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밤품
남편을 묻고 사흘째 되던 밤, 순덕은 마당에서 삽질하는 소리를 들었다.
흙을 뜨는 소리가 아니었다. 삽날에 붙은 진흙을 떼려고 자루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두 번 짧게, 한 번 길게. 남편은 평생 그렇게 했다. 순덕이 그 버릇 때문에 삽자루가 다 갈라진다고 잔소리를 하면, 남편은 갈라져야 손에 맞는다고 했다.
순덕은 일어나 부엌의 불을 켰다.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담에 기대 놓은 삽도 그대로였다. 다만 수도꼭지 밑에 남편의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입관할 때 발에 신긴 새 고무신이었다.
한 짝씩 뒤집자 누런 진흙이 쏟아졌다. 흙 속에 손톱 반쪽이 박혀 있었다.
순덕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오른쪽 엄지손톱이었다. 남편은 지난해 양수기를 옮기다 손가락을 찧었다. 새로 자라는 손톱 한가운데에 세로로 검은 줄이 있었다.
순덕은 손톱을 쌀 씻는 바가지에 놓고, 고무신은 다시 바로 세웠다.
그날은 날이 밝을 때까지 부엌에 앉아 있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순덕이 직접 낸 돈은 거의 없었다. 산주인 박 회장이 관과 수의를 보냈고, 마을회에서 음식을 댔다. 묏자리도 박씨 문중 산 아래쪽에 내주었다. 남편이 그 집 논밭과 산에서 사십 년을 일했으니 그만한 예우는 해야 한다고 했다.
순덕은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남편이 얻어 입은 옷 가운데 가장 좋은 옷이 수의라는 사실도, 그때는 크게 서럽지 않았다. 적어도 마지막에는 사람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염을 하던 최 노인이 남편 입에 엽전 하나를 넣었다.
“저승길 노잣돈이오?”
순덕이 묻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등에 검버섯이 빽빽했고, 돈을 넣은 뒤 남편 턱을 밀어 올리는 손길은 뜻밖에 거칠었다.
“입 벌어지면 안 됩니다.”
그가 말했다.
그다음 밤에는 기침이 들렸다.
남편은 살아서 기침을 할 때마다 아랫목에 누운 순덕이 깰까 봐 부엌으로 나갔다. 목에 가래가 걸린 채, 소리를 작게 만들려고 입술을 다물고 기침했다. 그 소리가 뒤꼍에서 났다.
순덕은 문을 열었다.
남편이 장독대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흰 수의가 허리까지 흙투성이였다. 맨발의 발가락 사이로 가는 뿌리들이 끼어 있었다. 순덕은 얼굴보다 발을 먼저 보고, 겨울인데 저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에는 죽은 사람이 추위를 타는지 생각했다.
“당신.”
남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순덕이 내려가 팔을 잡았다. 옷감 안쪽에서 살이 밀렸다. 젖은 행주를 비틀 때처럼, 손가락 밑으로 무언가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순덕은 힘을 풀었다.
“왜 이러고 있어.”
남편이 입을 움직였다. 입술 사이에서 쇠붙이가 번쩍였다. 말 대신 검붉은 물이 턱으로 흘렀다.
순덕은 부엌에서 물 한 대접을 가져왔다. 남편은 두 손으로 대접을 받았으나 입에 대지 못했다. 턱을 벌릴 때마다 목 안쪽에서 달그락거렸다.
멀리서 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남편이 대접을 떨어뜨렸다. 흙바닥에 떨어진 대접이 한 바퀴 돌았다. 순덕이 다시 팔을 잡기도 전에 남편은 일어섰다. 처음 몇 걸음은 절뚝거렸지만 대문을 나설 때에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걸었다.
“어딜 가.”
남편은 돌아보지 않았다.
순덕이 고무신을 신고 대문까지 나갔을 때, 산길로 올라가는 흰 등이 셋 보였다. 남편은 맨 뒤였다. 앞선 사람은 어깨에 무언가 긴 것을 메고 있었다. 달빛 속에서 그것이 곡괭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음 날 순덕은 최 노인의 집으로 갔다.
그는 마루에 앉아 마른 담뱃잎을 비비고 있었다. 순덕이 보자기에 싸 온 고무신을 풀자, 손을 멈췄다.
“어디서 났소.”
“당신이 신겼잖아.”
노인은 고무신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짐승이 팠겠지.”
순덕이 손톱을 내놓았다.
최 노인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아랫니가 하나도 없었다. 순덕은 장례 내내 그가 국에 밥을 말아 혀로 으깨 먹던 것을 떠올렸다.
“입에 뭘 넣었어.”
노인은 마당 너머를 보았다. 대문은 닫혀 있었다.
“그 집에서 준 돈이오.”
“엽전 하나가 무슨 돈이야.”
“앞면에 글자가 없었지요.”
순덕은 기억하지 못했다. 남편의 입술에 묻은 누런 염습 약만 보고 있었다.
최 노인은 손바닥의 담뱃잎을 바닥에 털었다.
“박씨 집 도장이 찍혀 있었소.”
한동안 바깥에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렸다.
“동전 빼 줘.”
순덕이 말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일을 시작했으면 안 나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최 노인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 잇몸 한가운데가 깊이 찢어져 있었다. 오래전에 아문 흉터였다.
“아버지 걸 빼려다가 물렸소. 아버지는 물고 싶어서 문 게 아니오.”
순덕은 노인이 더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담뱃잎을 다시 주워 모았다. 손끝이 떨려 잘 잡히지 않았다.
“나는 다음번까지 염을 해 주기로 했소. 그 뒤에는 우리 아버지를 내려 주겠다고 했고.”
“다음번이 우리 영감이었어?”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순덕은 고무신을 다시 쌌다. 손톱도 잊지 않고 보자기 귀퉁이에 넣었다. 나가는데 최 노인이 뒤에서 말했다.
“해 뜨기 전에는 산에서 내려오시오. 그때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가 없어져요.”
순덕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밤, 순덕은 남편의 겨울 솜바지를 들고 산에 올랐다.
묘 아래까지는 손전등을 켰다. 봉분 앞에서 불을 껐다. 새로 입힌 잔디에 하얀 서리가 내려 있었다. 봉분 한쪽이 무너져, 사람 어깨가 겨우 드나들 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안에서는 빈 관 냄새가 났다. 생나무 냄새와 젖은 베 냄새였다.
순덕은 봉분 옆에 앉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위쪽에서 돌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씨 묘역은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아래에는 작은 봉분들, 그 위에는 비석을 세운 묘들, 꼭대기에는 돌난간을 두른 묘 하나가 있었다. 박 회장은 몇 해 전부터 그 옆에 자신의 묏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여름에 갔을 때도 중장비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기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순덕은 나무를 짚으며 올라갔다.
횃불 네 개가 묏자리 둘레에 꽂혀 있었다. 불은 바람이 불어도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일했다.
열댓 명쯤 되었다. 모두 흰옷을 입었지만 깨끗한 옷은 하나도 없었다. 흙을 파는 이, 돌을 미는 이, 물동이를 옮기는 이가 있었다. 한 사람은 두 무릎이 반대로 꺾여 네 발로 기었다. 지게의 흙을 부릴 때마다 이마로 땅을 짚었다.
순덕은 그 사람을 알았다. 방앗간을 하던 천씨였다. 젊어서 다리를 다쳐 평생 목발을 짚었다. 죽은 지 십 년도 넘었다.
남편은 커다란 석판 밑에 어깨를 넣고 있었다. 함께 받친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머리가 없었다. 옷깃 위로 검은 구멍만 보였지만 남편과 보조를 맞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앞에 박 회장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순덕은 그의 장례에도 갔었다. 그날 남편은 상여 맨 앞을 멨다. 그 노인은 죽어서도 장죽을 가지고 있었다. 장죽 끝으로 석판을 두드렸다.
“늦는다.”
낮고 작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나뭇잎 하나 스치는 소리까지 사라졌다.
남편이 어깨를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수의가 찢어졌다. 순덕은 천이 찢어지는 소리 뒤에 짧고 무거운 소리를 들었다. 어깨뼈가 부러지는 소리라는 것을, 남편의 팔이 갑자기 길어진 뒤에야 알았다.
그래도 석판은 떨어지지 않았다.
순덕은 입에 솜바지를 물었다. 소리를 내면 남편이 돌아볼 것 같았다. 저 아래서 자신이 부를 때도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이, 여기서 돌아보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장죽을 든 노인이 말했다.
“먹여 주고 입혀 줬으면 값을 해야지.”
순덕은 그 말을 살아 있는 입으로도 들은 적이 있었다.
남편이 허리를 다쳐 사흘 쉬었을 때였다. 박 회장은 약값이 든 봉투를 주며 똑같이 말했다. 남편은 나흘째 되는 날 복대를 두르고 산에 갔다.
석판이 놓이자 노인은 꼭대기 묘 앞으로 갔다. 상석에는 놋그릇과 보온병이 놓여 있었다. 노인이 뚜껑을 여니 흰 김이 올랐다. 밥과 고기, 작은 술병도 있었다.
천씨가 빈 지게를 지고 그 앞을 지났다. 노인은 손을 멈추고 천씨의 이마를 장죽으로 밀었다.
“네 밥 아니야. 내 자식이 내게 올린 거다.”
천씨는 땅에 닿았던 이마를 들었다. 입술 사이에서 쇠붙이가 잠깐 번쩍였다. 노인은 그가 기어가는 동안 허리를 깊이 굽혀 밥을 먹었다. 일꾼들에게는 한 번도 굽히지 않았던 허리였다.
순덕은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부러진 팔을 늘어뜨린 채 다음 돌 앞에 서 있었다.
동쪽 하늘이 옅어지자 사람들이 연장을 내려놓았다.
장죽을 든 노인이 한 사람씩 입을 들여다보았다. 말이나 소의 나이를 보듯 턱을 잡아당겼다. 남편 차례가 되자 순덕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내일은 위쪽 돌을 올린다.”
노인이 말했다.
죽은 사람들은 일렬로 내려갔다. 순덕은 나무 사이로 지나는 흰옷을 하나씩 세었다. 열다섯이었다. 남편은 부러진 팔을 다른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순덕은 그 등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내려오는 길에 솜바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박 회장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순덕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식모가 막으려 했다. 회장은 들여보내라고 했다. 검은 대리석 식탁 위에 생선과 달걀찜이 놓여 있었다. 벽에는 완성될 묘역의 조감도가 걸려 있었다. 돌계단, 돌기둥, 좌우의 석물. 순덕은 어젯밤 남편이 들고 있던 석판이 어느 자리에 들어갈 것인지 알아보았다.
“장례는 섭섭하지 않았지요?”
박 회장이 물었다.
순덕은 보자기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고무신에서 떨어진 흙이 달걀찜 옆까지 굴렀다.
“내 영감 돌려줘.”
회장은 한동안 고무신을 보았다. 그러고는 젓가락을 받침에 내려놓았다.
“최씨가 말을 했구먼.”
“당신 눈으로는 못 봤겠지. 팔이 부러져도 일을 해.”
“산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고.”
순덕은 식탁 모서리를 잡았다.
회장은 물을 마셨다.
“아주머니, 관값이 얼마인지 알아요? 병원비 밀린 것도 내가 해결했잖소. 자식도 없는 양반들, 누가 장례를 치러 줬겠어.”
“얼마면 돼.”
“이게 돈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오.”
“얼마냐고.”
회장은 순덕을 올려다보았다. 화난 표정이 아니었다. 순덕이 알아듣지 못해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못 풀어 줘요. 우리 아버지가 받은 사람이니까.”
그가 식모를 부르려고 고개를 돌렸다.
순덕의 손 옆에 은숟가락이 놓여 있었다. 자루 끝에는 박 회장의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었다. 칠순 잔치 때 돌린 것이었다. 순덕도 그 잔치의 설거지를 했다. 그때는 숟가락 한 벌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순덕은 그것을 고무신 옆에 놓고 보자기를 여몄다. 식모가 다가와 팔꿈치를 잡았다.
순덕은 붙들린 팔을 빼지 않았다. 대신 벽의 그림을 가리켰다.
“저렇게 크게 지으면 좋겠어?”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 누울 건데.”
그 말에 회장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순덕은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지었다. 쌀독에 남은 쌀을 전부 부었다. 시래기를 삶고 된장을 풀었다. 밥을 푸다가 남편이 이제 먹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주걱을 내려놓고 한참 서 있었다.
저녁이 되자 순덕은 최 노인을 찾아갔다.
“그 입을 벌리게 할 수는 있어?”
노인은 고개를 들었다.
“돈은 못 빼도, 입은 벌려 보았잖아.”
“밥을 주려는 거요?”
순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감은 먹더라. 우리 영감 바로 옆에서.”
최 노인이 마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제삿밥이겠지요.”
“밥이면 밥이지.”
“제삿밥은 자식이 올리는 거고, 품밥은 일할 사람이 받는 거요.”
그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내려다보았다.
“옛날에는 남의 품밥에 손만 대도 어른들이 때렸소. 남의 몫을 대신 받았다고 하고 삼키면, 그 사람 할 일까지 넘겨받는 거라고. 저 산에서는 아직도 그래요.”
순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대신 받을 사람이 있으면 되는 거네.”
“누가 그러겠소. 무슨 품인지 알고.”
순덕은 일어섰다.
“우선 입부터 벌려 줘. 밥을 해 놨어.”
그날 밤 두 사람은 산길 아래에 밥상을 차렸다.
순덕은 장례 때 쓰고 남은 일회용 그릇을 놓았다. 모자라는 만큼 집의 사발과 종지를 가져왔다. 열다섯 그릇에 밥을 나누어 담았다. 최 노인은 국을 퍼 담았다. 냄비를 들고 있는 그의 손에서 국물이 조금씩 흘렀다.
순덕은 은숟가락을 행주에 닦아 상 귀퉁이에 놓았다.
쇠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흰옷들이 산 아래에서 나타났다.
처음에는 밥상을 지나쳤다. 순덕이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한봉수.”
남편이 멈췄다. 뒤따르던 이들도 멈췄다.
“일하기 전에 밥 먹고 가.”
남편은 고개를 들었다. 뺨이 한쪽 내려앉아 있었다. 입술 사이에 낀 엽전에는 작은 박씨 도장이 새겨져 있었다.
최 노인이 무릎으로 기어가 남편 앞에 앉았다. 품에서 염할 때 쓰는 쇠도구를 꺼냈다. 손잡이가 짧고 끝이 납작했다.
“봉수야. 입 좀 벌려라.”
남편이 턱을 떨었다.
노인은 도구를 어금니 사이에 넣었다. 힘을 주자 입이 조금 벌어졌다. 동전 뒤로 혀가 보였다. 혀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구멍을 통과한 가느다란 검은 줄이 목구멍 안으로 이어졌다.
순덕은 그제야 동전이 물려 있는 게 아니라 꿰매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 노인이 울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도 이랬소.”
순덕은 남편의 턱 밑에 그릇을 받쳤다. 국물에 적신 밥 한 숟가락을 입 안에 넣었다. 밥알이 혀에 닿았다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남편의 눈이 순덕에게로 움직였다.
순덕은 두 번째 숟가락을 들었다. 그것도 흘렀다. 세 번째에는 남편이 성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힘은 약했다.
산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뭣들 하는 게냐.”
장죽을 든 노인이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가까워지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이미 밥상 앞까지 와 있었다.
죽은 사람들이 일제히 등을 굽혔다. 순덕의 남편도 손을 놓고 일어나려 했다.
순덕이 그의 무릎을 눌렀다.
“밥 먹는 중이야.”
노인은 그녀를 보지 않고 장죽으로 밥그릇을 밀었다. 그릇이 넘어지며 흰 밥이 흙 위에 쏟아졌다.
“다 먹었구나.”
순덕은 넘어진 그릇을 바로 세웠다.
“못 먹었어.”
노인이 그제야 순덕을 보았다. 눈동자가 없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작은 흙덩이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받았으면 됐지.”
순덕은 남편에게 먹이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상 귀퉁이에서 은숟가락을 집었다.
자루에 새겨진 이름을 본 노인의 턱이 움직였다.
“내 집 물건이구나.”
“당신 아들 집에서 가져왔어.”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순덕은 숟가락을 주지 않았다. 남편의 그릇에 밥을 새로 담고, 거기서 조금을 떼어 은숟가락에 얹었다. 옆 그릇에서도, 그 옆 그릇에서도 밥을 조금씩 떴다.
노인은 장죽으로 상다리를 두드렸다.
“밥 한술 뜨는 데도 굼뜨기는.”
열다섯 그릇을 다 거치자 숟가락 위에 밥이 수북했다. 순덕은 밥알이 떨어지지 않도록 손바닥을 받쳤다.
“이건 당신 제삿밥 아니야. 내가 이 사람들 일하러 가기 전에 먹이려고 지은 거야.”
노인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이 사람들 몫인데, 당신이 전부 대신 받을 거야?”
최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울음이 그쳤다.
노인은 상 둘레의 흰옷들을 훑어보았다. 누구도 그를 마주 보지 못했다. 천씨는 이마를 땅에 붙이고 있었다. 남편의 부러진 팔 끝이 흙에 닿아 있었다.
“저것들 몫이 따로 있느냐.”
노인이 말했다.
“입은 것도 내 것, 묻힌 땅도 내 것이야.”
순덕은 숟가락을 조금 거두었다.
“대신 받겠다는 거야?”
노인이 장죽을 들어 그녀의 손목 밑을 받쳤다. 차가운 것이 살에 닿았다. 순덕은 숟가락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다.
“그래. 저것들 몫까지 내가 다 받는다. 이리 내라.”
검고 축축한 혀가 밥을 훑어 갔다.
씹는 소리가 났다. 순덕은 빈 숟가락을 들고 기다렸다. 노인의 목울대가 한 번 내려갔다.
목 안쪽에서 줄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엽전이 떨어졌다.
동전이 밥그릇 가장자리를 치며 맑게 울렸다. 그 소리를 따라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하나씩 엽전이 떨어졌다. 어떤 것은 살점에 매달려 있었다. 어떤 것은 검은 이 몇 개와 함께 나왔다. 머리 없는 사람의 옷깃 안에서도 검붉은 것이 굴러 나왔다.
장죽을 든 노인이 뒷걸음질했다. 입을 벌려 혀를 내밀었다. 손가락을 목 깊이 찔러 넣었으나 밥알은 나오지 않았다.
“네 이놈들.”
이번에는 나뭇잎 소리가 멎지 않았다.
노인이 장죽으로 산 위를 가리켰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노인 자신의 발이 뒤로 돌아갔다. 그는 상다리를 붙들고 버텼다. 마른 손등에 힘줄이 불거졌다.
순덕은 은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남편은 입을 벌린 채 숨을 토하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도 그렇게 긴 숨을 내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죽은 사람들이 노인을 둘러쌌다.
천씨가 먼저 다가갔다. 굽은 무릎으로 기어와 노인의 발을 붙들었다. 머리 없는 사람이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남편은 성한 손으로 은숟가락을 집었다.
순덕은 그 손을 잡으려다가 멈췄다.
남편은 숟가락으로 노인의 입을 벌렸다.
그 뒤의 일은 오래 걸렸다. 순덕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은 떨어뜨린 돈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마지막 동전은 최 노인이 주웠다. 그는 손바닥에 올린 돈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노인의 벌어진 입 속으로 깊이 밀어 넣었다.
날이 밝기 전, 산길에는 다시 줄이 생겼다.
이번에는 장죽을 들었던 노인이 맨 뒤에서 걸었다. 장죽은 부러져 지게의 받침으로 쓰였다. 지게 위에는 밥상과 빈 그릇들이 실려 있었다. 노인은 자꾸 무릎을 꿇었다. 그때마다 앞선 사람들이 멈춰 기다렸다. 누구도 짐을 덜어 주지 않았다.
남편은 순덕 앞에 남았다.
순덕이 그의 옷깃을 여몄다. 처음으로 입에서 말이 나왔다.
“춥지는 않어.”
순덕은 고개를 숙였다. 남편은 생전에도 아픈 곳을 물으면 늘 그렇게 다른 대답을 했다.
“이제 그만 누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덕은 남편을 무덤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는 구멍 앞에서 몸을 낮추었다. 관으로 기어들어 가기 전, 성한 손으로 바깥 흙을 한 번 쓸었다. 이불자락을 당기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순덕은 먼동이 틀 때까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봄에 박 회장의 묘 공사가 끝났다.
인부들은 마지막 날까지 일을 꺼렸다. 아침마다 전날 쌓은 돌이 옮겨져 있었다. 넓게 설계했던 무덤 방은 갈수록 좁아졌다. 뜯어 고쳐도 다음 날이면 다시 좁았다. 결국 관 하나가 들어갈 만큼만 남았다.
박 회장은 완공된 묏자리를 보고 화를 냈다. 공사비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가, 돌난간 아래서 자기 이름이 새겨진 은숟가락을 발견했다.
그 뒤로는 산에 오지 않았다.
순덕은 집에서 밥을 혼자 먹었다. 밤중에 삽자루 두드리는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남편의 고무신은 깨끗이 씻어 부엌문 옆에 두었다. 가끔 흙이 묻어 있지 않은지 들여다보았으나, 바닥까지 늘 말라 있었다.
가을이 깊어졌을 때 박 회장이 순덕을 찾아왔다. 몇 달 사이에 몸이 많이 줄어 있었다. 그는 마루에 올라오지 못하고 마당에서 봉투를 내밀었다.
“이걸 좀 받아 줘요.”
순덕은 받지 않았다.
“그때 장례비 말고, 봉수 형님 밀린 품삯까지 넣었소.”
회장의 입술이 떨렸다.
“아버지가 매일 와요. 나더러 일찍 좀 오라고 해. 혼자서는 못 하겠다고.”
순덕은 마루 끝에 앉아 마늘을 깠다.
“산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닌데.”
회장은 봉투를 내려놓고 갔다. 순덕은 그 돈으로 최 노인의 틀니를 해 주었다. 남은 돈은 남편 이름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돌렸다.
그해 겨울 첫눈이 온 다음 날, 순덕은 새벽에 산에 갔다.
남편 무덤에는 짐승 발자국도 없었다. 봉분 위로 눈이 고르게 쌓여 있었다. 순덕은 눈을 쓸지 않았다. 한참 앉아 있다가 돌아서는데, 꼭대기 묘역에서 돌을 끄는 소리가 났다.
박 회장의 아버지가 혼자 일하고 있었다.
노인은 완성된 돌담에서 돌 하나를 빼내 옆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조금 전에 옮긴 돌을 다시 들어 제자리에 넣었다. 순덕이 지켜보는 동안 똑같은 일을 세 번 했다.
묏자리 안쪽에는 아직 아무도 들어 있지 않은 관이 놓여 있었다. 뚜껑이 열려 있었고, 발치에 작은 지게 하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순덕은 산에서 내려왔다.
뒤에서는 돌 끄는 소리가 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