장자리에서 코를 들이밀며 돌아다니는 웜뱃과, 머리 위에서 우리를 보고 웃어 대는 쿠카부라들을 보고 기뻐한다.
“나한테 필요했던 게 이거야.” 옅은 색 바위에 앉아 쉬면서 그녀가 말한다. “이렇게 탁 트인 곳. 하늘이 이렇게 넓은 거 본 적 있어?”
“끝이 없지? 며칠이고, 몇 주고 걸어도 사람 하나 못 만날 것 같아.”
우리는 만족스러운 침묵 속에 한참 앉아 있다가, 메리가 말한다. “저녁에 먹을 게 필요하겠네.”
“마을로 돌아가서 식당이 있는지 볼까?”
“아니, 여기 있자. 마을은 축제로 북적이잖아. 난 북적이는 데는 싫어. 이런 게 좋아.”
“그래. 점심은 남은 빵하고 햄으로 먹고, 차로 돌아가서 여기서 해 먹을 걸 사 오면 되겠다.”
메리가 내 무릎 위에 놓인 손을 자기 손으로 덮는다. “당신이 다녀와 줄래? 이기적인 거 아는데, 이… 호젓함을 깨고 싶지 않아. 그 조그만 마을조차 버거울 것 같아.”
그녀의 평온한 얼굴을 보자 혹시라도 품었을 망설임이 모두 녹아내린다. “물론이지. 난 괜찮아.”
“고마워! 당신이 골라 오면 내가 요리할게, 응?”
“좋아.”
“와인도 더 사고.” 그녀가 옅게 미소 지으며 윙크하고, 나는 그것이 나중을 위한 약속이라는 걸 안다. 짜릿한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가 아랫배 깊숙이 내려앉는다. 꿈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했지만, 이제는 다시 밤이 기다려진다.
오랫동안 야외를 즐기다 보니 생각보다 늦게 출발한다. 차를 몰고 언덕을 내려갈 때는 오후 세 시가 다 되어 있다. 반 시간 뒤 마을에 도착하니 메리의 말이 맞다. 이 작고 외진 마을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마을은 졸린 듯 조용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말한 축제 때문에 사람들이 있을 줄 알았다. 어쨌든 나도 언덕 위에 계속 있었으면 싶다.
중심가에는 개별 점주가 운영하는 식료품점 중 하나인 IGA 매장이 있다. 스테이크용 고기와 통옥수수, 삶아 먹을 감자를 산다. 작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벨기에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한 통 집는데, 메리가 좋아할 것이다. 몇 집만 더 올라가면 술집이 있어, 와인을 파는지 물으러 들어간다.
안은 조용하고, 거친 나무 바닥 위로 높은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먼지가 떠다닌다. 먼지를 뒤집어쓴 주민 여섯 명이 차가운 맥주를 손에 들고 있고, 맥주는 햇빛에 금빛으로 반짝인다. 내가 들어가자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데, 이토록 혼자 겉도는 기분은 처음이다.
바에 다가가자 대화가 멎는다. 기껏해야 스물다섯쯤 됐을, 몸매에 굴곡이 뚜렷한 젊은 여자가 활짝 웃는다. “안녕하세요, 손님. 뭘 드릴까요.”
“가져갈 수 있는 와인도 파나요?”
“와인!” 뒤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외치고, 여기저기서 거친 웃음이 터진다.
“저 멍청이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손님. 레드로 드릴까요, 화이트로 드릴까요?”
“레드로 주세요.”
“메를로하고 시라즈가 있어요.”
갑자기 무엇을 고를지 몰라서, 고르지 않기로 한다. “하나씩 살까요?”
“그러세요!” 그녀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하게 맞아 준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다른 주민들도 악의 없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캐럴네에 묵고 있지요, 예?” 한 남자가 말한다. 고양이 한 마리쯤 숨길 수 있을 만큼 수염이 덥수룩하다.
“맞아요. 거기 정말 좋더군요.”
“여기까지 무사히 내려온 걸 보니 반갑구먼.”
두어 명이 웃음을 터뜨리고 다른 이들은 시선을 돌리자, 내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그만해요, 잭.” 바에 있는 여자가 말한다. “여기 있어요, 손님.”
와인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가면서, 주민들이 보내는 인사와 미소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 보인다. 축제가 열리는 마을의 유일한 술집치고는 유난히 조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몰고 돌아가며 햇살과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풀 냄새 나는 바람을 즐긴다. 메리를 설득해 오늘 오후에 와인 첫 병을 따고, 그 약속을 조금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두막에 돌아오니 메리가 없다. 사 온 것들을 정리하고, 작은 주방 조리대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와인을 놓은 다음 밖으로 나간다. 전망창 옆의 낡은 의자에도 그녀는 없지만, 창틀 바깥쪽에 새겨진 눈이 또 하나 눈에 들어온다. 눈은 굽이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돌아서는 순간, 눈이 깜박인다.
심장이 한 차례 더 세게 쿵 내려앉고, 나는 홱 돌아서서 뚫어져라 바라본다. 오래되어 비바람에 닳아 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뻗어 동그란 눈동자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부드럽고, 물기가 있고, 만지자 섬뜩하다. 손을 홱 거두고 몸을 더 가까이 기울이지만, 그저 나무에 새긴 단순한 조각으로만 보인다. 다시 만져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눈을 등지고 언덕들을 바라본 다음, 오두막 옆으로 가서 유칼립투스나무 숲을 살핀다. 옅은 색 나무줄기들 사이에서 무언가 움직이자 미소가 번지려다가, 넓적한 코로 헤집고 다니는 낯익은 웜뱃임을 깨닫는다.
어디 있는 거지?
내가 가게에 다녀오는 데 걸릴 시간을 실제보다 길게 잡는 바람에, 그렇지 않았다면 나섰을 산책보다 더 긴 산책을 나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바위에 다시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광대한 공간 속에서 한없이 작아진 채, 끝내 세상에 오지 못한 우리 아이를 떠올리며 뺨 위로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상상한다. 어쩌면 나와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반 시간이 지나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어느 방향으로든 갔을 수 있다. 막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걱정이 뼛속을 갉아먹고, 답답함은 마음속에서 분노에 가까워진다. 이런 곳에서 길을 잃으면 영영 발견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계속 걷다 보면 두 마일 안에 도로나 집이 나오는 영국과는 다르다.
끝이 없지? 며칠이고, 몇 주고 걸어도 사람 하나 못 만날 것 같아.
불현듯 결심이 서고 나는 차로 돌아간다. 길을 돌아 캐럴의 농가까지 가는 데는 차로 이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메리는 오두막에 쪽지를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으로 왔을지도 모른다.
차를 세우니 실비가 그네에 앉아 있다. 그네는 나직이 삐걱거리며 앞뒤로, 앞뒤로 움직이고, 아이의 입술은 끊이지 않는 듯한 읊조림으로 떨리고 있다.
“안녕.” 차에서 내려서 말한다. “메리 봤니? 내 아내 말이야. 어제 같이 여기 왔었잖아, 기억나?”
“못 봤는데요.”
돌아보니 믹 캐럴이 집 모퉁이를 돌아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다. 한쪽 팔 아래 닭을 끼고 있는데,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피가 쏟아져 땅과 다 해진 장화에 튄다. 핏방울이 흙 위를 구르면서 먼지를 묻혀 바닥에 연갈색의 납작한 알약 모양으로 변하는 모습에 나는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본다.
“아까 차 타고 지나가는 거 봤어요. 마을에 다시 갔었어요?”
“저녁거리를 좀 사러 갔어요.”
“거기 두고 온 건 아니죠?”
기가 막힌다. 내가 우산이나 모자를 깜빡하듯 아내를 잊고 오기라도 한다는 건가.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는 같이 안 갔어요. 그런데 돌아와 보니 없더군요.”
“산책 나간 거 아뇨? 걷고 싶다고 하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됐어요.”
캐럴은 코로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좌우를 살핀다. “이 일대가 워낙 넓어서.”
“길을 잃기 쉬운가요?” 목소리가 떨리는 게 싫다. 이 거칠고 험상궂은 남자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창피하지만, 아내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을 사과할 생각은 없다.
캐럴이 어깨를 으쓱한다. “며칠이고 걸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부인이 그 정도로 분별이 없진 않잖소. 멀리까지 보이기도 하고. 이쪽으로 와봐요.” 그가 몸을 돌려 자기 집 옆을 지나 뒤로 걸어간다.
어리둥절한 채 따라가니, 그는 다음 모퉁이에 서서 집 뒤로 펼쳐진 넓고 얕은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그네가 삐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사방이 거의 고요하다. 이쪽에서 보는 풍경도 똑같이 웅장하다.
캐럴이 언덕 위를 가리킨다. 유칼립투스 나무들의 우듬지가 간신히 보인다. “저 위에 묵는 오두막이 있소. 건물은 안 보여도 나무는 보이잖소.” 그의 팔이 그곳에서부터 풍경 전체를 가로지른다. “저기 어디에 있든 저 언덕은 보이고, 웬만한 데서는 이 집도 보이오. 내 생각엔 너무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데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소. 길을 잃은 것 같진 않아요.”
그의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불안하다. 시간이 늦었다. 거의 다섯 시이고, 한 시간도 안 돼 어두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호주의 가을은 고향의 여름 같지만, 저녁은 길지 않다. 아이의 그네가 삐걱, 삐걱, 삐걱거린다.
“오두막으로 돌아가봐요. 틀림없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농부를 바라보니 그의 미소는 가면을 쓴 사람처럼 얼굴 위에 그려져 있다. 눈이 반짝인다. 마치 그 안에서 별 천 개가 소용돌이치는 듯하다. 은하들이 뒤틀리는 듯하다. 나는 정신을 다잡고 집 앞으로 돌아간다. 무력감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다. 메리, 어디 있어?
내가 차에 뛰어들어 탈 때도 실비는 여전히 그네를 타고 있다. 저 아이는 다른 건 전혀 안 하나?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시동 장치에 쑤셔 넣는 동안 캐럴이 모퉁이를 돌아 느릿느릿 걸어온다. 그가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열쇠를 돌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돌린다. 아무 반응도 없다. 이것저것 다시 확인해도 전부 정상이라, 열쇠를 뽑았다가 다시 꽂고 또 시도한다. 딸깍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운전석 문이 열려 나는 화들짝 놀란다. 캐럴이 몸을 숙이고 있다. “차에 문제 있소?”
“시동이 안 걸려요.” 나는 멍청하게 말한다. “렌터카인데, 새 차예요. 주행 거리도 겨우 이만 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고요.”
캐럴이 몸을 펴고는 비가 올지 살피듯 하늘을 본다. “시간이 늦었네.” 그가 말한다. 엉뚱한 소리에 나는 당황한다. “지금쯤 부인은 틀림없이 오두막에 돌아와 있을 거요. 댁이 어디 갔나 궁금해하고 있겠지. 거기까지 걸어가는 데 십 분쯤밖에 안 걸려요. 차는 여기 두고 올라가봐요. 내 형제가 내일 아침 일찍 들를 거요. 정비사거든.”
나는 영문을 몰라 그를 빤히 바라본다.
“오늘 밤 어디 갈 계획은 없지 않소?”
“그렇긴 하죠.”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올라가서 부인 만나고, 저녁 잘 보내요. 이건 아침에도 여기 있을 테니.”
나는 차에서 나와 그의 딸 옆에 쪼그려 앉는다. 절박함에 손이 떨린다. “실비, 우리 아내가 여기 지나가는 걸 정말 못 봤니? 정말 확실해?”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면서도 계속 입술을 움직인다. 힘없는 노랫가락 같은 목소리가 부드러운 숨결의 물결에 실려 나온다. “할머니, 할머니, 위에 앉아서, 모두 보고 사랑을 삼키네. 할머니, 할머니, 어디로 갔나요, 저 멀리인가요, 저 아래인가요…”
얼굴은 축 늘어져 있지만 눈은 애원하고 있다. 그 안에서 두려움을 본다. 뼛속까지 서늘하게 하는 깊은 공포를. 눈물 한 방울이 아래 눈꺼풀에 위태롭게 맺혀 있다.
“애가 뭘 잘 알아듣질 못해요.” 캐럴이 말하고, 나는 아이의 몸에 전율이 스치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이는 이 남자를 무서워한다. 아이를 때리나? 더 심한 짓을 하나?
“어서 올라가봐요.” 캐럴이 말한다. “부인이 애태우고 있을 테니.”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메리에 대한 걱정이 더 크지만, 잊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메리를 찾아야 한다. 그게 다다. 오두막까지 걸어 올라가는 데는 십오 분 가까이 걸린다. 언덕으로 난 길은 차로 지나갈 때 생각했던 것보다 가파르다. 도착할 즈음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가고 있고, 오두막 안이 어둡고 어디에도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나는 낙담한다. 문을 밀어 열고 메리의 이름을 외친 뒤, 뛰어 들어가 침실을 확인한다. 어쩌면 여태 낮잠을 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침대의 이불까지 잡아당겨 벗긴다. 물론 아내는 그곳에 없다.
불을 켜고 옷장을 연다. 아내가 그 안에라도 있을 것처럼. 문 위에 새겨진 눈이 나를 바라본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 동안 그것이 깜빡인다. 느리고도 분명하게. 나는 한두 걸음 뒤로 비틀거리다가 어두운 직사각형의 침실 창문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언뜻 본다. 더 보려고 홱 몸을 돌리자 휙 사라지지만, 그것은 얼굴이었다. 늙고 둥근 얼굴에 곱슬곱슬한 회색 머리카락, 활짝 웃는 넓은 입은 이가 없어 헐거웠다. 나는 몇 초 만에 밖으로 뛰쳐나가 오두막 둘레를 두 바퀴 돌지만, 아무도 없다.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고, 골짜기 위 하늘에서 일렁이는 초록빛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극광. 하지만 이렇게 북쪽까지 올라오지는 않을 텐데.
대체 저게 뭐지?
나무들 사이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온다. 여자가 노래하고 있다. 그네에 겁에 질려 앉아 있던 실비의 노래와 가락이 비슷하다. 나무들 사이로 몇 걸음 들어간 뒤에야 나는 멈춰 선다. 심장이 쿵쿵 뛴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을 것이다. 나는 안다. 메리가 간 곳도 저기였을까? 하지만 그때는 어둡지 않았다. 아내는 연한 하늘색 하늘 아래 따스하게 내리쬐던 그 아름다운 가을 햇살 속으로 나갔다.
메리를 찾아야 한다. 사람들을 이리로 데려와 수색해야 한다. 캐럴네에는 전화가 없고, 내 차는 어쩐 일인지 고장 났지만, 캐럴에게는 차가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픽업트럭을 봤다. 틀림없다. 그걸 타고 마을로 가서 도와줄 사람들을 모아야겠다.
이상하리만큼 졸린 듯하던 그곳, 거의 텅 비어 있던 술집이 떠오른다. 꽃 축제 때문에 숙소가 전부 찼다던 마을인데. 꽃을 본 기억이 없다.
언덕을 내달려 캐럴의 농가로 돌아가는 데는 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가는 내내 다리가 몸 아래에서 튕겨 나갈 것만 같고, 발이 돌과 흙 위에서 미끄러지고 밀린다. 얼굴로 땀이 줄줄 흐르는 채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무언가에 걸려 멈칫한다. 잠깐 동안은 그게 뭔지 알 수 없다. 실비가 그네에 없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다. 내 차. 시동이 걸리지 않던 렌터카가 사라졌다. 기억을 필사적으로 헤집자 시동 장치에 꽂힌 열쇠가 떠오른다. 오두막으로 떠날 때도 그대로 꽂혀 있었다. 하지만 시동이 안 걸렸는데. 누군가 일부러 손을 써둔 게 아니라면. 누가? 여기 또 누가 있지?
집 안에서 나를 응시하는 눈들을 보고 나는 흠칫한다. 실비의 창백한 얼굴이 막 생겨나는 달처럼 앞쪽 창문에 떠 있다. 진입로의 흙바닥 위로 그림자들이 기이하게 유동하며 움직이고, 고개를 들자 저 높은 곳에서 연둣빛 띠들이 뒤틀리고 있다.
“캐럴!” 내가 외친다. “믹 캐럴!”
대답이 없다. 실비가 나와 눈을 맞춘다. 또다시 그 애원하는 눈빛이다. 그러더니 누가 뒤에서 거칠게 잡아당긴 것처럼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그림자 속으로 홱 끌려 들어간다.
내 구두 뒤축에 차인 현관문이 안쪽으로 벌컥 열려 벽에 부딪힌 뒤 튕겨 나온다. 되튀는 문에 맞지 않으려고 한 손을 들어 막자 충격이 팔꿈치를 울린다.
“캐럴! 내 차 어딨어? 내 아내는 어디 있냐고!”
거실은 촛불만 켜져 있어 어둑하고, 사방에 낡아빠져 천이 다 해진 가구들과 검은 목재로 만든 낮은 탁자가 있다. 벽에는 사슴 두개골이 걸려 있지만 어딘가 잘못됐다. 너무 길고 가늘며, 뿔은 너무 굽어 있다. 그 새겨진 눈들이 탁자에도, 문틀과 창틀에도, 어디에나 있고, 모두 제멋대로 순서를 달리하며 천천히 깜빡인다. 내 주위 사방에서 느릿느릿 파르르 움직이며 거의 나를 에워싸고 도는 것만 같다.
다락 공간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아래쪽 난간 기둥에도 하나가 있다. 밖에서 보면 단층집이지만, 다락을 방으로 개조한 것이 분명하다. 계단 꼭대기에는 문 하나만 있고 다른 것은 없다. 나는 문을 밀어 열고 안으로 뛰어든다.
커다란 방 하나다. 경사진 지붕 아래로 천장이 낮고, A자형 골조의 중앙 부분이 가장 높다. 널빤지 바닥에는 수백 개의 기호가 어지럽게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눈도 있지만, 상형문자처럼 생겨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다른 모양도 무수히 많다. 드러난 서까래들에도 똑같이 기호가 새겨져 있고, 내 주위 사방에서 천 개의 눈이 제각기 천천히 깜빡인다. 다락 맨 끝에는 나뭇가지를 서로 엮어 만든 의자가 있다. 거의 왕좌나 다름없다. 그 형태는 투박하면서도 뒤엉킨 혈관이나 신경을 그린 지도처럼 기이하게 생물학적이다. 그 위에 늙은 여자가 앉아 있다. 마르고 뼈만 앙상하며, 얼룩진 흰 속옷 한 벌만 입고 있다. 머리에는 회색 곱슬머리가 수북하고, 웃고 있는 입은 이가 없고 축축하다. 유일한 빛은 여기저기 꽂힌 어두운 색 밀랍 양초들에서 나오며 깜빡거린다.
여자 옆 바닥에 무언가가 구겨져 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이 메리의 원피스라는 걸 알아보자 심장이 덜컥한다. 그 옆에는 아내의 신발도 있다. 늙은 여자는 무언가를 빨고 있고, 늘어진 입술이 물결친다. 하얗고 울퉁불퉁한 작은 뼈처럼 보인다.
“그 애를 보러 왔지, 그렇지.” 늙은 여자가 말한다. 목소리는 점액이라도 낀 듯 걸쭉하다.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상실이 속에서부터 파먹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내게 오지. 길을 잃은 자들과 상실을 겪은 자들, 억울한 자들과 슬픔에 짓눌린 자들. 얼마나 달콤한지, 그들의 절망과, 희망이 빠져나간 빈자리가.”
충격에 온몸이 떨리고, 다리는 젤리처럼 흐물거리면서 동시에 돌처럼 단단하게 느껴진다. 근육 하나라도 움직이려 들면 뼈가 사라진 듯 바닥으로 허물어질까 봐 두렵다. 나무로 된 눈들이 모두 깜빡인다. 내 뒤에서 목구멍을 울리는 낮은 웃음소리가 난다.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고 믹 캐럴이 들어선다. 짐승 같은 웃음에 얼굴이 쩍 갈라져 있다. 늙은 여자가 불가능할 만큼 멀리 뒤로 고개를 젖히자 몸속에서 무언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느다란 어깨가 두꺼워지며 솟아오르고, 입이 벌어지더니 계속 벌어진다. 점점 더 넓게. 여자에게서 통곡 같은 울부짖음이 쏟아져 나와 내 귀를 찢어놓는다. 소리는 높고, 더욱 높아지며, 어쩐지 자연의 소리보다 더 거대하다. 몸이 부풀고 속옷이 찢어져 떨어진다. 여자가 나뭇가지 왕좌에서 앞으로 떨어져 나무 바닥에 철썩 하고 살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처박힌다. 여자는 살이 불어나 하얗게 꿈틀거리는 벌레가 되어가며 점점 더 커진다. 앞쪽으로 향한 입이 벌어지고, 그 위의 눈은 반죽 같은 살 속으로 가라앉는다. 반짝이는 초록색 얼음 조각 두 개다. 넓어지는 아가리 속 깊숙이 끝없는 암흑이 보이고, 그 속에서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듯하다. 불가능할 만큼 아득한 곳에서.
캐럴의 뼈마디 불거진 손이 내 위팔을 움켜쥔다. 쇠처럼 단단하고 억센 악력이다. 그 손길에 나는 움직인다. 멀리. 지금은 나보다 커져, 몸을 물결치듯 망원경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며 나무 바닥을 뒤덮고 있는 이 악취 나는 벌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캐럴에게 붙잡힌 곳을 축 삼아 몸을 돌리며 반대쪽 팔꿈치를 치켜들어 그의 얼굴을 가로질러 후려친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코에서 선홍빛 피가 터져 나오고, 그는 놀라 숨을 들이켠다. 그가 뒤로 비틀거리며 손아귀의 힘이 풀린다. 나는 팔을 뿌리치고 달아나, 발을 헛디디며 계단을 내려간다.
노파의 울부짖음은 하늘을 찢을 듯하다. 그 소리에 무릎의 힘이 빠져 비틀거린다. 현관문은 아직 활짝 열려 있고, 그 너머 진입로의 흙이 옅은 초록빛을 내며 일렁이는 것 같다. 앞서 캐럴이 넓은 계곡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집 옆으로 데려갔던 일이 떠오른다. 차를 본 곳이 거기다. 허물어진 건초 헛간 옆에 반쯤 녹슨 낡은 픽업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모두에게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사니, 열쇠를 꽂아두는 사람이기를 기도한다.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또 한 번 귀를 찢는 울부짖음에 귓속이 울리는 가운데 집 옆으로 전력 질주하다가, 앞을 가로막고 선 실비를 보고 미끄러지듯 멈춰 선다. 실비는 여전히 맨발에 옅은 파란 꽃무늬가 있는 헐렁한 면 원피스를 입고 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흐른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아이의 목소리는 유리를 긁는 바늘 같다. 힘없고 절박하다.
“데려가 달라고?” 내가 멍청하게 중얼거린다.
“그 사람이…… 저한테 이상한 짓을 해요. 그리고 할머니는 이제 할머니가 아니에요.”
가엾은 아이. “가자!”
나는 아이의 위팔을 잡았다가 뼈만 남은 듯한 앙상함에 놀라며 아이를 끌고 간다. 픽업트럭은 그대로 있다. 문을 열고 아이를 조수석 쪽으로 밀어 넣는데, 시동 장치에 매달린 열쇠가 눈에 들어와 가슴이 뛴다. 문을 세게 닫으며 열쇠를 돌린다. 제발 시동이 걸리기를 기도한다. 엔진이 컹 소리를 내며 살아나더니 금속 통 안의 돌멩이들처럼 불안하게 덜덜거린다. 그래도 돌아간다.
나는 거세게 후진하다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차를 돌려 대문을 향한다. 캐럴이 비틀거리며 베란다로 나온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으르렁거리는 그의 이가 피 사이에서 환하게 드러나고, 나는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다. 픽업트럭이 흙과 자갈을 걷어차더니, 우리는 차 뒤쪽을 좌우로 흔들며 대문을 통과한다. 하마터면 길가 빗물 배수로에 차를 처박을 뻔하지만, 나는 핸들과 씨름해 차를 바로잡는다. 우리는 그 광기에서 벗어나 밤을 가르며 질주한다.
메리! 아아, 메리.
숨이 거칠고 가쁘다. 심장이 갈비뼈를 어찌나 세게 두드리는지 뼈가 휘는 것 같다. 나는 속도를 조금 줄이고 차를 제어하며 도로를 주의 깊게 살핀다. 실비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누워 내 무릎에 머리를 얹는다. 허벅지에 닿은 아이의 떨림이 느껴진다.
아이가 조그만 한 손을 뻗어 시동 장치에서 열쇠를 뽑는다.
차의 시동이 꺼지고 관성으로 굴러간다.
“뭐 하는 거야?” 내가 말을 더듬는다.
아이가 몸을 일으켜 앉는다. 입이 벌어지고, 어깨와 목이 굵어지며, 연동 운동 같은 맥동이 등을 타고 물결치며 올라간다. 아이의 울부짖음이 수정처럼 날카롭게 내 귀를 찢는다.
진행자 해설
앨런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걸프에서 온 이야기들』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계속해 온 것처럼, 호주 시골의 그 지극한 기이함을 다시 한번 탐구한 작품입니다. 제게는 이야기가 끝없이 솟아나는 우물이에요!’
이 이야기의 그토록 많은 부분이 알아가는 과정에 관한 것인데, 끝에 가서도 우리가 아는 건 여전히 그토록 적다는 점이 저는 좋습니다. 알아가는 과정은 창조의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늘, 우리가 보거나 감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죠. 저는 그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좋습니다. 그것도 좋고, 그 과정이 감지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자신이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다정해지고, 조금 더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는 걸 볼 수 있을 때도 좋습니다.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 넉 달이 지난 지금, 저는 몸에서 그 변화를 봅니다. 심리 치료를 받은 지 십 년하고도 얼마가 더 지난 지금은 감정에서도 그걸 느낍니다.
하지만 알아가는 일은 해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의 바른 거짓말과 사회적 기대, 희망의 겹을 체계적으로 벗겨내는 일 말입니다. 여기서 백스터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고, 실제로 이 이야기 전체를 그 절개 도구로 만듭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갈 때의 불안감, 한층 날카로워진 주의력, 낯선 공간에서 살아갈 때의 생경한 감각. 저는 늘 그걸 호텔 객실에서의 크래시 줌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발을 신은 채 가구에 발을 올려놓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긴장을 풀려 할 때, 초점이 바뀌는 그 느낌 말입니다.
그리고 고립감, 점점 커지는 공포가 찾아오고, 당신은 그 등에 올라탑니다. 고삐를 쥐고 있다면 분명 자신이 통제하고 있는 거잖아요? 자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자신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도 그걸 깨닫지만, 동시에 그 사실을 똑바로 마주 보면 얼마나 극심한 공포에 빠질지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할 일을 일러주고, 분별 있게 행동하라고 타이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피운 모닥불 곁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들이 무엇을 태우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늦어질 때까지.
그때조차 우리에게는 진실이라는 차가운 위안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앨런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승리도, 카타르시스도 없습니다. 친절이라는 덫은 그 자리에 있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놓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는 순간, 우리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 끔찍한 사실을 배웁니다. 가해자는 인간만이 아니며, 그들이 하는 짓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는 것. 그들의 경악은 얼마나 달콤한지. 희망이 사라진 그들의 진공은. 아, 젠장. 정말 굉장한 작품입니다. 앨런과 그레이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