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윤서: 저는 어머니 휴대전화에서 제 얼굴로 돈을 빌려 달라는 영상통화를 차단하고, 전화기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통화 창이 닫히자 같은 화면에 전날 받은 마네킹 반출 사진이 나왔습니다. 오른쪽 무릎에 갈고리 모양의 흠집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 매장까지 와 달라고 했습니다.

정임: 딸은 먼저 내려갔어요. 저는 그릇을 치우고 갔고요. 계산대 의자에 앉으니까 윤서가 유리창 쪽을 가리켰어요. 어제 실어 갔다던 게 거기 서 있었어요.

이 인터뷰는 2034년 9월 6일, 주상복합 상가 1층 무인 의류점에서 진행했습니다. 철거 의뢰인 윤서 씨와 어머니 정임 씨가 함께 답했습니다. 인용한 현장 녹취는 9월 3일부터 5일까지 철거 기사의 작업용 카메라에 저장된 음성입니다.

먼저 차량의 적재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회수한 몸체 세 개는 각각 봉인 번호 061, 062, 063의 운송함에 들어 있었습니다. 인터뷰 시작 전 기사가 차량 문을 열었습니다. 윤서 씨와 정임 씨가 보는 앞에서 세 번호를 읽었고, 함을 내놓거나 봉인을 자르지는 않았습니다.

접수자: 같은 물건을 세 번 찍은 자료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요청이 맞습니까.

윤서: 네. 두 번째 걸 꺼낼 때 첫 번째 함은 차에 있었어요. 세 번째 걸 꺼낼 때도 앞의 두 함이 나란히 있었고요. 제가 뒤에 붙인 종이까지 확인했어요.

제출 자료는 반출 사진 세 장, 매장 평면도, 세 운송함의 투과검사 영상, 윤주 씨의 다리 수술 사진입니다. 납품 기록은 철거 의뢰서에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윤주 씨는 윤서 씨의 동생으로, 반년 전에 사망했습니다.

수술 사진은 정임 씨가 보냈습니다. 한 장의 병원 출력물에 무릎 피부를 찍은 사진과 오른쪽 다리의 뼈 촬영 사진이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정임 씨가 볼펜으로 둘러싼 부분은 무릎 바깥쪽의 굽은 수술 자국입니다. 아래쪽 발목의 금속 고정물은 표시 없이 화면에 남아 있습니다.

정임: 사진을 돌려서 보면 무릎 자국 끝이 똑같이 꺾여요. 그래서 같이 보냈어요. 윤주 다리인지 봐 달라고요.

윤서: 그 흠집은 옮길 때 생겼어요. 제가 진열대 모서리에 긁었어요. 엄마한테도 그렇게 말했고요.

[9월 3일, 철거 녹취]

기사: 얼굴부터 꺼 주세요. 눈금이 얼굴 위로 올라가서요.

윤서: 계산대 태블릿에 있어요. 지금 끌게요.

기사: 움직이는 제품입니까.

윤서: 아니요. 안이 비어 있어요. 발바닥을 받침에 끼워서 세우는 거예요.

납품 기록의 품명은 성인 여성형 수지 몸체입니다. 구동부와 내부 전원은 없으며, 받침을 포함한 무게는 7.4킬로그램입니다. 얼굴은 진열창 천장에 설치된 투사 장치가 만듭니다. 고객이 가까이 서면 천장 스피커에서 인사말이 나옵니다.

접수자: 얼굴 자료는 누가 등록했습니까.

윤서: 윤주가요. 개업할 때 자기 사진을 줬어요. 옷도 걔가 골랐고요. 지난달부터 가게 정리를 시작해서 얼굴 계약도 해지했어요. 장치는 이번 주까지 쓸 수 있었어요.

정임: 사람이 없을 때 가도 얼굴은 있었어요. 저는 계산대에서 도시락을 먹었어요. 거기가 앉을 데예요.

9월 3일 사진에는 기사가 마네킹을 어깨에 걸치고 출입문을 나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오른쪽 무릎의 흠집과 비어 있는 진열창이 함께 찍혔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윤서 씨가 보낸 문장이 있습니다.

〈반출 확인했습니다. 내일은 안쪽 집기 부탁드립니다.〉

그날 반출품은 업체 작업장에서 수지 폐기물로 분리됐습니다. 다음 날 들어온 몸체에는 새 운송함이 배정됐습니다. 현재 차량에 있는 세 함의 번호는 이때부터 시작합니다.

[9월 4일, 철거 녹취]

윤서: 유리문은 제가 잠갔어요. 열쇠도 제가 갖고 있고요.

기사: 바깥 유리는 안 열립니까.

윤서: 고정 유리예요. 매장 안에서만 들어갈 수 있어요.

기사: 어머님은 계산대에 그대로 계세요. 몸체가 넘어가면 여기 통로를 막습니다.

평면도에서 계산대 의자 앞쪽을 기준점으로 잡았습니다. 첫 몸체의 받침까지 직선거리는 9미터입니다. 의자와 진열창 사이에는 낮은 진열대 두 개가 있으며, 위로 얼굴과 어깨가 보입니다. 진열창의 내부 출입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윤서 씨가 열쇠로 문을 열었습니다.

정임: 윤주 얼굴이 켜져 있었어요. 딸이 태블릿을 누르니까 없어졌어요. 흰 얼굴로 꺼냈고요.

윤서: 기사님 혼자 못 드셨어요. 전날에는 어깨에 올리고 나가셨는데 그날은 저한테 아래를 잡아 달라고 했어요.

기사의 운송 단말에는 중량 초과 표시가 남아 있습니다. 기존 품목으로 입력한 7.4킬로그램을 지우고 실측값을 입력했습니다. 윤서 씨는 잠긴 공간에 물건을 다시 들여놓은 사람이 있다며 도난 신고 때 제출할 기록도 요청했습니다. 업체는 운송물 내부 확인 절차를 적용해 이동식 투과 장비로 몸체를 촬영했습니다.

영상은 촬영 직후 의뢰 폴더에 올라왔습니다. 당시 현장 단말에 표시된 것은 중량과 촬영 완료 여부였습니다. 윤서 씨와 기사는 몸체를 061번 함에 넣고 양쪽 잠금쇠에 봉인을 붙였습니다.

접수자: 첫 함은 그날 어디에 있었습니까.

윤서: 지하 하역장 차량이요. 기사님이 다음 날 집기까지 한 번에 가져가기로 했어요. 무릎 흠집이 보이게 찍어 달라고 해서 두 번째 사진도 받았어요.

두 번째 사진의 앞쪽에는 뚜껑을 닫기 전 운송함이 있습니다. 오른쪽 배경에는 커튼을 걷어 올린 탈의실이 보입니다. 바닥에는 회색 매트만 놓여 있습니다. 매트 네 모서리와 뒤쪽 벽이 모두 사진 안에 들어 있습니다.

[9월 5일 오전, 철거 녹취]

정임: 커튼은 제가 열었어요. 바닥 닦으려고요. 걸레는 지금도 문 옆에 있어요.

기사: 건드리셨습니까.

정임: 안 건드렸어요. 제자리에서 커튼만 놨어요.

윤서: 차에 있는 걸 먼저 보여 주세요. 엄마는 여기 앉아 있어요.

작업용 카메라는 윤서 씨와 기사가 하역장에 내려가 061번 봉인을 읽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매장에 돌아왔을 때 정임 씨는 계산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탈의실 안에는 두 번째 몸체가 서 있었습니다. 오른쪽 무릎에는 갈고리 모양의 흠집이 있었습니다.

탈의실 매트 중심에서 의자까지는 4미터입니다. 몸체의 발끝은 출입구를 향했지만 얼굴은 계산대 쪽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커튼을 걷으면 의자에 앉은 사람과 마주 보는 배치입니다.

접수자: 탈의실에도 얼굴 장치가 있습니까.

윤서: 옷 입은 모습을 벽에 띄우는 장치요. 같은 계정이라 얼굴 파일은 거기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마네킹 모드는 제가 켠 적이 없어요.

정임: 거기서는 입을 안 벌렸어요. 제가 앉아 있는 동안은요.

접수자: 입이 움직인 건 뒤의 직원실에서입니까.

정임: 네. 둘을 따로 적어 주세요.

두 번째 몸체를 촬영하고 062번 함에 넣은 뒤, 윤서 씨는 정임 씨를 주거동 승강기 앞까지 데려갔습니다. 정임 씨가 승강기에 타는 모습과 윤서 씨가 하역장 쪽으로 돌아서는 모습이 작업 영상에 연속해서 나옵니다.

윤서: 엄마한테 점심은 집에서 먹으라고 했어요. 직원실에 있던 가방도 꺼내 드렸고요. 그때 안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선반까지 전날 뗐으니까요.

세 번째 반출 사진은 두 번째 운송함을 출입문으로 밀어내기 직전에 찍혔습니다. 계산대 뒤 직원실 문이 열려 있습니다. 가방을 꺼낸 윤서 씨의 팔, 벽에 남은 선반 자국, 벽과 바닥이 만나는 선이 보입니다. 사진을 찍은 뒤 윤서 씨는 직원실을 잠갔습니다.

정임: 집에서 밥을 데우는데 영상전화가 왔어요. 윤서 얼굴로요. 이번에는 윤주가 말을 했어요.

제출된 휴대전화 녹화에서 얼굴은 윤서 씨의 정면 사진과 일치합니다. 음성은 정임 씨가 응답하기 전부터 나옵니다.

〈엄마, 계산대에 앉아 있어. 언니가 가방에 열쇠 넣었어.〉

정임: 가방에 손을 넣으니까 열쇠가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내려갔어요.

윤서: 집 열쇠예요. 가방 꺼내면서 제가 넣었어요. 엄마가 계산대에 두셨던 거요.

접수자: 그 통화를 할 때 윤서 씨의 위치를 확인하겠습니다.

윤서: 차 뒤요. 기사님하고 두 번째 함을 안쪽으로 밀고 있었어요. 제 휴대전화는 카메라 옆 선반에 놓여 있었고요.

녹화된 통화의 시각에 작업 영상에는 윤서 씨의 얼굴과 두 손이 나옵니다. 입은 닫혀 있습니다. 아침의 대출 요구 통화에는 계좌와 송금 버튼이 있었지만, 이 통화에는 송금 안내도 외부 링크도 없습니다. 정임 씨가 매장 출입문을 열자 통화가 종료됐습니다.

[9월 5일 오후, 철거 녹취]

윤서: 엄마, 왜 내려왔어.

정임: 네가 계산대에 있으라고 했잖아.

윤서: 전화 줘 봐.

정임: 뒤에서 또 해. 들어 봐.

계산대 뒤 직원실 문까지는 의자 등받이에서 60센티미터입니다. 문은 직원실 안쪽으로 열립니다. 윤서 씨가 의자를 통로로 당겨 놓고 문을 열었습니다. 카메라 화면에 몸체의 흰 발이 먼저 들어옵니다. 받침은 직원실 안에 있으며, 발끝은 계산대를 향합니다.

직원실에는 투사 장치가 없습니다. 열린 문으로 진열창 장치의 빛이 들어와 몸체 얼굴의 왼쪽 절반에 윤주 씨의 눈과 입을 비췄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흰 수지 그대로였습니다.

정임: 저걸 끄면 소리도 꺼지죠.

윤서: 태블릿 줘.

정임: 선이 이거잖아.

정임 씨는 계산대 아래 전원 멀티탭을 껐습니다. 매장 안내 스피커와 두 투사 장치가 함께 꺼졌습니다. 얼굴에서 눈과 입이 사라졌습니다. 작업 카메라의 마이크에는 그 뒤의 음성도 저장되어 있습니다.

〈엄마, 여기 앉아.〉

정임: 제가 의자에서 일어나 있었어요. 문 옆에요. 흰 데가 들렸어요. 입을 그려 놓지 않은 자리요.

영상에서 입 위치의 수지가 앞쪽으로 솟았다가 내려갑니다. 이음매나 절개선은 없습니다. 세 번째 음절이 나오는 동안 정임 씨의 손은 멀티탭 스위치 위에 놓여 있습니다.

세 번째 몸체도 투과 촬영 후 063번 함에 밀봉했습니다. 이 반출을 끝으로 사흘간의 작업 녹취가 종료됩니다.

접수자: 검사 영상을 지금부터 같은 방향으로 놓겠습니다. 촬영 순서는 바꾸지 않습니다.

윤서: 첫 번째가 거꾸로 나와요.

첫 촬영 때는 머리 쪽부터 장비에 넣었고, 나머지 두 번은 받침 쪽부터 넣었습니다. 화면에 저장된 방향도 달랐습니다. 061번 영상을 반 바퀴 돌리고, 세 영상의 받침 바닥을 같은 수평선에 맞췄습니다. 이어 오른쪽 발목이 나란히 오도록 확대 비율을 조정했습니다.

수지 외피 안에는 세 영상 모두 두개골, 척추, 골반과 팔다리뼈가 이어져 있습니다. 관절을 고정하는 제품 부품은 없습니다. 납품 기록에서 빈 공간으로 표시한 몸통 안쪽도 조직의 음영으로 차 있습니다.

정임: 제가 동그라미 친 건 무릎이에요.

접수자: 네. 아래쪽 발목까지 그대로 보겠습니다.

수술 사진을 세 영상 왼쪽에 놓았습니다. 무릎의 굽은 자국 아래로 긴 고정판이 내려옵니다. 발목 바로 위에는 나사 하나가 중간에서 끊겨 있습니다. 머리가 붙은 부분과 뼈 안에 남은 끝부분 사이에 좁은 틈이 있습니다.

세 검사 영상의 같은 자리에도 그 틈이 나옵니다. 고정판의 구멍 수, 빈 구멍의 위치, 비스듬히 남은 나사 끝의 방향이 일치합니다. 각 화면 위에는 촬영 당시 입력한 봉인 번호가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세 마네킹 안에 윤주의 시신이 한 구씩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