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종점의 짐
정희는 버스 통로에 놓인 김장독 밑으로 새끼줄을 밀어 넣습니다. 독 바닥이 줄을 물고 있어서 아버지가 몸통을 조금 들어 줍니다. 왼쪽 손잡이에서는 성에가 묻어나고, 오른쪽 손잡이에 스친 줄에서는 검은 가루가 떨어집니다. 뚜껑 틈으로는 김이 오릅니다.
“오른쪽은 잡지 마세요. 줄이 탔어요.”
아버지는 손을 몸통 아래로 옮깁니다. 정희의 오른손 약지가 독 옆면에 닿습니다. 은판을 둥글게 접은 반지에는 작은 구리못 두 개가 박혀 있습니다. 지난가을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으로, 겹친 은판을 납땜하는 대신 못으로 고정했습니다.
앞좌석에는 아버지가 가져온 제작 장부가 펼쳐져 있습니다. 첫머리의 메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1962년 12월 18일. 오른쪽 손잡이 절단, 독은 가마 안에서 없어짐.〉
메모 아래의 흑백사진에는 흰 종이 위에 놓인 손잡이 파편이 찍혀 있습니다. 위쪽 단면에서 얇은 금속 가장자리가 드러납니다. 사진을 찍고 파편을 보관한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그 파편을 싸 온 무명천이 지금 장부 옆에 놓여 있습니다.
정희가 독 밑에서 줄을 잡아 뺍니다. 손잡이에 걸지 않고 몸통에 둘러 두 사람이 양쪽에서 들 수 있도록 길이를 나눕니다.
장부를 가져온 경위는 종점 사무실에서 건 전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희가 독을 내려 달라며 설명한 부분은 몸통 아래의 유약 세 줄과 왼쪽 손잡이의 눌린 자국입니다. 아버지는 독의 크기를 묻고 장부를 가져왔습니다.
“전화로 말한 자국이 이 사진에 있나요?”
아버지는 소성 전 사진을 짚습니다.
“유약 흐른 자리하고 왼쪽 손잡이. 둘 다 여기 있다.”
사진 아래 설명은 아버지의 글씨입니다.
〈손잡이 붙인 뒤, 가마 넣기 전.〉
사진 속 독은 가마 입구에 있습니다. 몸통 아래에는 유약 세 줄, 왼쪽 손잡이 가운데에는 엄지손가락 너비의 눌린 자국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진을 독 옆에 세우고 정희가 소매로 성에를 닦습니다. 유약 자국을 왼쪽부터 대조합니다. 바닥까지 내려온 두 줄과 그 위에서 끝난 짧은 줄의 순서가 같습니다. 손잡이의 눌린 위치도 일치합니다.
“아버지가 만든 거예요?”
“손잡이 누른 건 나다. 그때 덜 말라 있었어.”
정희가 좌석에 놓은 운임표에는 다음 목적지가 적혀 있습니다.
〈새말 옹기가마〉
중간 정류장에서 이 독을 짐으로 받고 건네받은 표입니다. 목적지의 가마는 철거됐습니다. 옛 마당에는 종점 표지판이 서 있고, 버스 앞문도 그 마당으로 열려 있습니다.
1962년 작업일지에는 가마 안의 배치도도 있습니다. 문제의 독은 입구에서 두 번째, 유약 자국이 입구를 향하게 놓였습니다. 오른쪽 손잡이 옆에는 다른 그릇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기록은 두 줄입니다.
〈불구멍으로 오른쪽 손잡이에서 손이 나온 것을 봄. 손가락이 펴졌다가 굽혀짐.〉
〈독 뒤편에는 아무도 없음. 불을 줄이고 집게를 가져옴.〉
현재 버스의 오른쪽 손잡이에도 손 하나가 통과할 공간이 있습니다. 정희가 장부에서 손을 떼고 줄의 검게 탄 부분을 자릅니다. 몸통에 감은 줄을 받치려면 늘어진 끝을 그 구멍으로 빼야 합니다.
“손잡이에 닿지 않게 해라.”
정희는 새 줄 끝을 오른손에 쥐고 독 앞쪽에서 뒤쪽으로 넣습니다. 손바닥과 손잡이 사이에는 틈이 남습니다. 손목이 구멍 가운데에서 멎습니다.
여기서 구멍 앞뒤의 상태가 맞지 않습니다. 앞쪽에서는 손목까지 들어갔는데, 뒤쪽에는 손가락도 줄 끝도 나오지 않습니다.
뒤쪽 관찰 위치는 손잡이 바로 너머, 뒷좌석 앞입니다. 아버지가 그곳으로 옮겨 허리를 낮춥니다. 구멍을 통해 정희의 소매와 앞문 불빛이 보입니다. 손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손목이 테두리에 걸렸니?”
“사이가 떠 있어요.”
정희가 팔꿈치를 당겨도 손목의 위치는 그대로입니다. 아버지가 독 밑에 양손을 넣고 앞문 쪽으로 기울입니다. 이번에는 손목이 움직입니다. 독이 기울어진 각도만큼 돌아갑니다. 팔꿈치가 좌석 모서리에 닿자 아버지가 독을 세웁니다.
무릎에 받쳐 둔 장부가 미끄러지며 절단 순서가 적힌 쪽이 드러납니다. 1962년의 기록은 윗부분부터 시작합니다.
〈긴 집게로 손잡이 윗부분을 물림. 손이 독 쪽으로 접힘.〉
버스에서도 먼저 갈라지는 곳은 위쪽입니다. 아버지가 왼손으로 독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정희의 팔을 잡은 상태에서, 뚜껑이 들썩이고 손잡이에 가로로 금이 납니다.
장부의 다음 행은 아래쪽입니다.
〈위가 떨어진 뒤 아래를 침. 손가락이 구멍 안으로 들어감.〉
버스의 손잡이 아래쪽에서 짧은 소리가 납니다. 정희가 한 걸음 물러나며 오른손을 뺍니다. 굽힌 손가락에는 줄 끝이 남아 있습니다. 약지는 맨살입니다.
독 오른쪽에는 손잡이가 붙었던 두 자리만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독 밑을 들고 정희가 통로 바닥을 훑습니다. 좌석 받침대 사이에도, 독 아래에도 깨진 조각은 없습니다. 흰 성에가 아래쪽 파단면에서 위쪽으로 번집니다. 뚜껑 틈의 김이 멎습니다.
장부의 마지막 기록에는 수거 위치가 적혀 있습니다.
〈손이 들어간 뒤 파편은 집게 끝에 남음. 가마 밖으로 꺼내 놓음. 식힌 뒤 촬영.〉
아버지가 무명천을 풉니다. 흑백사진 속 손잡이 파편이 나옵니다. 사진에서 검게 찍힌 홈에는 흙이 끼어 있고, 단면의 금속 가장자리는 천 밖에서도 보입니다.
아버지가 파편을 독의 빈자리에 댑니다. 맞닿는 곳은 두 군데입니다. 위쪽은 뾰족한 돌기, 아래쪽은 굽은 파단면입니다. 두 곳이 함께 맞물리고 접합선을 따라 가는 틈이 남습니다.
정희가 장부를 앞문 전등 아래로 옮겨 사진 속 파편과 실제 조각의 방향을 맞춥니다. 1962년에 촬영한 절단면이 1982년에 생긴 빈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파편을 떼어 위쪽 단면을 손톱으로 긁습니다. 금속 가장자리에 붙었던 흙이 장부 위로 떨어집니다. 정희의 맨 약지가 사진 귀퉁이를 누릅니다.
1962년 사진에도 찍힌 그 손잡이 단면 속에는, 정희가 방금까지 끼고 있던 구리못 두 개짜리 은반지가 박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