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돌담 안에서
어머니는 계약서를 읽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펜 뚜껑을 닫았다. 창밖에서는 노인이 잔디에 떨어진 감꽃을 줍고 있었다. 노인은 집게를 쓰지 않고 꽃 하나마다 허리를 굽혔다. 꽃을 담은 비닐봉지가 무릎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안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아니, 내가 여기 살다가 죽으면 보증금을 딸한테 돌려주냐고.”
여자는 어머니가 펼쳐 놓은 계약서의 한 줄을 손톱으로 짚었다.
입주자의 사망으로 인한 계약 종료는 경계 밖에서 사망한 경우에 한한다.
어머니는 그 문장을 두 번 읽고 웃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뒤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말을 그렇게 해 놓으니까 이상하네.”
여자는 웃지 않았다.
그곳은 요양원이 아니었다. 군청을 지나 산길로 사십 분쯤 들어가면 나오는 옛 과수원이었다. 돌담 안에 단층집 여덟 채가 있었고, 가운데 우물과 공동 세탁실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더 해 볼 치료가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병원 주차장에 세워 둔 차 안에서 이곳의 주소를 내게 주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고 묻자 병원에서 알게 된 사람이라고만 했다.
“같이 주사 맞던 사람?”
“같이 맞다가 안 오게 된 사람.”
나는 그때 그 사람이 죽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계약을 담당하는 여자는 우리를 사 호 집으로 데려갔다. 방 두 개와 부엌, 문턱을 없앤 욕실이 있었다. 방바닥은 따뜻했고 창가에는 등받이가 높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를 뻗었다. 집에서 가져온 슬리퍼가 발끝에 간신히 걸려 있었다.
“여기는 병원에 안 데려가요?” 내가 물었다.
“원하시면 갑니다. 다만 나가실 때 상태를 생각하셔야 해요.”
“응급상황이면요?”
“전화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구급차가 와요?”
여자는 잠시 나를 보았다.
“대문까지요.”
설명하기 싫어하는 태도로 보였다. 나는 계약서를 돌려주려고 했다. 어머니가 내 손목을 잡았다.
“하룻밤만 있어 보자.”
어머니의 손은 차가웠다. 엄지로 내 손목 안쪽을 문지르는 버릇은 그대로였지만 힘이 약해서, 손가락 대신 젖은 천이 닿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불 두 채를 빌렸다.
그날 밤 어머니는 죽었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와 어머니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턱이 가슴에 붙어 있었다. 이름을 부르고 어깨를 만졌는데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베개를 괴어 눕힐 때 입에서 노란 물이 조금 흘렀다.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잠옷 단추를 뜯고 양손을 포갰다. 교육받은 것은 십 년도 더 전이었다. 눌러야 할 자리를 찾느라 손바닥을 옮기는 동안 어머니가 눈을 떴다.
“뭐 해.”
나는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는 가슴에 얹힌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자기 배를 보았다.
우리는 함께 기다렸다.
어머니는 숨을 쉬지 않았다. 일부러 참는 사람의 표정도 아니었다. 입을 벌리고 코를 벌름거리다가,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숨이 안 들어와.”
나는 관리동으로 뛰었다. 맨발로 나갔는지 슬리퍼를 신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계약서를 쓰던 여자가 작은 가방을 들고 따라왔다. 그녀는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 보고, 눈꺼풀을 들어 보고, 내게 잠옷 단추를 다시 채워 드리라고 했다.
“지금 병원에 가야 돼요.”
“밖에서는 돌아가십니다.”
“심장이 안 뛴다고요.”
“네.”
여자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말은 나오세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하실 거예요.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종을 꺼내 침대 옆에 놓았다. 손잡이가 달린 놋쇠 종이었다.
“목소리가 안 나올 때 흔드세요. 따님이 주무실 수도 있으니까.”
그제야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들이쉬는 소리 없이 울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물이 턱으로 떨어졌는데, 흐느낌 사이에 있어야 할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등을 쓸었다. 손바닥 아래의 몸이 조금도 오르내리지 않았다.
새벽이 되자 어머니는 울음을 그쳤다.
“안 죽었네.”
창문이 희어지고 있었다.
“나 안 죽었어.”
어머니는 그것을 확인하려는 듯 여러 번 말했다.
아침에 나는 여자를 찾아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사무실 서랍에서 휴대전화 충전기를 꺼내 내 앞에 놓았다. 내 전화기의 배터리가 꺼져 있었다.
“설명부터 들어 주세요.”
“어제 했어야죠.”
“어제도 했습니다.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건 제 잘못이고요.”
여자는 의자를 빼 주었다. 나는 앉지 않았다.
돌담 안에서는 죽지 않는다고 했다. 다친 곳이 낫거나 병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말랐다. 살이 썩을 수도 있고 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다만 그 모든 일이 사람을 끝내 주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여자는 창밖을 보았다.
어제 감꽃을 줍던 노인이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노인은 소매 끝을 한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그 안에 다른 손이 담겨 있었다. 손등이 위로 향해 있어 처음에는 팔을 다친 줄 알았다. 노인이 사무실 문을 어깨로 밀면서 말했다.
“또 빠졌어요.”
그는 소매에 담아 온 손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손목 끝은 검고 말라 있었다. 떨어진 손의 중지가 책상을 긁었다. 손가락 밑에 끼어 있던 감꽃 한 송이가 굴러 나왔다.
노인은 나를 보고 소매를 내려 잘린 곳을 가렸다.
“새로 오셨구먼.”
나는 벽에 등을 붙였다.
여자는 서랍에서 붕대와 넓적한 나무 부목을 꺼냈다. 노인은 익숙하게 팔을 내밀었다. 떨어진 손을 맞춰 대는 동안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냥 두고 다니시면 안 돼요?” 여자가 물었다.
“놓고 오면 종일 거기 있는 것 같아서.”
그는 손을 마당 쪽으로 들어 보였다.
“몸은 방에 있는데 손만 서랍 안에 있으면 얼마나 갑갑한지 아시오?”
나는 사 호 집으로 돌아가 가방을 쌌다.
어머니는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침 햇볕에 얼굴을 내놓고 있었다. 입술의 붉은 기가 없어져 치아가 유난히 누렇게 보였다.
“일어나.”
“왜.”
“집에 가자.”
“집에 가면 죽는다잖아.”
“여기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봤어.”
나는 노인의 손 이야기를 했다. 말하는 동안 자꾸 지퍼에 옷이 끼었다. 빼내려고 잡아당기다가 안감이 찢어졌다.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는 창밖을 보았다.
“그 사람은 얼마나 살았대?”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어머니는 의자 팔걸이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잠깐 얼굴이 환해졌다. 전날까지 혼자 일어서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나 지금 일어났어.”
“엄마.”
“봐. 너 안 잡았잖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돌담을 한 바퀴 돌았다. 어머니가 걷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쉬지 않고 걸었다. 몸이 가벼워졌다고도 했다. 뺨에는 아무런 혈색이 없었다.
대문 안쪽 땅에 흰 돌이 일렬로 박혀 있었다. 차가 다니는 가운데만 돌이 땅속에 깊이 들어가 있었고, 양옆은 발끝에 걸릴 만큼 솟아 있었다.
어머니는 흰 돌 앞에서 멎었다.
문밖에는 우리가 타고 온 차가 있었다. 그 너머로 산길이 내려갔다. 십여 미터쯤 떨어진 전봇대 아래에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 낡은 시간표가 몹시 보고 싶었다. 종이가 벗겨진 모서리와 검은 숫자들을 가까이서 읽고 싶었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말했다.
나는 어머니 팔을 놓고 문밖으로 나갔다. 열 걸음쯤 걷고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흰 돌을 보고 있었다. 발을 조금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마치 얕은 개울을 건너려다 물살을 가늠하는 사람 같았다.
“엄마.”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집에 가자.”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너나 가.”
나는 대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어머니는 지치지 않았다. 햇빛이 돌담의 그늘로 넘어갈 때까지, 서 있는 자세가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결국 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한 달 동안 어머니와 살았다.
어머니는 음식을 조금씩 먹었다. 삼키는 데 오래 걸렸고 소화는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배가 부풀면 관리동 여자가 와서 처치했다. 나는 욕실 밖에서 기다렸다. 어느 날은 욕실 바닥에 놓인 대야 안에서 작은 것이 계속 오므라드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내게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수건을 덮어 주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것도 버리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다시 쓸 수도 있잖아.”
여자는 뚜껑이 있는 통을 가져왔다.
통은 침대 밑에 두었다.
나는 밤마다 바닥에 깐 요 위에서 그 통이 놓인 쪽을 보았다. 플라스틱 뚜껑을 손톱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머니에게 아프냐고 물으면 아픈 건 아니라고 했다.
“간지러워. 손 안 닿는 데가.”
어머니는 하루 종일 뉴스를 틀어 놓았다. 새 치료법이 나왔다는 보도가 나오면 나를 불렀다. 그것이 자기 병과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설명하면, 어머니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말했다.
“지금은 그렇지.”
옆집 할머니는 입주한 지 이십일 년째였다. 그녀의 아들은 매주 생수를 배달시켰고 추석 전날에 왔다. 할머니는 대문에서 가장 먼 집에 살았다. 바깥쪽 벽에는 바퀴 달린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그 집에 처음 인사를 갔을 때 할머니는 두툼한 방석 위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덮인 치마가 바닥까지 곧게 떨어져 있었다. 안에 다리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따님이 착하네.”
그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한 달이나 붙어 있고.”
어머니는 내 손을 잡았다.
“얘 아니면 나 못 살아요.”
할머니는 웃지 않았다.
“그런 말은 하지 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옆집 사람이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내가 잠든 줄 알고 어머니가 말했다.
“미안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못 가겠어.”
어머니의 침대에서 이불을 쓸어내리는 소리가 났다.
“내일 아침 되면 마음이 달라질지 모르잖아.”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화분을 사 달라고 했다.
나는 읍내에서 제라늄 두 개를 사 왔다. 어머니는 창턱에 화분을 놓고 돌아가며 빛을 받게 했다. 꽃이 시들어도 꽃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갈색으로 쪼그라든 꽃들이 줄기 끝에 붙어 있었다. 어머니가 손으로 떼어 접시에 모았다.
그것들은 밤에 조금씩 펼쳐졌다.
나는 접시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흰 돌을 넘자 꽃잎들이 가만해졌다.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바스러졌다.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접시를 보았다.
“버렸어?”
“응.”
“다음부터는 물어보고 버려.”
두 달째 되는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회사에 더는 휴직할 수 없었고, 아들은 할머니보다 나를 먼저 잃어 가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일주일에 한 번 오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 짐을 싸는 동안 침대 밑의 통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거 놓고 가.”
나는 통에 손대지 않았다.
관리동 여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했다. 여자의 이름은 경희였다. 그제야 처음 이름을 물었다. 경희는 내가 맡긴 돈을 세고 수첩에 적었다.
나는 그녀에게 왜 여기서 일하느냐고 물었다.
경희는 마당 건너편 육 호 집을 가리켰다. 커튼이 늘 닫혀 있는 집이었다.
“남편이 있어요.”
“얼마나 됐어요?”
“내년이면 서른 해요.”
경희는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였다. 이제야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 뿌리가 하얗고, 셔츠 소맷단을 두 번 접었으며, 손톱이 살에 닿을 만큼 짧다는 것을 보았다.
“남편분도 계속 있고 싶어 하세요?”
“물어봐요.”
“뭐라고 하세요?”
경희가 수첩을 덮었다.
“대답하실 수 있을 때는 있고 싶다고 했어요.”
나는 그날 차 안에서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돌담에서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엄마, 우리 정해 놓자.”
“뭘.”
“나중에 말 못 하게 되면. 손도 못 쓰면. 어떻게 할지 지금 정해 놓자.”
어머니 쪽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작아졌다.
“그러면 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렇게 말하지 마. 내가 어떻게 알아.”
긴 침묵 끝에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면 그냥 둬.”
나는 운전대에 이마를 대었다.
“아무 말도 못 해도 그냥 둬. 내가 나가자고 할 때만 데리고 나가.”
나는 전화를 끊지 못했다. 어머니도 끊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숨소리는 하나뿐이었다.
그 뒤로 십칠 년이 지났다.
처음 몇 년은 매주 갔다. 그러다 격주로 갔고, 내 무릎을 수술한 뒤부터는 한 달에 한 번 갔다. 아들은 취직했고 결혼했다. 어머니는 사진을 보았다. 처음에는 손에 들고 보았고, 나중에는 내가 얼굴 앞에 사진을 세워 놓았다.
어머니의 몸은 가벼워졌다. 옷은 무거워졌다. 떨어져 나올 만한 부분들을 안감에 받쳐 꿰매 놓았기 때문이다. 경희에게 배워 나도 바느질을 했다. 소매를 잡아당기면 어머니가 아파했다. 손이 없는 쪽 소매도 조심해서 다뤄야 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침대를 쓰지 않았다. 여러 군데를 받칠 수 있는 긴 의자에 누워 있었다. 턱을 받쳐 주지 않으면 입이 벌어졌다. 눈은 한쪽만 덮을 수 있었다. 남은 쪽은 쉽게 말라서 경희가 자주 물을 떨어뜨려 주었다.
나는 치료법에 관한 이야기를 가져가지 않았다. 어머니도 묻지 않았다. 대신 새로 생긴 다리와 없어진 가게, 손자의 직장 동료에 관해 말했다. 그 사람은 어머니가 만나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다음에 가면 어머니는 힘겹게 입술을 움직여, 아기 낳았다던 그 사람은 회사에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여름에는 의자를 마당으로 밀고 나갔다.
바퀴가 흙에 빠지지 않게 길을 내 놓았다. 경희와 내가 시멘트를 발랐고, 아직 손이 붙어 있던 노인이 가장자리를 골랐다. 길은 돌담과 나란히 돌다가 우물 앞에서 끝났다.
지난 유월, 나는 의자를 밀다가 대문 쪽을 보았다.
흰 돌 사이로 풀이 자라 있었다. 문밖에는 내 아들의 차가 서 있었다. 아들은 운전석에서 잠들어 있었다. 나이가 드니 산길 운전이 힘들어져 아들이 데려다주고 있었다.
나는 의자를 멈췄다.
“엄마.”
어머니의 남은 눈이 나를 찾았다.
“나도 이제 힘들어.”
말을 하고 나서 나는 내가 무엇을 요구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방문 횟수를 줄이겠다는 말인지, 돈이 모자란다는 말인지, 이제 그만 흰 돌을 넘어가자는 말인지.
어머니의 입이 조금 움직였다.
나는 귀를 가까이 댔다. 마른 잇몸 사이에서 혀가 움직였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아.”
그 말이었다.
나는 의자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미안하다고 하면, 괜찮다고 대답하고 다시 의자를 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이 대문 쪽으로 돌아갔다.
눈꺼풀이 움직였다. 한 번, 쉬고, 다시 두 번.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된 뒤 경희와 정해 놓은 신호였다. 오른쪽으로 돌려 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알아보지 못한 척했다.
어머니가 다시 눈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했다. 입까지 벌어졌다. 받침 위에서 턱이 미끄러졌다. 목 안쪽의 어두운 구멍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나는 의자를 돌렸다.
대문이 등 뒤로 가고 집들이 보이자 어머니의 입이 멎었다.
그날 나는 사 호 집 창가에 의자를 놓아 주고, 턱을 바로 받치고, 눈에 물을 떨어뜨렸다. 어머니는 내가 신발을 신을 때까지 나를 보았다. 다음 달에 오겠다고 하자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관리동에서 경희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안 나가시겠대요.”
경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녀는 수첩을 읽을 때 돋보기 두 개를 겹쳐 썼다.
나는 방문을 나서다가 돌아왔다.
“제가 먼저 죽으면요.”
경희가 나를 보았다.
“우리 아들은 여기 안 오게 해 주세요.”
그녀는 한참 뒤에 빈 종이를 꺼냈다. 내가 말한 것을 적고 내게 확인시켰다. 나는 서명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들이 할머니는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대로야.”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산길이 굽어지기 전에 돌담이 한 번 보였다. 사 호 집 창문도 보였다. 너무 멀어 창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경희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의자를 옮겨 달라고 했다고 했다.
“창가가 추우시대요?”
“아니요.”
경희 쪽에서 가구를 미는 소리가 났다. 전화를 어깨에 끼우고 일하는 모양이었다.
“집 안에서 대문까지 어디가 제일 머냐고 하셔서요.”
나는 불을 끄고 누운 채 천장을 보았다.
“지금 거기로 옮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