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할 사람

급지함의 양쪽 가이드를 벌리고 인화지를 끼웠다. 고모는 식탁에서 김치 그릇을 치우고 그 자리에 가족사진을 놓았다. 사진 귀퉁이에 붙어 있던 장롱 바닥의 종이가 식탁에 떨어졌다. 나는 인화지에 묻지 않게 종잇조각을 손등으로 밀었다.

출장에 쓰는 복원기는 작은 밥솥만 했다. 사진을 덮개 아래 넣으면 앞쪽 화면에 복원 결과가 나오고, 확인을 누르면 아래 급지함에서 종이를 가져갔다. 고모 집에 오기 전에는 읍내 미용실에서 개업사진 여섯 장을 인화했다. 기계 옆에는 아직 머리카락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사진 속 가족들은 마당에 서 있었다. 뒤로 나무 대문과 논이 보였다. 논 건너 흰 작업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있었는데, 머리와 목은 색이 바래 붙어 있었다. 가족들 얼굴보다 그 남자의 옷이 더 하얬다.

“이건 어디서 찍은 거야?”

고모가 자기 발밑을 가리켰다.

“부엌에서. 문 열어 놓고.”

식탁 뒤의 찬장을 빼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설 만한 자리가 나왔다. 부엌문은 내 왼쪽에 있었다. 열린 문 너머로 수도와 파란 양동이가 보였고, 그보다 멀리 대문이 있었다. 사진의 수도 옆에도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그때 것은 둥근 철제였다.

고모는 혼자 먹던 밥상을 창가로 옮겼다. 나는 사진을 유리판에 엎어 놓고 덮개를 내렸다. 빛이 덮개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았다. 화면에 가족들의 얼굴이 나왔다. 옷깃의 얼룩이 없어지고 흙바닥의 자갈이 하나씩 분리됐다.

흰 작업복의 남자는 대문을 잡고 있었다.

그의 왼손이 빗장 아래에 걸쳐 있었다. 논은 남자의 뒤로 멀어졌고, 가족 중 가장 키가 큰 사람의 어깨 옆에 남자의 가슴이 붙었다. 다른 사람들은 원본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 고모의 어린 얼굴 앞에 드리워진 머리카락도 그대로였다.

나는 화면에서 한 뼘쯤 떨어진 곳에 오른손을 들었다.

“이 사람은 누구야?”

검지를 남자의 얼굴 쪽으로 뻗었다. 손끝은 화면에 닿지 않았다. 고모는 식탁에 손을 짚고 허리를 숙였다. 화면 아래에 작은 글씨가 생겼다.

복원 위치: 오른손 검지 끝.

나는 손을 내렸다. 대문에서 경첩 우는 소리가 났다. 열린 부엌문으로 내다봤을 때 대문은 닫혀 있었다. 나무판 사이의 틈으로 논의 초록색이 가늘게 보였다.

“찍을 때도 저기 있었어. 논 건너에.”

고모가 말했다. 화면을 손톱으로 짚으려 하기에 나는 고모의 손목을 잡았다. 복원기 덮개에 붙은 회색 스티커가 손목 아래에 있었다. 미용실에서는 덮개 위에 주문서를 올려 두었다. 스티커 모서리에도 주문서에서 떨어진 접착제가 남아 있었다.

화면 속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마십시오.

자동 복원 중에는 원본을 빼지 마십시오.

복원 위치가 지정된 뒤에는 전원을 꺼도 작업이 유지됩니다.

스티커를 읽는 동안 화면 위에서 얇은 선이 내려왔다. 선이 남자의 허리를 지나자 대문에 얹혀 있던 손이 없어졌다. 남자는 수도 옆에 서 있었다. 가족들 사이로 들어온 그의 바짓가랑이가 어린 고모의 치마 한쪽을 가렸다. 가족들은 앞을 보고 있었고 남자는 아래를 보고 있었다.

수도 옆에서 양동이가 넘어졌다.

파란 바닥이 문 쪽을 향해 굴러왔다가 마당의 갈라진 시멘트에 걸렸다. 물은 들어 있지 않았다. 고모가 문으로 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화면의 취소 표시를 눌렀다. 왼손으로 두 번 눌렀지만 표시 색은 바뀌지 않았다. 오른손을 식탁 아래로 내리자 화면 속 남자의 턱이 더 내려갔다.

“문 닫을까?”

“잠깐만.”

고모는 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다. 화면 속 수도는 원본처럼 낮은 돌기둥에 붙어 있었다. 실제 수도는 고모가 허리를 덜 굽히도록 쇠파이프를 세워 높여 놓았다. 남자의 어깨 높이는 두 수도 가운데 어느 쪽에도 맞지 않았다. 사진 속에서는 어린 고모보다 머리 하나만큼 컸는데, 열린 문으로 보이는 수도 꼭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얇은 선이 다시 내려왔다. 남자가 가족들 앞을 가렸다. 이제 그의 신발이 사진 아래쪽의 부엌 문턱에 닿아 있었다. 신발코에 묻은 흙까지 선명해졌다. 가족사진의 절반이 흰 작업복이었다.

문턱에서 발바닥으로 나무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고모가 한 걸음 물러났다. 나는 복원기의 전원 단추를 길게 눌렀다. 화면 가운데 원이 줄어들고 빛이 꺼졌다. 덮개는 열지 않았다. 벽의 콘센트에서 전원선도 뽑았다. 바닥으로 떨어진 선이 식탁 다리를 한 번 쳤다.

그 소리 다음에 발소리가 났다. 문턱에서 부엌 바닥으로 내려오는 한 걸음이었다.

고모가 부엌문을 밀었다. 문이 다 닫히기 전에 흰 소매가 문틀 옆에 나타났다. 손등이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고모가 몸을 붙여 밀자 손가락 네 개가 문과 문틀 사이에서 납작해졌다. 손톱도 함께 얇아졌다. 손은 빠지지 않고 틈의 모양에 맞춰 길게 들어왔다.

나는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났다. 고모가 문에서 떨어졌다. 문틈을 통과한 손가락들이 차례로 두께를 되찾았다. 남자는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어깨를 넣었다. 머리가 들어올 때 문이 조금 열렸다. 고모는 문 옆 벽에 붙어 있었고, 남자는 고모의 맨발 앞을 지나 식탁으로 왔다.

그의 작업복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단추가 달릴 자리에 흰 천이 이어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목도 옷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깃에 닿은 자리에서 옆으로 접혀 있었다. 얼굴의 눈과 콧구멍에는 마당 쪽에서 들어오는 빛이 닿지 않았다.

나는 식탁 끝을 돌아 창가로 옮겼다. 남자의 얼굴이 따라 돌아왔다. 오른손을 등 뒤로 보내자 남자는 내 몸의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고모가 식탁과 남자 사이에 놓인 의자를 빼냈다. 남자는 고모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무릎이 의자가 있던 자리를 지나왔다.

식탁에는 보리차가 조금 남은 유리컵이 있었다. 나는 왼손으로 컵을 잡아 오른손 검지를 그 안에 넣었다. 남자의 두 팔이 올라왔다. 벌어져 있던 손가락들이 컵 입구를 향해 모였다. 손끝끼리 부딪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오른손을 빼자 그의 손이 다시 펴졌다.

컵을 옆으로 눕혀 검지 끝을 바닥까지 밀어 넣었다. 유리에 눌린 손끝이 하얗게 됐다. 남자는 허리를 굽혔다. 한 손을 컵 아래로 가져가고 다른 손으로 입구를 감쌌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의 손바닥에는 손금이 없었다. 컵이 왼손 안에서 조금씩 돌아갔다.

나는 검지를 빼고 빈 컵만 앞으로 내밀었다. 남자의 손은 컵을 지나갔다. 옆으로 뻗은 오른손 끝을 향해 그의 어깨가 돌아갔다. 나는 컵을 식탁에 놓았다. 컵 바닥에 묻은 보리차가 둥근 자국을 만들었다.

“끝이라고 나왔지?”

고모가 꺼진 화면을 보며 물었다.

“오른손 검지 끝.”

고모는 찬장 아래에서 도마를 꺼냈다. 싱크대에 세워 둔 식칼도 가져왔다. 식탁의 그릇을 한쪽으로 밀고 도마를 놓은 뒤, 수도에서 적신 행주를 네 겹으로 접었다. 남자가 식탁 모서리를 돌아오는 동안 나는 오른손을 도마 쪽으로 뻗었다. 남자의 무릎이 식탁 다리에 닿았다. 그는 다리를 밀지 않고 상체만 그 위로 기울였다.

고모가 내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다. 손목시계는 내가 왼손으로 풀었다. 시계를 놓을 자리가 없어 복원기 덮개 위에 올렸다. 초침 소리가 플라스틱을 통해 작게 울렸다. 나는 오른손을 도마에 대고 검지만 폈다. 남자의 얼굴이 도마 위로 내려왔다. 그의 코끝과 내 손톱 사이에 칼날이 들어갈 공간이 남아 있었다.

“종이 한 장 꺼내 줘.”

고모가 급지함 맨 위에서 인화지를 빼 도마 옆에 놓았다. 반들거리는 면이 위로 갔다. 나는 왼손으로 식칼을 들었다. 손잡이에 붙어 있던 밥풀 하나가 엄지에 눌렸다.

잘린 끝마디는 도마에 옆으로 누웠다. 손톱이 나무를 긁었다. 나는 칼을 내려놓고 왼손 엄지와 중지로 그것을 집어 인화지 가운데 놓았다. 종이 위에 작은 붉은 테두리가 생겼다. 고모가 내 오른손을 접은 행주로 감쌌다. 행주 바깥에 꽃무늬가 있었는데, 누르고 있는 동안 꽃잎 두 개가 같은 색이 됐다.

남자는 식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오른팔은 고모의 두 손 사이에 있었다. 고모가 팔을 위로 들어도 남자의 얼굴은 인화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왼팔로 도마를 옆으로 밀었다. 잘린 손끝은 종이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의 두 손이 식탁 가장자리에 올라왔다. 손가락 마디가 가장자리의 둥근 면을 따라 꺾였다.

인화지를 들어 올리자 가운데가 처졌다. 나는 다시 내려놓고 복원기의 급지함을 뺐다. 종이가 몇 장 따라 나오다 멈췄다. 남은 종이를 식탁으로 밀어 놓고 빈 급지함의 얇은 앞날을 인화지 밑에 넣었다. 고모는 한 손으로 내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종이 모서리를 눌러 주었다. 손끝을 올린 인화지가 플라스틱 받침 위로 전부 들어왔다.

남자가 얼굴을 손끝에 댔다. 입술이 닿은 자리는 손톱 반대편이었다. 그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콧등이 낮아지고 양쪽 뺨이 좁아졌다. 귀가 소매 단보다 작아진 뒤에야 어깨가 줄었다. 무릎은 바닥에 붙어 있었지만 허리는 식탁 위에 겹쳐졌다. 옷에는 주름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받침을 식탁 안쪽으로 조금 밀었다. 남자의 몸이 가장자리에 걸리지 않고 따라왔다. 한쪽 팔꿈치가 목 아래로 접히고 발 하나가 겨드랑이에서 나왔다. 어느 쪽 발인지 볼 수 없었다. 신발 밑창에는 흙도 무늬도 없었다. 고모가 행주를 더 눌렀다. 내 오른손에서 떨어진 피가 식탁 가장자리를 타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남자의 얼굴이 닿아 있는 동안 잘린 손끝은 굴러가지 않았다. 작업복의 흰 면이 좁아져 손톱 너비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식탁 밖에 남아 있던 다리가 위로 들렸다. 무릎보다 발목이 먼저 줄었고, 바짓단은 그 뒤를 따라 접혔다. 나는 왼손 손가락을 받침 아래에 고르게 폈다. 받침이 기울 때마다 인화지 위의 피가 낮은 쪽으로 길어졌다.

남은 작업복이 손끝에 붙었다가 사라졌다. 발뒤꿈치 하나가 피부 위에 잠깐 걸려 있었다. 그것도 낮아져 없어졌다. 인화지에는 잘린 끝마디와 그 아래 번진 피가 있었다. 손톱 끝에 묻은 도마의 나무 가루가 보였다. 나는 받침의 뒤쪽 테두리를 왼손 엄지로 눌러 수평을 맞췄다.

내가 받침을 눈높이로 들어 보니 잘린 검지의 지문 골 안에 남자가 두 발로 서 있었고, 그가 양손으로 벌린 내 피부 안쪽에 가족사진 속 대문이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