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회수 봉투
“태수 형 칼도 거기 있으면 가져와.”
성호가 빈 테이프 심을 윤재에게 던졌다. 윤재는 심을 받아 포장대 아래 상자에 넣었다.
“개인 물건 아니야?”
“회사에서 준 거야. 내 건 날이 자꾸 들어가.”
윤재는 작업복 앞주머니를 벌려 보이고 포장실을 나왔다. 보일러실까지는 복도 하나였다. 문 아래로 물이 흘러나와 복도 바닥의 노란 선을 반쯤 지웠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벽 선반에 접힌 편지가 놓여 있었다. 휴대전화로 받은 안내와 같은 자리였다. 윤재는 젖은 모서리를 작업복 소매로 닦았다. 물기가 닦인 자리에 소매의 푸른 보풀이 붙었다. 손바닥 두 개를 붙인 정도의 크기였고, 한쪽 가장자리에만 둥근 돌기가 다섯 개 나 있었다. 나머지 가장자리는 매끈했다. 접힌 부분을 눌러도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
선반 아래에는 배수받이가 있었다. 콘크리트로 낮게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의 배관 주변을 철판으로 덮어 놓았다. 누런 봉투가 배관 옆에 놓여 있었다. 봉투의 접착 덮개에는 투명 테이프가 길게 붙어 있었다.
윤재는 편지를 든 채 쪼그려 앉았다. 철판 앞쪽은 콘크리트에 붙어 있었다. 손가락을 넣을 구멍이나 손잡이는 없었다. 배관을 끼운 둥근 절개부에도 틈이 거의 없었다.
점심에 등록한 회수 업무는 건당으로 수당을 줬다. 윤재가 야간 출근 시간을 적어 보내자 담당자는 공장 이름을 물었다. 같은 공장에서 넘겨받을 물건이 있다며 주소를 보내 왔다. 주소 끝에는 보일러실, 배수받이, 갈색 서류 봉투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메시지는 조금 뒤에 도착했다.
전임자가 선반에 인계를 남겼습니다. 읽으시고 회수하세요.
전임자의 이름은 태수였다. 포장실에서는 그 이름이 적힌 장갑을 사흘째 건조대에서 내리지 않았다.
윤재는 봉투로 뻗던 손을 거두고 편지를 폈다. 검은 글씨가 줄 없이 들어차 있었다. 앞부분은 컸고, 아래로 갈수록 작아졌다. 굵은 획 끝에 잉크가 둥글게 고여 있었다.
「다음 회수 담당자에게.
저는 이 공장 야간 포장조에서 일하는 김태수입니다. 봉투를 가져가실 분이 공장 사람이면 제 사물함은 탈의실 창문 아래에 있습니다. 이름표는 떨어졌고 문에 흰 테이프가 붙어 있습니다. 사물함 안에 갈아입을 옷이 있습니다. 옷을 먼저 꺼내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봉투는 제가 받은 상태로 두었습니다. 테이프를 떼거나 돈을 빼지 않았습니다. 돈이 얼마인지는 세어 보지 못했습니다. 받으면서 세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새한아파트 후문에서 받았습니다.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할머니가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회색 가방을 무릎 위에 두고, 한 손으로 가방 입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기 전부터 통화 중이었습니다. 휴대전화 옆면에 고무줄이 두 개 감겨 있었습니다.
제가 이름을 묻자 할머니는 휴대전화에 제 옷을 설명했습니다. 남색 점퍼에 운동화라고 했습니다. 수화기에서 남자가 할머니 이름을 불렀습니다. 소리가 커서 옆에서도 들렸습니다.
남자는 수사관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온 사람이 보관 담당자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다가 테이프 끝을 손톱으로 들었습니다. 남자가 봉투를 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들었던 테이프를 다시 눌렀습니다.
돈을 건네기 전에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내일 은행에 가도 되나요.
남자는 자기가 연락하기 전에는 은행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통화를 끊어도 안 되고 가족에게 말해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봉투를 제게 주고도 가방을 닫지 않았습니다. 안에는 은행 번호표와 안경집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령했다고 업무방에 썼습니다. 남자가 할머니에게 전달이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제 전화와 할머니 전화에서 거의 동시에 소리가 났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영수증을 달라고 했습니다. 업무방에 물으니 별도 교부라고 왔습니다. 그대로 전했습니다.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가방 바닥을 훑었습니다. 동전 한 개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습니다. 버스를 타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사람 없는 곳에서 계속 통화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봉투를 점퍼 안에 넣고 후문을 나왔습니다.」
보일러 옆 순환 펌프가 작동했다. 바닥에 고인 물에 잔주름이 생겼다. 윤재는 편지를 무릎 위에 놓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담당자의 프로필에는 회사 로고 대신 초록색 원이 떠 있었다.
그는 업무방의 첫 안내를 위로 올렸다. 서류와 물품을 대신 받아 전달하는 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 나이, 거주 구역 다음으로 계좌번호를 제출했다. 신분증 사진은 아직 보내지 않았다. 퇴근 후에 보내겠다고 하자 우선 한 건부터 진행하라는 답이 왔다.
윤재가 지금 보일러실에 있다고 쓰자 바로 숫자 표시가 없어졌다.
봉투 확인되시면 수령 사진 부탁드립니다.
그는 답을 쓰지 않고 전화기를 바닥의 마른 곳에 놓았다. 봉투 덮개 한쪽에 들렸다가 눌린 테이프 자국이 있었다. 테이프 아래에는 짧은 흰 섬유가 끼어 있었다.
편지의 다음 줄은 접힌 안쪽까지 이어졌다. 윤재는 양끝을 잡고 벌렸다. 접힌 선이 펴질 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안쪽은 바깥보다 희고 매끈했다.
「전달 장소는 제가 일하는 공장이었습니다. 주소를 잘못 보냈느냐고 물었습니다. 보일러실 사진이 왔습니다. 배관 옆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곳에 봉투를 놓고 사진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공장에 도착한 시간은 네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주간조가 출하 물량을 빼고 있었습니다. 저는 뒷문으로 들어왔습니다. 보일러실 문은 늘 열려 있습니다. 청소하는 분이 안에 수도가 있어서 잠그지 말라고 합니다.
봉투를 철판 위에 놓았습니다. 물이 있는 곳은 피했습니다. 사진에 배관과 봉투가 같이 나오게 찍었습니다. 전송하자 업무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수당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업무방에 안내된 번호를 눌렀는데, 아파트에서 할머니와 통화하던 남자가 받았습니다. 저는 수당이 언제 들어오느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확인하고 전화하겠다고 했습니다.
보일러실을 나가다가 다시 전화했습니다. 이번에도 받았습니다. 아직 공장에 있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먼저 한 건에 대한 수당을 달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지금 처리가 안 되니 물건을 다시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문 앞에서 기다리면 다른 사람이 받으러 온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른손으로 봉투 끝을 잡았습니다. 봉투가 들리면서 손바닥 아래가 철판 모서리에 닿았습니다. 철판에 손이 붙었습니다. 봉투는 놓았는데 손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른손 중지와 약지가 먼저 판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판과 콘크리트 사이에는 칼날도 넣기 어려웠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모서리에 걸렸습니다. 팔을 당겼습니다. 마디가 좁아지지 않고 옆으로 벌어졌습니다. 중지가 약지 아래에 겹쳤다가 다시 나란해졌습니다. 손등이 바닥에 붙을 때까지 낮아졌습니다.
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손톱이 넓어졌습니다. 손톱 가운데 있던 흰 점도 옆으로 길어졌습니다. 엄지까지 들어간 뒤에는 손목이 판에 닿았습니다. 피부가 접혀 올라오다가 모서리를 지나면서 펴졌습니다. 오른쪽 소매가 시곗줄에 걸렸습니다. 시계는 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줄이 끊어져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왼손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남자는 받지 않았습니다. 업무방에 손이 끼었다고 썼습니다. 답은 물건을 회수했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음성 메시지를 보내려고 버튼을 누른 동안 팔꿈치가 철판에 닿았습니다. 전화기를 놓쳐서 녹음은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를 다시 주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발신 화면이 뜨는 동안 오른쪽 어깨가 내려갔습니다. 전화기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스피커에서 주소를 묻는 말이 나왔습니다. 공장 이름을 말했는데, 보일러가 켜져 제 목소리가 끝까지 들렸는지는 모릅니다. 화면은 제 몸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윤재는 편지를 선반에 내려놓았다. 글씨가 없는 뒷면 한가운데에 가는 홈이 세 줄 나 있었다. 그는 편지의 끝을 유성펜으로 눌러 놓았다. 펜 뚜껑이 없어서 선반에 검은 점이 찍혔다.
물 고인 곳 옆에 손목시계가 떨어져 있었다. 검은 줄 한쪽이 빠져 있었고, 시계 유리에는 콘크리트 가루가 붙어 있었다. 윤재는 시계를 건드리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포장실 컨베이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성호는 반대편 출하구에서 종이 상자를 밀고 있었다. 윤재가 불렀지만 상자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말끝이 묻혔다. 성호는 윤재 쪽을 보지 않은 채 다음 상자를 받았다.
윤재는 문을 활짝 열어 수도관에 기대 놓았다. 문 뒤 공구함에 지렛대와 망치가 있었다. 철판의 모서리는 한 군데가 위로 조금 휘어 있었다. 그 아래에도 검은 선만 보였다. 윤재는 공구함을 문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보일러실 안쪽 벽에는 낮은 선반이 길게 붙어 있었다. 바닥 청소용품을 두던 자리였지만 지금은 유성펜과 포장용 칼만 남아 있었다. 철판 뒤쪽 끝에서 선반까지는 한 뼘 남짓 높이였다. 선반 아래 벽에 회색의 넓적한 띠가 붙어 있었다. 배관 보온재의 끝과 색이 비슷했다. 띠는 철판 뒤로 이어져 있었다.
윤재는 펜을 굴려 편지를 빼냈다.
「왼손으로 배수받이 가장자리를 짚었습니다. 팔을 세우면 몸을 일으킬 수 있는 높이였습니다. 손바닥이 닿은 곳부터 왼손도 내려갔습니다. 오른손 때와 같았습니다. 손가락이 들어가고 손바닥이 펴졌습니다. 팔을 세운 상태에서 팔꿈치가 바깥으로 접혔습니다. 팔 안쪽과 바깥쪽이 붙을 때까지 얇아졌습니다.
콘크리트에 댄 무릎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상체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작업복 단추 두 개가 떨어졌습니다. 앞주머니에 있던 사원증은 철판 밖에 남았습니다. 줄이 목에 걸려 있었는데, 목이 들어가면서 줄이 빠졌습니다. 턱은 바닥을 쓸고 갔습니다. 이가 서로 닿다가 어긋났습니다.
얼굴 한쪽이 옆으로 나와 있습니다. 입을 벌려도 위아래가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소리를 내면 바닥의 물이 입으로 들어옵니다. 물이 빠진 다음 다시 말을 해 봤습니다. 보일러 소리가 멎어도 문밖에서 대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른손은 판 뒤쪽으로 나왔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손바닥을 바닥에 세우려고 하면 손목에서 접힙니다. 벽에 대고 올리면 위로 올라갑니다. 선반 끝에 닿아서 거기에 걸쳐 놓았습니다.
왼팔도 철판 밖으로 나왔습니다. 팔이 넓어져서 오른팔 위에 얹으면 거의 다 가립니다. 손목을 돌리면 피부가 꼬입니다. 꼬인 곳을 다시 풀어야 손가락이 선반에 닿습니다. 발은 신발 속에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다리를 움직일 때 판 아래에서 작업복 천이 문질러지는 소리가 납니다.
업무방에는 제가 선반에 인계를 남기겠다고 써 놓았습니다. 전화를 두 번째로 주웠을 때 보냈습니다. 담당자가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공장 출근 시간이 됐다고도 썼습니다. 그 뒤로 온 답은 읽지 못했습니다.
선반에 유성펜이 있습니다. 왼손으로 뚜껑을 뺐습니다. 뚜껑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오른손으로만 글씨를 씁니다. 왼손으로 쓰니 큰 글씨밖에 되지 않습니다. 펜을 짧게 잡으니 조금 작아집니다. 읽을 수 있게 줄 사이를 띄우겠습니다.
봉투는 위에 있습니다. 손이 들어갈 때 놓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준 돈입니다. 봉투 겉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업무방에 받는 사람의 이름도 없습니다. 제가 적어 드릴 수 있는 것은 아파트 이름과 받은 시간입니다.
새한아파트 후문, 오후 두 시 사십 분쯤입니다. 할머니는 회색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휴대전화에 고무줄이 두 개 있었습니다. 제가 떠날 때도 통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글씨 사이에 비어 있는 곳이 나왔다. 그 부분에서는 편지가 두 겹으로 포개졌다. 윤재는 가장자리의 둥근 돌기에 엄지를 댔다가 손을 옮겼다. 가운데를 눌러야 뒷부분의 글씨가 보였다.
바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담당자였다. 윤재가 받자 남자가 봉투를 찾았느냐고 물었다.
“태수 씨가 여기 있다고 적혀 있는데요.”
“물건 먼저 확인해 주세요.”
“사람이 끼었대요.”
남자는 말을 멈췄다.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숫자를 읽었다.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 소리는 작아졌다.
“봉투 들고 문 앞으로 나오세요.”
윤재는 통화를 끝냈다. 성호에게 전화를 걸어 보일러실로 오라고 했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수화기와 열린 문 너머에서 같은 컨베이어 소리가 들렸다.
편지의 마지막 몇 줄은 선반에 놓인 칼날보다 가늘었다. 획이 끊긴 곳에는 두 번씩 펜을 댄 자국이 있었다.
「포장용 칼도 여기 있습니다. 손잡이에 노란 테이프를 감은 칼입니다. 왼손으로 잡아도 날은 나옵니다. 선반 끝에 대고 자르겠습니다.
끝을 잘랐습니다. 한 번에 잘리지 않아 칼을 여러 번 움직였습니다. 잘린 데서 물이 조금 나왔습니다. 옆을 접으면 선반 안쪽에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펜을 내려놓고 왼손으로 밀겠습니다.
봉투를 가져가실 분은 철판부터 들어 주십시오. 저는 그 아래에 있습니다.」
윤재는 편지를 글씨가 위로 오게 선반에 놓았다. 앞주머니에서 면장갑을 꺼내 끼고 배수받이 앞에 앉았다. 봉투는 철판 뒤쪽에 있었다. 팔을 뻗으면 가장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봉투 끝이 장갑 사이에 끼었다. 그가 팔꿈치를 굽히자 철판 밑면에서 긁는 소리가 났다.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이었다. 윤재가 멈추자 소리도 멎었다. 봉투를 조금 더 당기자 바로 아래에서 같은 소리가 났다. 단단한 끝이 철에 걸렸다가 미끄러지는 소리였다.
윤재는 봉투를 놓고 손을 뺐다. 장갑 끝에 누런 물이 묻었다. 그는 지렛대의 납작한 쪽을 휘어진 철판 모서리에 댔다. 손바닥으로 손잡이를 두드려도 들어가지 않았다. 망치로 지렛대 뒤를 쳤다. 세 번째에 끝이 검은 선 안으로 들어갔다.
성호가 문 앞에서 멈췄다.
“뭐 꺼내게?”
“밑에 사람 있어. 나무 좀 줘.”
성호는 공구함 옆에 있던 각목 조각을 집었다. 윤재가 지렛대를 눌렀다. 철판 한쪽이 올라가고, 배관과 철판이 맞닿은 곳에서 가루가 떨어졌다. 성호가 틈에 각목을 밀어 넣었다. 윤재는 지렛대에 실었던 무게를 조금씩 풀었다. 철판은 각목 위에서 멎었다.
벌어진 틈에 작업복 천이 끼어 있었다. 천 옆으로 납작한 왼손이 나왔다. 손가락 다섯 개가 콘크리트 위로 펼쳐졌다. 손등이 얇아서 아래 바닥의 작은 돌 알갱이가 솟아 보였다. 손은 철판 옆면을 타고 올라갔다. 엄지가 접혔다 펴졌고, 나머지 손가락이 봉투 아래로 들어갔다.
봉투가 윤재 쪽으로 밀려 왔다.
그는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아 선반에 옮겼다. 봉투가 손을 떠난 뒤에도 왼손은 철판 위에 붙어 있었다. 손가락 끝만 번갈아 들렸다.
성호는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공장 주소를 말하고 보일러실이라고 덧붙였다. 윤재는 공구함에서 긴 포장용 집게를 꺼냈다. 밴딩 끈을 잡아 빼는 집게였다. 끝의 톱니 사이에 작업복 자락을 물렸다.
한 번 당기자 옷자락만 주름졌다. 윤재는 집게를 풀어 겨드랑이 봉제선 가까이에 다시 물렸다. 성호가 전화기를 어깨에 끼우고 지렛대를 눌렀다. 윤재는 들어 올리지 않고 바닥과 나란히 당겼다.
작업복과 그 안의 몸이 함께 나왔다. 어깨가 허리 위에 겹쳐져 있었다. 목은 옷깃 안쪽으로 접혔고, 한쪽 귀가 가슴 주머니에 닿아 있었다. 윤재는 집게를 내려놓고 어깨 부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천 안의 얇은 몸이 아래로 처졌다. 그는 바닥에 놓은 뒤 뒤쪽 자락을 당겼다. 바짓단과 납작해진 양말이 차례로 빠져나왔다. 신발 두 짝은 배수받이 안에 남았다.
태수의 얼굴은 옆으로 접혀 있었다. 드러난 눈꺼풀이 움직였다. 입가에 붙은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졌다. 성호는 전화기에 대고 숨을 쉬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재는 태수의 왼팔을 몸통 옆에 놓았다. 손바닥이 바닥에 닿자 손가락이 장갑을 잡았다. 장갑의 면실이 팽팽해졌다. 윤재는 손가락 사이에서 장갑을 빼지 않고 손만 빼냈다.
선반 위 봉투의 테이프를 칼끝으로 갈랐다. 안에는 고무줄로 묶인 현금 다발이 들어 있었다. 다발 사이에도 접은 지폐가 끼어 있었다. 윤재는 봉투를 닫고 태수의 발치에 놓았다.
오른쪽 소매가 몸 아래에 접혀 있었다. 윤재는 봉제선을 잡아 밖으로 펼쳤다. 소매 끝에 손은 없었다. 손목의 절단면이 천 밖으로 조금 나와 있었다. 얇은 테두리 가운데 더 흰 선이 지나갔다. 가장자리에는 칼을 여러 번 댄 짧은 홈들이 남아 있었다.
윤재는 선반에서 편지를 가져와 그 옆에 놓았다. 젖은 모서리에 작업복의 푸른 보풀이 붙어 있었다. 그는 접힌 가장자리를 한 군데씩 폈다. 둥근 돌기들이 길어지고, 안으로 말려 있던 끝에서 얇고 넓은 손톱 다섯 개가 드러났다.
윤재가 읽은 인계 편지는 태수가 잘라낸 오른손이었고, 검은 글씨는 그 손바닥에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