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을 놓는 손

“그것도 병원에 가져가게?”

정희는 대답 대신 약봉지의 접힌 밑바닥을 폈다. 핀셋으로 이를 하나 집어 봉지 안에 넣었다. 비료 포대 위에는 네 개가 더 있었다. 뿌리에 묻은 피가 포대의 인쇄된 글자를 가렸다. 두 번째 이는 뿌리가 갈라져 있었다. 봉지 옆구리에 걸리지 않도록 넓은 쪽부터 넣었다.

“입에서 빠진 거라고 해야지.”

리어카에 누운 아버지는 무릎을 세우고 있었다. 적재함 밖으로 나온 고무신 뒤축에서 흙이 떨어졌다. 정희는 남은 이를 담은 뒤 아버지의 무릎을 옆으로 조금 눕혔다. 발이 적재함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 밑에는 성수가 벗은 웃옷이 접혀 있었다.

1991년 초여름이었다. 논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아직 모를 싣고 온 경운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리어카의 한쪽 바퀴가 그 홈에 걸려 있었다. 성수는 리어카 앞에서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왼손으로 바지에 묻은 피를 문지르다가 정희에게 손등을 내보였다.

“이게 안 떨어진다.”

정희는 약봉지 입구를 두 번 접어 왕진 가방의 바깥 주머니에 넣었다. 성수의 오른손은 손잡이를 온전히 감싸고 있었다. 엄지손톱이 검지 옆면을 눌렀다. 성수가 팔을 당기자 손잡이와 적재함 앞쪽이 함께 들렸다. 아버지의 고무신이 포대 위를 조금 미끄러졌다.

“내려놔. 아버지 머리 쏠려.”

성수는 손잡이를 낮췄다. 정희가 바퀴 뒤에 돌을 밀어 넣고 손목을 받쳤다. 소매 아래로 팔뚝의 힘줄이 올라왔다. 정희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벌려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손잡이 위쪽으로 드러난 살에 새끼줄이 쓸고 간 자국이 있었다. 벌어진 가장자리에는 짧은 섬유 두 올이 붙어 있었다.

“언제 다쳤어?”

“아침에 모판 묶다가.”

정희가 거즈로 손잡이에 묻은 피를 닦았다. 손바닥 아래쪽에서 피가 더 나왔다. 성수는 왼손으로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정희가 그의 왼손을 떼어 놓았다.

“입 벌려 봐.”

성수는 입을 벌렸다. 아래 앞니 안쪽, 혀가 닿는 잇몸에 흰 끝이 나와 있었다. 정희는 성수의 턱을 옆으로 돌려 햇빛을 받게 했다. 흰 끝 둘레가 둥글게 벌어져 있었고 그 틈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성수가 혀를 움직이자 흰 것이 혀 밑면에 걸렸다.

가방 안에는 가위와 붕대 한 통이 남아 있었다. 정희는 붕대를 풀어 손가락 두 마디만큼 접었다. 성수의 손목을 받친 채 손잡이와 새끼손가락 사이로 접은 끝을 밀었다. 틈이 좁아 붕대의 올이 나무에 걸렸다. 손톱으로 올을 눌러 통과시키고 반대편으로 나온 끝을 잡았다.

“당길 때 입 다물지 마.”

성수는 입을 벌린 채 왼손으로 턱 밑을 받쳤다. 정희는 그의 손가락 밑에 들어간 붕대 양 끝의 길이를 맞췄다.

조금 전에는 성수가 아버지의 뒤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논두렁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오른쪽 고무신 옆에 낫날이 박혀 있었다. 휘어진 날의 절반은 흙 속에 있었고, 나무 자루는 아버지의 오른쪽 무릎을 향해 비스듬히 올라왔다. 아버지는 자루를 잡은 채 팔꿈치를 허벅지에 붙이고 있었다.

성수가 리어카를 아버지 왼편까지 끌어다 놓았다. 손잡이를 땅에 내려놓자 적재함이 기울었다. 그는 비료 포대 두 장을 펴 깔고 아버지 뒤로 돌아갔다. 양팔을 겨드랑이 밑에 넣고 일으켰으나 오른쪽 어깨만 아래로 남았다. 자루 주변의 흙에 금이 갔다.

“낫부터 놓으세요.”

아버지는 고개를 들었다. 입술 사이에 묽은 침이 고여 있었다. 정희가 자루를 잡고 아버지의 손을 위로 밀어 보았다. 피부가 나무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손등에 붙은 흙만 벗겨졌다.

정희는 왼손으로 아버지의 손목을 고정하고 오른손 엄지를 새끼손가락 안쪽에 넣었다. 손가락 끝을 자루에서 떼어 바깥으로 폈다. 아버지의 입이 벌어졌다. 아랫입술 위로 흰 것이 나와 턱을 타고 떨어졌다.

성수가 오른팔을 아버지 겨드랑이에서 빼고 손을 내밀었다. 이는 그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새끼줄에 벗겨진 자리를 뿌리가 긁고 지나갔다. 그는 손바닥을 오므렸다. 뿌리 끝이 벌어진 살 안에 잠깐 들어갔다가 손을 펴자 빠졌다.

“이가 빠졌네.”

성수는 이를 옆에 있는 리어카의 비료 포대 위에 놓았다. 젖은 뿌리에 흰 섬유가 붙어 올라왔다. 그는 왼팔로 아버지의 가슴을 가로질러 받치고 무릎을 등 뒤에 댔다. 리어카가 옆으로 움직이자 왼발을 뻗어 바퀴 밑을 밟았다.

아버지는 벌린 입을 다물지 않았다. 정희는 펴진 새끼손가락을 자루 옆에 놓고 약지를 잡았다. 손톱 아래에는 검은 흙이 차 있었다. 첫 마디가 펴지고 손가락 끝이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입 안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성수가 다시 오른손을 내밀었다. 두 번째 이는 첫 번째보다 작았다. 그는 손바닥에 고인 침을 포대 가장자리에 털고 이를 나란히 놓았다.

“손 대지 말고 여기로 받쳐.”

정희가 가방에서 거즈를 꺼내 성수의 손바닥 위에 펼쳤다. 거즈 한가운데에 붉은 점이 생겼다. 성수는 왼쪽 어깨로 아버지의 등을 받치며 발끝을 바퀴 밑으로 더 넣었다.

세 번째 손가락은 한 번에 펴지지 않았다. 정희가 아버지의 손목을 조금 낮추자 팔꿈치가 허벅지에서 떨어졌다. 자루를 당기던 힘이 줄었다. 그녀는 중지의 가운데 마디부터 펴고 끝마디를 밀었다. 아버지의 턱이 아래로 내려갔다. 세 번째 이가 혀 위에 놓였다가 침과 함께 거즈로 흘러나왔다. 가느다란 살점이 뿌리 끝에 매달려 있었다.

성수는 거즈를 포대 위에 기울였다. 이가 굴러 먼저 놓인 두 개에 닿았다. 정희는 검지를 펴기 전에 아버지의 턱 밑에 거즈가 와 있는지 보았다. 성수가 손을 조금 높였다. 네 번째 이는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빠지지 않고 거즈 가운데에 떨어졌다.

자루에는 엄지만 남았다. 펴 놓은 네 손가락이 아버지 무릎 위에 얹혀 있었다. 성수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엄지 끝이 자루를 누르고 오른팔이 다시 팽팽해졌다. 정희는 성수에게 앉아 있으라고 했다. 아버지의 손목을 자루 가까이 내린 다음 엄지를 두 손으로 잡았다.

다섯 번째 이가 떨어질 때 아버지는 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성수의 손바닥에 닿은 뿌리가 거즈를 뚫었다. 정희의 손 안에서 엄지가 펴졌다. 자루와 손바닥 사이에 햇빛이 들어갔다. 아버지의 오른팔이 무릎 아래로 내려왔고 낫은 흙에 꽂힌 채 남았다.

남매는 아버지의 등을 적재함 쪽으로 돌렸다. 성수가 겨드랑이를 들어 올리고 정희가 무릎 밑을 받쳤다. 아버지의 엉덩이가 포대에 닿자 성수는 뒤로 돌아가 머리를 받았다. 정희가 두 다리를 들어 적재함에 얹었다. 그동안 다섯 개의 이는 포대 접힌 선을 따라 한쪽으로 모였다.

성수는 발로 받치고 있던 바퀴를 놓았다. 아버지 머리 밑에 웃옷을 넣고 리어카 앞으로 걸어갔다. 손바닥에 붙은 거즈를 떼어 포대 끝에 놓은 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쥐었다.

그보다 앞서, 정희는 논 입구에서 두 사람을 지나쳤다.

왕진 가방의 어깨끈이 끊어져 손으로 들고 가던 길이었다. 가방 옆주머니에는 보건지소에서 챙겨 온 거즈 한 묶음이 삐져나와 있었다. 용식은 농로에 서서 낫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의 앞에 다가가 빈손을 내밀었다.

“다 썼으면 줘. 나도 둑 좀 쳐야 해.”

용식은 낫날이 아래로 향하도록 팔을 돌렸다. 오른손의 네 손가락은 자루에서 벌어져 있었다. 검지 하나가 굽은 채 나무를 감고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 그 검지를 당겼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자 왼손을 내려 바지 옆선에 닦았다. 입가에 묻은 침이 턱까지 길게 이어졌다.

아버지는 용식의 손 아래로 오른손을 넣어 자루를 받았다. 왼손으로는 붙어 있는 검지 끝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 사이로 닳은 나무가 조금 드러났다. 용식은 허리를 굽혀 손을 내려다보았다.

“힘 빼 봐.”

아버지가 검지를 뒤로 젖혔다. 용식의 입에서 이 하나가 떨어졌다. 자루를 넘겨받느라 아직 벌어져 있던 아버지의 검지와 나무 사이에 이가 들어갔다. 용식의 손이 떨어지고 낫 무게가 아버지 손으로 옮겨졌다. 아버지가 자루를 움켜쥐자 이의 뿌리가 검지 아래 굳은살을 뚫었다.

정희가 가방을 땅에 내려놓았다. 아버지의 손등을 잡아 자루가 눕도록 돌렸다. 이의 넓은 머리가 손바닥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그녀는 핀셋으로 그 머리를 잡았다. 한 번 당겼을 때 굳은살이 함께 들렸다. 핀셋을 뿌리 가까이 옮기고 살을 누르며 뺐다. 구멍에서는 피가 한 방울 나왔다.

용식은 펴진 오른손을 왼손 안에 넣고 있었다. 정희가 턱을 들어 보라고 하자 그는 턱을 들었다. 입 안쪽으로 피가 흘렀다. 정희는 거즈를 접어 건넸다.

“빠진 데 물고 계세요. 보건지소로 오시고.”

용식이 거즈를 받아 입 안에 넣었다. 아버지는 낫을 왼손으로 바꾸지 않았다. 정희는 상처 옆의 피를 닦고 작은 거즈를 대려 했으나 검지가 자루를 감고 있어 붙일 자리가 좁았다.

“잠깐 내려놓으세요.”

아버지는 낫을 든 손을 허리 아래로 내렸다. 굽은 손가락 밑에서 거즈가 밀려 나왔다. 정희가 떨어지는 거즈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는 고무신으로 논에 내려가는 흙계단을 짚었다.

“둑 한쪽만 하면 돼.”

정희는 뽑아낸 이를 새 거즈에 싸고 끝을 안으로 접었다. 핀셋에 묻은 피도 닦았다. 가방을 들고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벌써 자기 논두렁에 올라서 있었다. 오른손에 든 낫날이 걸음에 맞춰 바지 옆에서 움직였다.

그날 아침에는 부엌 문턱에 물컵이 놓여 있었다.

정희는 아버지의 위아래 전체 틀니를 꺼내 대야 위에서 씻었다. 밤새 담가 둔 물에 죽의 작은 알갱이가 가라앉아 있었다. 칫솔로 분홍색 잇몸판 안쪽을 문지르고 바가지의 물을 조금씩 부었다. 찬장 위의 라디오에서는 여섯 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 죽을 먹었다. 숟가락을 입 안 깊이 넣지 않고 끝에 걸친 것만 입술로 훑었다. 서너 번 그렇게 먹은 뒤 숟가락을 그릇 가장자리에 걸쳤다. 정희가 틀니를 내려놓고 아버지 앞으로 갔다.

“입 좀 벌려 보세요.”

아버지는 입을 벌렸다. 위아래 잇몸에 이는 하나도 없었다. 아래 잇몸의 헌 자리에 죽이 붙어 있었다. 정희는 물에 적신 거즈를 검지 끝에 감았다. 아버지의 아랫입술을 내리고 붙은 죽을 바깥쪽으로 닦아 냈다. 거즈에 죽과 묽은 피가 묻었다.

“오늘도 끼지 마세요. 여기 또 쓸려요.”

정희는 죽그릇을 아버지 쪽으로 밀었다. 그릇 바닥에 눌어붙은 부분을 숟가락으로 긁어 위쪽의 묽은 죽과 섞었다. 아버지는 그 숟가락을 받아 들었다. 정희가 거즈를 버리고 돌아왔을 때 그릇은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마루에서 바짓단을 접었다. 문 옆에 세워 둔 빈 지게를 옆으로 밀고 고무신을 신었다. 정희는 컵을 헹군 뒤 새 물을 받아 틀니를 담았다. 아버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빗장을 들었다.

“용식이한테 낫 받아 온다.”

정희는 빈 죽그릇을 대야에 넣었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에 부딪혔다. 대문이 닫히고 고무신 끄는 소리가 담장 밖으로 멀어졌다. 그녀는 왕진 가방을 들 수 있도록 부엌 문턱 한쪽으로 옮겨 놓았다. 물컵은 아버지의 밥상 위에 두었다.

아버지가 두고 간 위아래 틀니의 모든 이는 물컵 안에서 분홍색 잇몸판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