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를 가져온 사람

“아버지, 그것 좀 비켜 주세요.”

내가 공구가방의 잘린 어깨끈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자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내 얼굴 옆에 댔다. 화면 속의 나도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보는 나와 달리 그쪽은 화면 아래를 보고 있었다.

“누나도 된다고 했어. 아버지가 보내 주면 우리 바로 나갈 수 있어.”

상가 사 층 복도의 신발장 두 개 중 왼쪽에는 법당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신발을 넣었다. 오른쪽 신발장은 공양주인 누나와 주지 스님이 썼다. 아버지는 신발을 벗지 않은 채 오른쪽 신발장과 사무실 문 사이에 서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을 자리를 발끝으로 쓸었다.

“언제부터 통화하셨어요.”

“너 오기 전부터.”

“보세요. 저는 여기 있잖아요.”

아버지가 내리지 않은 휴대전화 화면에서 얼굴의 오른쪽 귀가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얼굴 뒤에는 흰 벽이 있었고 어깨 아래는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사무실 안쪽 벽도 흰색이었지만, 이 건물에서 흰 벽을 찾으려면 아무 문이나 열면 됐다.

“정희 좀 보여 줘.”

“뒤쪽 카메라가 깨졌어. 아까 설명했잖아.”

“전화기를 돌리면 되지.”

화면 속 나는 고개를 숙이며 충전선이 짧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문손잡이를 잡고 누를 때마다 손잡이만 내려갔다 올라왔고, 문 안에서는 쇠가 긁혔다.

누나는 오전 열 시에 전화해서 사무실 손잡이가 헛돌아 몇 번씩 눌러야 열린다고 했다. 내가 세 시에 가겠다고 하자 누나는 혼자 공양간을 정리하고 장부를 맞춘다고 했다. 그날 절에는 오후 법회가 없었고, 스님은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내가 물어서 들은 내용은 아니었으며, 누나는 수리 하나를 맡길 때도 그날 할 일을 전부 말했다.

“아직 세 시도 안 됐어요. 저 지금 처음 올라왔어요.”

아버지의 휴대전화 위쪽에는 두 시 사십칠 분이라고 나와 있었다. 화면 속 내가 입을 다물자 아버지는 그 얼굴과 내 얼굴 사이로 전화기를 한 번 옮겼다.

“아까 계단으로 내려간 건.”

“누가요.”

“노란 끈 달린 가방. 네 것하고 같았어.”

나는 가방의 손잡이를 세워 놓고 거래처에서 한꺼번에 떼어 오는 작업가방이라고 설명했다. 지퍼가 두 줄이고 옆에 드릴을 꽂는 주머니가 있는 것으로, 동네 설비 기사들도 같은 것을 썼다. 그 설명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계단 쪽을 보지 않았다.

“얼굴 보셨어요?”

“위에서 내려다봤으니까.”

“그럼 가방만 보신 거네요.”

아버지에게는 집을 줄여 이사하고 남은 전세보증금 반환금이 있었다. 누나는 은행에 함께 가서 예금 만기를 나누고, 휴대전화로 돈을 보내는 방법을 종이에 적어 줬다. 아버지 명의의 통장을 보관하는 사람은 누나였고, 아버지는 돈 이야기가 나오면 누나에게 먼저 물으라고 했다.

내가 가게 연체금이 적힌 고지서를 보내자 누나는 아버지 병원비와 앞으로 낼 월세를 적어 답했다. 내가 달라는 액수보다 훨씬 큰돈이 남아 있었는데도, 그 액수를 다시 적어 보내자 누나는 ‘남는 돈 아님’이라고 썼다. 남는지 아닌지는 돈을 가진 사람이 정할 일이었다. 누나는 공양주 일을 하면서 남의 통장까지 관리했다.

“저한테는 십 원도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 누나가 전화 한 통으로 돈을 보내라고 하겠어요?”

화면 속 나는 곧바로 말을 받았다.

“가게 얘기 아니야. 합의금이야. 누나가 여기 사람을 다치게 했어.”

아버지가 나를 보자 나는 아버지 손에 들린 전화기를 가리켰다.

“저 목소리부터 들어 보세요.”

목소리는 내 것과 비슷했고 문장 끝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자리도 같았다. 다만 평소 ‘아버지’를 끝까지 발음하지 않는 나에 비해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지나치게 또렷했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그 차이를 설명하면 대개 다시 해 보라고 했지만, 그날 나는 다시 하지 않았다.

“사진을 아무 데나 올리니까 이런 일이 생기죠. 가족방에 있는 것도 누나가 다 올린 거예요.”

누나는 가게 개업식 때 찍은 사진을 가족 단체방에 올리면서도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내가 정면을 본 사진부터 옆으로 돌아선 사진, 떡을 집느라 고개를 숙인 사진까지 한 번에 올라왔다. 거기에 어버이날 식당 사진을 더하면 얼굴을 어느 쪽으로 돌렸는지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가 “가족방에는 우리 셋인데”라고 말했다.

“사진은 저장하면 끝이에요. 누가 어디 보냈는지 어떻게 알아요.”

내가 일감을 넘겨주던 사람이 출장 수리 광고에 사장 얼굴이 들어가야 한다며 그 사진들을 받아 간 적은 있었다. 그 사람이 만들어 준 광고는 한 번도 걸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거래처에 남겼던 음성메시지도 몇 개 보냈다. 작업 중에는 전화를 못 받는 일이 많아서, 대신 전화를 받을 사람에게 설명하는 방식 정도는 알려 줘야 했다.

그 사람에게 줄 돈도 밀려 있어서 연체금을 정리할 돈이 들어오면 절반을 먼저 떼어 주기로 했다. 누나에게 보낸 고지서에는 그 사람 몫을 넣지 않았지만, 아직 청구서를 받은 돈은 아니었으므로 거짓으로 적은 항목은 없었다.

화면 속 나는 아버지에게 통화를 끊지 말고 화면만 바꿔 은행 앱을 열라고 했다. 아버지의 엄지가 휴대전화 아래쪽을 누르자 얼굴이 작은 네모로 줄어들고 숫자판이 나타났다.

“아버지, 지금 보내시게요?”

“정희가 다쳤대.”

“다치게 했다면서요. 말이 벌써 다르잖아요.”

작은 네모 안에서 입이 움직이며 서로 밀치다가 둘 다 다쳤다는 설명이 붙었다. 누나가 송금에 동의했고, 상대편도 돈이 들어오면 문을 열어 주기로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받는 사람 이름을 입력하는 칸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문 아래에서 세 번 소리가 났다.

아버지의 구두 뒤축이 문에서 떨어지자 나는 사무실과 신발장 사이의 벽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그 벽 너머에는 공양간에서 쓰는 개수대가 있었다.

“오래된 상가는 배관이 울려요. 아래 식당에서 물 쓰면 이쪽으로 올라와요.”

앞의 세 번보다 간격이 벌어진 소리가 다시 세 번 났고, 마지막 소리와 함께 문 아래 틈으로 먼지가 조금 밀려 나왔다.

“정희야.”

아버지가 허리를 굽혔다.

“정희야, 아빠 왔다.”

소리가 멎자 아버지는 전화기를 문 아래로 내렸다. 화면 속 내가 합의서를 써야 해서 시간이 없다고 하자 아버지는 통화 종료 표시를 누르고 은행 화면도 닫았다.

“경찰 부를게. 너는 열어.”

“제가 왔는데 경찰까지 부르면 일이 커져요.”

“안에 사람이 있잖아.”

아버지는 신고 전화를 걸어 상가 이름을 말했다. 절 이름을 말하자 층수를 다시 묻는 소리가 수화기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는 사 층이라고 답하고, 손잡이가 안 돌아간다는 말을 하려다 잠긴 문이라고 고쳤다. 나는 가방에서 얇은 공구집을 꺼냈다.

안으로 열리는 오래된 사무실 문으로, 바깥 손잡이 아래에 열쇠 구멍이 따로 있었다. 누나에게도 오전에 손잡이가 헛도는 것과 잠금장치가 걸린 것은 다른 고장이라고 설명했다. 잠금장치는 건드리지 말고 문을 열어 두라고 하자 누나는 알았다고 답했다.

“발로 차면 안 되냐.”

“문틀까지 나가요. 여기는 세입자라서 원상복구해야 해요.”

“사람부터 꺼내야지.”

“절에서 저한테 비용 물리면 아버지가 내주실 거예요? 실린더만 빼면 돼요.”

내가 공구집을 무릎 위에 펴는 동안 아버지는 신고 전화를 스피커로 바꾸고 신발장 위에 올려놓았다. 전화기에서 문을 열고 있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아들이 열쇠 일을 한다고 답했다. 나는 그 말이 끝난 다음에야 공구를 열쇠 구멍에 댔다.

문 너머에서는 발이 끌리는 소리만 나고 두드림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말을 주고받으려면 소음을 줄여야 하므로 아버지가 문틈으로 누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공구를 잠깐 멈췄지만, 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긴 거 어디 있니.”

아버지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제가 꺼낼게요.”

이미 가방 지퍼를 열고 있던 아버지가 한쪽 끝을 잡아 벌리자 안으로 밀어 넣었던 노란 끈이 바닥에 떨어졌다. 원래 양쪽 고리에 걸려 있어야 할 어깨끈은 한쪽에만 남아 있었고, 아버지는 그 끈을 치우고 가방 밑바닥에서 짧은 지렛대를 꺼냈다.

“끈은 왜 이래.”

“지난달에 끊어졌어요. 걸리적거려서 잘라 냈어요.”

아버지는 지렛대를 건네지 않고 가방에 달린 쪽을 들어 올렸고, 노란 천 가장자리에 붙은 빨간 실 몇 가닥이 드러났다.

“정희가 지난주에 가운데 꿰매 줬는데.”

“다른 가방이겠죠.”

“네가 메고 왔어. 내 방에서 밥 먹고.”

그날 아버지 바지 밑단을 줄이던 누나의 재봉틀 옆에 내 가방도 놓였다. 끈이 해졌다는 말을 하자 누나는 바늘에 빨간 실을 꿰었다. 작업가방에 그 색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내가 말해도 누나는 실을 바꾸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그동안 식탁에서 생선 뼈를 발랐다.

“지금 그 얘기 할 때예요?”

내가 손을 내밀자 아버지는 지렛대를 손바닥에 놓았고, 가방은 내 무릎 옆에 그대로 열려 있었다. 문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접은 헝겊을 대고 공구를 받치자 실린더 테두리가 조금씩 앞으로 나왔다.

신고 통화가 끝난 신발장 위의 전화기가 울리며 아까 그 번호가 다시 화면을 채웠다. 아버지가 받지 않자 화면이 꺼졌다가 곧 한 번 더 울렸다. 내가 헝겊을 고쳐 접는 동안 아버지는 전화기를 뒤집어 놓았다.

“누나도 확인은 해 봐야 해요.”

“뭘.”

“누가 시켰는지요. 제 얼굴 쓰면 아버지가 돈 보내실 거라는 건 가족이 제일 잘 알잖아요.”

아버지가 문손잡이를 잡자 나는 손을 놓아야 작업할 수 있다고 했다. 손잡이가 올라가고 공구 끝에 걸려 있던 금속 부품이 빠져나와 헝겊 위에 떨어졌다.

“누나가 오전부터 저를 불렀어요. 시간까지 정해서요. 아버지는 누가 여기로 오시라고 했는데요?”

“전화 속 네가.”

내가 빠진 실린더를 가방 앞주머니에 넣자 아버지가 문을 밀었으나 아래쪽에서 걸렸다. 문틈으로 누나의 흰 양말 한 짝이 보이자 아버지는 밀던 손을 멈췄다. 나는 문 아래를 내려다보고 누나에게 발을 빼라고 말했고, 양말이 조금 물러났다.

“누나 말을 먼저 들으세요. 저 사람하고 무슨 말을 맞췄는지 저는 모르니까.”

문이 사람 하나 지나갈 만큼 열리자 바닥에 옆으로 누운 누나가 드러났다. 입에는 폭넓은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두 팔은 등 뒤로 돌아가 있었다. 아버지가 틈으로 들어가 누나 어깨 옆에 무릎을 대는 동안 나는 공구가방 손잡이를 잡고 문턱을 넘었다.

누나가 몸을 움직이자 등 뒤에서 노란 끈이 당겨졌고, 두 손목 사이의 매듭에서 짧게 남은 끝에는 빨간 실이 나와 있었다. 아버지는 내 가방을 잡아 누나의 손목 옆 바닥으로 내리고, 가방에 달린 끈의 끝을 두 손가락으로 펴 놓았다.

누나의 손목을 묶은 노란 끈의 잘린 면과 가방에 남은 끈의 잘린 면을 맞댄 자리에서, 누나가 빨간 실로 수놓은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정확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