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바깥

“다섯 시에 들어갑니다. 안에 물건 남았어요?” “창 하나요. 그전에 빼놓을게요.”

철거 기사에게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버지, 편지는 집에서 마저 씁니다. 병원에서는 제가 두 문장을 이어 말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간호사를 부르셨으니까요. 오늘은 끝까지 읽으실 수 있게 종이로 드리겠습니다.

부엌에서 가져온 밥상에 편지를 놓고 봉투의 접는 선을 눌렀습니다. 봉투 귀퉁이가 손톱에 걸려 섰습니다. 고개를 들자 창에도 같은 모양이 있었습니다. 바깥에 붙어 있어야 할 시공 스티커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가 방 안으로 접혀 나와 있었습니다. 손톱을 대자 종이가 들렸고, 그 밑에는 차갑고 매끈한 유리가 닿았습니다.

이 창을 가져오라는 말씀은 세 번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창고에 두라고 하셨고, 다음에는 병원 가까운 곳을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어제는 창짝을 눕히지 말라는 말씀까지 하셨지요. 병실에 들일 수 있는 크기가 아닙니다. 창고 사용료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으셨으므로 아직 어디에도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든 창은 맞습니다. 십이 년 전, 가게를 물려받고 처음 혼자 마감한 고정창입니다. 여닫는 손잡이가 없고, 방 안에서 틀의 고정 나사 여덟 개를 풀면 창짝째 빠집니다. 두 장 모두 젖빛 유리여서 햇빛은 들어와도 서로의 건너편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달아놓았던 꽃무늬 커튼도 그날 제가 떼었습니다.

편지 첫 장에는 이렇게 적어두었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집을 나갔고, 저는 빈방의 창을 막았습니다. 선후를 바꾸지 말아주세요. 아버지는 병원에서도 제가 창을 막은 날 어머니가 없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두 일이 같은 날 있었다는 것과 제가 어머니를 못 나가게 했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지금은 네 시 오 분입니다. 마을회관 쪽에서 차가 후진하는 소리가 납니다. 이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좁아서 큰 장비는 아래에 세우고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대문에서 툇마루까지 옮길 짐은 제가 치워두었습니다. 아버지가 창 앞에 놓고 쓰신 등받이 없는 의자도 마당으로 내놓았습니다.

창턱에는 의자의 두 앞다리가 닿았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거기 앉아 어머니를 기다렸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의자는 마당이 아니라 유리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밖을 볼 수도 없는 창을 보고 앉은 일을 기다렸다는 말로 옮기면, 제가 집을 팔자고 할 때마다 설명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는 수도가 끊긴 뒤에도 그 의자를 방 안에 두셨습니다.

바깥 툇마루에는 흙 묻은 발자국이 없었습니다. 낮은 발판 하나를 놓으면 창 윗부분에도 손이 닿습니다. 저도 그날 여기서 실리콘을 쏘고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아직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양생 중 개방 금지.’ 그 아래에 제가 쓴 날짜와 수진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서명의 마지막 획이 길게 올라간 것도 지금과 같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스티커는 네모입니다. 오른쪽 아래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방 안으로 돌아오면 같은 위치에 삼각형 종이가 나와 있습니다. 안쪽 귀퉁이에 묻은 파란 잉크는 제 서명의 끝부분입니다. 저는 봉투를 그 옆에 대보았다가 밥상으로 가져왔습니다. 봉투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네 시 십 분, 왼쪽 위의 첫 나사를 뺐습니다. 전동 공구는 쓰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틀은 한쪽을 급하게 풀면 비틀어집니다. 드라이버를 돌리는 동안 종이 끝이 유리에서 조금씩 나왔습니다. 나사 머리가 틀에서 떨어졌을 때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 길어져 있었습니다. 종이가 나온 자리를 손전등으로 비추었습니다. 금도 구멍도 없었습니다.

작업 장갑을 벗고 이 문단을 씁니다. 나사는 봉투 위에 놓았습니다. 아버지께 가져갈 물건은 창짝이지 유리를 한 장씩 분리한 자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 유리 가장자리를 자르지 않았고, 밀봉재에도 칼을 대지 않았습니다. 제가 뜯어서 생긴 틈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대편 위 나사를 풀자 안쪽 유리가 방 쪽으로 나왔습니다. 바깥 유리는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원래 두 장 사이에는 좁은 간격을 유지하는 금속 테두리가 들어갑니다. 그 테두리의 안쪽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빠져나와 나사 구멍에 걸렸습니다. 한 올을 집자 여러 올이 한꺼번에 따라 나왔고, 뿌리 쪽은 여전히 틀 속에 있었습니다.

가게에서 쓰던 솔의 털은 갈색이고 짧습니다. 이건 제 손등을 지나 밥상 가까이 내려왔습니다. 끝에 붉은 실이 묶여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고무줄이 끊어지면 재봉함의 실로 머리를 묶곤 하셨습니다. 그 실까지 제가 알아보아야 한다면, 아버지도 제가 그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정도는 말씀하셔야 합니다. 아버지는 늘 제 손에 들린 망치만 말씀하십니다.

창짝 아래로 받침대를 밀어 넣었습니다. 유리를 운반할 때 쓰는 넓은 작업대로, 높이를 창턱에 맞추고 바퀴를 잠갔습니다. 창이 방 안으로 나와도 아래 모서리는 받칠 수 있습니다. 밥상은 문 옆으로 옮겼습니다. 편지는 서서 쓰고 있습니다. 바닥이 썩었다고 하셨지만 받침대 네 바퀴는 모두 같은 높이에 놓여 있습니다.

세 번째 나사를 반쯤 풀었을 때 두 유리 사이에서 흰 선이 벌어졌습니다. 테두리를 정면에서 보면 가느다란 선인데, 옆으로 몸을 옮기자 찻잔 손잡이의 둥근 구멍이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쓰던 흰 잔입니다. 손잡이 아래가 깨져서 아버지는 입을 베겠다고 버리라 하셨지요. 어머니는 그 자리를 벽 쪽으로 돌려놓고 계속 쓰셨습니다.

나사를 한 바퀴 되돌리자 손잡이의 구멍이 좁아졌습니다. 빠져나온 머리카락도 틀 쪽으로 당겨졌습니다. 더 조이지는 않았습니다. 잔은 깨지는 소리 없이 얇아졌고, 제가 다시 나사를 풀자 같은 자리에 둥근 구멍이 생겼습니다. 유리 사이에서 늘어난 만큼만 안쪽 면이 방으로 나왔습니다. 창 위의 벽지 이음매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넣은 간봉의 폭은 손가락 하나보다 좁습니다. 잔이 들어갈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잔은 지금도 두 유리 사이에 있고, 고정을 느슨하게 할 때마다 납작한 옆면을 펴고 있습니다. 제가 가져온 새 밀봉재는 아직 포장 안에 있습니다. 이 창 안에 다른 물건을 넣은 적은 없습니다.

네 시 이십팔 분입니다. 첫 장의 ‘빈방’을 두 줄로 지우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방’으로 고쳤습니다. 아버지는 문을 열어봤느냐고 여러 번 물으셨는데, 저는 방 안에 들어갔다고 적지 않았습니다. 툇마루에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머니가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창을 맞추었습니다. 손님 집에서도 작업을 멈추라는 말이 없으면 약속한 일을 끝냅니다.

어머니는 그날 방 안쪽 창턱에 잔을 놓으셨습니다. 제가 공구 가방을 열기 전입니다. 잔이 먼저 놓였으니 잔이 남아 있다고 해서 사람이 남아 있었다고 쓰실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빨랫줄에 앞치마를 걸어두고 나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런 날에도 제가 해가 지기 전에 앞치마를 걷었습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간호사가 아버지에게 바꿔드려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창을 빼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침대 난간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아버지가 제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수진아. 네 엄마가 두드릴 때 너는 툇마루에 있었잖아.” “창짝 맞추는 고무망치 소리였어요.” “너는 밖에 있었잖아.” “밖에서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고 말씀드렸어요.”

아버지는 제가 밖에 있었다는 말을 자꾸 반복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한 번도 빼지 않았습니다. 창틀에 끼운 고무 받침이 잘 들어가지 않아 망치로 세 번 쳤습니다. 그 뒤에 난 소리는 제가 친 소리와 간격이 달랐습니다. 가방에 망치를 넣은 뒤에도 두 번 더 났으니, 그 부분은 아버지 말씀대로 적겠습니다. 다만 사람이 낸 소리라고 확인한 적은 없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휴대전화를 창턱에 놓으려다 밥상으로 가져갔습니다. 창턱에는 잔이 놓일 만큼 깊이가 생겨 있었습니다. 흰 잔의 바닥이 테두리에서 떨어지며 아래쪽 유리 받침에 닿았습니다. 물은 없었습니다. 옆에는 꽃무늬 천이 겹쳐 있었고, 유리가 벌어지는 쪽으로 주름이 부풀었습니다. 방에 들어오는 햇빛은 여전히 같은 마룻장 끝에 걸려 있었습니다.

철거 기사가 마당에 들어왔습니다. 네 시 사십 분이었습니다. 그는 창 앞에 선 저를 보고 창도 버리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가져오라고 하셨다는 말을 하면 적재할 자리를 따로 마련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밥상 위로 뒤집어 놓은 편지에 손을 얹었습니다.

“유리는 어디 쌓아요?” “담 옆이요. 통째로 뺄 수 있으면 통째로 주세요.”

기사는 툇마루 끝의 화분을 옮기고 대문 쪽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습니다. 창고 주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보관할 물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담 옆에는 깨진 세면대와 문짝을 놓을 자리가 나뉘어 있었습니다. 창 하나를 세울 폭은 남아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 나사를 빼자 꽃무늬 천 아래에서 손등이 나왔습니다. 유리 사이의 좁은 틈을 따라 손가락 네 개가 아래로 모여 있었습니다. 손톱은 짧았고 검지에 하얀 페인트가 묻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어머니에게 안쪽 받침을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유리를 올리는 동안만 잡아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끝까지 잡고 있으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편지 첫 장에는 제가 어머니에게 일을 부탁한 대목이 빠져 있습니다. 빈방이라는 말을 고친 옆에 별표를 하고 적었습니다. 어머니는 처음 유리를 댈 때 방 안에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두 문장 사이에 줄 하나를 비워두었습니다. 봉투 위에는 뺀 나사 여섯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네 시 오십 분, 위쪽 테두리가 벌어져 머리카락 묶음이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방 쪽 유리는 받침대 위에 실렸습니다. 바깥 유리는 창턱에 남아 있고 그 사이에 구부린 무릎이 생겼습니다. 무릎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겹쳐 있던 천과 살의 옆면에 깊이가 생기면서 서로 떨어졌습니다. 마당에서는 기사가 합판을 끌고 있었고, 합판 끝이 돌을 긁는 소리가 계속 났습니다.

나사는 아래쪽에 하나 남았습니다. 일곱 번째 나사를 봉투에 놓으니 접어두었던 뚜껑이 펴졌습니다. 처음 유리에서 나온 스티커 끝은 이제 손바닥에 올릴 만큼 길었습니다. 파란 서명의 획도 끊기지 않고 따라 나왔습니다. 저는 종이를 유리 쪽으로 한 번 밀어보았습니다. 접힌 자리가 꺾일 뿐 다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네 시 오십오 분입니다. 기사가 창부터 마당으로 내달라고 했습니다. 나사가 남아 있는 채로 당기면 틀이 깨집니다. 저는 받침대가 닿은 자리를 확인하고 마지막 나사를 돌렸습니다. 나사 끝이 벽의 고정쇠에서 빠지자 안쪽 유리가 받침대 안으로 밀려왔습니다. 바깥 유리와의 사이는 사람이 웅크리고 앉을 만큼 벌어졌습니다.

옆으로 열린 틈에 어머니의 얼굴과 몸이 드러났습니다. 등을 바깥 유리에 대고 무릎을 가슴까지 접은 자세였습니다. 앞치마 끈은 허리 뒤로 돌아가 있었고 맨발은 흰 잔 옆에 포개져 있었습니다. 얼굴은 제가 선 방 쪽을 향했습니다. 코 아래를 가린 종이에서 길게 접힌 끝이 나와 제 손 가까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버지, 스티커만큼은 어머니가 떠난 뒤 유리 바깥에 붙였습니다. 날짜도 그 자리에서 적었습니다. 제가 붙인 표시가 어느 쪽에 있었는지는 제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편지에 그 문장을 적고 펜을 내려놓았습니다. 작업할 때처럼 종이 끝을 잡아, 붙은 면이 보이도록 천천히 뒤집어 당겼습니다.

제 날짜와 서명이 적힌 스티커의 접착면에 어머니의 위아래 입술이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