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관 밑의 편지
나는 관의 머리 쪽을 들어 받침목 위로 한 뼘 밀었습니다. 상여꾼이 멜끈을 넣을 자리를 내 달라고 했습니다. 관 밑에서 흰 종이 끝이 함께 밀려 나왔습니다. 젖은 종이는 받침목 옆면에 달라붙었고, 거기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영수. 형은 내 이름을 쓸 때 늘 수 자의 마지막 획을 길게 뺐습니다.
관을 내려놓자 종이 끝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나는 손바닥의 톱밥을 바지에 문지르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종이를 잡기도 전에 옥분이 내 손목 앞에 손을 댔습니다.
“그렇게 잡으면 찢어져요.”
옥분은 상여꾼에게 관을 조금만 들어 달라고 했고, 남자 둘이 머리 쪽 양옆을 받쳐 들자 그 밑의 받침목을 옆으로 뺐습니다. 눌려 있던 종이가 나무를 따라 나오다 바닥으로 처졌습니다. 옥분은 손바닥을 펴서 종이를 받았습니다. 관이 다시 받침목에 내려앉을 때까지 그 여자는 내 앞을 비키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천에서 관을 짭니다. 개항장에 들어오는 나무는 널의 두께부터 제각각이어서, 같은 값을 치른 관이라도 손이 가는 정도가 다릅니다. 아버지의 관에는 따로 빼 두었던 소나무 널을 썼습니다. 옹이가 있는 부분을 잘라 내느라 다른 관 하나의 밑판을 덧대어 써야 했습니다. 그 값까지 내가 냈습니다.
장례 비용도 내가 치렀고 형의 밀린 품삯도 내가 처리했습니다. 형이 닷새째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상주 노릇 역시 내 차지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둘이지만, 관의 치수를 재는 일부터 조문객의 밥그릇을 세는 일까지 두 사람 몫으로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옥분은 부두에서 짐을 나르는 인부의 아내입니다. 남편 대신 돈을 받으러 올 때마다 액수를 입으로 듣고도 동전을 다시 세는 여자였습니다. 상가에 와서도 먼저 내 손을 보았습니다. 내가 종이를 향해 손을 뻗자 그것을 자기 치마 앞으로 옮겼습니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습니까. 내게 온 겁니다.”
“받으시라고 했을 때는 안 받으셨지요.”
상여꾼 하나가 내게 멜끈을 건넸습니다. 나는 그것을 관 밑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반대쪽에서 끈을 받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옥분 뒤에 서 있던 남자는 두 손을 허리띠에 끼우고 있었습니다.
닷새 전에도 형은 작업장에 사람들이 있는 시간에 왔습니다. 나는 주문받은 관의 옆판에 대패를 대고 있었고, 아버지는 문 옆 평상에서 동전 꾸러미를 묶고 있었습니다. 형은 평상 위에 돈 세 닢을 내려놓았습니다. 새끼줄에 꿰지 않은 돈이어서 하나가 바닥으로 굴렀습니다.
“이게 만복이 하루치야.”
아버지는 굴러간 돈을 주워 평상에 올렸습니다.
“네가 나눠 준 것 아니냐.”
“장부에는 다섯 닢을 줬다고 써 놓았잖아.”
부두에서 들어온 돈은 아버지가 받아 두었다가 인부 수대로 나눴습니다. 내가 장부에 이름과 액수를 적었습니다. 형은 일꾼을 불러 모으고 일이 끝나면 돈을 건네는 일을 했습니다. 세 사람이 손을 댄 돈을 두고 형은 그날 내 앞에만 서 있었습니다.
“다섯을 받고 셋씩 묶은 건 아버지하고 너야.”
나는 대패를 눕혀 놓았습니다. 날이 위로 향하면 옆을 지나는 사람이 다칠 수 있었습니다. 문밖에는 다음 날 쓸 목재를 가져온 수레꾼이 서 있었습니다. 형은 그 사람을 돌아보지도 않고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습니다. 부두 인부들의 이름을 적은 종이였습니다. 이름 옆에는 저마다 받지 못했다는 돈이 적혀 있었습니다.
“품삯에서 뺀 돈으로 여기 나무를 샀잖아.”
아버지가 평상 밑으로 동전 꾸러미를 밀어 넣었습니다. 나는 수레꾼에게 뒤뜰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형은 열린 문을 손으로 짚었습니다.
“들어오는 사람은 보내면서 돈 받을 사람은 왜 못 오게 하니.”
나는 형이 내밀었던 종이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적힌 종이에는 받은 사람이 손도장을 찍은 자리도 없었습니다. 형에게는 인부의 말이 곧 셈이었습니다. 그 셈을 작업장 장부와 맞추는 일은 늘 내게 돌아왔습니다.
“장부를 직접 가져가. 네가 펴 놓고 말해.”
나는 허리에서 바닷가 목재 창고 열쇠를 풀어 형이 내민 손 위에 놓았습니다. 아버지는 평상에 앉은 채 담뱃대 끝으로 신발 밑창을 두드렸습니다. 형은 아버지에게도 한마디 했지만, 아버지는 담뱃재를 털어 내느라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장부는 창고 안쪽 선반에 두었습니다. 작업장에서는 아버지가 돈을 받았고, 목재를 들이거나 내보낼 때는 내가 창고에서 장부를 썼습니다. 형도 그 선반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나는 위치를 다시 일러 주지 않았습니다.
“거기 있는 건 다 가져가도 되지?”
“가져가서 네 손으로 따져.”
형은 열쇠를 쥔 손으로 문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날 형이 아버지와 주고받은 말은 거기서 끊어졌습니다. 장례에 온 사람들은 형이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옮긴 사람들에게 형을 마지막으로 본 날부터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형이 사라진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사흘 전입니다.
관 옆에서 옥분이 종이의 접힌 귀퉁이를 손톱으로 떼었습니다. 얇은 겉장이 떨어지지 않고 속장까지 따라 올라왔습니다. 여자는 손을 멈추고 종이를 다시 폈습니다. 나는 수건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조카가 상 위에 놓인 수건을 집자 옥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문지르면 글씨가 묻어요.”
상여꾼은 대문 쪽을 보았습니다. 앞소리를 맡은 노인이 밖에서 기침을 두 번 했습니다. 나는 관의 발치로 가서 남은 멜끈을 집었습니다.
“비가 더 오기 전에 나가야 합니다.”
“아버님께 먼저 보여 드리러 왔어요.”
옥분은 관을 보며 말했습니다. 염습은 날이 밝자마자 마쳤고, 관 뚜껑에는 이미 못을 박았습니다. 여자는 대문 안에 들어왔을 때도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내 손에는 조문객에게 내줄 짚신 두 켤레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드님이 보셔야지요.”
옥분이 내밀었던 종이를 나는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짚신을 상여꾼에게 건넸고 사람들을 작업장 안으로 불렀습니다. 종이를 관 밑에서 처음 보았다는 내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 여자의 손에서는 접힌 모서리만 보였습니다. 형이 쓴 내 이름은 나무에 눌려 펴진 뒤에야 드러났습니다.
옥분은 비를 맞고 왔습니다. 어깨에 걸친 홑옷에서 물이 떨어졌고 손등에도 빗물이 흘렀습니다. 여자가 종이를 내밀 때 내 소매에 젖은 자국이 났습니다. 관에는 물이 샐 틈이 없었습니다. 내가 직접 맞춘 밑판입니다.
닷새 전 창고에도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 바닷물이 도랑을 거슬러 올라왔습니다. 나는 작업장을 닫기 전에 바닷가로 갔습니다. 형에게 장부를 가져가라고 한 것과 창고 문을 닫는 일은 별개입니다. 그 안에는 손님에게 값을 받은 나무도 있었습니다.
창고는 돌을 쌓아 올린 자리 위에 세웠지만 큰 밀물에는 바닥이 잠겼습니다. 그래서 널은 무릎보다 높은 가로대에 걸쳐 두었습니다. 장부를 얹은 선반은 그보다 위였습니다. 물이 빠진 뒤에는 바닥의 진흙을 긁어 내고 문을 열어 말렸습니다. 아버지가 쓰던 때부터 그렇게 해 왔습니다.
출입문은 바다 반대쪽에 하나 있습니다. 양쪽 벽에 낸 환기구는 널판 사이의 틈보다 조금 넓습니다. 사람은 드나들 수 없습니다. 자물쇠는 문고리에 걸었고, 그 위에는 기둥 양쪽의 쇠받이에 걸치는 가로장이 있었습니다. 자물쇠 열쇠가 있어도 가로장은 밖에서 사람이 빼 주어야 합니다.
내가 갔을 때 문은 손 하나 들어갈 만큼 열려 있었습니다. 자물쇠는 풀린 채 문고리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나는 문을 바깥쪽으로 당겨 열고 안을 보았습니다. 널을 얹은 가로대와 벽 사이에 그늘이 졌습니다. 선반이 있는 안쪽은 문가에서 전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부 가져갔어?”
문을 향해 한 번 말했습니다. 바닷물이 돌축대 아래에서 부딪쳤습니다. 대답은 없었습니다. 나는 빈 창고를 잠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 때문에 창고 구석마다 사람을 세워 보았느냐는 질문까지 받았습니다. 평소 문을 닫을 때 그런 절차를 밟지는 않습니다.
문 안쪽에는 형의 짚신 한 짝이 있었습니다. 뒤축을 삼베 조각으로 감아 둔 신이었습니다. 형은 오른발 뒤축이 닳으면 늘 그렇게 묶었습니다. 앞코는 창고 안을 향하고 있었고, 들린 뒤축이 문짝에 걸렸습니다. 나는 발끝으로 그것을 안쪽에 밀어 넣었습니다. 문이 닫힐 만큼 밀었습니다.
기둥 옆에 세워 둔 가로장을 들어 쇠받이에 걸었습니다. 젖지 않은 나무도 바닷가에서는 소금기가 손에 묻습니다. 나는 두 손을 털고 자물쇠를 보았습니다. 열쇠는 형이 가져갔으므로 자물쇠는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문고리에 열린 채 남았습니다.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물가를 따라가면 인부들이 사는 집 앞을 지나고, 위쪽 길로 가면 쌀가게 뒤에 닿습니다. 나는 위쪽으로 갔습니다. 밑창에 묻은 흙이 쌀가게 앞 돌바닥에서 떨어졌습니다. 가게 주인이 빗자루를 내밀어 내가 쓸었습니다.
옥분이 창고 앞을 지난 것은 내가 그 길을 오른 뒤였습니다. 그 여자가 작업장에 와서 시각을 말했습니다. 쌀가게가 덧문을 내리기 전이었다고 했습니다. 밀물이 축대 위까지 오르기 전이기도 했습니다.
관 옆에 있던 만복이 자기 신발을 벗어 처마 밖에 엎어 놓았습니다. 밑창에 붙은 진흙이 빗물에 풀어졌습니다. 옥분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관을 들어 줄 사람으로 와 있었습니다. 내가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었을 때는 먹었다고 답했고, 형 이야기가 나온 뒤로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복이 밀린 것도 내가 치렀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말했습니다. 만복은 맨발로 처마 안에 올라섰습니다.
“사흘치는 받았지요.”
“형이 적어 온 액수대로 줬습니다.”
“닷새를 일했습니다.”
나는 관 밑으로 늘어진 끈을 집어 만복에게 건넸습니다. 그는 끈을 받았지만 어깨에 걸지는 않았습니다. 옥분이 한 손으로 펼친 종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만복의 소매를 걷었습니다. 빗물이 종이 위로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동작이었습니다. 만복은 팔을 뒤로 뺐습니다.
형의 품삯을 처리했다는 말도 그 자리에서 설명했습니다. 형이 작업장에서 가져다 쓴 돈을 빼고 남은 액수를 따로 묶어 두었습니다. 형이 오지 않아 건네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돈을 내어 놓지 않았다고 해서 셈까지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 꾸러미는 어디 있습니까.”
만복이 물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쓰던 평상 밑을 가리켰습니다. 장례에 쓰고 남은 돈과 함께 두었습니다. 만복은 평상 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내 손에 있던 끈을 마저 받아 관 위에 얹었습니다. 흰 끈의 끝이 옥분 앞까지 내려왔습니다.
닷새 전 옥분이 찾아왔을 때에도 그 평상은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안채로 들어갔고 나는 대팻밥을 한곳에 쓸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문턱을 넘기 전에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종이를 든 손이 가슴 높이에 있었습니다.
“영길 씨가 전해 달래요.”
나는 빗자루를 벽에 기대고 종이를 받았습니다. 종이는 네모로 접혀 있었습니다. 내 이름이 바깥에 있었고, 접힌 자리를 펴자 안쪽에 글이 나왔습니다. 형은 장부를 쓸 때에도 종이 한쪽을 남겨 두었습니다. 먹이 묻은 부분은 반쪽에 몰려 있었습니다.
“직접 보셨습니까.”
“문 밑으로 주셨어요.”
옥분은 치마 끝의 마른 흙을 털었습니다. 창고 앞에서 종이를 받느라 쪼그려 앉았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접힌 종이가 문 밑에 걸려 손가락으로 귀퉁이를 잡아당겼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창고에서 본 것은 문 밑의 종이와 손가락이었습니다. 얼굴을 보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편지를 평상에 놓고 벼루를 가져왔습니다. 옥분은 문가에 서 있었습니다. 여자가 종이 위로 몸을 기울이자 나는 벼루를 종이 옆으로 당겼습니다. 벼루와 함께 놓아 둔 붓이 바닥에 굴렀고, 여자가 그것을 주워 주었습니다.
“답을 가져가야 해요?”
“내가 갈 테니 집으로 가세요.”
나는 물그릇에서 벼루에 물을 조금 부었습니다. 먹을 갈 때에는 벼루가 기울지 않도록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눌렀습니다. 옥분은 문가에서 한 걸음 안으로 들어와 기다렸습니다. 바깥에서는 빈 수레의 바퀴가 돌 틈에 부딪쳤습니다. 아버지는 안채에서 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그 편지를 나는 품삯 독촉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닷새 동안 여러 번 그렇게 말했습니다. 형이 작업장을 나가기 전에 벌인 일이 품삯에 관한 다툼이었고, 형이 가져간 열쇠도 장부를 꺼내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옥분은 내가 붙인 이름을 따라 부른 적이 없습니다. 그 여자는 줄곧 편지라고 했습니다.
나는 종이를 뒤집었습니다. 붓끝을 벼루 가장자리에 대고 먹을 덜었습니다. 빈 면의 위쪽에 손을 얹으면 앞면의 글씨가 번질 수 있어 아래 모서리를 눌렀습니다. 손가락 밑에 종이를 댄 채 글을 썼습니다. 옥분에게는 내 손등이 보였습니다.
쓰고 나서는 붓을 내려놓았습니다. 종이를 손에 든 채 몇 차례 움직여 먹을 말렸습니다. 옥분이 문을 닫으러 돌아섰을 때 나는 접힌 선을 따라 종이를 접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선 여자에게 다시 건넸습니다.
“이걸 가지고 계세요. 내가 창고로 가겠습니다.”
옥분은 종이를 저고리 안에 넣었습니다. 나는 문밖까지 나가 여자가 집 쪽으로 걷는 것을 보았습니다. 쌀가게 덧문은 이미 닫혀 있었습니다. 나는 작업장으로 들어와 대팻밥을 마저 쓸었습니다. 아버지가 불러 밥상을 안채로 옮겼습니다. 그날 밤 창고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내게만 설명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품삯을 처음 받아 온 사람은 아버지였고, 나무를 사들이라고 한 사람도 아버지였습니다. 지금은 그 말을 들을 자리에 관이 놓여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명정을 대문 쪽으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바람에 천 끝이 관 모서리를 자꾸 쳤습니다.
“답을 쓰신 건 맞지요.”
옥분의 말에 나는 관의 머리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슨 말을 썼다는 겁니까.”
“뒷면에 쓰셨어요. 제가 붓을 주워 드렸고요.”
여자는 자기가 보았다는 데까지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종이 쪽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뒤쪽 상여꾼까지 앞으로 오자 관의 발치에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나는 관 양쪽에서 사람이 빠지면 무게가 한쪽으로 쏠린다고 말했습니다. 관은 아직 두 받침목 위에 있었습니다. 상여꾼들은 자리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옥분은 그날 돌려받은 종이를 집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창고로 간다고 했으므로 다시 그곳으로 가져가지 않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다음 날 형이 돌아오지 않자 여자는 작업장에 왔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누워 계시니 밖에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옥분은 문밖에서 종이를 꺼냈고, 나는 형이 오면 함께 보자고 했습니다.
“오늘도 같은 말씀을 하셔서요.”
여자는 종이를 받친 손을 조금 들어 올렸습니다.
“상여를 부르시면 들고 나가시겠지요. 들기 전에 보시라고 밑에 넣었습니다.”
내가 만복에게 짚신을 건네고 등을 돌린 사이였습니다. 관은 받침목 두 개 위에 올라 있었고, 옆으로는 손을 넣을 틈이 있었습니다. 옥분은 접힌 편지를 관과 받침목 사이에 밀어 넣었습니다. 내가 관을 밀었을 때 종이 끝이 따라 나온 까닭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 여자가 한 일을 죽은 아버지나 아직 찾지 못한 형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초상집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옥분은 내 말을 받지 않았습니다. 만복이 평상에 깔린 멍석을 걷었습니다. 그 밑의 나무가 드러났습니다. 옥분은 종이를 거기 놓지 않고 손에 든 채 남은 접힌 부분을 폈습니다. 평상에서 일어난 조카가 내 옆으로 왔다가 만복 뒤에 섰습니다.
밀물에 창고가 잠긴 것은 사실입니다. 다음 날 물이 빠지고 내가 문을 열었을 때 선반 아래까지 젖은 선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나뭇조각과 새끼줄이 엉켜 있었습니다. 뒤쪽 널 두 장이 벽에서 뜯겨 나갔습니다. 그 틈 너머로 물이 나간 자국이 축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형은 거기 없었습니다.
나는 인부 둘을 불러 바닥을 치웠습니다. 바다 쪽에서도 사람을 찾았습니다. 형의 몸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창고가 잠겼다고 해서 그 안에 있던 사람의 행방까지 내 입으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신을 보았느냐는 물음에는 옥분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옥분이 작업장에 와서 형의 이름을 말한 것은 맞습니다. 문 밑으로 종이를 받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나 형이 안에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습니다. 나는 듣지 못한 말을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옥분이 종이를 내 쪽으로 돌렸습니다. 위쪽에는 관 밑에서 보았던 내 이름이 있었고, 그 아래로 접힌 자국을 가로질러 형의 글씨가 이어졌습니다. ‘영수야, 밖의 가로장을 빼라. 물이 무릎까지 찼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만복이 관 위에서 멜끈을 걷어 내 둘둘 말아 발치의 받침목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대문 밖에서 앞소리꾼이 출발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안에 있는 사람 가운데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종이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게 그날 받은 종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옥분은 종이의 양쪽 가장자리를 잡았습니다. 왼손 엄지 아래에 접힌 귀퉁이가 남아 있었습니다. 닷새 전 평상에서도 그 귀퉁이가 붓을 든 내 손목에 닿았습니다. 나는 먹이 묻지 않게 손목을 들었고, 종이를 반 바퀴 돌려 빈 면을 위로 놓았습니다.
“형 글씨라서 형 편지인 건 맞겠지요. 내가 받은 것과 같다는 말은 따로 하셔야 합니다.”
여자가 왼손을 아래로 내리며 종이를 뒤집었습니다. 닷새 전 내가 아래 모서리를 누르고 붓을 댔던 면이 사람들 앞에 펼쳐졌습니다.
같은 종이 뒷면에는 내 글씨로 ‘장부부터 문 밑으로 내놓으면 열어 주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