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쪽

지연은 마지막 상자의 테이프를 자르고 칼날을 밀어 넣었다. 준호가 상자를 수레에 실었다. 방울과 놋그릇은 먼저 차에 올렸고, 벽에서 떼어 낸 탱화는 운전석 뒤에 눕혀 두었다. 굿당에는 이인용 나무 의자만 남았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옮긴 뒤 두 달 만이었다. 상가 출입문에는 철거 날짜가 붙어 있었다. 남매는 다른 집 이삿짐을 나를 때 쓰던 담요를 의자 옆에 폈다.

오른쪽 자리에는 나무 인형이 앉아 있었다. 몸통을 두른 끈이 등받이 살 사이로 지나갔다. 왼쪽 좌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끈은 나가서 풀자. 이쪽 잡아.”

지연이 인형 쪽 좌판을 들었다. 오른쪽 다리가 뜨면서 의자가 기울었다. 준호도 반대편을 들었다. 바닥에서 줄눈 깨지는 소리가 났다. 빈자리 앞의 타일 두 장이 가장자리부터 올라왔다.

준호가 손을 내리자 타일도 내려갔다. 두 장 사이에서 부서진 줄눈 가루가 밀려 나왔다.

지연은 무릎을 꿇고 다리 밑을 비췄다. 준호가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들어 주었다. 네 다리 끝에는 닳은 나뭇결이 드러나 있었다. 못도 접착제도 없었다. 들리는 타일은 앞다리에서 한 뼘쯤 떨어져 있었다.

“바닥까지 가져갈 수는 없잖아.”

준호가 좌판에서 손을 뺐다. 지연은 의자 밑에 넣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분해해. 엄마한테 가져간다고 했어.”

준호는 수레에 걸어 둔 공구 가방을 가져왔다.

그 의자는 남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같은 벽 앞에 있었다. 바닥을 수리하던 날, 지연은 오른쪽 자리에 앉아 운동화 뒤축을 당겼다. 준호는 그 앞에서 한쪽 양말을 벗었다. 양말 바닥에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어머니가 양말을 털어 주는 동안 지연은 의자에서 내려왔다. 준호가 같은 자리에 올라앉아 발을 내밀었다. 현관에는 지연의 다른 운동화와 준호의 신발 두 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왼쪽 좌판에는 수건이 깔려 있었다. 어머니는 수건 끝을 잡아당겨 한 번 접고, 손바닥을 밑으로 밀어 넣은 채 다시 접었다. 두께를 맞춘 수건을 놓자 서로 떨어진 두 군데가 움푹 눌렸다. 가운데에는 접힌 선이 남았다.

어머니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허공으로 뻗은 손이 발뒤꿈치를 감싸듯 오므라들었다. 작은 실내화 한 짝이 손에 딸려 나왔다. 다른 쪽에서도 한 짝을 벗겼다. 실내화 밑창과 앞코에는 바닥에 바르던 누런 접착제가 묻어 있었다. 신발을 기울이자 안쪽 끝에서도 같은 색의 끈끈한 줄이 늘어졌다.

준호는 오른쪽 자리에서 발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벗겨 낸 실내화는 준호의 발보다 작았다.

그날 어머니는 실내화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다른 타일은 들어내 접착제를 펴 발랐지만 의자 앞 두 장은 그대로 내려놓았다. 들뜬 가장자리를 손으로 눌러 맞추고 주변 줄눈만 메웠다.

준호가 왼쪽으로 엉덩이를 옮기자 어머니는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오른쪽으로 돌려 앉혔다.

“거긴 그대로 둬.”

지연은 현관에서 동생 신발을 가져왔다.

지연이 인형의 매듭을 풀었다. 끈이 묶였던 등받이 살은 다른 곳보다 색이 옅었다. 인형을 눕힌 상자에 끈도 넣고 뚜껑을 덮었다. 오른쪽 좌판에는 둥근 얼룩이 남았다. 남매가 자라 그 의자에서 신발을 신지 않게 된 뒤, 어머니는 그쪽에 인형을 앉혀 두었다.

준호가 빈 쪽을 들어 보았다. 타일 두 장이 줄눈 가루를 떨어뜨리며 다시 올라왔다.

“뒤부터 뺄게.”

준호는 의자 뒤에 누워 등받이 고정 볼트에 렌치를 끼웠다. 지연이 등받이를 붙잡았다. 볼트 네 개가 빠지자 등받이는 위로 뽑혔다. 지연은 그것을 담요 위에 눕혔다.

준호가 의자 아래에서 다리틀의 볼트도 느슨하게 했다. 금속 와셔가 바닥에 떨어졌다. 다리틀은 좌판 양 끝에 하나씩 붙어 있었고, 두 틀 사이에는 가로대가 걸려 있었다. 가로대 밑으로는 아무것도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받칠 테니까 틀을 빼.”

준호가 좌판 밑으로 어깨를 넣고 쪼그려 앉았다. 지연은 풀어 둔 볼트를 손으로 돌려 뽑았다. 먼저 오른쪽 다리틀을 빼내 담요에 놓고, 가로대와 왼쪽 틀을 차례로 받았다. 준호가 허리를 조금 펴자 좌판이 올라갔다. 빈자리 앞 타일도 같은 높이만큼 들렸다.

지연은 마지막 다리틀을 내려놓고 좌판의 왼쪽 끝을 양손으로 받쳤다. 준호가 어깨를 빼며 오른쪽 끝을 잡았다. 타일 밑의 회색 바닥이 드러났다. 바닥과 타일 사이에는 부서진 줄눈 외에 늘어지는 물질이 없었다.

“붙은 데가 어디야?”

준호는 한쪽 무릎을 굽혀 좌판 밑을 들여다보았다. 지연의 손과 자기 손 사이로 벽 아래 걸레받이가 보였다.

바닥을 수리하던 날, 실내화를 벗긴 어머니는 곧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양동이에서 행주를 꺼내 짠 뒤 빈자리 앞 허공에 둘렀다. 행주 가운데가 둥근 뒤꿈치 모양으로 꺾였다. 어머니가 앞으로 당기자 천의 끝이 작은 발가락 간격으로 갈라져 걸렸다.

행주를 씻은 물에 누런 덩어리가 떴다. 어머니는 반대쪽도 닦고 두 손을 내려놓았다. 천이 벗겨진 자리 아래로 접착제 한 줄이 늘어나 타일에 닿았다. 옆 타일에도 같은 것이 묻었다. 어머니가 수건 위를 손바닥으로 눌러 높이를 낮추자 두 군데의 접착제가 납작하게 퍼졌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준호의 양말 신은 발은 그보다 조금 앞에서 흔들렸다.

준호는 좌판을 잡은 손을 옮겼다. 지연도 손가락을 더 깊이 넣었다. 두 사람이 함께 일어서자 나무판과 타일 사이의 거리가 유지된 채 바닥과의 간격만 벌어졌다.

“이쪽으로 빼. 내가 받을게.”

준호가 오른쪽 벽으로 한 걸음 옮겼다. 지연은 좌판의 왼쪽 끝을 받쳐 수평으로 밀어 주었다. 준호가 판의 가운데까지 팔을 넣자 지연은 손을 뺐다. 그는 좌판을 세워 등받이와 다리틀이 놓인 담요 위에 내려놓았다.

의자를 완전히 치운 자리에는 두 장의 타일이 어린아이의 앉은 발 간격을 유지한 채 바닥 위에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