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액자 뒤
“아래 좀 받아 주세요.”
이모는 액자 밑으로 손을 넣었다가 뺐습니다. 손바닥에 묻은 벽 가루를 치마에 털고는 제가 펼쳐 놓은 보양포 끝을 발로 눌렀습니다. 저는 액자 아래쪽을 잡아 벽에서 조금 들어 올렸습니다. 유리와 나무틀 사이에서 머리카락이 나왔습니다. 처음 나온 것은 제 장갑에 걸렸고, 뒤따라 나온 것은 보양포에 닿았습니다.
“도로 붙여.”
그 말은 액자를 떨어뜨린 다음에 들은 말이 아닙니다. 저는 위쪽 걸쇠가 벽걸이에 걸린 상태에서 아래만 들고 있었습니다. 간판을 철거할 때도 먼저 고정 상태부터 봅니다. 이모가 손을 보태지 않아서 제가 혼자 무게를 받고 있었다는 점도 적어 주십시오.
사진에는 여자 셋이 있었습니다. 제상 왼쪽에 선 두 여자와 그 옆에 무릎을 꿇은 수진입니다. 두 여자는 머리를 올려 묶었고 수진은 어깨 아래까지 풀고 있었습니다. 유리 안에서 묶은 머리가 풀렸습니다. 가느다란 다발 세 개가 사진 아래를 가로질러 틈으로 밀려 나왔습니다. 제가 아래를 더 들자 머리카락이 곧게 당겨졌고, 사진 속 세 여자의 고개도 머리카락이 당기는 쪽으로 꺾였습니다.
벽에 도로 붙이자 움직임은 멎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액자 아래에서 바닥까지 늘어지고, 남은 길이는 보양포 위에 겹쳤습니다. 이모는 밟고 있던 발을 옮겼습니다. 제가 액자에서 한 손을 떼고 장갑에 걸린 몇 올을 풀 때까지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십이 년 전 작업명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외부 간판 제작 및 설치 일 식. 벽면 고정 철물 네 조. 붉은 결속띠 여섯 개. 사진 인화 한 장. 목제 액자 한 점.
그 아래에 쓴 ‘가족 공임 적용’은 이모의 글씨입니다. 합계에 줄을 두 번 긋고 새 금액을 적은 것도 이모입니다. 가족이 하는 일에는 차 기름값과 식대가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계산하는 분입니다. 이번에도 전화에서는 나사 몇 개만 풀면 된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가져가 버리는 일까지 그 몇 개에 포함해 두셨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간판 설치입니다. 굿을 돕는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말씀은 고쳐 주십시오. 그날도 밖에서 사다리를 놓고 간판을 달았습니다. 이모에게 받은 메모리카드로 사진관에 인화를 맡겼고, 인화한 사진을 액자에 넣어 가져왔습니다. 굿에는 손을 보태지 않았습니다. 명세서에 굿에 관한 항목이 없는 이유도 같습니다.
수진은 그날 열아홉이었습니다. 굿당에서 나온 뒤 이모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제가 수진을 마지막으로 본 날도 그날입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이모에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딸의 학교 이름까지 손님들에게 말하던 분이니 저보다 알고 있는 것이 많을 겁니다.
“이걸 왜 지금 떼요.”
제가 묻자 이모는 벽 반대편에 놓인 포대 입구를 벌렸습니다. 쌀집 이름이 인쇄된 포대였습니다. 액자가 들어가려면 나무틀을 부숴야 할 크기였습니다.
“버리려고.”
“유리는 따로 내야 해요.”
“그래서 너 불렀어.”
액자가 걸린 자리 아래에는 낮은 제상이 있었습니다. 사진에 찍힌 것과 같은 상입니다. 앞다리 하나에 흰 칠이 묻어 있었고, 상판 가장자리는 여러 번 닦아 나무색이 드러났습니다. 이모는 그 위의 놋그릇 두 개를 옆 선반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머리카락을 피해 공구 가방을 당겼습니다. 가방 밑으로 들어간 몇 올은 손가락으로 빼냈습니다. 끊어진 것은 없었습니다.
명세서의 결속띠 수량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굿당에 들어오기 전에 밖의 간판을 보았습니다. 위쪽 양 끝과 아래쪽 양 끝에 붉은 띠가 하나씩 남아 있었습니다. 색이 빠져 분홍에 가까웠지만 매듭 안쪽은 붉었습니다. 네 개가 맞습니다. 간판 뒷면까지 볼 수 있게 옆으로 서서 확인했습니다.
여섯 개를 기재하고 네 개를 썼다고 해서 두 개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작업에 가져가는 수량을 적습니다. 남는 것은 예비품으로 처리합니다. 그날 명세서에도 여섯이라는 숫자를 지우지 않았습니다. 철물은 네 조를 적고 네 조를 달았으니 결속띠도 네 개여야 한다는 계산은 현장과 다릅니다.
이모는 제가 가져온 명세서 사본을 보양포 밖으로 밀어 놓았습니다.
“두 개는?”
“예비로 잡은 거라니까요.”
“네가 잡은 거지.”
공임을 다 치른 뒤에 자재를 하나씩 세는 집은 드뭅니다. 이모는 십이 년이 지나서도 그 일을 하셨습니다. 종이에 표시된 금액은 지금 제가 받는 출장비보다 적습니다. 저는 그 사본을 가져와야 이번 철거 비용이라도 따로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수진이 돌려보낸 사진 봉투는 이모가 제상 서랍에서 꺼냈습니다. 봉투 입구는 뜯겨 있었고 안에는 작은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제가 큰 사진을 인화할 때 함께 뽑아 준 것입니다. 작은 사진의 오른쪽은 가위로 잘려 있었습니다. 큰 액자의 창으로 보이는 부분과 맞춘 것입니다. 보내는 사진과 걸어 놓는 사진이 달라서는 안 되니까요.
봉투 뒷면에는 ‘오른쪽까지 나오게 다시 보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수진의 이름은 앞면 보내는 사람 칸에 있었습니다. 주소 칸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모는 작은 사진을 꺼내지 않고 봉투째 제 앞에 내밀었습니다.
“이건 예전에도 보여 주셨잖아요.”
“다시 보라고.”
주문한 액자는 규격품이었습니다. 사진 가장자리는 흰 장식 종이로 가렸습니다. 종이를 대지 않으면 인화지와 틀 사이에 뜬 부분이 드러납니다. 큰 사진을 잘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른 액자로 바꿀 수도 있어서, 네 변에 종이를 따로 대고 뒤에서 테이프로 붙였습니다. 오른쪽 종이는 다른 쪽보다 넓었습니다. 현장에서 맞추다 보면 폭이 달라집니다.
“걔가 보내 달란 건 네 얼굴까지 나온 거야.”
이모는 봉투의 문구를 손톱으로 짚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장갑을 벗어 공구 가방 위에 놓았습니다. 장갑의 올 사이에 긴 머리카락 하나가 끼어 있었습니다. 잡아당기자 액자 쪽의 다발이 함께 움직여서, 장갑을 바닥으로 내려놓고 손가락 부분을 뒤집어 뺐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은 게 아니잖아요.”
“넣은 건 너지.”
사진을 액자에 넣는 사람에게 촬영된 사람의 위치까지 물을 수는 없습니다. 이모가 제게 준 카드에는 여러 장이 들어 있었고, 저는 이모가 골라 준 한 장을 맡겼습니다. 유리도 일반 유리였습니다. 사진관 봉투에 든 인화지를 꺼내 넣을 때 이런 머리카락은 없었습니다. 있었으면 뒷판이 닫히지 않았을 겁니다.
수진의 머리는 다른 두 여자보다 아래에 있었습니다. 얼굴 옆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이 제상 모서리에 닿았고, 양팔은 오른쪽의 흰 종이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틀 아래로 손가락을 옮기자 수진의 머리카락 다발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 사이에 붉은 띠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다른 두 다발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띠는 둥글게 잠긴 상태였습니다. 잘라 낸 끝이 잠금 부위에서 짧게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그 안을 통과하고 있었으므로 손으로 밀어 빼려면 다발 끝까지 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허리 주머니에서 니퍼를 꺼냈습니다. 벽에 액자를 붙인 채 한 손으로 틀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날을 벌렸습니다.
이모가 니퍼 손잡이를 붙들었습니다. 맨손이 날 쪽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가 손목을 낮췄습니다.
“그날도 그걸 먼저 꺼냈지.”
“설치 기사가 현장에서 공구 꺼내는 일까지 설명해야 합니까.”
이모는 손잡이를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날을 닫아 가방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이모의 손이 떨어진 다음에야 제 손도 뺐습니다. 붉은 띠는 자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 뒤에도 머리카락에 걸려 있던 띠는 제가 새로 끼우거나 묶은 것이 아닙니다.
액자를 벽에서 떼려면 위로 들어 걸쇠를 빼야 했습니다. 아래를 벌려 잡는 방법은 이미 해 보았습니다. 사진 속 목이 꺾이고 머리카락이 당겼습니다. 저는 제상을 벽 쪽으로 옮기자고 했습니다. 이모가 한쪽 끝을 잡고 제가 반대쪽을 잡았습니다. 늘어진 머리카락은 보양포와 함께 옆으로 밀어 다리 밑에 깔리지 않게 했습니다.
제상만으로는 액자 아래에 닿지 않았습니다. 가방에서 작업용 받침목 두 개를 꺼내 상판 양 끝에 놓았습니다. 그 위로 틀을 내려 무게를 옮겼습니다. 이모는 옆에서 액자가 앞으로 넘어오지 않게 붙들었습니다. 저는 벽과 틀 사이로 손을 넣어 걸쇠 위치를 짚었습니다. 둘이 조금 들어 올리자 걸쇠가 벽걸이에서 빠졌습니다.
벽에는 벽걸이와 먼지 자국이 남았습니다. 머리카락이 들어갈 구멍은 없었습니다. 이모가 액자 윗부분을 낮추는 동안 저는 아래쪽 틈에서 나오는 세 다발을 손에 받았습니다. 머리카락은 유리와 틀 사이를 그대로 지나고 있었습니다. 벽에서 나온 것을 액자에 걸쳐 놓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액자를 제상 위에 엎었습니다. 유리 밑에는 보양포의 깨끗한 부분을 접어 댔습니다. 머리카락은 상판 밖으로 늘어뜨렸습니다. 저는 뒷면의 고정쇠를 일자 드라이버로 젖혔습니다. 납작한 쇠 여덟 개였습니다. 뒷판을 들자 사진관 도장이 찍힌 인화지 뒷면과 누렇게 마른 테이프가 나왔습니다.
“안 잘랐네요.”
제가 말하자 이모가 뒷판을 받아 옆에 세웠습니다.
“잘랐다고는 안 했어.”
인화지는 원래 크기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가장자리에 붙은 테이프를 떼었습니다. 종이가 찢어질 때마다 손을 멈추고 다음 모서리로 옮겼습니다. 이모는 제 손이 지나간 자리를 눌렀습니다. 장식 종이를 뒤에 고정한 테이프만 제거하고 인화지는 들어 올리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이 나오는 틈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뒷판을 뺀 만큼 고정쇠를 안으로 더 눌러 인화지를 받친 뒤, 둘이 액자를 뒤집어 유리가 위로 오게 놓았습니다. 아래쪽 받침목 사이로 머리카락이 흘러 바닥에 닿았습니다. 유리를 통해 수진의 머리카락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틀 밖의 굵은 다발은 틈을 지나 납작해졌고, 사진 속 제상 모서리를 거쳐 수진의 두피까지 이어졌습니다. 붉은 띠는 받침목 옆에 걸려 있었습니다.
왼쪽과 위아래 장식 종이는 한쪽 가장자리를 조금 들어 뒤로 빼냈습니다. 사진에는 바닥과 벽이 더 드러났습니다. 이모는 오른쪽 종이의 접힌 끝을 잡았습니다. 저는 그쪽 고정쇠를 젖히고 틀을 손바닥 높이만큼 받쳐 들었습니다. 이모의 손가락이 인화지 뒤로 들어갔습니다. 종이가 빠져나올 자리는 생겼습니다.
명세서는 여전히 보양포 밖에 놓여 있었습니다. 니퍼는 벗어 놓은 장갑 옆에 있었습니다. 저는 액자를 받친 채 말씀드렸습니다.
“사람 몸을 묶는 일까지 설치비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이모가 오른쪽 장식 종이를 끝까지 빼내자, 수진의 두 손목을 제상 다리에 붉은 결속띠 두 개로 묶고 남은 끝을 니퍼로 자르는 제 얼굴과 두 손이 드러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