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히는 얼굴

나는 여행 가방에 넣을 앨범의 단단한 표지를 떼고 있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장롱 뒤판을 벌릴 때 쓰는 얇은 철제 주걱을 표지 안쪽에 밀어 넣었다. 풀 먹인 천이 조금씩 떨어졌다. 펼쳐 둔 첫 장에는 누나와 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누나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내 얼굴은 코를 중심으로 양쪽이 안으로 접혀 있었다.

누나는 침대에서 티셔츠를 접었다. 나는 침대와 벽 사이 바닥에 앉아 무릎 위에 앨범을 올렸다. 열린 여행 가방은 침대 발치에 붙여 놓았다. 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통로에는 포장 상자 하나가 있었다. 누나가 이 고시원에 들어올 때 내가 들고 온 상자였다. 바닥 모서리를 두른 테이프 위에 새 테이프를 한 겹 더 붙여 놓았다.

앨범은 가방보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 길었다. 사진을 끼운 속지는 들어가지만 표지의 모서리가 지퍼에 걸렸다. 누나는 가방 가장자리를 잡아 주다가 침대로 돌아갔다. 표지를 벗긴 뒤 속지를 묶을 끈은 내 오른쪽 무릎 옆에 두었다.

주걱을 빼고 첫 장을 창 쪽으로 기울였다. 창은 맞은편 건물의 벽을 향해 있었다. 낮빛이 사진의 코 한쪽에 걸렸다. 누나의 어깨와 내 머리 위 운동장 철봉에는 접힌 자국이 없었다. 내 얼굴이 있어야 할 작은 타원 안에서만 종이가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었다.

비닐 주머니 입구에 손가락을 넣고 사진을 꺼냈다. 가장자리는 네 군데 모두 반듯했다. 뒤집으니 흰 뒷면에 사진관 이름이 회색으로 반복되어 있었다. 손톱을 가로질러 밀어도 걸리는 데가 없었다. 다시 앞면을 보자 접힌 코 사이에 회색 먼지가 끼어 있었다.

나는 사진을 앨범 위에 놓고 주걱 끝으로 먼지를 밀었다. 먼지와 함께 콧등이 들렸다. 인쇄된 코보다 좁게 넣은 주걱 위로 살색 조각이 얹혔다. 손잡이를 조금 더 눕히자 코에 붙은 뺨이 따라 나왔다. 사진의 폭보다 긴 주름 하나가 내 손목까지 펼쳐졌다.

왼손으로 주걱 아래를 받쳤다. 접힌 부분들이 손바닥 위에서 차례로 벌어졌다. 어린아이 얼굴만 한 얇은 껍질이었다. 양쪽 눈꺼풀은 닫혀 있었고, 그 아래에 안구는 없었다. 입술은 붙어 나왔다. 뒤집힌 뺨 안쪽에는 젖은 살이 얇게 남아 손금에 달라붙었다. 귀와 머리카락은 달려 있지 않았다.

사진은 왼쪽 무릎 위에 남아 있었다. 내 손에 얹힌 얼굴 아래로 운동장이 보였다. 머리카락과 셔츠 깃 사이를 흙바닥과 흰 줄이 지나갔다. 사진을 들어 뒷면을 살폈다. 사진관 이름은 끊기지 않았다. 손바닥의 물기가 묻은 자리에만 종이 색이 짙어졌다.

누나가 접던 티셔츠를 베개 쪽으로 치웠다. 침대와 벽 사이에서 빈 반찬통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내 거랑 섞지 마.”

누나가 통 뚜껑을 떼는 동안 침대 아래가 보였다. 거기에도 같은 모양의 통이 열려 있었다. 낮은 코와 닫힌 눈꺼풀이 같은 방향으로 포개져 있었다. 맨 위 얼굴의 아랫입술에는 작은 점이 있었다. 누나의 입술에도 같은 자리에 점이 있었다.

“이쪽은 했어.”

누나가 앨범 뒤쪽의 비닐 두 장을 들어 보였다. 누나 혼자 앉아 있는 사진에서 앞머리와 턱 아래 사이로 벽지가 이어졌다. 그다음 사진도 같았다. 첫 장에서 내 옆에 서 있는 누나의 얼굴은 남아 있었다. 누나는 비닐을 덮고 빈 통을 내 손 아래로 밀었다.

손바닥을 기울이자 껍질이 반찬통 안으로 내려갔다. 뺨이 먼저 바닥에 닿고 반대편 관자놀이가 벽에 기대었다. 코는 통 밖으로 조금 나왔다. 손을 빼는데 젖은 뒷면이 새끼손가락에 붙었다. 주걱의 넓은 면으로 누르며 손가락을 뽑았다.

누나는 서랍에서 작은 수건을 가져왔다. 내가 얼굴을 다시 들어 올리는 동안 수건을 통 바닥에 깔았다. 네 귀퉁이를 안으로 접어 높이를 맞췄다. 얼굴을 내려놓자 수건에 뺨 모양의 젖은 자국이 생겼다. 누나는 자기 통에도 같은 수건을 깔아 두었다.

앨범의 남은 표지를 마저 떼었다. 뒤표지는 풀칠이 넓게 되어 있어서 주걱을 두 번 나누어 넣었다. 떨어진 표지 두 장은 벽에 세웠다. 안쪽에 붙어 있던 노란 천 조각이 바닥에 내려와, 포장 상자의 열린 뚜껑 위에 올려 두었다.

다음 사진에는 내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케이크의 촛불은 여덟 개였다. 얼굴 한가운데 접힌 선을 주걱으로 벌리자 입이 먼저 나왔다. 윗입술 아래로 난 앞니의 크기가 서로 달랐다. 나는 주걱을 왼쪽으로 옮겨 눈꺼풀이 접힌 데를 받쳤다. 얼굴이 떨어진 자리에 식탁 뒤의 흰 벽이 이어졌다.

그다음 얼굴은 턱 아래에 짧은 봉합 자국이 있었다. 작은 매듭을 따라 살이 여섯 군데 오목했다. 턱의 끝을 집으면 자국도 같이 들렸다. 나는 그 얼굴을 통 위에 얹지 않고 뚜껑 안쪽에 펼쳐 놓았다. 먼저 꺼낸 것보다 양쪽 뺨의 간격이 넓었다.

사진은 촬영 순서대로 꽂혀 있지 않았다. 소풍 사진 다음에 돌상 사진이 있었고, 교복을 입은 사진 뒤에 유치원 단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얼굴도 크기가 오르내렸다. 돌상에서 꺼낸 얼굴은 한 손에 올라갔다. 교복 사진의 얼굴은 받친 손가락 양옆으로 뺨이 처졌다. 사진에 찍힌 머리의 크기는 모두 엄지손톱 안에 들어갔다.

빈 비닐 한쪽에 꺼낸 사진을 모았다. 얼굴을 뗀 머리카락 아래로 벽이나 운동장이 메워져도 목과 옷은 남았다. 옆 사람의 팔이 어깨에 걸친 사진에서는 그 팔도 그대로였다. 나는 젖은 손가락을 사진 바깥쪽에 대고 밀어 넣었다. 비닐 입구에 물기가 길게 묻었다.

누나는 접은 옷을 가방 왼쪽 절반에 넣었다. 오른쪽에는 반찬통이 들어갈 자리를 남겼다. 두 통을 나란히 대어 보더니 내 통 밑에 깐 수건의 두꺼운 귀퉁이를 펴 주었다. 통 바닥이 가방의 굴곡에 걸리지 않았다.

“종이 좀 줘.”

누나가 통로의 상자에서 포장용 종이를 꺼내 건넸다. 나는 가로로 두 번 찢어 얼굴 사이에 끼웠다. 접시를 포갤 때처럼 가장자리를 밖으로 조금 남겼다. 종이에 코가 닿지 않게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들었지만, 얼굴 세 장을 넣자 뚜껑이 통 테두리에 닿지 않았다.

뚜껑을 누르면 맨 위 코가 먼저 납작해졌다. 손을 놓으면 뚜껑 한쪽이 들렸다. 나는 종이를 빼고 봉합 자국이 있는 턱을 들어 올렸다. 입가에서 콧방울 옆으로 이어진 선을 따라 뺨이 안으로 접혔다. 반대편도 같은 방향으로 눌렀다. 이마를 내리자 얼굴이 사진에서 보았던 크기 가까이 줄었다.

접힌 얼굴은 힘을 주어 잡고 있지 않아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 위에 종이를 놓고 다음 얼굴을 접었다. 빠진 앞니가 있던 입술은 안으로 들어갔고, 봉합 자국은 아래쪽 접힌 면에 남았다. 나는 자국이 보이게 놓았다. 큰 얼굴부터 아래로 넣으니 먼저 꺼냈던 작은 얼굴들이 위에 올라갔다.

누나는 내 손이 통에서 빠진 다음 뚜껑을 덮었다. 네 면의 잠금쇠가 모두 걸렸다. 다시 열자 종이의 솟은 부분에만 물기가 배어 있었다. 나는 맨 위 종이를 뒤집고 통을 무릎 앞으로 당겼다.

“앨범은 버릴까.”

내가 표지 쪽으로 주걱을 뻗었다. 누나는 벽에 세운 표지를 받아 상자에 넣었다.

“사진은 두고.”

“반씩 가져가면 되잖아.”

“넌 그거 가져가.”

누나가 내 앞의 통을 손끝으로 짚었다. 나는 사진이 든 속지를 누나 발 옆에 쌓고, 통은 내 작업 가방 쪽으로 옮겼다. 누나는 속지를 양손으로 눌러 가지런히 맞췄다. 우리가 어느 쪽을 가져갈지는 더 말하지 않았다.

비닐에 남은 사진은 두 장이었다. 한 장에서는 입을 다문 얼굴이 나왔다. 다른 한 장은 뒤표지에 붙어 있던 불투명한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주머니에서 사진을 빼자 모서리에 적힌 누나의 글씨가 드러났다. 내 이름 옆에 여섯 살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주걱 끝을 코 밑으로 넣었다. 입술이 벌어진 채 접혀 있어서 아랫입술부터 펴졌다. 위 앞니 두 개가 빠진 얼굴이었다. 양옆의 이는 작고 끝이 둥글었다. 턱에는 봉합 자국이 없었다. 얼굴의 젖은 뒷면을 손바닥으로 받고 사진을 아래로 빼냈다. 목 위에는 누런 벽지가 남았다.

마지막 얼굴을 접어 통에 넣은 뒤, 빈 사진을 누나에게 건넸다. 누나는 다른 사진과 함께 비닐에 꽂았다. 속지를 끈으로 묶는 동안 나는 작업 가방 옆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냈다. 입에 댔을 때 물이 오른쪽으로 흘렀다. 병을 내려놓고 손등을 대자 입가에서 턱까지 젖어 있었다.

바지 뒤주머니의 수건을 꺼내 물을 닦았다. 입술 옆에서 수건의 올이 걸렸다. 아래로 당기니 피부 가장자리가 수건을 따라 내려왔다. 거기에 손가락 끝을 넣을 만큼의 틈이 벌어져 있었다. 틈 아래는 입가의 피부보다 밝고 매끈했다.

누나는 묶던 끈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포장 상자를 옆으로 지나 문 옆 세면대로 갔다. 세면대 위에 놓인 작은 거울을 가져와 내 반찬통 뒤에 세웠다. 뒤쪽 받침대를 펴고 통 뚜껑으로 다리 끝을 눌렀다. 거울의 아래쪽에 작업복 가슴주머니가 잡혔다.

나는 수건의 올을 피부 끝에서 하나씩 뺐다. 누나가 수건을 받아 세면대 가장자리에 걸었다. 바닥에 남아 있던 주걱을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턱 아래 벌어진 가장자리에 넣었다.

턱을 들어 올리듯 피부를 위로 당겼다. 왼손은 떨어져 나오는 부분 아래에 댔다. 젖은 면이 손바닥을 덮고, 입술이 손목 쪽으로 뒤집혔다. 코를 지나자 무게가 왼손 가운데로 모였다. 오른손을 옮겨 관자놀이의 가장자리를 잡았다. 눈꺼풀이 피부에 붙어 나왔고 안구는 머리에 남았다. 아래로 처진 껍질 너머로 반찬통의 흰 테두리가 보였다.

이마에서 마지막 부분을 떼어 양손에 펼쳤다. 어린 얼굴을 받쳤을 때보다 손가락을 더 벌려야 했다. 나는 턱 쪽을 통 위에 걸치고 양쪽 뺨을 안으로 밀었다. 입가에서 시작하는 선이 그대로 접혔다. 이마를 접는 동안 손에 든 피부가 거울을 가렸다. 젖은 뒷면이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밀려 나왔다.

접은 성인 얼굴을 통 맨 위에 놓고 가장자리의 종이를 당겨 덮었다. 양손을 통 옆으로 내렸다. 거울 속에는 성인의 목과 작업복 위에, 방금 마지막 사진에서 떼어 낸 얼굴과 똑같이 앞니 두 개가 빠진 여섯 살 얼굴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