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 21 - "안나"
⚠️ 콘텐츠 경고 ⤴
데이비드는 목 옆의 흉한 딱지를 긁으며 벽을 따라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수를 세는 데 맞춰 손가락을 구부린다. 다 세고 나서 뒷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낸다. 때 묻은 두 손으로 작은 플라스틱 기기를 움켜쥔다. 손가락을 작은 빨간 버튼에 갖다 대며 깊이 숨을 들이쉰다.
딸깍
"오천오백사십삼 일이 지났다. 나와 내 사랑은 외부와 아무런 접촉도 없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또 보급품이 쌓여 있는 곳을 찾았다. 내가—우리가 살아가기에 충분한 양이다. 안나… 요즘 안나가 말이 없다—고립된 생활이 우리 둘에게 모두 타격을 준 모양이다. 어쩌면 나갈 길이 없는지도—아니—길은 언제나 있다. 언제나. 우린 그저 그 길을 찾으면 된다."
딸깍
아침에 데이비드는 안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문을 나서며 정리를 좀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마가 조금 차갑지만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여긴다. 그는 몇 년 치 오물과 잡동사니로 가득한 평범한 방 한편에 꾸려 놓은 임시 거처를 떠난다.
또 다른 복도, 또 다른 창고, 또다시 무수히 이어지는 텅 비고 아무 생각 없는 방들, 출구를 찾지 못한 또 하루. 탐색을 마친 데이비드는 창고에서 들 수 있는 만큼 챙겨 온다—하루 더 연명하게 해 줄, 간신히 먹을 만한 온갖 것들이 든 통조림과 상자들이다.
문을 열자 나갈 때와 똑같은 방이 그를 맞는다. 빈 상자 더미를 헤치고 발을 끌며 흰 벽으로 다가간다. 그 벽에는 자신들이 있는 레벨의 주변 지형을 공들여 지도로 그려 놓았다. 그는 무디고 녹슨 주머니칼로 날마다 발견한 것들을 벽에 새겼다. 하루를 표시하는 금을 하나 더 새기려고 몸을 돌리다 오줌이 든 병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다행히 뚜껑은 닫혀 있다.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야… 딱 하나라고, 안나! 이 빌어먹을 쓰레기 좀 치우라는 거잖아—난 날마다 목숨 걸고 밖에 나가는데, 대체 뭘 위해서야—넌 하루 종일 여기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으라고! 지긋지긋해—네가 지긋지긋하다고!"
침묵.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벽을 응시하며, 대답은커녕 그에게 아는 체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더욱 격분한다. 그는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그녀의 양팔을 붙잡고 벽장으로 끌고 간다—그녀는 저항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다.
분이 풀리고 나서야 데이비드는 벽장을 나오며 문을 잠그고, 안나를 그 안에 밤새 가둬 둔다. 가방에서 직사각형 통조림을 꺼낸다. 고리를 젖혀 열다가 더럽고 깎지 않은 손톱이 깨진다. 데이비드는 상처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다른 손으로 통 안의 분홍빛 도는 흰 살덩이를 정신없이 퍼내 벌린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생선이라고 생각한다—냄새가 생선 같다. 다 먹고 나서는 날수를 기록하는 벽으로 가서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금을 하나 더 긋는다. 그는 입을 헤 벌린 채 서서 수를 센다.
딸깍
"오천오백사십사 일이 지났다. 나와 내 사랑은 외부와 아무런 접촉도 없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나—난 안나를 찾았을 때 정말 행복했다. 이 끝없는 단조로움 속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은 등대처럼 빛났다. 도자기 같은 피부, 곱슬거리는 금발에 둘러싸인 조각 같은 이목구비—온순하고, 고분고분한 내 사랑. 하지만 요즘은… 요즘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겐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리고–어… 진짜 여자가 필요하다. 내일도 출구를 찾을 것이다… 정말 뭐라도 찾았으면 좋겠다…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
딸깍
데이비드는 방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잠에 빠져든다.
딸깍
"오천 일이 지났다"
딸깍 , 딸깍
"오천 일이 지났다"
딸깍 , 딸깍
"…안나를 찾았을 때 행복했다…"
딸깍 , 딸깍
"…안나…"
딸깍 , 딸깍
"…진짜가 필요하다…"
딸깍, 딸깍
"…안나…"
딸깍 , 딸깍
"…안나…"
딸깍
자기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데이비드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옆 바닥에 둔 안경을 더듬어 찾는다. "거기 누구야?!" 벽장 문이 쾅 닫히면서 속이 빈 플라스틱 물체가 바닥에 달그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허둥지둥 일어나 주머니칼을 휘두르며 다가간다. 문을 홱 열자 안나는 그가 두고 갔을 때와 똑같이 바닥에 누워 있다. 그는 몸을 홱 돌려 방 안을 훑어본다—바닥의 잡동사니 사이에 놓인 작은 검은 녹음기에 시선이 멎는다. 뒷주머니에 손을 얹고 안나를 돌아봤다가 다시 녹음기를 본다. 데이비드는 녹음기를 집어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에서 떨어졌겠거니 생각하며 안나를 보고 어깨를 으쓱한다.
데이비드는 사과하며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뒤덮인 매트리스로 안나를 데려간다. 그녀는 말없이 그의 곁에 눕고, 주워 온 나무 상자들로 만든 임시 침대 협탁에 손이 부딪치며 딱 하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이어 침묵이 흐르고, 데이비드는 목에서 욱신거리는 딱지를 살살 긁으며 쉬려고 애쓴다.
데이비드는 또 다른 어수선한 창고를 터벅터벅 가로지르며 단조로움에 좀먹힌다. 그리고 또다시 칙칙하고 어두운 복도, 그러다—뭔가 다른 것,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거의 6년 만에 데이비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에 들어섰다. 그곳도 창고였지만, 늘 있던 물건들 대신 수영장 용품이 가득했다. 데이비드는 기쁨에 어쩔 줄 모른다—달라진 풍경에 감탄하며 통로에서 통로로 뛰어다닌다. 그는 정체 모를 절임이 든 새 병을 열고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그는 몇 시간 동안 들뜬 발걸음으로 창고를 돌아다니며 새로 발견한, 창고에서 갈라져 나가는 복도들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허기가 몰려오자 데이비드는 정신이 들고, 얼마나 오래 나와 있었는지 깨닫는다. 그는 채비를 하고 승전보를 전하러 집으로 향한다.
데이비드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채 엉성한 거처의 문을 활짝 연다—안나는 그의 존재도 모른 채 방 한가운데 앉아 있다.
"오늘 뭔가 찾았어!"
"아니, 출구는 아닌데—새로운 방이었어. 나—우리 거의 다 왔어…"
"알아, 출구는 아니지. 그래도… 그래도 성과는 있는 거잖아, 그렇지?"
그녀의 침묵에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는 안나에게서 떨어져 벽에 그린 지도 쪽으로 걸어간다. 벽에 새 방을 새겨 넣다가 그린 기억이 없는 구역을 발견한다—그래도 자기가 그렸을 것이다. "나 말고 누가 지도를 그렸겠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칼을 주머니에 넣는다.
딸깍
"오천오백사십오 일이 지났다. 나와 내 사랑은 외부와 아무런 접촉도 없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거의 다 왔다—느껴진다. 그 오랜 시간 끝에 처음 발견한 새로운 방이다. 드디어 이 좆같은 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안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나… 미리 말해서 우리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를 데리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출구를 찾으면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씨발, 여기서 나가야 한다."
딸깍
데이비드는 방 한가운데 쭈그리고 앉아 정신없이 정체 모를 고기 통조림 몇 개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안나를 데리러 가기 전에 빈 피클 병에 소변을 본다. 그녀를 잠자는 구석으로 데려가 잠시 달래 준 뒤 잠에 빠져든다.
데이비드는 잠에서 깨어 안나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목에 묻은 고름과 피를 닦아 내며 얼굴을 찡그린다. 자는 동안 딱지가 갈라진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어질러진 방 안을 살핀 뒤 벽장으로 걸어간다—천천히 문을 열자 안나가 안쪽 바닥에 누워 있다. 어젯밤 그녀를 여기에 가둔 기억은 없지만, 목의 통증과 뱃속의 허기가 금세 그 생각을 밀어낸다. 그는 문을 닫고 먹을 것을 찾으러 간다.
배를 채운 데이비드는 채비를 하고 새로 발견한 복도 중 첫 번째 복도까지 먼 길을 간다. 실망스럽게도 그곳에는 이미 백 번 본 것과 다를 바 없는 따분한 풍경이 이어졌다. 목이 바싹 마른 데이비드는 가방에서 수통을 꺼내 뚜껑을 돌려 열고 실온의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그는 역겨움에 몸을 홱 젖히며 수통을 바닥에 내던진다. 짙은 노란색 오줌이 주둥이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고인다.
"씨발,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일을 제대로 받아들일 새도 없이 그가 왔던 방향 어딘가에서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누구 있어요?!"
탈수로 목소리가 쉬어 있다. 그는 있던 방에서 넘어질 듯 튀어나와 비틀거리며 복도로 들어서다가 균형을 되찾는다. 자기처럼 그곳에 갇힌 가엾은 누군가를 만나리라 기대하며 수영장 용품 창고로 뛰어든다—하지만 아무도 없다. 언제나처럼 데이비드는 혼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데이비드는 창고에서 새 "물" 몇 병을 챙기고, 그중 여러 병을 실컷 마신 뒤 다시 길을 나선다. 열이 나는 듯하고, 평소보다 땀이 많이 나며, 목의 통증은 끊임없이 욱신거린다. 문을 여는 데이비드는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안나는 방 한가운데 앉아 있다. 데이비드가 돌아와도 아는 체하지 않는다.
"그래, 그래—또 헛수고였어—또 막다른 길이었다고."
"지금은 못—얘기하고 싶지 않아!"
데이비드는 빈 고기 통조림 깡통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짜증 섞인 신음을 낸다.
"너도 한 번쯤은 쓸모 있는 일을 좀 하지 그래."
그는 어질러진 방을 향해 크게 손짓하고는 몸을 돌려 지도를 마주 본다. 하지만 그 복도는 이미 지도에 그려져 있다—
"내가 했나…"
데이비드는 얼굴을 긁으려고 손을 들었다가, 딱지가 앉은 주머니칼의 차가운 강철이 뺨을 스치는 것을 느낀다.
"내가 했겠지—"
"아니, 난 괜찮아, 안나—"
데이비드는 비틀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두고 봐—그 빌어먹을 출구, 내가 찾을 테니까."
그는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아 벽장으로 끌고 간다. 그녀는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벽장을 나와 문을 잠근 데이비드는 금이 새겨진 벽까지 비척비척 걸어가 수를 세기 시작한다.
딸깍
"오천오백오십 일이 지났다…
오십… 팔?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십, 이십, 삼십, 사십, 오십, 육십, 칠십, 팔십, 구십, 백, 백십, 백이십, 백삼십, 백사십, 백오십, 백육십, 백칠십, 백팔십, 백구십, 이백…
…오천이백육십, 오천이백칠십, 오천이백팔십, 오천이백구십, 오천삼백, 오천삼백십, 오천삼백이십, 오천삼백삼십, 오천삼백사십, 오천삼백오십, 오천삼백육십, 오천삼백칠십, 오천삼백팔십, 오천삼백구십, 오천사백, 오천사백십, 오천사백이십, 오천사백삼십, 오천사백사십…"
…오천오백오십오, 오천오백오십육, 오천오백오십칠, 오천오백오십… 팔.
아니, 아니, 아니야. 분명 아닐 텐데…
딸깍
그의 등 뒤에서 옷장 문이 쾅 닫힌다. 데이비드는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따뜻한 액체가 어깨를 타고 흐를 때까지 목을 세게 긁는다.
"안나!"
그는 주머니칼을 꺼내려 손을 뻗지만, 주머니에 칼이 없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쓸모없는 년아, 너—너, 이 씨발—"
데이비드는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안나와 얼굴을 마주한다. 말이 목구멍 안쪽에 걸린다.
"하지만, 하지만, 넌 아니—넌 아니—"
안나의 팔이 틀에서 꺾여 나온 뻣뻣한 경첩처럼 부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그녀는 데이비드의 쇄골을 뚫고 가슴 위쪽에 그의 칼을 박아 넣는다. 그는 뒤로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지며 숨을 헐떡인다. 그의 두 손이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다급히 허공을 더듬는다. 그러다 오줌이 든 병을 넘어뜨리고, 쏟아진 내용물이 그의 뒤통수 주위에 고인다. 그는 병을 들어 안나에게 들이밀며 혼란스러운 욕설을 꺽꺽 내뱉지만, 그녀가 손에 든 병을 쳐낸다.
"너—넌 진짜도 아니잖아!"
그는 피와 점액을 토하고 기침하느라 숨을 길게 잇지 못한다. 안나의 입이 홱 벌어지고, 그 안에서 살로 된 긴 촉수가 말린 몸을 풀며 나온다. 촉수 끝에서는 거머리 같은 입이 이를 갈아댄다. 그것이 데이비드의 목에 달라붙고, 세상이 서서히 암흑에 잠긴다.
데이비드는 아침에 눈을 뜬다. 그는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고기 통조림 하나를 가져온다. 목과 가슴의 통증을 무시한 채, 그는 질척한 내용물을 손으로 퍼서 먹는다.
그는 늘 하던 일들을 모두 한다… 복도를 걷고, 창고를 약탈하고, 방들을 확인한다.
그는 사랑하는 안나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 질척한 음식을 먹고, 오줌을 마시고, 빼앗고 빼앗긴다. 그는 살아남는다… 그들은 살아남는다.

글
DrAkim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