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쪽으로

고모는 장롱보다 먼저 마당의 돌을 걱정했다.

“저것도 가져갈 수 있니?”

수돗가 옆에 놓인 넓적한 돌이었다. 고모는 평생 그 위에 앉아 생선을 다듬었다. 가운데가 엉덩이 모양으로 패었고, 비늘이 끼었던 틈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정연은 돌 밑으로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들릴 만한 크기였지만 흙에 박힌 부분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따뜻했다. 십일월 아침인데 돌 아래에서 막 밥을 지은 부엌 같은 온기가 올라왔다.

“이건 못 가져가. 배에 사람 짐만 해도 많아.”

“그러면 됐다.”

고모는 쉽게 물러났다. 그게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섬을 떠나자는 말에는 석 달을 버틴 사람이었다.

정연은 고모의 옷가지와 약을 가방에 넣었다. 방바닥에는 장판을 걷어 낸 자리가 두 군데 있었다. 갈라진 시멘트 틈에 신문지가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또 벌어졌어?”

“밤에 좀.”

“군청에서 나오셨다며.”

“사진만 찍더라.”

석도에 처음 균열이 생긴 것은 여름이었다. 공동창고 뒤편 땅이 내려앉았고, 한 달 뒤에는 우물물이 짜졌다. 가을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군청은 지반 침하라는 말을 썼다. 처음에는 복구를 약속하다가, 조사팀이 두 번 다녀간 뒤부터 이주를 권했다.

주민 서른한 명 가운데 스물일곱 명은 이미 나갔다. 오늘 마지막 배에 고모와 구멍가게 부부, 혼자 사는 종태 노인이 타면 섬은 비게 된다.

고모는 벽에 걸린 달력을 떼었다. 지난달 그대로였다. 고모부 기일에 붉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그건 버려도 돼.”

정연이 말하자 고모는 달력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뒷장이 깨끗하잖니.”

정연은 더 말하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 고모는 현관문을 잠갔다. 열쇠가 잘 돌아가지 않아 두 번을 흔들었다. 정연은 어차피 철거할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기다렸다.

골목에는 바람이 없었다. 담장 위 빨랫줄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빈집 처마 밑의 고무 대야가 달그락거렸다. 잠깐 멎었다가, 다시 달그락거렸다.

고모가 정연의 팔을 잡았다.

“빨리 가자.”

*

선착장에 내려오니 배가 없었다.

구멍가게 주인 민수 씨가 캐리어 두 개를 세워 놓고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서 있었다. 그의 아내는 스티로폼 상자 뚜껑을 테이프로 감고 있었다. 젓갈 냄새가 났다.

“배가 못 댄대.”

민수 씨가 통화를 끊으며 말했다.

“물이 이상하게 빠져서.”

선착장 아래를 본 정연은 처음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늘 물에 잠겨 있던 계단 여섯 칸이 드러나 있었다. 그 밑으로도 계단이 이어졌다. 마지막 세 칸에는 난간이 없었다.

정연은 섬에서 열아홉 해를 살았지만 저 아래에 계단이 더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방파제 바깥에 여객선이 떠 있었다. 조타실 유리에 햇빛이 반사되었다. 작은 배 한 척이 여객선 옆에서 떨어져 나와 선착장으로 오고 있었다.

“구조정 내렸네.”

민수 씨의 아내가 말했다.

정연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머니에게 오늘 저녁 도착한다고 보내 둔 메시지에 답이 와 있었다.

밥 해 놓을게. 고모는 국 싱겁게 드시지?

정연은 그렇다고 쓰다가 멈췄다.

선착장 오른쪽 갯바닥에 물고기들이 있었다. 물이 빠져 웅덩이에 갇힌 줄 알았는데, 그곳에는 아직 충분히 물이 찰랑거렸다. 물고기들은 모두 같은 쪽으로 헤엄쳤다. 작은 놈도 큰 놈도 섬에서 멀어지는 방향이었다. 서로 부딪치고 뒤집히면서도 돌아서지 않았다.

“종태 아저씨는요?”

정연이 물었다.

“온다더니 안 와.”

민수 씨가 골목을 올려다보았다.

고모는 정연이 들고 있던 자기 가방을 가져갔다.

“내가 불러올게.”

“내가 가. 고모는 여기 있어.”

“걔는 내가 가야 나와.”

고모는 칠십이 넘은 종태 노인을 늘 걔라고 불렀다. 정연이 대꾸하기도 전에 고모는 골목으로 올라갔다. 무릎이 아파 한 계단씩 쉬던 사람이 쉬지 않았다.

정연은 가방을 민수 씨 곁에 내려놓고 따라갔다.

*

종태 노인의 집은 마을회관 뒤에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방 한가운데 노인이 앉아 있었고, 무릎 앞에 밧줄이 놓여 있었다. 굵은 밧줄 한쪽 끝이 장판 아래로 들어가 있었다.

“누나도 앉아.”

노인이 고모에게 말했다.

고모는 신을 벗지 않고 방에 들어갔다.

“일어나.”

“이제 와서 어딜 가.”

“일어나라니까.”

정연은 문지방을 넘었다가 균형을 잃었다. 방바닥이 기울어 있었다. 밖에서는 평범한 집이었는데, 방 안의 물건은 모두 노인 쪽으로 조금씩 쏠려 있었다. 장롱 문짝 하나가 저절로 열렸다.

노인은 밧줄을 잡아당겼다.

바닥 아래에서 소리가 났다. 쇠가 부딪치는 소리도,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커다란 물건에서 끈적한 테이프를 천천히 떼어 내는 듯한 소리였다.

“아저씨, 그게 뭐예요?”

“우리 아버지가 묶어 놓은 거.”

노인이 말했다.

“집 지을 때부터 있던 고리야. 땅 밑에. 아버지가 그러셨어. 내려갈 때는 이걸 잡으라고.”

고모가 노인의 손을 때렸다.

“네 아버지는 정신이 나갔었어.”

“그럼 누나 어머니는? 누나 어머니도 그랬잖아. 내려갈 때 놓치면 못 돌아온다고.”

“그만해.”

고모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정연은 움찔했다.

장판 밑으로 밧줄이 조금 들어갔다. 노인의 몸이 무릎째 앞으로 끌렸다. 정연이 그의 겨드랑이를 붙잡았다. 옷에서 오래 말리지 못한 빨래 냄새가 났다.

“놓으세요.”

노인은 밧줄에 매달렸다.

“아래는 따뜻해.”

고모가 노인의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손톱이 밧줄에 걸려 뒤집혔다. 노인이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손가락이 풀리자 밧줄이 장판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방바닥이 솟았다.

정연은 처음에 자신이 넘어지는 줄 알았다. 장롱이 천장에 부딪쳤다. 벽에 걸린 액자가 앞으로 날아왔다. 고모는 노인의 멱살을 쥐고 문 쪽으로 기었다. 정연도 그의 허리띠를 잡아당겼다.

세 사람이 마당으로 굴러 나왔을 때 집 안에서 둔한 소리가 났다.

문지방 위로 장판이 밀려 나왔다. 노란 장판이 고무 튜브처럼 둥글게 부풀었다. 그 밑에 있던 시멘트는 이미 가루가 되어 있었다.

정연은 부풀어 오르는 것이 장판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장판이 찢어진 틈 안쪽에 회색 표면이 있었다. 젖어 있었고, 아주 작은 구멍들이 촘촘했다. 구멍 하나가 오므라들자 그 옆의 구멍이 열렸다. 그 움직임이 방 전체를 지나갔다.

고모가 정연의 뺨을 쳤다.

“보지 말고 들어!”

두 사람이 종태 노인을 일으켰다.

뒤에서 집이 내려앉았다. 지붕이 먼저 무너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기와와 벽과 창문이 제 모양을 유지한 채 낮아졌다. 처마가 담장 밑으로 내려가더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노인은 발을 끌며 울었다.

“놓치면 안 되는데.”

*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길어져 있었다.

정연은 그렇게 느꼈다. 같은 골목이었고, 같은 전봇대가 있었고, 민수 씨네 가게 간판도 보였다. 그런데 내리막의 각도가 달랐다. 몇 걸음만 가도 몸이 앞으로 쏠렸다.

발밑에서 콘크리트가 갈라졌다. 금이 길을 가로질러 달렸다. 그 사이로 흙이 아니라 맑은 액체가 배어 나왔다.

가게 앞에서 고모가 토했다. 정연은 고모의 등을 받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종태 노인은 자꾸 뒤로 가려 했다.

“뭘 알고 있는 거야?”

정연이 물었다.

고모는 입가를 닦았다.

“우리 엄마가 헛소리하는 줄 알았어.”

“무슨 말.”

“섬이 내려간 적이 있다고. 자기가 어릴 때. 그런데 다들 집을 잘 붙들고 있어서 다시 올라왔다고.”

“고모.”

“나도 너처럼 불렀어. 엄마, 엄마. 정신 좀 차리라고.”

선착장에서 경적이 울렸다.

길 건너 빈집의 담장이 움직였다. 돌과 돌 사이의 회반죽이 쏟아졌다. 담장 전체가 길 안쪽으로 굽었다. 정연은 그제야 대야가 왜 달그락거렸는지 알았다. 그때부터 집이 움직이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담장이 닿기 전에 골목을 빠져나왔다.

구조정에는 민수 씨 부부가 타고 있었다. 선원이 계단 위로 올라와 종태 노인을 받았다. 고모를 내려보낸 정연이 마지막으로 배에 발을 디뎠다.

“짐은요?”

민수 씨의 아내가 소리쳤다.

캐리어와 스티로폼 상자가 계단 위에 남아 있었다.

선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밧줄을 풀고 배를 밀었다.

선착장 끝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끝부분이 아래로 꺾였다. 계단이 한 칸씩 접히며 사라졌다.

정연은 고모에게 구명조끼를 입혔다. 버클을 채우려는데 고모가 자꾸 손을 뻗어 가로막았다.

“내가 할게. 고모, 가만히 있어.”

고모는 정연의 조끼를 먼저 채우려 하고 있었다.

정연은 손을 멈췄다. 고모의 손이 버클을 찾아 끼웠다. 그 뒤에야 자신의 것을 채우게 해 주었다.

구조정이 속력을 올렸다.

섬 뒤편 능선이 갈라졌다.

정연이 초등학교 소풍을 갔던 산이었다. 정상에 평상이 있었고, 고모부의 무덤은 중턱에 있었다. 그 능선 가운데 길고 검은 선이 생겼다. 소나무들이 선을 향해 기울었다.

선이 벌어졌다.

나무와 묘비와 돌담이 안으로 넘어갔다. 산 양쪽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갈라진 안쪽은 붉지도 검지도 않았다. 물에 오래 담가 둔 쌀처럼 희었다. 희고 두꺼운 주름들이 차례로 펴졌다.

그 안에서 둥근 돌들이 드러났다.

수돗가의 돌과 같은 모양이었다. 가운데가 닳은 넓적한 돌 수백 개가 같은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정연은 고모가 그 위에서 칼을 씻고, 낮잠을 자고, 자신에게 수박을 잘라 주었던 일을 생각했다.

섬의 해안선이 위로 말렸다.

집들이 안쪽으로 쓰러졌다. 집이 닿는 곳마다 흰 주름이 오므라들었다. 창문이 잠깐 보이다 사라졌다. 돌담은 부서졌지만 어떤 지붕은 온전한 채 깊숙이 들어갔다.

종태 노인은 그것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저렇게 들어가야 하는데.”

고모가 노인의 손을 내렸다.

“넌 여기 있어.”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번엔 여기 있어.”

*

여객선에 올라탔을 때 선장은 이미 배를 돌리고 있었다.

객실에는 먼저 섬을 떠났다가 남은 짐을 가지러 온 주민 몇 명과 군청 직원이 있었다. 누구도 정연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모두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석도는 더 이상 섬의 모양이 아니었다.

해안이었던 가장자리들이 가운데로 모이고 있었다. 흙과 숲이 붙은 거대한 면들이 포개졌다. 그 아래로 물속에 잠겨 있던 부분이 올라왔다. 정연은 그것이 얼마나 깊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배가 멀어질수록 더 많은 부분이 보였다.

마침내 바다 위에 남은 것은 검은 등처럼 굽은 한 덩어리였다.

그것이 가라앉자 큰 파도가 왔다. 배 안에서 사람들이 넘어졌다. 민수 씨는 아내의 머리를 감싸고 좌석 사이에 주저앉았다. 정연은 고모와 종태 노인을 바닥에 눕혔다.

파도가 지나간 뒤에도 배는 심하게 떨렸다.

기관 소리가 높아졌다. 창밖으로 흰 물살이 길게 뻗었다. 섬이 있던 자리는 평평했다.

고모는 바닥에 앉은 채 열쇠를 꺼냈다. 닫고 나온 집의 열쇠였다. 그녀는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동안 보았다. 그러다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정연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전화를 걸 때 육지가 보였다. 아파트 단지와 항만 크레인, 방파제 끝의 붉은 등대가 보였다. 정연은 어머니가 부엌에서 국을 끓이느라 전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무릎이 떨렸다.

군청 직원이 조타실에서 내려왔다.

“모두 앉아 계세요.”

그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쪽을 향해 말했다. 그러고는 난간을 붙들었다.

여객선은 항구를 향해 곧장 가고 있었다. 그런데 방파제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창밖에 떠 있던 부표 하나가 뒤로 지나갔다. 잠시 뒤 같은 색의 부표가 또 지나갔다. 정연은 두 번째 것이 뒤로 가는 게 아니라 육지 쪽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배는 그것보다 느렸다.

선장이 방송을 켰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마이크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안내는 나오지 않았다.

정연은 객실 앞쪽으로 갔다. 조타실 문이 열려 있었다.

항구 뒤 산허리에 흰 선이 보였다.

채석장이라고 생각했다. 정연은 저 산에 채석장이 있었던가 기억하려 했다. 선은 산 아래를 지나 아파트 단지 뒤로 이어졌다. 그 끝이 시야 밖으로 뻗었다.

방파제의 붉은 등대가 기울었다.

옆으로 넘어지지 않았다. 등대와 방파제와 항구가 한꺼번에 기울었다. 크레인들이 같은 각도로 뒤로 누웠다. 아파트 창문 수천 개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흰 선 아래에서 둥근 것들이 드러났다.

너무 멀고 커서 정연은 그것들의 표면에 붙어 있는 도로와 건물부터 보았다. 아파트 단지 하나가 둥근 것의 끝에 매달려 있었다. 다음 것에는 터널 입구가 있었다. 그다음 것은 산 전체를 받치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정연이 받자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정연아.”

“엄마, 밖으로 나가.”

“지진인가 봐. 너희 배는 괜찮니?”

배가 크게 기울었다. 정연은 문틀에 매달렸다. 항구 쪽으로 흐르는 바다가 낮아지고 있었다. 물고기 떼가 수면을 뚫고 튀어 올랐다가 같은 자리로 떨어졌다.

“엄마, 집에서 나와.”

“어디로 가?”

정연은 입을 벌렸다.

선장이 키를 끝까지 돌렸다. 배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섰다. 모터 소리가 객실의 비명을 덮었다. 창밖으로 기울어진 육지가 길게 지나갔다. 붉은 등대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고모가 기어와 정연의 허리를 붙잡았다. 종태 노인은 고모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객실 바닥을 가로질러 신발과 가방들이 미끄러졌다.

전화기에서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정연아. 어디로 가면 돼?”

멀리서 항만의 불빛이 한 줄씩 꺼졌다.

배는 육지에서 멀어지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기관은 한 번도 멎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는 점점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