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반납구
서진은 배식대에 붙은 식단표를 물로 불려 떼고 있습니다. 종이 아래쪽이 떨어지면서 반납구가 드러납니다. 손바닥을 위로 편 왼손이 나와 있습니다. 서진이 긁개를 내려놓을 때까지 손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설비기사 서진의 가슴에 부착한 카메라로 촬영한 작업 영상입니다. 장소는 회전식 궤도 정거장의 직원 식당입니다. 바닥 쪽으로 작용하는 인공중력 때문에 식단표에서 흐른 물은 반납구 아래에 고입니다. 조리사인 아버지 도현은 그 옆에서 회수할 식기를 운반 상자에 넣고 있습니다.
“아빠, 여기 손이 끼었어.”
도현이 상자를 내려놓습니다. 서진은 손목 주변의 고정틀에 드라이버를 댑니다. 손가락이 공구의 옆면을 밀어냅니다. 날이 나사 홈에서 빠지자 손은 반납구 안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뒤 같은 손이 작은 접시를 내밉니다. 간장색 국물에 잠긴 연근조림입니다.
서진이 접시 밑을 받칩니다. 접시가 완전히 바깥으로 나온 뒤에야 손가락이 펴집니다. 엄지 밑에 둥근 자국이 있습니다.
이 영상과 함께 볼 자료는 배식대 단면도, 8년 전 폐쇄 확인서, 당시 식당 사진입니다. 사진은 작업 시작 전에 도현이 카메라 앞에 들고 보여 줬습니다. 도면과 확인서는 철거용 태블릿에 들어 있습니다.
사진에는 배식대 앞에 선 도현과 정희가 보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린 서진이 앉아 있습니다. 정희는 오른손으로 국자를 들고 왼손으로 아이의 식판을 잡고 있습니다. 식판에는 같은 모양의 작은 접시가 두 개 놓여 있습니다. 둘 다 연근조림입니다.
“이건 누가 찍었어?”
“네가 카메라 갖다 놓고 찍었지. 열까지 세고 와서 앉았잖아.”
“엄마 옆이 아빠고?”
“응. 그날은 내가 조리했고 엄마가 배식했어.”
사진을 가까이 가져오는 부분에서 정희의 왼손이 확대됩니다. 엄지 밑에 둥근 화상 자국이 있습니다. 현재 반납구에서 나온 손의 자국과 위치, 모양이 같습니다. 손목 너머는 배식대의 위쪽 판에 가려져 있습니다.
접시를 받은 직후의 영상으로 돌아갑니다. 서진이 젖은 식단표를 옆으로 밀고 접시를 내려놓습니다. 도현은 접시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돌려 놓습니다.
“네 엄마는 다른 반찬보다 이걸 한 번 더 줬어.”
서진은 반납구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카메라가 낮아지면서 안쪽 선반이 보입니다. 손은 선반 위에 놓여 있습니다. 손등 뒤로 이어지는 팔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진이 휴대등을 비춰도 빛은 선반을 따라 들어가다가 수직으로 내려온 칸막이에 막힙니다.
배식대 단면도에는 그 칸막이 뒤로 폭 60센티미터의 식기 회수 공간이 표시돼 있습니다. 접이식 의자 한 개가 반납구를 향해 놓여 있습니다. 반납구의 선반은 의자에 앉은 사람의 무릎 높이로 이어집니다. 앉은 사람이 무릎 앞에서 팔을 뻗으면 손목부터 바깥으로 내밀 수 있는 배치입니다.
서진은 태블릿의 도면을 손가락으로 넓힙니다.
“뒤에서 들어가는 거야?”
“오른쪽 끝. 거기로 들어가서 접시를 모았어.”
카메라가 배식대 오른쪽 끝을 비춥니다. 바닥 가까이까지 내려온 광고판이 있습니다. 단면도에 표시된 유일한 출입문과 같은 자리입니다. 광고판은 문틀보다 넓고, 네 모서리가 배식대 외장에 나사로 고정돼 있습니다.
8년 전 식당 사진에도 이쪽 끝이 찍혀 있습니다. 당시에는 광고판이 없어서 세로로 긴 문과 손잡이가 보입니다.
폐쇄 확인서 첫 장에는 ‘잔류 인원 0명’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둘째 장의 산출 기준은 ‘출입 명부상 유효 계약 인원’입니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센 인원이라는 기재는 없습니다. 배식대 뒤의 회수 공간은 시설 분류에서 ‘배식대 내부’에 포함돼 있습니다.
인원표에서 정희의 이름은 외주 배식 인력 항목에 있습니다. 계약 종료일은 식당 폐쇄일과 같습니다. 귀환란에도 ‘계약 종료’가 적혀 있습니다. 운송편 칸과 도착 서명 칸은 비어 있습니다. 귀환란의 입력 방식은 계약 상태 항목의 일괄 복사로 표시돼 있습니다.
영상에서 서진은 해당 줄을 도현에게 보여 줍니다.
“아빠한테 온 것도 이 말이었어?”
“응. 계약 종료. 안내문에도 그렇게만 적혀 있었어.”
“타고 나간 편명은?”
도현이 화면의 빈칸을 짚습니다.
“그건 못 받았어.”
확인서의 작성 부서는 인력관리 부서입니다. 마지막 장에는 시설 부서가 이 확인서를 인계받아 출입문을 봉인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작성 직원과 봉인 작업자의 이름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봉인 작업자가 확인한 항목은 문 개수와 봉인 번호입니다. 회수 공간 안을 확인했다는 항목은 없습니다.
계약이 끝난 사람은 첫 장의 숫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배식대 내부로 분류돼 있습니다. 서진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반납구 앞에 다시 앉습니다.
접시를 선반에 돌려놓자 손가락이 접시 가장자리를 잡습니다. 서진은 빈 오른손을 펴서 손목 아래에 댑니다.
“손을 이쪽으로 빼세요. 틀부터 풀게요.”
손은 접시를 바깥으로 밉니다. 서진의 오른손 위를 접시 밑바닥이 지나갑니다. 접시가 선반 끝에 걸리자 도현이 두 손으로 받아 듭니다. 손가락은 접시를 놓고 빈 선반을 짚습니다. 엄지 밑의 둥근 자국이 카메라를 향합니다.
서진은 드라이버를 들고 배식대 오른쪽으로 갑니다. 아래쪽 나사부터 풀고, 한 손으로 광고판을 누른 채 위쪽 나사를 뺍니다. 도현은 접시를 든 채 옆으로 비켜섭니다. 서진이 광고판을 바닥에 내려 벽에 기대자 사진에 있던 손잡이가 드러납니다.
손잡이와 문틀 사이에 봉인띠가 걸려 있습니다. 서진이 태블릿을 옆에 댑니다. 폐쇄 확인서 마지막 장의 번호와 봉인띠에 찍힌 번호가 같습니다.
서진은 절단기로 봉인띠를 끊습니다. 끊어진 두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도현이 들고 있는 접시의 국물이 한쪽 가장자리로 기웁니다. 서진이 손잡이를 당기자 문이 식당 쪽으로 열립니다.
카메라가 열린 문을 향합니다. 도면에 표시된 접이식 의자가 반납구를 향해 놓여 있습니다. 서진은 문을 더 당긴 뒤 휴대등을 의자와 선반 사이로 옮깁니다. 빛이 선반을 짚은 손에서 손목 안쪽으로 이어집니다.
연근조림을 건네던 손목은 의자에 앉은 정희의 백골 왼팔에 붙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