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연습하는 방
아이는 사람을 숨길 때 신발부터 벗겼다.
첫날에는 놀이인 줄 알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내 운동화 끈을 풀더니 양말까지 잡아당겼다. 나는 발을 뒤로 뺐다.
“양말은 신어도 되잖아.”
아이는 복도 쪽을 보았다. 현관에서 아버지가 통화하고 있었다.
“미끄러지면 안 돼요.”
그 말을 하고서야 아이가 웃었다. 웃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기억한 것 같았다.
집은 오래된 연립주택의 일 층이었다. 골목에서는 반지하처럼 보였고 뒤편에서는 지상층이었다. 거실 창밖에 담장이 가까이 서 있어서 오후에도 형광등을 켜야 했다. 주방 식탁에는 세 사람 몫의 수저가 놓여 있었다. 아이 아버지는 혼자 아이를 키운다고 했다.
“낯을 많이 가립니다. 학교에서도 말을 거의 안 하고요. 책 읽어 주고, 같이 놀이 좀 해 주시면 돼요.”
그는 중고 서점 게시판에 내가 붙인 전단을 보고 연락했다. 전화에서 주로 물었던 것은 경력보다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혼자 사느냐, 저녁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느냐. 나는 수업 시간을 정하려는 줄 알고 솔직히 대답했다.
방에 들어가기 전 그가 내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여기 걸어 두세요. 아이가 남의 물건을 뒤지는 버릇이 있어서.”
복도 끝 벽에는 나무 옷걸이가 있었다. 갈고리 세 개 가운데 하나에 내 가방이 걸렸다. 그 아래 슬리퍼들이 가지런했다. 같은 분홍색 슬리퍼인데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아이 이름은 선우였다.
선우의 방에는 장난감보다 빈 상자가 많았다. 택배 상자, 귤 상자, 뚜껑 없는 플라스틱 수납함. 아이는 나를 책상 아래 앉히고 상자 두 개를 앞에 세웠다. 내 무릎이 밖으로 나왔다. 선우가 손바닥으로 밀었다.
“다 안 들어가는데.”
“조금만 작아져요.”
나는 등을 구부렸다. 아이가 상자를 밀어 틈을 가렸다. 먼지 냄새가 났다.
밖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잘 놀고 있니?”
선우가 내 입에 손가락을 댔다.
“네.”
“선생님은?”
아이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방문 밑으로 아버지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선우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 있어요.”
그제야 아버지가 웃었다.
“아빠가 선생님 잡아먹니?”
그날 수업을 마쳤을 때 내 운동화는 현관에 없었다. 선우가 싱크대 아래에 넣어 두었다. 아이 아버지는 신발을 꺼내 먼지를 털어 주면서 여러 번 사과했다.
“엄마가 나간 뒤로 그래요. 누구든 못 가게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나는 문틈에 서 있는 선우에게 다음 주에 오겠다고 했다.
아이는 내 얼굴 대신 신발을 보고 있었다.
*
둘째 날에는 숨바꼭질을 하지 않겠다고 먼저 말했다.
선우는 순순히 책을 골랐다. 곰이 겨울잠을 잘 장소를 찾는 그림책이었다. 내가 읽으면 아이는 다음 장을 넘겼다. 곰이 동굴에 들어간 대목에서 선우가 책장을 거꾸로 넘겼다.
“여기 문 없어요?”
“동굴이니까 문은 없지.”
“그럼 누가 와요.”
“곰 친구가 올 수도 있겠네.”
선우는 그림의 검은 동굴 입구를 손톱으로 긁었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 집을 그리자고 했다. 선우는 종이 가운데에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작은 네모들을 그렸다. 방 세 개와 거실, 주방. 현관 옆으로 기다란 칸을 하나 더 만들었다.
“여긴 뭐야?”
“자던 데.”
“누가?”
아이는 연필 끝을 눌렀다. 종이에 구멍이 났다.
“지금은 안 자요.”
현관 옆에는 붙박이장이 있었다. 문짝 아래쪽 환기구에 회색 먼지가 두껍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 화장실에 가면서 세제나 이불을 보관하는 장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안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아주 짧은 소리였다. 기침을 하다가 입을 막은 것처럼 끝이 뭉개졌다.
주방에서 물을 따르던 아이 아버지가 나를 보았다.
“윗집이에요. 이 집이 소리가 잘 울립니다.”
그는 물잔을 내밀었다. 나는 받아 마셨다. 선우는 방문에 붙어 서서 내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 지켜보았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선우가 내 손바닥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붉은 크레파스 조각이었다. 종이 껍질이 벗겨져 손가락에 색이 묻었다.
“다음에 이걸로 그려요.”
“여기 두면 되잖아.”
“가지고 와요.”
나는 조각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돌아와 손을 씻다가 붉은 자국을 보았다. 크레파스는 손가락보다 짧았다. 한쪽 끝에 이로 깨문 듯한 자국이 있었다. 특별히 이상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버리지 않았다.
*
셋째 날 아버지는 선우가 아프다며 수업을 쉬자고 했다. 넷째 날에도 그랬다. 나는 병원에는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열은 없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다음 주에 다시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방에는 상자가 하나도 없었다. 책상 아래도 비어 있었다. 선우는 머리를 짧게 잘랐고 아랫입술에 딱지가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와 둘이 되었을 때 입술을 가리켰다.
“어쩌다 그랬어?”
“씹었어요.”
“많이 아팠겠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크레파스를 꺼냈다. 선우의 눈이 잠깐 커졌다. 아이는 그것을 받아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오늘은 숨는 거 안 하기로 했잖아.”
“그림이에요.”
나는 무릎을 꿇고 책상 밑을 들여다보았다. 선우가 크레파스를 책상판 아랫면에 문질렀다. 붉은 가루가 내 바지로 떨어졌다. 몇 번 문지르자 눌린 자국들이 흰 선으로 떠올랐다.
글씨였다.
손을 씻는다고 해요.
그 밑에 다른 줄이 있었다.
장을 열어요.
아이의 글씨는 아니었다. 획이 좁고 길었고, 같은 말을 두 번 새기다가 첫 번째 줄을 지운 흔적이 있었다.
나는 선우를 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입술의 딱지를 손끝으로 눌렀다.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멎었다.
“책 읽는 소리가 안 나네.”
선우가 그림책을 펼쳤다. 나는 책상 밑에서 나와 의자에 앉았다. 목 안쪽이 달라붙었다.
“곰이 잠을 잘 곳을 찾고 있어요.”
내가 읽었다.
“깊은 숲속에 아주 좋은 동굴이 있었어요.”
선우는 무릎 위에 손을 놓고 있었다. 붉게 물든 손끝들이 조금씩 떨렸다.
*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이 아버지는 신문을 접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를 틀었다. 휴대전화는 복도의 가방 안에 있었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잠시 앉았다. 일어나면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잘못 본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장난으로 쓴 것일 수 있었다. 기침은 정말 윗집에서 들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상 아래에 글을 새긴 사람은 종이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쓴 것을 아무에게나 보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수도를 틀어 둔 채 문을 열었다.
복도에서 텔레비전 화면이 보였다. 아버지는 등받이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뒤통수만 조금 보였다.
붙박이장 문에는 바깥에서 거는 작은 걸쇠가 있었다. 손잡이와 비슷한 색이라 전에는 보지 못했다. 나는 걸쇠를 들어 올렸다.
문이 손가락 두 개만큼 벌어졌다.
안에서 따뜻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왔다.
처음 본 것은 눈이었다. 얼굴이 문틈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눈이 나를 보고, 내 뒤를 보았다.
마른 손 하나가 문 아래로 나왔다. 손톱 두 개가 짧게 부서져 있었다. 여자는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몸을 밖으로 밀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남자가 말했다.
“열지 마세요.”
나는 문을 더 열었다.
여자는 무릎을 세운 채 좁은 칸에 앉아 있었다. 선반 두 개를 떼어 낸 자리였다. 벽에는 뜯긴 나사 구멍이 있었고 바닥에는 얇은 담요와 플라스틱 물병, 뚜껑이 닫힌 통이 놓여 있었다. 여자는 한 손으로 바닥을 밀고 다른 손으로 내 발목을 잡았다.
“허리를 못 펴요.”
그녀가 말했다.
“당겨 주세요.”
남자가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여자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팔이 너무 가벼워서, 힘껏 당기면 팔만 빠져나올 것 같았다.
“제 아내입니다.”
남자가 말했다.
“지금 이러시면 위험해요.”
그의 목소리는 물을 권할 때와 같았다. 손가락은 내 어깨 안쪽을 파고들었다. 여자가 내 발목을 놓고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몸이 기억하는 동작이었다. 나는 그 동작 때문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남자의 손등을 물었다.
비명과 함께 어깨가 놓였다. 나는 여자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문턱을 넘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남자가 내 머리카락을 잡았다. 두피가 들렸다. 나는 가방이 걸린 쪽으로 손을 뻗었지만 손끝이 벽만 긁었다.
선우가 방에서 나왔다.
“들어가.”
남자가 말했다.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선우야. 방에 들어가.”
나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 머리가 뒤로 젖혀져 천장과 남자의 턱만 보였다. 바닥에서 여자가 기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가 한 발로 그녀의 옷을 밟았다.
그 순간 주방에서 그릇이 깨졌다.
남자의 손아귀가 느슨해졌다. 나는 몸을 틀어 빠져나왔다. 선우가 식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이는 밥그릇 하나를 더 집어 창문으로 던졌다. 그릇은 유리에 튕겨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 마!”
남자가 아이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남자는 나를 팔꿈치로 쳤다. 숨이 꺾였다. 선우가 식탁에서 내려와 내 옆을 지나갔다.
아이는 창문을 깨려던 것이 아니었다.
남자가 아이 쪽으로 돌아선 동안 여자가 주방에 닿았다. 그녀는 싱크대를 붙들고 일어나 창문 잠금쇠를 밀었다. 창이 손바닥 너비만큼 열렸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불이야.”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물 끓는 소리처럼 들렸다.
“불이야.”
남자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식탁 다리를 끌어 그의 무릎에 밀었다.
여자가 창틀에 이마를 박았다.
한 번, 두 번.
둔탁한 소리가 날 때마다 말이 커졌다.
“불이야. 불이야. 여기 불이야.”
담장 너머에서 누가 대답했다. 어디냐는 소리였다. 여자가 자기 손가락을 창문 틈에 넣었다. 남자가 창을 닫으려 했지만 닫히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빼지 않았다.
나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선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는 내 운동화를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
현관 잠금장치 아래에 보조 자물쇠가 하나 더 달려 있었다. 열쇠 구멍만 있고 안에서 돌릴 손잡이는 없었다.
“열쇠 어디 있어?”
선우는 주방을 보았다.
“선우야. 열쇠.”
아이가 운동화 속에 손을 넣었다. 작은 황동 열쇠가 나왔다.
나는 열쇠를 받아 구멍에 밀었다. 맞지 않았다. 뒤집어서 다시 넣었다. 손이 떨려 열쇠 끝이 자꾸 테두리를 쳤다.
밖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무슨 일이에요?”
남자가 주방에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희 집사람이 좀 아파서요.”
나는 문을 두드렸다.
“경찰 불러 주세요!”
남자는 내 이름을 불렀다. 전단에 적었던 이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처음으로 이 남자가 나를 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내 전화번호를 알고, 혼자 산다는 것을 알고, 저녁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열쇠가 돌아갔다.
문을 열자 슬리퍼를 신은 남자와 쓰레기봉투를 든 여자가 서 있었다. 나는 선우를 밖으로 밀었다.
“아이 좀 잡고 있어 주세요.”
선우는 내 옷을 붙잡았다.
“아줌마도.”
“데리고 나올게.”
나는 다시 들어갔다.
남자는 더 이상 창문을 닫고 있지 않았다. 창틀 아래에 주저앉은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깥사람들이 보이는 현관을 한 번 보더니,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주워 여자에게 내밀었다.
“피 나잖아.”
그가 말했다.
여자는 수건을 받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었다. 현관의 남자가 들어와 반대쪽을 들었다. 여자의 다리는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발등이 바닥에 끌렸다.
문턱을 넘을 때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남자를 보는 줄 알았다.
“신발.”
여자가 말했다.
“그냥 가도 돼요.”
그녀는 내 팔을 붙들었다.
“신발 신고 나가야 돼요.”
나는 분홍색 슬리퍼 한 켤레를 집어 그녀의 발에 끼웠다. 뒤꿈치가 한참 남았다. 그제야 여자는 문틀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
그녀는 선우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그 집에 오던 사람이었다. 가사 일을 도우며 아이를 돌봤다고 했다. 그보다 앞서 있던 여자는 선우의 친어머니였고, 어느 겨울날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경찰은 그 여자를 찾고 있었다.
붙박이장에서 나온 사람의 이름은 오혜진이었다.
조사 중에 나는 그 이름을 여러 번 들었다. 그래도 병원에 처음 찾아갔을 때 문 앞에서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 혜진 씨라고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의 부기는 많이 빠져 있었다. 한 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선우는요?”
그녀가 물었다.
“보호해 주는 데 있어요.”
혜진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책상 밑의 글씨는 그녀가 새긴 것이었다. 옷장에 갇히기 전, 아직 아이 방에서 재우던 때에 썼다고 했다. 볼펜은 잉크가 나오지 않았지만 끝은 쓸 수 있었다. 선우가 가끔 손거울을 책상 밑에 넣어 보았다고 했다. 글씨가 거꾸로 보인다고, 어떻게 읽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나는 왜 도움을 청하는 말 대신 손을 씻으라고 썼는지 묻지 않았다. 그 집에서 화장실만이 잠깐 혼자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애가 선생님 신발 숨겼죠?”
혜진 씨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제 것도 그랬어요.”
그녀는 붕대를 감지 않은 손으로 이불 끝을 문질렀다.
“밖에 신발이 있으면 사람이 온 걸 아니까. 전에 한 번 누가 찾아왔는데, 그 사람이 제 신발을 봤나 봐요. 그날 많이…….”
말을 멈춘 그녀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선우는 제가 잘 숨지 못해서 그런 줄 알아요.”
나는 책상 밑에서 몸을 작게 만들라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혜진 씨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선생님이 오기 전날마다 연습했을 거예요. 어디에 숨기면 되는지. 신발은 어디다 넣는지.”
그날 병실을 나와 한동안 승강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나는 그 집에서 두 번 수업하고 한 번 도망쳤다. 선우는 내가 없는 날에도 연습하고 있었다.
*
봄이 되어 선우를 다시 만났다.
보호시설의 작은 면회실이었다. 문에는 유리창이 있었고 복도에서 사람들이 오갔다. 선우는 키가 조금 컸다. 새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찍찍이를 지나치게 단단히 조여 발등이 볼록했다.
나는 곰 그림책 대신 동물 사진이 많은 책을 가져갔다. 선우는 바다표범 사진을 오래 보았다. 우리는 그것이 돌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웃었다. 이번에는 누가 시켜서 뒤늦게 웃는 것 같지 않았다.
면회가 끝날 무렵 담당자가 문을 두드렸다. 선우는 책을 덮었다.
나는 다음 달에도 오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함께 현관까지 걸었다.
신발을 신는데 선우가 내 운동화 한 짝을 집어 들었다. 나는 기다렸다. 아이는 안쪽을 들여다보고, 혀 부분을 들어 올리고, 밑창을 손으로 눌렀다. 빈 것을 확인한 뒤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제 안 숨겨도 돼.”
내가 말했다.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끈을 묶었다. 아이는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에 올 때도 이거 신고 와요.”
“왜?”
선우가 내 운동화의 파란 줄을 손끝으로 만졌다.
“다른 신발이면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니까.”
복도에서 담당자가 아이를 불렀다. 선우는 손을 흔들고 돌아갔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아이가 모퉁이를 도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선우를 만나러 갈 때는 늘 같은 운동화를 신었다. 밑창이 벌어졌을 때는 접착제로 붙였다.
약속한 날이면 아이는 현관에서 나를 기다렸다. 얼굴을 보기 전에 발부터 보았다. 내가 두 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면, 그제야 가까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