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수취함
“자루 좀 더 붙여.”
서진이 자루 입구를 벽에 대자 도윤이 아래쪽 고정 나사를 돌렸다. 나사가 두 바퀴쯤 빠졌을 때 우편함 밑에서 흰 모서리가 튀어나왔다. 서진은 자루를 무릎으로 받치고 종이를 잡았다. 봉투였다. 받는 사람 칸에 이 고시원 주소와 ‘203호 장문석’이 인쇄돼 있었다.
“안에 우편물 있어.”
“문부터 열게.”
도윤은 전동드라이버를 내려놓았다. 서진이 봉투를 뒤집었다. 붉은 글씨로 독촉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봉투 아래쪽은 손가락 한 마디 폭으로 접혀 있었고, 접힌 선을 따라 회색 가루가 떨어졌다.
고시원 현관에는 떼어낸 방문들이 세워져 있었다. 남매가 분리한 경첩과 수도꼭지는 현관 바깥 손수레에 실려 있었다. 오후 네 시부터는 용접공이 철제 출입문을 고정할 차례였다. 서진의 휴대전화에 표시된 시각은 세 시 이십 분이었다.
“이거 떼고 나가자. 큰 건 내일 장비 들어오면 하고.”
도윤은 열쇠 구멍에 송곳을 넣었다. 끝이 들어가지 않았다. 구멍 둘레의 누런 페인트를 긁자 금속이 드러났다. 그는 송곳의 각도를 바꿔 두 번 더 긁고 옆 칸으로 옮겼다. 거기도 끝이 얕게 걸렸다.
“누나, 이거 열쇠 구멍이 아니야.”
서진이 자루를 내려놓고 옆에 섰다. 송곳 끝이 검은 세로 홈을 따라 움직였다. 홈 바닥에서 은색 철이 드러났다. 도윤은 문짝 모서리로 보이는 선에도 송곳을 댔다. 끝이 걸리지 않고 다음 칸까지 미끄러졌다.
열두 칸의 우편함은 가로 세 칸, 세로 네 줄이었다. 도윤이 페인트를 벗긴 두 칸에는 경첩도 틈도 없었다. 칸마다 문과 열쇠 구멍 모양을 눌러 만든 철판이었다. 서진이 맨 윗줄을 손으로 훑었다. 우편물을 넣을 가로 구멍도 없었다.
“그럼 이건 어디서 나왔는데.”
도윤은 벽과 철판 사이에 송곳을 넣었다. 아래쪽에서 봉투와 같은 흰 종이가 걸렸다. 판의 표면과 종이 사이에는 손톱 두께만 한 간격이 있었다.
“뒤에서.”
서진은 우편함 옆에 붙은 분리 수거 표시를 떼었다. 도윤은 이미 풀어 놓은 나사를 통에 넣고 위쪽 나사 두 개를 살폈다. 철판 가장자리까지 덧칠돼 있어 나사 머리와 벽의 경계가 일부 가려져 있었다.
“통째로 빼. 저런 것도 고철은 고철이니까.”
도윤이 아래 모서리에 얇은 지렛대를 넣었다. 서진은 맞은편 가장자리를 잡았다. 둘이 판을 조금 당기자 밑에서 봉투 두 장이 겹쳐 나왔다. 첫 장은 자루 안에 떨어졌고 다음 장은 절반이 나온 채 멎었다. 도윤이 손에 힘을 더 주자 멎었던 봉투가 바깥으로 밀렸다.
“잠깐 놔 봐.”
서진이 당기던 손을 늦췄다. 종이도 멈췄다. 도윤은 판을 움직이지 않고 봉투만 집었다. 접힌 부분이 붙들려 있어 종이 가운데가 활처럼 휘었다. 그는 잡아당기지 않고 손을 뗐다.
철판 아래에는 안쪽으로 짧게 꺾인 턱이 있었다. 위쪽 나사에 매달린 판을 바깥으로 젖히면 그 턱이 아래로 기울었다. 서진이 손전등을 바닥에 놓았다. 빛이 판 밑으로 들어가면서 꺾인 턱과 모르타르 사이에 끼인 종이 단면이 드러났다. 판을 당길수록 그 사이가 좁아졌다.
“밑에 종이가 더 있어. 판으로 누르고 있었네.”
도윤이 지렛대를 뺐다. 서진은 떨어진 봉투를 자루에서 꺼내 첫 봉투 옆에 놓았다. 세 장 모두 장문석 앞으로 온 독촉장이었다. 접힌 폭도 같았다. 회색 가루가 묻은 곳은 봉투 전체가 아니라 접힌 가장자리였다. 한 장에는 얇은 종이층을 물고 있는 단단한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서진은 망치와 작은 정을 가져왔다. 판 바로 아래, 벽에 덧발린 모르타르가 복도 바닥까지 둥글게 내려와 있었다. 정을 바닥과 평행하게 대고 겉부분을 쳤다. 손바닥만 한 조각이 떨어졌다. 그 아래에서 푸른 타일이 나왔다.
복도에는 갈색 장판이 깔려 있었다. 푸른 타일은 장판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해 철판 뒤로 이어졌다. 서진이 정으로 가루를 옆으로 밀자 타일 두 장 사이의 줄눈까지 드러났다. 모르타르는 타일 위에 덧발라져 있었다.
“여기 방 있었어?”
“도면 가져와.”
도윤은 현관에 둔 공구 가방에서 접힌 도면을 꺼냈다. 서진은 벽에 붙여 펼쳤다. 203호 건너편, 복도가 끝나는 자리에 공용 샤워실이 표시돼 있었다. 샤워기 세 개와 배수구가 그려져 있었지만 복도에서 들어가는 문 표시는 없었다. 벽을 나타내는 두 줄이 끊어지지 않고 지나갔다.
서진이 도면 위를 짚다가 실제 벽으로 손을 옮겼다. 철판 위쪽은 다른 부분보다 벽돌 줄눈이 짧았다. 천장 아래까지 같은 폭으로 이어졌다. 아래쪽에 붙인 철판은 폭이 구십 센티미터쯤 됐다. 일반 우편함보다 낮아서 맨 아랫줄이 바닥에 거의 닿았다.
“입구를 메웠네.”
도윤은 망치를 집어 들었다가 판 밑을 보고 내려놓았다. 아직 끼어 있는 봉투 끝이 조금 찢어져 있었다. 서진이 도면을 접는 동안 그는 작업등을 켜서 틈 앞에 댔다. 빛은 모르타르의 솟은 부분에 막혔다. 철판 뒤쪽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용접 담당자가 자재를 싣고 출발했다고 했다. 서진은 화면의 시각을 확인했다. 세 시 사십일 분이었다.
“십구 분 남았지? 도착하면 전화 줘.”
통화를 끝낸 서진은 현관 쪽으로 도면을 가져가지 않고 장판 위에 내려놓았다. 도윤이 위쪽 나사에 드라이버를 댔다.
“그건 둬. 옆에서 먼저 보자.”
남매는 접이식 작업대를 철판 앞으로 옮겼다. 서진이 작업대 다리를 벌리고 도윤이 고무를 댄 버팀목을 끼웠다. 철판 아래는 나무 쐐기 두 개로 받쳤다. 위쪽 나사는 그대로 두고 판이 앞뒤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옆방으로 갔다.
옆방에서는 전날 붙박이장을 걷어 냈다. 장 뒤의 가벼운 칸막이도 철거돼 배관이 지나는 공간이 드러나 있었다. 서진이 바닥의 석고보드 조각을 옮겼다. 배관 너머는 샤워실의 뒷벽이었다. 벽 아래쪽, 관 두 개가 들어가는 자리에 세로로 긴 틈이 있었다.
도윤이 작업등을 눕혀 틈으로 밀었다. 등 머리는 들어갔지만 손목은 두꺼운 배관에 걸렸다. 틈의 가장 넓은 곳도 십이 센티미터가 되지 않았다. 서진은 무릎을 대고 관 옆으로 얼굴을 낮췄다.
빛이 샤워실 타일을 가로질렀다. 배수구 뚜껑이 벽에 기대 있었고, 그 앞에 검은 신발 한 짝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 더 안쪽에서는 바짓단이 보였다. 천은 바닥에 닿은 채 복도 쪽 벽 아래로 이어졌다.
“등 고정해.”
도윤은 작업등 손잡이를 배관에 걸었다. 서진이 위치를 옮기자 신발 위로 드러난 양말과 발목이 보였다. 그녀는 손을 틈에 넣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용접 담당자에게 먼저 전화했다. 고시원 입구를 닫지 말고 현관 앞 자재도 옆으로 치워 달라고 했다. 다음 통화에서는 주소와 층수, 막힌 샤워실 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서진은 배관 틈의 폭과 복도 쪽 철판을 설명했다.
“몸은 여기서 다 안 보입니다. 발하고 옷만 보입니다.”
도윤은 복도로 돌아와 철판 둘레를 살폈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모르타르 대신 누렇게 굳은 충전재가 채워져 있었다. 손으로 잡아당기자 길게 떨어졌고 그 안에서 접힌 신문 조각이 나왔다.
서진이 옆방 문턱을 넘어왔다.
“손대지 말래?”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기다리래. 이거 넘어가지는 않겠어?”
“옆에 붙은 걸 걷어야 무게가 어디 걸렸는지 보여. 위 나사 하나는 끝까지 남길게.”
서진이 작업대 너머로 판을 붙들었다. 도윤은 헐거운 충전재만 손으로 걷었다. 위쪽 나사 하나를 빼자 판이 남은 나사를 축으로 조금 처졌다. 서진이 아래 쐐기를 안쪽으로 밀어 무게를 받쳤다. 더는 봉투가 나오지 않았다.
벌어진 옆 틈으로 작업등 빛이 길게 들어왔다. 도윤은 그 빛에 맞춰 몸을 낮췄다. 철판 뒷면의 세로 골을 따라 먼지가 붙어 있었고, 바닥 가까이에는 봉투들이 비스듬히 겹쳐 있었다. 접힌 쪽이 모두 복도를 향했다. 가장 바깥의 한 장은 모르타르 안으로 들어가 있어 끄트머리만 보였다.
서진은 바닥에 놓았던 세 장을 옮기려다 손을 멈췄다. 대신 자루를 접어 치웠다. 도윤도 떨어진 충전재를 발로 밀지 않고 그 옆으로 돌아 나왔다. 현관까지 이어진 복도에는 두 사람이 지나갈 만한 폭으로 공구와 잔해가 비켜 있었다.
세 시 오십이 분에 용접 담당자가 도착했다. 그는 용접봉 통을 현관 밖에 놓고 복도 끝까지 왔다. 서진이 철판을 받치고 있는 작업대를 가리켰다.
“이거 그대로 잡아 주세요. 누가 와도 현관은 열어 두고요.”
남자는 장갑을 끼고 버팀목 옆에 섰다. 도윤은 옆방으로 가서 작업등을 조금 돌렸다. 빛이 복도 쪽 틈까지 닿았다.
경찰 두 명이 올라왔을 때 네 시까지 삼 분 남아 있었다. 한 명은 옆방으로 갔고 다른 한 명은 바닥의 봉투와 철판을 촬영했다. 서진은 자신이 깬 모르타르 조각과 도윤이 걷어 낸 충전재를 각각 가리켰다. 경찰이 판을 움직일 수 있느냐고 묻자 도윤은 남겨 둔 나사를 보여 주었다.
“이거 풀면 들 수 있습니다. 아래로 끌면 종이가 더 찢어져요.”
경찰이 옆방에서 돌아와 복도 바닥을 비웠다. 서진과 용접 담당자가 철판 양옆을 잡았다. 도윤이 마지막 나사를 풀었다. 나사 끝이 벽에서 빠지자 두 사람의 팔꿈치가 내려갔다. 도윤은 판 아래에 손을 대지 않고 쐐기를 옆으로 뺐다.
둘은 판을 위로 조금 들어 안쪽으로 꺾인 턱을 모르타르에서 떼었다. 이어 복도 쪽으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철판은 옆방 문 가까이 가져가 벽에 세워 두었다. 도윤이 작업대를 치우자 샤워실 바닥으로 빛이 들어갔다.
서진이 깬 곳은 문턱 바깥쪽이었다. 안쪽에는 두툼한 모르타르가 타일을 덮고 있었다. 그 위에 접힌 봉투가 비스듬히 붙어 있었다. 종이가 떨어져 나온 자리에는 봉투의 접힌 선과 찢어진 섬유가 남아 있었다.
도윤은 손전등을 바닥 가까이 내렸다. 낮게 들어간 빛이 봉투 아래의 가루와 작은 파편에 걸렸다. 소매 끝에서 나온 손등은 타일에 닿아 있었고, 손목 앞쪽부터는 회색 덩어리에 가려져 있었다. 경찰이 봉투에 인쇄된 장문석이라는 이름을 촬영한 뒤 빛을 조금 옆으로 옮기게 했다.
손가락은 굳은 모르타르 안에 갇혀 있었고, 그 손끝에서 문 바깥 방향으로 긁어낸 다섯 줄의 홈이 접힌 봉투 밑까지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