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사람

남편이 잠든 뒤에도 오른손은 한동안 깨어 있었다.

처음에는 신경 문제라고 생각했다. 손가락이 이불 위를 더듬다가 잠옷 단추를 잡았고, 어떤 날은 목을 긁었다. 긁은 자리에 피가 맺혀도 남편은 깨지 않았다. 나는 손톱을 짧게 깎아 주었다. 마흔아홉 먹은 남자의 손톱을 발톱깎이로 자르면서, 나중에 우리가 늙으면 이런 일이 일상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상한 것은 손을 잡아 주었을 때였다.

남편은 평소 내 손을 느슨하게 쥐었다. 오래 잡고 있으면 손바닥에 땀이 난다며 먼저 놓았다. 그런데 잠든 남편의 손은 내 손가락 사이로 급하게 파고들었다. 한 번은 너무 세게 잡아서 반지가 살을 파고들었다.

“여보, 아파.”

그제야 힘이 풀렸다.

눈은 감겨 있었다.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다음 날 말해 주자 남편은 자기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아침을 먹는 동안 그 손을 허벅지 밑에 깔고 앉아 있었다.

그 주부터 저녁마다 약을 먹었다.

약은 작은 갈색 병에 들어 있었다. 라벨이 없었다. 처방약이냐고 물으니 거래처 사람이 구해 준 수면 보조제라고 했다. 내가 병을 집자 남편이 손목을 붙잡았다. 쏟을까 봐 그랬다고 했다.

밤의 손은 얌전해졌다.

그 대신 남편은 아침마다 혀를 확인했다. 욕실 거울 앞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좌우로 돌렸다. 나는 전동칫솔을 문 채 옆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혀 밑에 뭔가 흰 것이 붙어 있었는데, 침인지 살인지 구분하기 전에 남편이 입을 다물었다.

“헐었어?”

“조금.”

“당신 요즘 피곤한가 보다.”

남편은 거울로 나를 보며 웃었다.

우리는 결혼한 지 십칠 년이었다. 그가 웃을 때는 늘 왼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나는 그것을 남편의 다정한 버릇이라고 생각했다.

*

내가 처음 그를 본 것은 금요일 밤이었다.

남편은 열 시가 되기 전에 잠들었다. 나는 다음 날 친정에 가져갈 장조림을 식히고 있었다. 냉장고에 넣을 자리가 모자라 반찬통을 정리하다가 유리병 하나를 떨어뜨렸다. 깨지지는 않았지만 꽤 큰 소리가 났다.

안방에서 남편이 말했다.

“아직 안 잤어?”

목소리가 가늘었다. 잠이 덜 깬 목소리와는 달랐다. 휴대전화를 멀리 놓고 통화할 때처럼 작고 선명했다.

“이제 자려고.”

대답이 없었다.

나는 불을 끄러 안방에 들어갔다.

남편은 베개를 두 개 받치고 입을 벌린 채 누워 있었다. 턱이 평소보다 아래로 처져 있었다. 입술 가장자리에 침이 고였고, 그 침 위에 아주 작은 발이 놓여 있었다.

나는 먼저 장난감이라고 생각했다.

발에는 다섯 개의 발가락이 있었다. 엄지발가락은 누렇게 휘어 있었고 발등에는 가느다란 핏줄이 보였다. 발에 이어 종아리가 나왔다. 무릎, 마른 허벅지. 무엇인가 남편의 입 안에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것은 남편의 아랫입술을 밟고 바깥으로 나왔다. 벌거벗은 남자였다. 내 손 한 뼘보다 조금 작았다. 배가 처지고 등에는 검버섯이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젖어 두피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가 남편의 턱 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작은 얼굴의 왼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놀랐지.”

나는 문을 닫았다.

문 밖에 서서 손잡이를 계속 잡고 있었다. 안에서는 이불을 밟는 소리도,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그 작은 목소리가 문 아래에서 났다.

“은희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너무 무거워. 좀 열어 줘.”

*

그날 밤 나는 집을 나왔다.

신발을 제대로 신지도 못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어 계단으로 내려갔다. 일 층 공동현관까지 왔을 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지 않았다.

편의점 창가 자리에 앉아 새벽까지 있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가 열세 번 왔다. 열네 번째에는 문자였다.

몸 두고 어디 오래 못 가. 집에 있어. 돌아와서 얘기하자.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몸 두고.

나는 휴대전화로 남편의 사진을 확대했다. 여행지에서 햇빛 때문에 찡그린 얼굴. 식당에서 고기를 자르는 손. 결혼식 날 내 허리에 얹었던 손.

몸 두고.

날이 밝자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웬일이냐고 했다. 나는 장조림을 못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런 것 가지고 전화를 다 하느냐며 웃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입을 벌려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말을 하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내가 알던 크기로, 내가 알던 얼굴로. 식탁에는 북엇국 두 그릇이 놓여 있었다.

“일단 좀 먹어.”

나는 현관에 서 있었다.

남편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을 나는 잘 알았다. 내가 주차하다 차를 긁었을 때, 전세 계약 날짜를 잘못 알았을 때, 남편이 이미 용서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내쉬던 한숨이었다.

“이렇게 알게 할 생각은 없었어.”

“그 사람이 당신이야?”

남편은 잠시 눈을 감았다.

“네가 본 게 나야.”

“그러면 이 사람은?”

나는 남편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는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질문을 잘못 들은 사람처럼 보였다.

“이건 나고.”

“아까는 그게 당신이라며.”

“은희야. 앉아 봐. 그렇게 서 있으면 얘기를 못 해.”

나는 앉지 않았다.

그는 결국 국그릇을 싱크대로 옮겼다. 두 그릇을 차례로 비우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을 틀고 그릇을 헹구는 등이 너무 익숙해서, 나는 잠깐 내가 어젯밤부터 미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

“사람이 네가 아는 한 가지뿐인 건 아니야.”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우리 중 일부는 비어 있고, 그 빈 곳에 들어가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누구를 죽이거나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빈 집에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

“집은 손을 안 잡아.”

남편의 표정이 달라졌다.

나는 그제야 밤의 손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반사야.”

“아프다고 하니까 놔줬어.”

“잠결에도 소리는 듣잖아.”

“누가?”

남편은 수건을 접었다. 가장자리를 아주 반듯하게 맞췄다.

“오래 쓰면 버릇이 생겨. 그거야.”

*

나는 사흘 동안 거실에서 잤다. 정확히는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남편은 출근했고 퇴근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내 운동화를 안쪽으로 들여놓았다. 관리비를 냈고, 식탁 위에서 귤을 까 먹었다. 귤껍질을 한 줄로 길게 벗기는 버릇도 그대로였다.

그는 자꾸 평소처럼 살면 된다고 했다.

“내가 당신한테 잘못한 게 있어?”

나는 무엇을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십칠 년 동안 있었던 잘못들은 이제 이상하리만큼 사소했다. 내 아버지 장례식 때 회사 전화를 받으러 오래 나가 있었던 일. 내 말을 중간에 끊는 버릇. 화가 나면 사흘씩 입을 다물던 일.

그 일들을 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버린 뒤에도, 그때의 서운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요일 저녁, 남편은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안에는 보온병처럼 생긴 통이 들어 있었다. 은색 뚜껑에는 바늘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만나 보면 좀 나을 것 같아서.”

나는 식탁에서 물러났다.

“뭘.”

“우리 같은 사람을.”

남편이 뚜껑을 풀었다.

통 안에는 수건이 접혀 있었다. 그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회색 머리를 뒤로 묶고 얇은 천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여자는 불빛에 눈을 찡그리더니 두 손으로 통 가장자리를 잡고 일어섰다.

나는 싱크대에 등을 부딪쳤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말했다.

남편은 손바닥을 통 옆에 붙였다. 여자는 그 손을 디디고 식탁으로 내려왔다. 맨발로 식탁을 걷다가 내가 마시던 물컵 앞에 섰다.

“실례지만 조금만 주시겠어요?”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이 병뚜껑에 물을 따라 주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마셨다. 물을 삼킬 때 가느다란 목이 움직였다.

사람이었다. 그 생각이 가장 무서웠다. 벌레처럼 밀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이 목으로 넘어갈 때 눈을 감는 사람, 찬 식탁 위에서 발을 번갈아 드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나를 오래 보았다.

“허리는 괜찮으세요?”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남편이 대신 말했다.

“오래 서 있으면 조금.”

“잠은요?”

“원래 잘 잤는데, 며칠 전부터 좀.”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아는 직접 봐야겠네요.”

나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남편이 뒤따라왔다.

“오해하지 마.”

내가 신발을 집자 그가 손에서 빼앗았다.

“다시 신경 치료 같은 거 안 해도 된다는 얘기야. 안에서 조절하면 훨씬 편해져. 불안한 것도 없어지고.”

나는 맨발로 문을 열었다.

남편이 문 위를 눌렀다. 내 힘으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식탁 쪽에서 여자가 말했다.

“아직 설명을 안 하셨구나.”

남편은 이를 악물었다. 턱 안에서 무언가 작게 꿈틀거렸다.

“다음에 얘기해.”

“이렇게 깨어 있는 데는 안 들어갑니다. 저도 다쳐요.”

그때 나는 최근 한 달 동안 남편이 타 주던 차를 떠올렸다. 잠을 잘 자야 한다며 식탁 위에 놓아 두었던 머그잔. 마시고 나면 팔다리부터 멀어지던 느낌. 아침에 내 손이 내 것 같지 않아 뜨거운 물에 오래 담그고 있던 일.

남편의 오른손이 문에서 떨어졌다.

그 손이 자기 왼손 손목을 잡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남편은 오른손을 세차게 털었다. 그러고는 내 앞에서 물러났다.

나는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

동생 집에서 이틀을 보냈다.

나는 남편이 몰래 약을 먹였다고 말했다. 동생은 바로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다. 무슨 약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갈색 병이라고만 했다. 동생은 그것부터 가져오라고 했다. 자기가 같이 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 집에 다른 사람을 데려갔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 입을 다문 채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나는 그 입을 강제로 벌려야 했다. 동생 앞에서. 경찰 앞에서.

그 안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남편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문자만 보냈다.

당신 놀랄까 봐 그랬어.

좋아지는 방법이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

우리가 산 세월을 생각해.

마지막 문자를 받은 날 밤, 나는 결혼사진을 다시 보았다. 동생 집의 작은 방에 누워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벌렸다.

사진 속 남편의 왼손은 내 허리에 놓여 있었다. 오른손은 몸 옆으로 내려져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액자에 넣어 십칠 년 동안 보았다.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가 서로 단단히 꼬여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른 사진을 찾았다. 신혼여행 때 찍은 사진. 남편은 바다를 등지고 웃고 있었다. 나는 그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아래로 내려진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주먹 안에 갇혀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남편은 약을 먹기 전부터 오른손을 이상하게 쓰곤 했다. 내 어깨를 감싸다가 갑자기 팔을 떼었다. 영화를 보던 중 자기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부부 싸움 끝에 나를 안아 줄 때는 손끝이 내 등에서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가 서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더는 볼 수 없었다.

*

집에 간 것은 약병 때문이었다. 나머지 이유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동생에게는 남편이 출근한 시간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새벽 다섯 시에 갔다. 남편의 잠이 가장 깊은 시간이었다.

현관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거실에 낯선 냄새가 났다. 젖은 수건을 밀폐된 곳에 오래 넣어 두었을 때 나는 냄새였다. 식탁 위에 은색 통이 놓여 있었다. 뚜껑은 닫혀 있었다.

안방 문은 열려 있었다.

남편의 몸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입은 벌어져 있었고 베개에는 축축한 자국이 퍼져 있었다. 갈색 약병은 협탁에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로 병과 침대를 찍었다. 약병을 가방에 넣었다.

그때 손이 움직였다.

오른손이었다.

시트 위를 더듬어 침대 가장자리까지 왔다. 손가락들이 하나씩 아래로 꺾였다. 난간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문 쪽을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등에 검지를 댔다.

손이 내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 침대에 누운 남자가 눈을 떴다.

나는 소리를 낼 뻔했다. 남편이 눈을 뜬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눈썹은 치켜올라가 있었고 입은 벌어진 그대로였다. 눈동자가 나와 천장 사이를 미친 듯이 오갔다.

숨을 쉬지 않았다.

“숨 쉬어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가슴이 들썩였다. 목에서 걸쭉한 소리가 났다. 그는 처음 물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길게 공기를 들이켰다.

“천천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귀 쪽으로 흘러 베개에 스몄다.

나는 손을 빼려 했다. 그가 더 세게 잡았다.

“여기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이 떨렸다.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났다.

“손 놔.”

남편은 화장대 위에 서 있었다. 작은 몸에 손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내가 눈썹 정리할 때 쓰는 가위를 들고 있었다. 그에게는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커 보였다.

“지금 걔가 무슨 상태인지 알아?”

나는 침대 쪽으로 몸을 붙였다.

“사람이잖아.”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는 화장대에서 침대 옆 낮은 서랍장으로 내려왔다. 익숙한 길이었다. 화장대 밑에 쌓아 둔 책들, 내가 버리자고 할 때마다 남편이 그대로 두라던 작은 상자들이 계단을 이루고 있었다.

“손부터 놔. 힘 조절을 못 해. 네 손 으스러져.”

침대 위의 남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놓을 수 있어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손가락이 하나씩 풀렸다.

남편이 움직임을 멈췄다.

“은희야.”

그는 가위를 내려놓았다.

“우선 저쪽 가서 얘기하자.”

침대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자기 어깨 아래에 서 있는 작은 사람을 보았다. 눈이 커졌다. 목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남편은 그를 보지 않고 나만 보았다.

“당신 지금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잖아. 이걸 데리고 뭘 할 건데. 어디 아픈지, 뭘 먹여야 하는지 알아? 얘 혼자서는 소변도 제대로 못 봐.”

침대가 흔들렸다.

남자가 왼손으로 시트를 움켜쥐고 상체를 들었다. 팔꿈치가 꺾여 다시 쓰러졌다. 남편은 재빨리 베개 쪽으로 올라왔다.

나는 그를 막으려고 손을 뻗었다. 작은 몸이 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차갑고 축축한 발바닥이 피부에 붙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손톱이 손목 안쪽을 파고들었다.

“가만있어!”

남편이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나는 잠깐 멈췄다.

십칠 년 동안 몸에 익은 정지였다. 내가 접시를 깨뜨렸을 때, 운전 중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그가 큰 소리를 내면 우선 움직이지 않던 버릇.

그 짧은 사이에 남편은 내 팔에서 베개로 뛰었다.

침대 위의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남편은 아랫입술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작은 발가락이 턱을 밀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피가 났다.

“열어.”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열어. 네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래.”

남편은 다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열이 나서 뒤척일 때 쓰던 목소리였다.

“들어가면 괜찮아져.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내가 다 할게.”

남자의 오른손이 올라왔다.

작은 몸통을 움켜쥐었다.

남편의 말이 끊겼다.

나는 그 손을 보았다. 손톱을 내가 깎아 준 손이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가느다란 팔 하나가 버둥거렸다.

“잠깐.”

내가 말했다.

왜 그 말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남자가 나를 보았다.

오른손은 멈추지 않았다.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나는 마른 나뭇가지를 꺾을 때 나는 소리를 떠올렸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젖어 있었다.

남자는 손을 펴지 않았다. 오래도록 쥔 채로 앉아 있었다.

*

우리는 그날 오후까지 안방에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오는 법을 몰랐다. 두 발을 바닥에 놓고도 체중을 옮기지 못했다. 나는 부축하려고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그가 내 손을 보고 몸을 움츠렸기 때문이다.

점심 무렵에는 혼자 일어섰다. 벽에 어깨를 대고 욕실까지 갔다. 문을 닫으려고 여러 번 손잡이를 헛짚었다. 나는 거실에서 기다렸다.

식탁 위의 통 안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 됐어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통을 들어 신발장 위에 올려놓았다. 거기서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현관 밖에 내려놓았다.

저녁에 확인했을 때 통은 없었다.

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른다.

남편의 휴대전화가 여러 번 울렸다. 회사에서 온 전화였다. 나는 받지 않았다. 그 남자는 소파 끝에 앉아 벨 소리가 날 때마다 입을 가렸다.

나는 죽을 끓였다.

그는 숟가락을 쥘 줄 알았다. 밥을 뜨고 입에 넣는 동작도 할 줄 알았다. 다만 한 숟갈을 삼킨 뒤 다음 숟갈을 뜨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다. 허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를 보았다.

“더 먹어도 돼요.”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날 밤, 나는 작은 방에 이불을 폈다. 그에게 안방에서 자라고 했다. 그는 침대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혼자예요.”

내가 말했다.

“문 닫아도 돼요.”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안에서 무언가 나올 것 같았다. 그도 내가 무엇을 보는지 알았는지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손등 뒤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안 자면.”

남편의 목소리였다. 낮고 조금 쉰, 십칠 년 동안 아침마다 들은 목소리.

“안 자면 안 와요?”

나는 이제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번 말했다.

그는 문을 닫았다.

*

사흘 뒤 그는 집을 나갔다.

그 사이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이 없는 것인지, 알려 주기 싫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 그가 바로 고개를 돌린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다시는 부르지 않았다.

그는 집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만졌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고, 세탁기의 둥근 창에 손을 댔다. 베란다에서는 화분 흙을 한 움큼 쥐었다가 놓았다. 흙냄새가 묻은 손을 코에 가져가 오랫동안 있었다.

나는 그동안의 일을 묻고 싶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얼마나 오래 깨어 있었는지.

내가 잠든 남편의 가슴에 귀를 댔을 때도 거기 있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날 아침 그는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옷을 세 벌 겹쳐 입고 있었다. 밖이 추울까 봐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가장 두꺼운 옷 하나만 입어도 된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갈 거예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냈다. 신분증도 필요할 것 같아서 남편의 지갑을 가져왔다. 그는 돈은 받았지만 지갑은 받지 않았다. 사진 속 웃는 얼굴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현관문을 열자 아침 햇빛이 복도에 길게 들어와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갔다.

나는 무심코 그의 소매를 잡았다.

그가 즉시 벽에 등을 붙였다. 턱을 내리고 어깨를 웅크렸다.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는 놓았다.

“미안해요.”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한 걸음 물러난 뒤에야 손을 내렸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내가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에, 밤에 내 손 잡았잖아요.”

나는 그 말을 하는 동안 조금 울었다. 그에게서 무엇인가 돌려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결혼생활 안에, 잘못 알지 않은 순간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했다.

“그때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한 거예요?”

그는 내 손을 보았다.

“손 치우려고.”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그런데 안 놔서.”

나는 팔을 몸 뒤로 감췄다.

그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문을 닫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가고, 층수 표시가 하나씩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집 안으로 돌아와 결혼사진을 식탁 위에 눕혔다.

사진 속에서 나는 남편의 팔에 매달려 웃고 있었다. 이제는 꼬인 손가락보다 그 팔이 먼저 보였다. 내 두 손이 단단히 붙잡고 있는 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