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세 번째 테이크
처음 비명이 들렸을 때 서경은 칫솔을 문 채 현관문을 열었다.
여자가 살려 달라고 했다. 두 번이었다. 첫 번째는 길었고 두 번째는 중간에서 꺾였다. 뒤이어 무거운 것이 벽에 부딪쳤다.
복도 건너편 303호에서도 문이 열렸다. 내복 차림의 노인이 서경을 보았다. 둘은 잠깐 서로의 집 안을 살폈다.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계단 옆 302호로 고개를 돌렸다.
서경이 먼저 문을 두드렸다.
“안에 무슨 일 있어요?”
대답 대신 가느다란 울음이 들렸다. 서경은 휴대전화를 가지러 뛰어들어 갔다. 경찰에 주소를 말하는 동안 302호 문이 열렸다.
남자는 양쪽 귀에 헤드폰을 걸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스피커 연결을 잘못해서요.”
그는 곧 도착한 경찰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문을 활짝 열고 불을 켰다. 거실에는 책상과 스피커, 벽에 기대 놓은 검은 흡음판들이 있었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전선 때문에 경찰 한 명이 발을 높이 들었다. 방과 화장실 어디에도 여자는 없었다.
남자가 컴퓨터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 조금 전의 여자가 다시 살려 달라고 했다.
서경은 입가에 굳은 치약을 손등으로 닦았다.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공포 체험장 음향 작업을 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303호 노인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사람 죽는 줄 알았네.”
서경도 따라 웃었다. 몸속에 갑자기 남아 버린 두려움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그날 밤, 이를 마저 닦다가 비명 끝의 숨소리를 떠올렸다. 젖은 천을 짜듯 목 안쪽을 조이는 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
서경은 목소리로 돈을 벌었다.
주로 온라인 강의와 회사 안내 영상을 녹음했다. 화면 왼쪽의 버튼을 눌러 주세요. 다음 과정으로 이동합니다. 그런 말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 했다. 일을 시작한 첫해에는 목소리만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좋았다. 요즘에는 월말에 들어오는 금액이 먼저 보였다.
비명도 돈을 받고 녹음한 적이 있었다.
석 달 전이었다. 놀이 시설에 쓰일 음원이라며 짧은 대본이 왔다. 밀폐된 공간에 갇힌 여자, 누군가에게 쫓기는 여자, 문밖의 사람에게 구조를 청하는 여자. 서경은 방 안의 이불을 창문에 걸고 녹음했다. 목에 힘을 너무 주지 않도록 배를 누르면서.
첫 번째 파일은 지나치게 연극 같다는 답을 받았다. 두 번째는 말이 너무 또렷하다고 했다.
세 번째에는 문장이 거의 부서지도록 했다. 울다가 숨을 들이켜고, 들이킨 숨 때문에 다시 울었다. 마지막의 살려 달라는 말에서는 혀를 입천장에서 제대로 떼지 않았다.
의뢰인은 바로 승인했다.
서경이 그 파일을 다시 찾아 들은 것은 첫 소동 이틀 뒤였다. 302호에서 같은 비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컴퓨터 속 목소리와 벽 너머의 목소리가 조금 어긋나게 겹쳤다. 자신이 숨을 들이마실 자리를 서경의 몸이 먼저 알았다. 갈비뼈 아래가 저절로 팽팽해졌다.
그녀는 재생을 멈췄다.
벽 너머의 자신은 계속 울었다.
남자는 서경이 찾아가자 놀란 얼굴을 했다.
“아, 성우분이셨어요?”
“이게 왜 여기서 나와요?”
“제작사에서 받은 파일인데요.”
남자는 메일에 첨부된 음원 목록을 보여 주었다. 서경이 보낸 파일명이 그대로 있었다. 비명_여_수정3.wav.
“저도 여기 사는 줄은 몰랐습니다. 신기하네요.”
신기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불쾌했다. 서경은 자기가 녹음한 소리를 자기 집에서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밤에는 더욱 싫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헤드폰으로 할게요.”
남자는 순순히 대답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서경은 책상 옆에 세워 둔 회색 공구함을 보았다. 손잡이에 노란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그것을 보고서야 남자의 얼굴을 언제 처음 보았는지 기억났다.
이사 온 날, 현관 자물쇠가 뻑뻑해서 집주인에게 전화했을 때였다. 마침 옆방 사람이 공구가 있다며 올라왔다. 문이 열린 상태로 잠금쇠를 몇 번 돌려 보고, 서경의 열쇠를 받아 바깥에서도 시험했다.
그때도 그는 이렇게 공손했다.
*
비명은 계속됐다.
매일은 아니었다. 저녁 여섯 시에 십 분, 오후 세 시에 이십 분. 어떤 날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러다 잊을 만하면 여자가 벽을 긁고 울었다.
서경은 의뢰를 중개한 업체에 연락했다. 담당자는 납품한 음원의 사용처까지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답은 늦었다. 집주인은 방음 공사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303호 노인은 텔레비전 소리를 높였다.
한 번은 음식 배달원이 계단에서 경찰을 불렀다. 그날 남자는 현관에 종이를 붙였다.
음향 편집 작업 중입니다. 들리는 음성은 녹음된 효과음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종이 아래에는 남자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서경은 종이를 찍어 집주인에게 보냈다.
「이렇게 써 붙이면 계속해도 되는 건가요?」
집주인은 곧 전화했다. 자신도 충분히 강하게 이야기했으며 상대도 사정이 있다는 말을 길게 했다. 서경이 말을 끊자 한숨이 들렸다.
“서경 씨도 집에서 녹음하잖아요.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 좋겠는데.”
“저는 옆집까지 들리게 안 해요.”
“그러니까 그쪽도 곧 방음한다니까요.”
그날 저녁 서경은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갔다. 녹음은 할 수 없어도 편집은 가능했다.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 있다 돌아오니 복도가 조용했다.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날 처음으로 좋았다.
그 뒤로 소리가 나면 밖으로 나갔다.
302호 남자와 마주친 적도 있었다. 남자는 쓰레기봉투를 한 손에 들고 그녀에게 인사했다. 서경은 고개만 숙였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남자가 말했다.
“보통 이 시간에 나가시네요.”
서경은 못 들은 척했다.
*
소음이 시작된 지 삼 주가 지났을 때, 303호 노인이 서경을 불렀다.
“저 사람 이번 주까지만 한다네.”
노인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집주인이 입주자들에게 보낸 문자였다. 장비를 다른 작업실로 옮길 예정이며, 마지막 출력 점검을 위해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여섯 시에서 여섯 시 십 분 사이에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딱 십 분씩만 참으래.”
노인이 웃었다.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아. 저 여자가 아까도 죽었는데 또 죽는구나 하지.”
서경은 그것이 자기 목소리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집으로 돌아와 창문에 걸린 이불을 내렸다. 햇볕을 막는 데 쓰다 보니 접힌 부분에서 먼지 냄새가 났다. 이제 저녁에도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요일에는 정확히 여섯 시에 소리가 났다. 여섯 시 십 분에 그쳤다.
목요일도 같았다.
서경은 두 번 모두 카페에 있었다. 노인이 보낸 문자로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수요일에는 「끝」, 목요일에는 「오늘도 끝」이라고 왔다.
금요일에는 비가 내렸다.
오후에 잡혔던 원격 녹음 일정이 뒤로 밀렸다. 담당자가 여섯 시 반까지는 꼭 접속하겠다고 했다. 십 분의 소음 때문에 장비를 챙겨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서경은 그대로 집에 있기로 했다.
다섯 시 오십 분에 컵을 씻으러 부엌에 갔다.
싱크대 앞 매트 끝이 젖어 있었다.
서경은 손바닥으로 발바닥을 만졌다. 양말은 말라 있었다. 냉장고 아래도 살폈다. 물이 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매트를 집어 들자 장판에 신발 밑창의 무늬가 반쯤 찍혀 있었다.
큰 사각형 안에 작은 사각형들이 들어간 무늬였다.
현관 쪽을 보았다. 자기 운동화 두 켤레가 가지런했다. 문은 잠겨 있었다.
서경은 매트를 내려놓았다.
책상 위 휴대전화까지 네 걸음이었다. 처음 두 걸음은 평소처럼 걸었다. 세 번째에 속도가 붙었다. 네 번째 걸음을 옮기기 전에 등 뒤에서 화장실 문이 열렸다.
남자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가 양말을 신고 있다는 것이 먼저 보였다. 신발은 한 손에 들려 있었다. 젖은 밑창에 큰 사각형들이 있었다.
서경이 입을 벌리자 남자가 신발을 놓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입을 덮었다.
코 안으로 고무와 세제 냄새가 밀려들었다.
그녀는 책상을 붙잡았다. 손가락 아래에서 마우스가 미끄러졌다. 모니터가 넘어지고 컵이 깨졌다. 남자는 서경을 책상에서 떼어 내 방 안쪽으로 끌었다.
벽의 시계가 보였다.
다섯 시 오십구 분이었다.
그때 옆집에서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
첫 번째 파일은 울음뿐이었다.
서경은 그 파일도 기억했다. 대본 없이 일 분 동안 울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오래전에 죽은 고양이를 생각하려다 오히려 집중이 흐트러져 그만두었다. 결국 호흡과 입 모양만으로 녹음했다.
지금 벽 너머에서 그 울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경은 남자의 손등을 물었다. 이 사이에 살이 잡혔다. 남자의 몸이 움찔하는 순간 그녀는 몸을 낮춰 빠져나왔다.
“도와주세요!”
자기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남자가 뒤에서 부딪쳐 왔다. 서경의 무릎이 바닥에 먼저 닿았다. 턱이 흔들리며 이가 맞부딪쳤다. 입 안에 동전 맛이 퍼졌다.
그녀는 엎드린 채 현관 쪽으로 기었다. 문 아래로 복도의 불빛이 가늘게 보였다. 그 너머에 노인이 있었다. 싱크대에서 컵을 씻거나, 저녁 약을 먹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다섯 걸음만 걸으면 그녀의 문 앞이었다.
서경은 발뒤꿈치로 장판을 밀었다.
남자가 발목을 잡았다.
벽 너머에서 첫 번째 비명이 터졌다. 길고 높았다. 서경은 숨을 삼켰다. 녹음할 때 길이를 맞추려고 머릿속으로 여덟까지 세었던 비명이었다.
그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남자가 발목을 당기자 바지가 무릎 위로 말려 올라갔다. 장판과 살이 마찰하며 뜨거워졌다. 서경은 현관 옆 신발장 다리를 붙잡았다. 손잡이에 걸려 있던 우산이 떨어졌다.
우산.
그녀는 손을 뻗어 긴 우산을 잡았다. 몸을 돌릴 수 없어 뒤를 보지 않고 휘둘렀다. 무언가에 부딪쳤다. 남자의 숨이 거칠어졌다. 발목이 풀렸다.
서경은 일어나지 않고 문까지 갔다. 손잡이 바로 아래에 몸을 세웠다. 잠금쇠를 돌리면 됐다. 손바닥에 땀과 피가 묻어 금속이 미끄러웠다.
잠금쇠가 조금 돌아갔다.
남자의 팔이 목 앞을 가로질렀다.
문을 향해 내민 그녀의 손이 허공을 긁었다. 손톱 하나가 잠금쇠 가장자리에 걸렸다 떨어졌다. 서경은 뒤로 끌려가며 문을 발로 찼다.
한 번.
두 번.
복도에서 소리가 났다.
“거 좀!”
303호 노인이었다.
서경은 두 발을 바닥에 붙이려고 했다. 목에 감긴 팔을 잡아당겼다. 입은 벌어졌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오늘 마지막이라고 했지요?”
노인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그는 302호 문 앞에 서 있었다.
스피커 속의 서경이 살려 달라고 했다.
서경은 옆집 할아버지의 이름을 몰랐다. 늘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어르신, 저예요. 301호예요. 그렇게 말하려 했다. 혀가 움직였다. 입 안의 공기가 아주 조금 새어 나왔다.
복도에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서경은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우산이 닿았다. 밀어 보았다. 우산 끝이 문에 부딪쳤다.
탁.
“열 분만 한다고 했으니까.”
노인이 말했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멀어졌다. 문이 닫혔다.
*
다음 파일에는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서경이 만든 소리가 아니었다. 납품한 목소리에 나중에 붙인 효과음이었다. 남자가 그녀를 방 안으로 끌고 가는 동안 쿵, 쿵,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서경은 그가 왜 시간을 정했는지 알았다.
왜 비명을 틀고 문을 열어 보여 주었는지. 왜 먼저 사과했는지. 왜 조금씩 약속을 지켰는지.
자신도 노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저건 녹음이라고.
그 말이 지금 문밖에 있었다.
서경은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보았다. 책상 아래에서 화면이 켜졌다. 담당자가 보낸 메시지인지 화면 위에 작은 흰 네모가 생겼다. 손을 뻗었지만 남자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숨을 쉬려고 했다.
녹음할 때에는 숨이 먼저였다. 턱에 힘을 빼고 아래쪽 갈비뼈를 벌렸다. 소리를 길게 내고 싶으면 반드시 그만큼 들이마셔야 했다. 서경은 그 순서를 수천 번 반복했다.
몸은 여전히 순서를 기억했다.
갈비뼈가 벌어지려 했다. 배가 떨렸다. 목 안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벽 너머의 자신은 숨을 충분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세 번째 테이크가 시작됐다.
서경은 그 소리가 얼마나 잘된 것인지 처음 알았다. 필사적으로 문장 끝을 붙잡고 있는 여자. 발음이 무너지는데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 방 밖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손가락을 폈다. 가까운 바닥을 짚었다. 밀어 보았다.
손가락이 천천히 구부러졌다.
비명이 끝난 뒤에도 파일은 조금 더 이어졌다. 서경이 편집할 때 미처 자르지 않은 부분이었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물병 뚜껑을 여는 소리가 났다.
벽 너머의 서경은 물을 마셨다.
*
여섯 시 십 분에 소리가 멎었다.
303호 노인은 텔레비전 음량을 낮췄다. 낮추고 보니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그는 몇 칸 더 낮춘 뒤 식탁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었다.
「이제 다 끝났나 봐요.」
301호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잠시 뒤, 벽 너머 가까운 곳에서 진동이 울렸다.
노인은 여자가 오늘은 집에 있었구나 생각했다. 답장이 오면 앞으로 조용해져서 좋겠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기다리다가 약 먹을 시간이 된 것을 보았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컵에 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