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한 바퀴
맞은편 남자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동안, 혜주는 세 번 잠들었다.
첫 번째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자신이 기절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에는 남자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에야 그의 눈꺼풀이 올라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속눈썹 아래로 젖은 회색 선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남자의 아내는 웃고 있었다.
그 여자는 타기 전부터 높은 곳을 무서워했다. 관람차의 문이 닫히자 남편의 팔꿈치를 붙잡았고, 객실이 방파제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맞은편에 혼자 앉은 혜주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한 바퀴 도는 데 얼마나 걸린대요?”
“십오 분이래요.”
“어머. 꽤 기네.”
남편이 뭐가 기냐며 웃었다. 손에는 매표소 옆에서 산 커피가 들려 있었다. 혜주도 따라서 웃었다. 그 여자가 말을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놀이공원에 온 게 조금 창피했다. 친구에게 받은 이용권은 그날까지였고, 막상 오고 보니 혼자 탈 수 있을 만한 놀이기구는 이것뿐이었다.
객실이 가장 높은 곳에 가까워졌을 때 여자의 웃음소리가 낮아졌다.
웃음을 참는 소리가 아니었다. 늘어진 테이프를 재생하는 것처럼 소리가 깊어지더니, 의자 밑에서 나는 진동으로 바뀌었다. 혜주는 발을 들어보았다. 발바닥은 떨어졌는데 종아리뼈 안쪽이 계속 울렸다.
남편의 입술이 벌어져 있었다. 커피를 든 손이 가슴 앞에서 멎었다.
혜주는 처음에는 관람차가 정지한 줄 알았다.
“고장인가 봐요.”
두 사람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방파제를 걷는 사람들 사이에 빨간 자전거가 있었다. 앞바퀴는 흰 줄 위에, 뒷바퀴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 놓여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는 한쪽 발을 페달에서 떼고 있었다.
바다에는 물결이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혜주는 창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유리 밖으로 갈매기 한 마리가 보였다. 아주 멀리 있는 새가 천천히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날개 끝에 빠져나온 깃털 하나까지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갈매기가 날개를 접기를 기다렸다.
그다음에는 두 사람을 번갈아 불렀다.
남자의 손목을 잡자 커피가 기울었다. 뚜껑 구멍에서 갈색 물이 밀려 나왔다. 손목을 놓자 모든 움직임이 느려졌다. 커피는 떨어지는 대신 구멍에 매달린 채 길쭉해졌다.
남자의 팔은 혜주가 놓은 위치에 남았다.
그녀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측면 버튼을 눌렀지만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고, 액정을 손바닥에 부딪치고, 케이스를 벗겼다. 그러는 동안 화면 가장자리에 푸른빛이 아주 희미하게 번졌다.
혜주는 두 사람에게 전화기를 보여주었다.
“제 것 고장 났나 봐요. 잠깐만 빌려주세요.”
남자의 아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랫니 가운데 하나가 유난히 작았다.
혜주는 그 작은 이를 보며 같은 말을 몇 번 더 했다.
***
비상 통화 버튼은 문 옆에 있었다. 누르고 있으면 관리실과 연결된다고 쓰여 있었다.
혜주는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눌렀다. 놓았다가 다시 눌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안내문 아래의 번호를 외쳐보고, 창을 두드리고, 바닥에 엎드려 문틈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지쳐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 남자의 눈이 거의 감겨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가 앞으로 떨어지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혜주는 떨어지는 턱을 손바닥으로 받았다. 피부는 따뜻했다. 수염이 손금을 찔렀다.
“아저씨. 제발.”
그녀는 엄지로 그의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눈동자가 드러났다. 손을 떼어도 눈꺼풀이 곧바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혜주는 처음으로 울었다.
그전까지는 두 사람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정교한 장난을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화를 내거나 무릎을 꿇으면 끝낼 수도 있는 일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기 눈조차 감지 못하고 있었다.
혜주는 남자의 턱을 놓지 않은 채 오래 울었다. 놓으면 목이 꺾일 것 같았다. 나중에는 그의 머리를 벽에 기대놓고 여자의 가방을 괴어주었다.
그 일을 마친 뒤 그녀는 가방을 다시 빼냈다.
목이 말랐다.
***
여자의 가방에는 생수 두 병과 귤, 작은 빵 봉지, 약통, 안경집이 있었다. 물 한 병은 따지 않은 것이었다. 다른 병은 반쯤 비어 있었다. 혜주는 자기 가방에 든 물까지 모아 의자에 세웠다.
병을 기울여도 물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혜주가 병을 눌러 찌그러뜨리자 물이 밀려 나왔다. 입안에서는 삼킬 수 있었다.
그녀는 한 병을 거의 다 마시고 나서야 멈췄다.
“나가면 사드릴게요.”
여자에게 빈 병을 보여주었다.
“똑같은 걸로요.”
객실의 그림자는 길어지지 않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쪽은 계속 더웠다. 혜주는 겉옷을 벗어 창에 걸고 그 아래로 들어갔다. 땀이 날 때마다 몸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게 아까웠다.
휴대전화 화면은 이제 켜져 있었다.
16:42.
잠금 화면에는 친구가 보낸 메시지의 첫 줄이 떠 있었다. 잘 타고 있냐는 말이었다. 혜주는 답장을 쓰려고 화면을 수없이 눌렀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 뒤 잠금 화면의 숫자 하나가 다른 색으로 변했다.
그녀는 전화기를 뒤집어놓았다.
여자의 가방에서 여행 수첩과 볼펜을 찾았다. 수첩 앞쪽에는 식당 이름과 주차장 주소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쓰인 줄은 ‘노을 보고 저녁 먹기’였다.
혜주는 다음 장을 펼쳤다.
지금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거기까지 쓰고 펜을 멈췄다. 누구에게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장을 넘겨 선을 그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하나씩 긋기로 했다.
***
다섯 번째 선을 그었을 무렵 비상 통화 장치에서 소리가 났다.
딸깍, 하고 끝날 소리가 길게 벌어졌다. 혜주는 벽에 귀를 붙였다. 안쪽에서 무거운 바퀴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소리가 뺨과 이를 통해 들어왔다.
“여기 사람 있어요.”
그녀는 입술을 통화 구멍에 대고 말했다.
“들리면 대답해 주세요. 대답 좀 해주세요.”
오랫동안 아무 변화가 없었다.
혜주는 통화 장치 앞에서 빵을 먹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무릎을 세운 채 졸았다. 깨어났을 때도 그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생각했다.
버튼을 누른 뒤 장치 안의 작은 부품이 움직이는 데 지금까지의 시간이 걸렸다면.
누군가 신호를 알아차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손을 뻗는 동안에는.
혜주는 벽에서 귀를 뗐다.
남자의 눈이 다시 열려 있었다.
아까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은 혜주를 향해 있었다.
***
그 뒤로 혜주는 남자에게 말을 많이 했다.
“저 보이세요?”
답은 없었다. 하지만 눈동자의 방향은 확실했다. 혜주가 처음 앉았던 자리가 아니라 통화 장치 밑으로 옮겨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보이면 눈 한 번만 감아보세요.”
말해놓고 곧 후회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보고 계세요.”
남자의 얼굴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처음 벌어졌던 입술은 조금 모였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커피를 든 손에서 새끼손가락이 떨어져 나오는 중이었다.
혜주는 그 손에 수첩을 들이밀었다.
저는 여기서 여러 날을 보냈어요.
얼마나 지났는지는 정확히 몰라요.
물이 모자라요.
남자가 읽을 수 있도록 수첩을 자기 가슴에 붙들고 앉았다. 한참 뒤에는 팔이 아파서 무릎 위에 세웠다. 남자의 눈동자는 아직 그녀가 조금 전까지 있던 곳을 향해 있었다.
그녀는 수첩을 내려놓았다.
귤은 마지막 한 개까지 신선했다. 껍질을 벗겨 혀로 안쪽을 훑고, 흰 섬유까지 씹어 삼켰다. 남자의 커피에는 설탕이 들어 있지 않았다. 차가운 줄 알았던 커피는 미지근했고, 혜주가 뚜껑을 벗겨 마시고 나서도 컵에 매달렸던 갈색 물방울 하나는 허공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훑어 먹었다.
그리고 객실 안을 살폈다.
떨어질 것을 기다리는 물방울이 또 없는지.
***
유리를 깬 것은 열한 번째 선을 그은 다음이었다.
비상용 망치는 의자 아래의 붉은 상자에 들어 있었다. 혜주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꺼내놓고도 쓰지 못했다. 창을 깨면 무언가 돌이킬 수 없이 잘못될 것 같았다. 안에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관람차를 탄 손님이었다. 누군가 내려주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망치를 처음 내리쳤을 때 유리에 흰 점이 생겼다.
다시 치자 금이 뻗었다.
혜주는 겉옷으로 손을 감싸고 깨진 부분을 밀었다. 유리 조각들이 밖으로 나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창 바로 아래에 머물렀다.
그녀는 그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바깥 공기는 조금 차가웠다. 손을 흔들어도 누구 하나 올려다보지 않았다.
객실 위쪽에는 굵은 축과 철제 연결부가 있었다. 몸을 내밀어 고개를 꺾어보니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가방끈을 연결하고, 옷을 찢어 묶고, 허리에 감으면 될 것 같았다.
혜주는 두 사람의 가방을 모두 비웠다.
여자의 웃음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입술은 아직 웃던 모양이 조금 남았는데 눈은 커지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도 혜주에게 향하는 중이었다.
혜주는 그 여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방 좀 쓸게요.”
가죽끈을 잡아당겨 바느질을 뜯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다 망가뜨려서.”
여자의 손등에 볼록하게 솟은 핏줄이 보였다. 혜주는 그 손을 잡았다. 사람의 손은 이렇게 부드럽고 뜨거운데, 손을 잡아주는 일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자의 손가락을 자기 손등 위에 하나씩 포갰다.
잠깐 그렇게 앉아 있었다.
***
창밖으로 처음 몸을 내민 날에는 허리도 빼내지 못했다.
혜주는 자신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리 없이 내려다보는 지상은 전혀 달랐다. 두 발을 붙일 바닥이 아래로, 더 아래로 밀려났다. 관람차 밑의 사람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몸을 도로 끌어들이다가 팔뚝을 베었다.
피가 맺혔다. 혜주는 상처에 입을 댔다. 피 맛을 느끼고도 한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수첩에 열넷째 선을 그을 때 그녀는 글을 추가했다.
남의 물건을 훔치려던 건 아닙니다.
그 문장을 지웠다.
배상할 수 있는 일들을 걱정하는 게 우스웠다.
그녀는 물을 마신 횟수와 남은 양을 적었다. 먹은 빵과 귤의 개수도 적었다. 어느 때부터는 글을 쓰면 손가락이 떨렸다. 잠들기 전에는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만 했고, 깨어나면 이미 마셔버린 것 같은 두려움으로 병부터 확인했다.
관람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맞은편 객실의 모서리가 바다 건너 흰 건물의 창문을 가리고 있었는데, 이제 그 창문의 절반이 보였다. 혜주는 수첩의 모서리를 창틀에 대어 표시했다. 여러 번 자고 일어나 다시 보았다.
움직인 거리가 너무 짧았다.
땅에 닿을 때까지 자신이 몇 번 더 잠들어야 하는지 계산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러던 어느 때에는 그 짧은 움직임마저 멎었다.
***
남자의 손이 혜주 쪽으로 오고 있었다.
컵을 놓친 손이었다. 종이컵은 그의 무릎 아래에 비스듬히 떠 있었다. 남자는 상체를 조금 숙였고, 벌어진 손가락들은 혜주가 앉아 있는 의자 쪽을 향했다.
그녀는 그 손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붙잡으려는 것일 수도, 밀어내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남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자기 가슴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려다보았다. 옷깃 사이로 전에 없던 뼈가 보였다. 젖혔다 숙일 때마다 쇄골 위의 피부가 접혔다.
그는 자신을 보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혜주는 손바닥으로 옷깃을 여몄다.
“안 그럴게요.”
무엇을 안 하겠다는 말인지 자신도 몰랐다.
남자의 눈 아래에 물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빛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뒤 다시 보았을 때 그것은 아래 눈꺼풀 바깥으로 나온 작은 눈물이었다.
혜주는 남자 가까이 앉았다.
그의 입에서는 아주 낮은 소리가 나고 있었다. 무슨 말을 시작한 것 같았다. 혜주는 귀를 가까이 대보았다. 말은 들리지 않았고, 자신의 마른 입술이 남자의 뺨에 닿았다.
그녀는 그 눈물을 먹었다.
너무 작아서 삼킬 수도 없었다. 혀의 한쪽이 잠깐 젖었을 뿐이었다.
혜주는 뒤로 물러나 남자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손을 뻗는 중이었다.
“미안해요.”
그녀는 말을 해보았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
스물세 번째 선은 수첩의 맨 아래까지 길게 그어졌다. 혜주는 중간에 펜을 들 힘이 없었다.
그녀는 연결한 끈을 다시 점검했다. 가방의 어깨끈 두 개와 자신의 허리띠, 찢어서 엮은 겉옷이었다. 튼튼한 부분을 창틀의 세로 기둥에 묶었다. 다른 끝은 허리에 감았다.
창으로 나가 위쪽 축에 매달리면 철골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간 다음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물이 없었다. 그것만은 더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
수첩은 남자의 손에 끼웠다.
그 손이 마침내 자신이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혜주는 먼저 한쪽 다리를 내밀었다. 그다음 다른 다리를 빼냈다. 유리 조각들은 여전히 창 아래에 떠 있었다. 처음 깼을 때보다는 낮아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맨발에 닿아 밀려났다.
그녀는 창틀에 매달려 몸을 세웠다.
객실 위쪽의 연결부까지는 손 한 뼘이 모자랐다. 발가락을 창의 아래틀에 걸고 무릎을 폈다. 팔을 올리자 겨드랑이의 피부가 당겼다.
손끝이 차가운 쇠에 닿았다.
혜주는 웃으려고 했다.
그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허리에 끈이 걸렸다.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두 손으로 끈을 움켜잡았고, 몸이 객실 벽에 부딪쳤다. 다시 발을 디딜 곳을 찾았다. 발톱이 도장된 철판을 긁었다.
바느질이 뜯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가까이서.
그녀의 시간으로.
혜주는 짧아진 끈 끝을 잡고 있었다.
창틀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혜주는 본능적으로 팔을 저었다. 다리를 벌리고 몸을 비틀었다. 창으로 돌아가려 했다. 손끝은 객실의 바깥 철판에서 조금 모자란 곳을 훑었다. 그녀가 아무리 팔을 뻗어도 거리는 줄지 않았다.
그러나 바닥도 다가오지 않았다.
혜주는 숨을 몰아쉬었다.
처음에는 살았다고 생각했다.
공중에 걸린 유리처럼 자신도 아주 천천히 떨어질 것이었다. 땅에 도착하면 걸어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다. 혜주는 손에서 짧은 끈을 놓았다. 끈은 손 옆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매표소의 파란 지붕. 줄을 선 사람들. 흰 선과 검은 아스팔트 사이의 빨간 자전거.
한참 뒤에도 그것들은 같은 크기였다.
혜주는 고개를 들었다.
객실은 조금 높아져 있었다. 이제 창틀 대신 바닥의 녹슨 나사들이 보였다. 이만큼 내려오는 동안 그녀는 이미 여러 번 입을 벌려 마른침을 삼키려 했다. 팔은 지쳤고, 가슴에는 다시 잠이 몰려왔다.
아래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관람차를 나온 것이었다.
자신의 몸에서는 나오지 못했다.
혜주는 허공에서 무릎을 끌어안았다. 발을 디딜 곳이 없어 몸이 조금 돌아갔다. 하늘이 보였다. 갈매기는 날개를 펴고 있었다. 그 새의 목에 희미한 회색 무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새는 그대로 있었다.
잠들지 않으려고 혜주는 자기 이름을 말했다. 입술만 움직였다. 다음에는 수첩에 적어두지 못한 말을 생각했다. 친구에게 이용권을 고맙게 받았다는 말. 두 사람의 가방은 자신이 망가뜨렸다는 말. 창을 깼을 때 곧바로 나왔어야 했는지, 그때 나왔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을 수 있었는지.
마지막에는 그저 땅에 닿고 싶었다.
다치더라도 좋았다. 단단한 것이 등을 세게 때리고, 누군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으면 했다.
그녀는 오래 기다렸다.
***
객실 안에서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에게는 여자가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다음에는 객실 곳곳에 동시에 있는 것 같았다. 창에 붙었다가, 아내의 발밑에 웅크렸다가, 코앞에 나타났다. 무언가가 귀 가까이에서 가늘게 끓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여자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유리가 터졌다.
컵을 놓치며 손을 뻗었다. 손가락에 수첩이 끼워졌다. 여자가 창밖에 있었다.
남자는 몸을 던져 창틀을 잡았다.
아래로 떨어지는 여자의 눈은 떠 있었다. 두 팔은 무릎에 감겨 있었다. 그녀가 왜 몸을 펴지 않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수첩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종이는 몸보다 천천히 떨어졌다. 페이지들이 펄럭이며 벌어졌다. 빽빽한 글씨와 줄이 보였다. 남자는 그것을 읽지 못했다.
그가 다시 소리를 질렀을 때, 혜주는 이미 오래전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