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날

아버지는 엄마가 죽은 뒤부터 그날을 이야기했다.

태풍 때문에 학교가 쉬었던 날. 버스도 끊겨 아버지가 출근하지 못했고, 우리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엄마가 감자전을 부쳤다. 아버지와 나는 윷놀이를 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에 텔레비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참 좋았지.”

아버지는 꼭 그렇게 끝냈다.

나는 엄마의 장례식에서도 그 이야기를 들었고,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들었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도 들었다. 집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기 전에 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그날 생각나냐?”

나는 생각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했다.

그해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제는 내 딸이 스물셋이었다.

아버지를 돌보던 미숙 씨가 사흘 휴가를 얻은 것은 시월 말이었다. 내가 짐을 들고 들어가자 그녀는 약 봉투보다 먼저 주방을 보여 주었다.

가스 밸브는 잠겨 있었다. 프라이팬은 설거지통에 엎어져 있었다.

“밤에 뭐 해 드시려고 하세요?”

“아버지 혼자 일어나지도 못해요.”

미숙 씨는 수세미를 집었다가 놓았다.

“그러니까요.”

팬 바닥에 누런 감자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배달 음식을 시켰으려니 했다. 미숙 씨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주무실 때 말씀을 하셔도 그냥 두세요. 대답하면 잠이 길어져요.”

잠이 깬다는 말을 잘못한 줄 알았다.

첫날 저녁 아버지는 죽을 세 숟가락 먹었다. 입가를 닦아 주자 내 손을 붙잡았다. 손가락은 가늘었지만 힘은 의외로 셌다.

“그날 네 엄마가 파란 옷을 입었지.”

“모르겠어.”

“파란 꽃무늬.”

“그랬겠지.”

“기억 안 나냐?”

아버지가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았다.

“기억나.”

그제야 손가락이 풀렸다.

아버지가 잠든 뒤 거실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회사에 보낼 서류가 있었다. 열 시가 조금 지나 기름 냄새가 났다. 오래된 집은 환풍기 통로가 이어져 있어 옆집 음식 냄새가 들어오곤 했다. 나는 방문을 닫으러 일어났다.

주방에 여자가 서 있었다.

등을 돌린 채 프라이팬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파란 꽃무늬 원피스 아래로 맨발이 보였다. 오른쪽 뒤꿈치의 갈라진 자리에 피가 검게 말라붙어 있었다.

엄마는 겨울마다 그 자리에 반창고를 붙였다. 나는 그걸 삼십 년 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가 팬을 흔들었다.

기름이 튀는 소리는 났지만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엄마.”

여자의 어깨가 올라갔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방에서 아버지가 기침했다.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불을 모두 켰다. 잠긴 가스 밸브를 몇 번이나 만졌다. 팬은 설거지통 안에 있었다. 바닥에 붙었던 감자 부스러기가 아직 부드러웠다.

아버지는 물을 달라고 했다.

“방금 누가 왔었어.”

아버지가 물을 삼켰다.

“네 엄마?”

나는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버지도 봤어?”

“밥할 때 건드리지 마라. 늦어진다.”

그는 젖은 입술을 벌리고 다시 잠들었다.

나는 딸에게 전화했다. 예진은 친구 생일이라 밖에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잔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나는 외할아버지 상태가 별로라고 했다. 주방에 죽은 외할머니가 있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예진은 내일 와 보겠다고 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안심했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를 깨워 놓았다.

그가 눈을 감으면 주방에서 팬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딸깍 한 번이었다가, 잠이 깊어지면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펴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버지의 어깨를 흔들면 멎었다. 몇 번 반복하자 아버지가 화를 냈다.

“너는 어째 집에 오는 날마다 사람을 못 쉬게 하냐.”

나는 손을 놓았다.

주방에서 엄마가 낮게 기침했다.

내가 문 앞에 서 있을 때 엄마는 전을 접시에 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목덜미를 타고 흐른 물이 옷 속으로 들어갔다. 원피스 등판에는 짙은 자국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했다.

“엄마, 나 알아?”

엄마가 접시를 들었다. 눈은 접시에 내려가 있었다.

“뜨거우니까 가장자리 잡아.”

나는 접시를 받았다. 손끝이 데었다. 엄마의 손톱 밑에는 갈변한 감자가 끼어 있었다.

그 손을 보는 순간 그날의 다른 일이 생각났다.

태풍이 오던 날 엄마는 아팠다.

오전 내내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내가 물을 가져다주었을 때 목에 닿은 손이 뜨거웠다. 아버지는 비 오는 날 셋이 모였는데 감자전이나 먹자고 했다. 엄마는 감자를 깎다가 손을 베었다. 나는 그 옆에서 설탕을 찍어 먹었다.

엄마는 윷놀이를 하지 않았다.

우리가 노는 동안 계속 전을 부쳤다.

“앉아.”

내가 의자를 빼자 엄마가 나를 보았다.

살아 있을 때보다 젊었다. 내 나이보다 열 살은 어린 얼굴이었다. 그런데 입가가 너무 지쳐 있었다. 엄마가 그렇게 젊었을 때 그렇게 지쳐 있었다는 사실이, 엄마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무서웠다.

“조금만 더 하면 돼.”

엄마는 다시 팬을 잡았다.

접시를 식탁에 놓고 엄마의 팔을 당겼다. 피부가 뜨거웠다. 엄마는 쉽게 끌려왔다. 두 걸음, 세 걸음. 주방 문턱까지 왔을 때 엄마의 손이 내 손 안에서 미끄러졌다.

젖어서 놓친 줄 알았다.

엄마는 다시 가스레인지 앞에 있었다.

나는 문턱에 서서 빈손을 움켜쥐었다. 엄마의 몸이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발소리도 없었다. 팬 위에는 방금 접시에 옮겼던 것과 같은 크기의 전이 익고 있었다.

엄마는 그것을 뒤집었다.

나는 아버지를 깨웠다.

다음 날 아침 미숙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도 처음엔 꿈인 줄 알았어요.”

“왜 얘길 안 했어요?”

“뭐라고 얘길 해요.”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미숙 씨는 한 번 접시를 받아 방으로 가져갔다고 했다. 아버지가 눈을 감은 채 더 먹으라고 권해서, 먹는 척도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제가 거기 앉아 있더라고요.”

“어디요?”

“바닥에요. 작은 밥상 앞에. 일어나는데 무릎이 너무 낮았어요. 제 손이…….”

그녀가 숨을 골랐다.

“애 손이었어요. 제가 아버님한테 아빠라고 했어요.”

전화기를 잡은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미숙 씨는 아버지가 소변 때문에 깬 뒤에야 현관으로 달아났다고 했다. 그 뒤로 밤에는 방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따님한테는 안 그럴 수도 있죠. 원래 거기 계셨으니까.”

나는 미숙 씨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낮에도 자꾸 졸았다. 나는 등을 세워 주고 텔레비전을 크게 틀었다. 아버지가 눈을 감을 때마다 거실 장판의 무늬가 달라졌다. 냉장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갈색 찬장이 나타났다. 반질반질한 문짝 가운데 어린 내가 붙였던 토끼 스티커가 있었다.

눈을 뜨면 냉장고였다.

다시 감으면 토끼가 나를 보았다.

오후 세 시에 방문 간호사가 왔다. 그녀는 혈압을 재고, 아버지의 발끝을 만지고, 이제 가족들이 곁에 있어 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내가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하자 아버지가 눈을 떴다.

“어디를 가.”

“병원.”

“엄마 밥하고 있는데.”

간호사는 내 팔을 조용히 두드렸다. 마지막에 옛날이 선명해지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주방으로 데려갔다.

설거지통에는 깨끗한 프라이팬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예진에게 다시 전화했다. 오지 말라고 했다. 이미 지하철을 탔다고 했다.

“내가 갈게. 역에서 기다려.”

외투를 입다가 주방을 보았다.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다친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엄마는 그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너 간다며.”

나는 외투 단추를 놓았다.

“엄마도 가자.”

엄마의 눈이 현관 쪽으로 움직였다. 그 짧은 시선에 내가 평생 받지 못한 대답이 들어 있었다. 엄마도 가고 싶었다. 어디로든. 나를 데리고, 혹은 혼자서라도.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주방 문턱에서 멈추지 않았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등 뒤에서 팬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손아귀의 손이 가늘어졌다. 손가락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두 손으로 붙잡았다.

현관까지 네 걸음쯤 남았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수연아, 엄마 어디 가시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 그날 뭐라고 했어.”

엄마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엄마가 약 사러 나간다니까 울었잖아. 밖에 나가면 바람에 날아간다고.”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현관에 서 있었다. 꽃무늬 옷 위에 아버지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다리를 안고 울었다. 아버지는 텔레비전 앞에서 웃었다. 애가 저렇게 싫다는데 어딜 가느냐고 했다.

엄마는 바람막이를 벗었다.

나는 정말 엄마가 날아갈까 봐 무서웠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내 목소리가 작아졌다.

“알아.”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이 너무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말이어서, 나는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얼굴이 엄마의 허리 높이에 있었다.

외투 소매 끝에서 손이 나오지 않았다. 바닥이 가까웠다. 현관문 위의 안전고리는 까마득하게 높았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게 아니었다. 원피스 자락을 두 주먹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방에서 아버지가 웃었다.

“봐. 못 간다니까.”

나는 옷을 놓으려고 했다. 손가락 하나씩 펴려는데 엄마가 멀어질 것 같았다. 약국까지 가는 길에 간판이 떨어질 것 같았다. 전봇대가 넘어질 것 같았다. 나는 마흔여덟 살이었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배 속에서 솟구치는 공포는 아홉 살의 것이었다.

엄마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잠깐이면 돼.”

엄마도 울고 있었다.

“손만 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더 세게 붙잡았다. 손톱 밑으로 옷감이 파고들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불렀다.

“식겠다. 그만 와서 먹어.”

엄마가 일어났다.

나는 엄마의 옷을 붙잡은 채 주방으로 따라갔다.

그 뒤로 몇 번이나 아버지를 깨우려고 했는지 모른다.

안방에는 환자용 침대가 없었다. 장롱 앞에 이불이 깔려 있었고 아버지는 젊은 얼굴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배 위에 얹은 손에는 검버섯이 없었다. 나는 그 손을 때렸다. 입을 벌려 아버지를 불렀다.

아빠라는 말이 나왔다.

아버지가 나를 번쩍 들어 자기 배 위에 올렸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더 높이 들었다.

“우리 딸, 오늘 신났네.”

천장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졌다.

그의 목덜미에서는 젊은 남자의 땀 냄새가 났다. 너무 오래 맡지 못해 잊었던 냄새였다. 나는 울면서도 그 목을 붙잡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한 번.

잠시 뒤 두 번.

예진이었다.

문밖에서 딸이 나를 불렀다. 엄마, 하고. 나는 아버지의 배에서 내려왔다. 현관으로 달려갔다. 손잡이에 손이 닿았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려다가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접시를 들고 주방 문턱에 서 있었다.

“누구 왔니?”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입을 막았다.

“친구야? 비 오는데 들어오라 그래.”

초인종이 또 울렸다. 예진이 전화를 걸었는지 어딘가에서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그 소리는 벽 안쪽에서 나는 것처럼 희미했다.

나는 내 입을 두 손으로 눌렀다.

아버지가 일어나 내 뒤로 왔다. 문손잡이를 잡은 그의 손 아래 내 머리가 있었다.

“누군데 그러니?”

문밖에서 예진이 말했다.

“엄마, 안에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딸은 한동안 문 앞에 있었다. 관리실에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와 함께 돌아와 문을 두드렸다. 금속 부딪치는 소리와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아주 가까이 지나갔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남자가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예진이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제 초인종에 관심이 없었다.

“안 먹으면 아빠가 다 먹는다.”

그가 밥상 앞으로 돌아갔다.

나는 문에 이마를 대고 딸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손을 떼면 대답할 것 같아서 입을 누르고 있었다. 손바닥 안쪽에 이가 깊게 박혔다.

얼마 뒤 밖이 조용해졌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내 손을 입에서 떼어 주고, 피가 난 자리를 원피스로 닦았다. 손이 뜨거웠다. 엄마는 여전히 열이 났다.

우리는 밥상 앞에 앉았다.

창문에는 비가 쏟아졌다. 감자전은 뜨거웠다. 아버지가 윷을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찬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 어디 있는지 몸이 알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문밖에서 소리가 난다. 나는 들을 때마다 고개를 든다. 엄마도 손을 멈춘다.

아버지는 번번이 누구냐고 묻는다.

나는 모른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모르면 더 묻지 않는다. 이 집에서 내가 아는 것 중에는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내 딸의 이름이다.

엄마가 새 전을 가져왔다. 아버지는 가운데 가장 잘 익은 것을 떼어 내 접시에 놓았다.

“참 좋지?”

나는 뜨거운 것을 입에 넣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조금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