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덮개

문짝 안쪽에는 칼끝으로 낸 흠집이 빽빽했다.

처음에는 나뭇결이 일어난 줄 알았다. 확대경 아래에 놓고 보니 짧은 선들이 다섯 개씩 묶여 있었다. 선을 긋다가 손이 미끄러진 곳도 있었다. 문 아래쪽에는 다른 필체로 보이는 굵고 깊은 자국이 겹쳐 있었다.

나는 의뢰인에게 사진을 찍어 보여 주었다.

“이것도 메울까요?”

노인은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오른손 엄지가 저절로 움직여 휴대전화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그건 두세요. 문이 잘 닫히기만 하면 됩니다.”

그의 이름은 신경수였다. 명함에 직함은 없었다. 전화로는 오래된 건축 모형 하나를 수리하고 싶다고 했다. 경첩이 틀어졌는데 모형을 밖으로 가져갈 수 없으니 방문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시 모형과 오래된 목제 완구를 고쳤다. 월말까지 들어올 일이 없었고, 그가 제시한 출장비는 평소의 세 배였다.

집은 산기슭의 단독주택이었다. 작업실은 지하에 있었다. 천장 가까이 난 창으로 돌담의 밑동이 보였다. 신경수는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난간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나 내가 공구 가방을 받아 달라고 하자 손을 등 뒤로 감췄다.

“떨어뜨려요. 요즘은.”

작업실 중앙에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 모형이 놓여 있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방이었다.

창의 높이, 천장의 보, 오른쪽 벽의 얕은 선반까지 같았다. 나는 벽과 모형을 번갈아 보며 한동안 웃었다. 모형 안에도 중앙 탁자가 있었지만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실물과 달리 작은 방 안에는 바닥에 붙인 낮은 칸막이가 몇 개 있었다. 칸막이 뒤에는 솜뭉치와 접은 천이 보였다.

“십 대 일이네요.”

“그럴 겁니다.”

“직접 만드신 건 아니고요?”

“오래전에 맡겼어요.”

그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모형 위에는 투명한 아크릴 덮개가 매달려 있었다. 사람 하나가 쪼그려 앉을 만한 크기의 상자였다. 네 귀퉁이에 쇠줄이 연결되어 천장의 도르래로 올라갔다. 탁자 옆 손잡이를 돌리면 덮개가 내려오는 구조였다.

아크릴 안쪽에는 뿌연 얼룩이 나 있었다. 낮은 곳에 유독 많았다.

“먼지가 많이 드나 봐요.”

“네.”

신경수는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아주 귀찮습니다.”

수리할 문은 모형 뒤쪽에 있었다. 높이 십팔 센티미터. 녹색 도료가 벗겨진 아래로 붉은 바탕칠이 드러나 있었다. 실제 작업실 뒤쪽의 녹색 문도 같은 자리에 칠이 벗겨져 있었다.

나는 감탄하며 실물 문에 손을 댔다. 손잡이는 차가웠다. 문의 오른쪽 아래에는 초승달 모양으로 찍힌 자국이 있었다. 모형에도 그 자국이 있었다. 단순히 같은 모양으로 만든 수준이 아니었다. 나무가 부풀어 오른 방향까지 같았다.

“이 정도면 제작자를 찾아보시는 게 나을 텐데요.”

노인은 모형 안을 보고 있었다.

“아직도 손이 좋을지는 모르겠네요.”

문짝을 떼어 작업 매트에 올렸을 때 작은 소리가 났다.

탁, 탁, 탁.

나는 손을 멈췄다. 소리는 모형의 칸막이 뒤에서 났다. 목재 안에 벌레가 들었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간격이 일정했다.

신경수가 허리를 굽혔다.

“조용히.”

말은 낮고 또렷했다.

소리가 멎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선반에서 차가 담긴 보온병을 내려 종이컵에 따랐다.

“라디오를 켜 놓았나.”

그는 컵을 내밀었다. 나는 장갑을 끼고 있어서 받지 않았다.

경첩 수리는 두 시간쯤 걸렸다. 문틀이 틀어진 것이 아니라 위쪽 경첩의 나사가 헛돌고 있었다. 구멍을 메우고 다시 자리를 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틀 안쪽에도 긁힌 자국이 있었다. 바깥에서 손을 넣어서는 닿기 힘든 각도였다.

나는 작은 거울을 넣어 들여다보았다.

솜뭉치 하나가 칸막이 뒤로 끌려갔다.

그 아래에 발이 있었다.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발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분홍빛 플라스틱 부품 같았다. 발가락 다섯 개가 차례로 오므라들었다.

내 손에서 거울이 떨어졌다.

신경수가 바로 곁에 서 있었다.

“문은 됐어요?”

나는 모형을 다시 보았다. 칸막이 밑은 어두웠다.

“네. 됐는데…….”

“한 번 달아 보세요.”

나는 문틀을 제자리에 끼우고 고정쇠를 눌렀다. 문은 소리 없이 열리고 닫혔다. 안쪽의 흠집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신경수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녹색 문 있지요. 안에 긴 집게가 있어요. 위 선반에. 손 닿으시겠어요?”

나는 아직 칸막이 쪽을 보고 있었다.

“안에 뭐가 움직였는데요.”

“직접 보시면 돼요. 집게로 들어 보면 되니까.”

그는 자연스럽게 내 작업 매트를 옆으로 밀어 자리를 냈다.

나는 작업실 뒤쪽의 녹색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 같은 방이 있었다.

처음에는 벽에 거울이 붙어 있는 줄 알았다. 천장의 보와 높은 창, 가운데 놓인 탁자가 보였다. 다만 탁자 위에 내 공구 가방이 없었다.

한 발을 들여놓았을 때 발밑에서 마른 나무가 울렸다.

나는 돌아섰다.

신경수의 얼굴이 문 바깥에 있었다.

얼굴 전체가 보이지 않았다. 안경알 하나와 그 아래 볼의 일부가 문을 가득 채웠다. 안경테에 묻은 하얀 각질이 보였다. 코에서 나온 털 하나가 내가 선 바닥까지 내려올 것처럼 굵었다.

그의 손톱이 문틀과 벽 사이로 들어왔다.

쇠가 긁히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문틀이 통째로 빠져나갔다.

나는 뚫린 자리에 서 있었다. 밖에는 나무 바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내가 쓰던 핀셋이 쓰러진 가로등처럼 놓여 있었다.

신경수가 문짝과 문틀을 얕은 금속 쟁반에 내려놓았다.

“손은 여전히 좋네요.”

그가 말했다.

“잘됐어요.”

나는 뒤로 넘어졌다. 바닥에 손을 짚었는데 손바닥 아래의 나뭇결이 홈처럼 깊었다. 내가 붙인 접착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칸막이 뒤에서 사람이 나왔다.

여자였다. 회색 천을 몸에 감고 가슴 아래를 실로 묶었다. 한쪽 눈썹이 없었고, 드러난 정강이에는 붉은 반점이 가득했다. 여자가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소리 내면 들여다봐요.”

그녀의 손은 내 손과 같은 크기였다.

밖에서 신경수가 걸어가는 소리가 났다. 천둥처럼 크지는 않았다. 무거운 가구가 바닥 가까이에서 연속해서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때마다 벽이 울렸다.

여자가 나를 칸막이 뒤로 끌었다.

거기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한 남자는 접은 천 위에 누워 있었고, 다른 남자는 서서 나를 보았다. 서 있는 남자의 머리는 길게 자라 어깨에 닿았다. 손톱도 길었다.

“복원하는 사람이에요?”

여자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고쳤어요?”

다시 끄덕였다.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

“열리기는 했구나.”

밖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신경수가 계단 옆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비누 냄새가 방 안까지 밀려왔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전화기는 내 손 안에 있었고 크기도 그대로였다. 화면에는 서비스 불가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긴 머리 남자가 말했다.

“처음엔 다 그걸 해요.”

그는 내 손에서 전화기를 가져가려고 했다. 나는 움켜쥐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여자가 바닥을 가리켰다.

“당신이 일하던 탁자 위.”

나는 칸막이 너머를 보았다. 좀 전까지 거울을 넣어 들여다보던 공간이었다. 벽 위에 커다란 전등이 떠 있었다. 천장은 없었다. 모형의 지붕을 내가 벗겨 탁자 한쪽에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저 문으로 나가면요?”

“문을 달면 나가요.”

“어떻게 알아요?”

“나도 그걸로 들어왔으니까.”

여자는 천을 꽉 여몄다.

“저 사람이 드나드는 것도 봤고.”

긴 머리 남자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괜한 소리 하지 마.”

“지금 덮개 열려 있잖아.”

“그러다가 또 누구 죽이게?”

누워 있던 남자가 눈을 떴다. 그의 배가 천 아래에서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그에게 발이 없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천이 끝나는 곳에서 다리도 끝나 있었다.

“나가다 떨어졌어요.”

여자가 말했다.

“탁자에서.”

밖의 물소리가 멎었다.

나는 일어서려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전화기는 남자가 누운 천 옆에 내려놓았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두 손으로 칸막이를 붙들어야 했다. 남자가 팔을 뻗어 전화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갔다. 나는 꺼져 가는 화면을 보다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모형의 뒷문 자리로 갔다. 문틀이 빠진 구멍 너머로 금속 쟁반이 보였다. 거기까지는 내 걸음으로 스무 걸음쯤 될 것 같았다. 쟁반 턱은 허리보다 높았고 문은 그 안에 누워 있었다.

돌아와서 문틀만 다시 끼우면 됐다. 내가 방금 손봤던 네 개의 고정쇠를 누르면 됐다.

나는 말했다.

“같이 들면 옮길 수 있어요.”

여자가 바로 일어났다.

그녀 뒤에서 무언가 작게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누운 남자가 전화기를 엎어 쥐고 있었다. 벌어진 뒷판 가장자리에 손가락이 걸려 있었다.

“그거 뭐 하시는…….”

긴 머리 남자가 문 앞을 막았다.

“안 돼요. 기다려야 돼요.”

“뭘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의자가 끌렸다. 신경수가 다시 탁자 앞에 앉았다. 커다란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긴 머리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입술이 오므라들더니 그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여기요.”

여자가 그의 입을 막으려 했다. 남자가 팔꿈치로 그녀를 밀었다.

“이 사람이 문 가지러 간답니다.”

위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신경수가 웃고 있었다.

“상진 씨. 아직 설명도 안 해 줬어요?”

여자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저 새끼는 이층을 써요. 혼자.”

나는 그제야 모형 한쪽 벽에 붙은 작은 선반을 보았다. 천으로 입구를 가린 상자가 있었다. 상자 안에는 노란 스펀지와 병뚜껑이 놓여 있었다.

상진이라는 남자가 내 손목을 잡았다.

“시키는 대로 하면 괜찮아요. 처음이 힘들어서 그렇지.”

신경수가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둘 다 나오세요. 새 사람 좀 봅시다.”

나는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그가 내 뒷덜미를 잡아챘다. 옷깃이 목을 눌렀다. 바닥에 무릎이 닿자 나무 가시가 바지를 뚫고 들어왔다.

내가 수리한 문 안쪽의 흠집들이 생각났다. 다섯 개씩 묶인 선. 그 아래 다른 사람이 낸 깊은 자국.

밖에서 거대한 손이 내려왔다.

신경수는 나를 잡으려 했다. 엄지와 검지가 양옆에서 다가왔다. 손끝은 갈라져 있었고, 갈라진 틈에 회색 먼지가 끼어 있었다.

여자가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바늘이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바늘을 잡고 검지 끝에 찔렀다.

신경수가 욕을 했다.

손이 튀어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 내 목을 붙들고 있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

상진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손가락 하나가 그의 허리를 누르고 있었다.

“가만있어 봐.”

신경수는 찔린 손끝을 보고 있었다.

상진의 두 팔이 바닥을 긁었다.

그는 무슨 말을 했다. 손가락이 몸통을 짓누르고 있어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입 모양을 보았다.

저예요.

신경수가 손을 들었을 때 상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가 내 팔을 당겼다.

우리는 문이 있던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

나무 바닥이 넓게 이어졌다. 내 작업 매트의 초록색 가장자리가 멀리 보였다. 그 옆에는 목공용 칼이 놓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내 손안에 들어오던 칼이었다. 이제 칼날의 등은 무릎보다 높았다.

우리는 금속 쟁반까지 달렸다.

뒤에서 신경수가 의자를 밀쳤다. 나는 쟁반 가장자리를 붙들고 올라갔다. 여자가 아래에서 내 발을 받쳐 주었다. 금속은 미끄럽고 차가웠다. 나는 몸을 굴려 안으로 떨어졌다.

문짝이 코앞에 있었다.

내가 만든 작은 보강목이 경첩 밑에 붙어 있었다. 접착제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희끗했다.

나는 문틀을 잡고 밀었다. 나무는 가벼웠다. 하지만 쟁반 턱 위로 세우려면 손을 바꾸어 잡아야 했다. 자꾸 문이 열려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여자가 올라왔다. 우리는 문틀 아래에 어깨를 넣었다.

큰 소리가 났다.

신경수가 탁자를 쳤다.

쟁반이 미끄러졌다. 나는 문틀을 안고 넘어졌다. 여자가 내 몸 위로 쓰러졌다. 쟁반 밖으로 보이던 탁자 가장자리가 더 가까워졌다.

아래는 바닥이었다.

평소라면 의자에서 발을 내리면 닿을 거리였다. 지금은 내려다보자마자 배 속이 비어 버리는 높이였다.

신경수의 손이 쟁반을 붙잡았다.

손끝에 피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까 고친 거잖아요.”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망가지면 다시 해야지.”

그가 문틀 윗부분을 잡았다. 우리는 아래쪽을 붙들었다. 그가 손을 조금 들어 올리자 내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나는 놓지 않았다.

여자가 무언가를 외쳤다.

그때 방 안에서 불빛이 솟았다.

누워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내 휴대전화가 있었다. 전화기의 벌어진 뒷면 사이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남자는 그것을 솜뭉치 밑으로 밀어 넣었다.

신경수가 문을 놓았다.

우리는 쟁반 바닥에 떨어졌다.

“저 미친놈이.”

그는 종이컵을 집어 들었다. 차가 방 안으로 쏟아졌다. 뜨거운 물이 칸막이를 넘어 흘렀고 솜이 들썩이며 떠올랐다. 남자의 몸이 뒤집혔다. 그는 팔을 휘저었지만 한쪽 손이 접은 천에 걸려 있었다.

나는 문틀을 끌어당겼다.

여자가 쟁반 밖으로 먼저 내려가 받아 주었다. 우리는 문을 옆으로 세워 밀었다. 신경수는 젖은 솜을 집어내느라 몸을 숙이고 있었다. 작은 불은 꺼졌지만 연기가 계속 났다.

모형 뒤쪽에 도착했을 때 방 안의 물이 문구멍으로 흘러나왔다. 갈색 물이었다. 내 발목을 적셨다.

우리는 문틀을 들어 올렸다.

왼쪽 아래가 맞지 않았다. 보강목이 벽 가장자리에 걸렸다. 나는 어깨로 밀었다. 손바닥이 미끄러졌다.

여자가 물었다.

“왜 안 돼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고친 문이었다. 들어맞아야 했다.

위에서 신경수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문틀을 당겼다. 아주 조금, 모서리가 빠져나올 만큼만. 왼쪽을 먼저 넣고 오른쪽을 밀었다.

딱.

고정쇠 하나가 들어갔다.

큰 손가락이 벽 위로 내려왔다.

나는 나머지 고정쇠를 눌렀다. 여자가 손잡이를 당겼다.

문 너머에 작업실이 있었다.

원래 크기의 작업실이었다. 문턱 바로 앞에 내 공구 가방이 보였다. 내가 벗어 둔 재킷이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여자가 나를 밀었다.

발을 옮겼다.

바닥이 단단했다. 나무가 아니라 콘크리트였다.

나는 벽에 어깨를 부딪쳤다. 폐 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작업실 중앙에서 신경수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의 안경이 작았다. 얼굴이 작았다. 내 얼굴과 비슷한 크기였다.

여자가 내 뒤로 나왔다.

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지 않았다.

곧장 신경수에게 갔다.

그는 뒷걸음질하다 의자에 걸렸다. 여자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회색 천이 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른 등과 허벅지에 오래된 흉터가 겹쳐 있었다.

신경수가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잠깐.”

그녀는 그를 녹색 문 쪽으로 끌었다.

나는 문 옆에 서 있었다.

그가 내 소매를 붙잡았다.

“이 사람 좀 말려요.”

그의 손톱 밑에 피가 끼어 있었다. 손끝의 작은 상처에서는 아직 피가 났다. 그 피와 상진의 피를 구별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떼었다.

여자가 그를 문 안으로 밀었다.

그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한 발을 디뎠다.

사라졌다.

탁자 위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났다.

나는 모형으로 갔다. 신경수가 젖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의 허리를 덮던 카디건이 이제 손가락 두 마디만 했다. 그는 일어나 문으로 달렸다.

나는 문틀을 잡아 뺐다.

신경수가 뚫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입이 움직였다. 가까이 몸을 숙이니 말이 들렸다.

“얼마면 돼요?”

여자가 내 손에 있는 문을 가져갔다.

그녀는 바닥에 놓고 발뒤꿈치로 밟았다. 한 번으로는 부서지지 않았다. 경첩이 버텼다. 그녀는 문틀을 세운 뒤 발로 눌렀다.

내가 붙인 보강목이 먼저 부러졌다.

문짝이 그다음이었다.

신경수는 그 소리를 듣고 무릎을 꿇었다.

여자는 모형 안을 들여다보았다. 누워 있던 남자는 젖은 천에 엉켜 있었다. 상진은 방 가운데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을 오래 보았다.

나는 의자에 걸린 재킷을 가져와 그녀의 어깨에 걸쳤다. 여자는 모형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소매에 팔을 끼웠다.

나는 전화기를 찾으려고 주머니를 더듬었다. 빈 주머니였다. 모형 안의 젖은 솜 아래로 검게 벌어진 전화기 모서리가 보였다.

“경찰을 불러야 해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경수가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모형 벽은 내 손 한 뼘보다 조금 높았다. 그는 창틀을 딛고 윗부분에 매달렸다. 작은 손이 흰 벽 위로 올라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

여자가 그를 잡았다.

허리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웠다. 신경수의 두 발이 공중에서 움직였다. 그녀는 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 그를 작업 매트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곧바로 달렸다.

여자가 손바닥을 앞에 놓았다.

그가 방향을 바꿨다.

다시 손바닥이 놓였다.

나는 그녀의 이름도 몰랐다. 얼마나 오래 여기 있었는지, 밖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 묻지 못했다. 그녀는 나와 같은 높이에서 숨을 쉬고 있었지만 아까 칸막이 뒤에 있던 때보다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신경수가 달리기를 멈췄다.

그는 매트의 눈금 위에 서서 울었다.

여자는 탁자 옆으로 가 손잡이를 돌렸다.

아크릴 덮개가 천천히 내려왔다. 신경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벽이 되어 내려오는 투명한 판을 향해 뛰었다. 여자는 잠깐 손잡이를 멈추고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모형 안으로 돌아갈 때까지 밀었다.

그런 다음 덮개를 끝까지 내렸다.

바닥의 고무가 탁자에 닿으며 낮은 소리를 냈다.

신경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아크릴 안쪽을 두드렸다. 손을 벌려 얼굴 양옆에 붙였다. 뿌연 얼룩들 사이에 그의 손자국이 생겼다.

여자는 탁자 앞의 의자를 당겨 앉았다.

나는 계단 쪽으로 갔다. 위층에서 전화를 찾을 생각이었다. 몇 걸음 올라가다 돌아보았다.

여자가 소매로 아크릴 바깥을 닦고 있었다.

신경수는 안에서 계속 두드렸다.

그녀는 그의 얼굴이 잘 보일 때까지 같은 자리를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