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

“소매를 좀 잡아 주세요.”

서기가 천 끝을 잡았다. 연주는 숟가락 옆면으로 굳은 죽을 긁었다. 덕수의 작업복에는 단추가 셋 남아 있었다. 소매를 뒤집자 안쪽 솔기에서도 흰 부스러기가 나왔다. 연주는 무릎 사이에 둔 양철통으로 그것을 받았다.

“이 사람이 입었던 겁니까.”

“어제 벗겼어요.”

서기는 소매를 놓고 손가락을 비볐다. 연주는 숟가락을 통에 넣었다. 손을 씻은 뒤 젖은 손바닥을 앞치마에 문지르고, 빨래를 받는 탁자에 신청서를 펼쳤다. 서기의 가방을 놓을 자리는 그만큼 비어 있었다.

1939년 10월 3일이었다. 해진 시내의 공동장례 신청서는 한 장이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 아래에 발견 일시와 장소를 쓰는 칸이 있고, 맨 아래에는 시신을 인도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게 되어 있었다. 연주는 자기 이름 옆에 손빨래방 주소를 적었다.

“관계는요.”

“빨래를 맡겼어요.”

“친척은 아니고요.”

“네.”

서기는 관계 칸에 줄을 그었다. 덕수의 성을 묻자 연주는 세탁 장부를 가져왔다. 장부 첫 장에도 덕수라고만 적혀 있었다. 옷의 수량과 맡긴 날, 찾아간 날이 그 이름 뒤에 붙었다. 서기는 성을 적지 않고 다음 칸으로 펜을 옮겼다.

빨래방은 밤에도 문을 열었다. 부두의 짐수레가 끊긴 뒤에는 선원들이 왔고, 새벽에는 덕수가 왔다. 덕수는 작업복 한 벌을 내려놓고 전날 맡긴 옷을 받았다. 연주는 화로에 얹은 솥에서 죽을 떠 주었다. 덕수가 먹는 동안 빈 주머니를 뒤집고 단추 수를 셌다.

죽에는 쌀알보다 물이 많았다. 그릇 밑바닥의 푸른 테두리가 위에서도 보였다. 덕수는 그릇을 기울여 마신 다음 문 옆 물통에서 한 바가지를 떠 씻었다. 씻은 그릇은 엎지 않고 바로 놓았다. 바닥에 남은 물은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어제도 그 그릇을 썼다. 덕수는 먹고 일어나 작업복 꾸러미를 옆구리에 끼었다. 오른발은 문턱 밖에 놓였고 왼발은 안에 남았다. 무릎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꾸러미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입에서 나온 죽이 그가 입고 있던 옷의 오른쪽 소매에 묻었다.

연주는 덕수의 발을 안으로 밀고 문을 반쯤 닫았다. 낮에 부두에서 돌아온 두 사람이 시신을 뒤쪽 널판으로 옮겼다. 널판은 평소 비누 상자를 말리는 데 썼다. 상자들은 지금 처마 밑에 쌓여 있었다.

서기는 널판 쪽을 보고 신청서에 발견 장소를 적었다.

“가게 안입니까, 밖입니까.”

“문턱이에요.”

그는 ‘입구 문턱’이라고 적고 가방에서 종이 두 장을 더 꺼냈다. 가장자리가 닳은 쪽이 아래로 갔다. 위의 종이에는 공동우물, 아래의 종이에는 서쪽 다리 밑이라고 쓰여 있었다. 두 장 모두 시신 수습인 칸에 연주의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첫 날짜는 9월 3일이었다. 다리 밑에서 발견한 남자는 부두 창고의 마대 구멍을 꿰맸다. 새벽이면 빨래방에서 죽을 먹고 실밥이 붙은 바지를 맡겼다. 연주는 그가 맡긴 바지 두 벌과 저고리 한 벌을 장부에서 짚었다. 각 줄 끝에는 옷을 찾아간 표시 대신 작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두 번째 날짜는 9월 19일이었다. 공동우물 옆에서 발견한 남자는 배에서 내린 석탄을 골목 안으로 날랐다. 그가 쓰던 그릇도 바닥에 푸른 테두리가 있었다. 장부에는 목둘레가 검어진 적삼과 무릎을 덧댄 바지가 적혀 있었다. 그 옆에도 동그라미가 있었다.

“이번에도 직접 염을 하십니까.”

“천만 주시면 해요.”

서기는 종이 세 장을 나란히 놓았다. 발견 장소의 거리를 적는 작은 칸이 있었다. 앞선 기록에는 모두 빨래방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서쪽 다리까지 사백 보, 공동우물까지 칠십 보였다. 서기는 새 신청서의 거리 칸을 비워 두었다가 숫자 영을 적었다.

가게 문이 열려 있어 탁자에서도 우물의 지붕이 보였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에 붉은 물통이 걸려 있었다. 다리는 그 너머 창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연주는 종이가 젖지 않도록 탁자의 물자국을 닦았다. 걸레가 지나갈 때마다 세 장의 모서리가 조금씩 들렸다.

우물집 여자가 물값을 받으러 왔다. 여자는 탁자 위 이름을 거꾸로 읽다가 널판 위에 덮인 발을 보았다. 연주는 장부 사이에 끼워 둔 동전을 꺼냈다. 여자는 동전을 받지 않고 문 쪽을 가리켰다.

“어제 아침에도 물을 길었는데.”

“몇 시였어요.”

“생선 수레 지나간 뒤요. 누런 겉옷 입고. 등 가운데 네모로 기운 거.”

연주는 장부의 빈 여백에 10월 2일이라고 적었다. 여자는 그 아래에 손톱을 대고 누런 옷이라는 말도 쓰게 했다. 동전을 받은 뒤에는 널판 가까이 가지 않고 나갔다.

서기가 우물집 여자의 이름을 받아 적는 동안 부두 감독이 도착했다. 시신을 확인해 달라는 전갈을 받고 온 사람이었다. 연주는 덕수의 얼굴을 덮은 천을 턱까지 내렸다. 감독은 널판 옆에 서서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썼다.

“맞습니다. 그런데 사흘 전부터 안 나왔어요.”

“그동안 다른 일을 했습니까.”

“우리 쪽에는 안 나왔습니다. 다른 데는 모르고요.”

연주는 9월 30일이라고 적었다. 감독은 장부를 내려다보며 마지막으로 품삯을 준 날도 말했다. 연주는 그 날짜를 앞 날짜 위에 썼다. 덕수의 출근과 세탁 기록은 줄이 맞지 않았다. 죽을 내준 날은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감독이 나가자 서기는 얼굴의 천을 다시 올렸다. 천 아래로 덕수의 턱 끝이 걸렸다. 연주가 천을 들어 코 위로 당겼다. 서기는 펜촉을 닦으며 어제 아침 우물에 간 시각을 다시 물었다.

“여기서 쓰러진 건 해 뜨기 전이에요.”

연주는 문턱을 가리켰다. 틈에 낀 쌀알 하나가 발에 밟혀 납작해져 있었다. 서기가 몸을 숙였을 때 골목에서 헌옷 장수의 목소리가 났다.

장수는 옆구리에 신문지 꾸러미를 끼고 있었다. 누런 겉옷의 등 가운데 네모난 천이 붙어 있었다. 덧댄 천만 나머지 부분보다 빛이 짙었다. 그는 꾸러미를 내려놓고 안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서기는 장수가 몸을 돌릴 때까지 등을 보고 있었다.

“그 옷은 언제 샀습니까.”

“어제 아침요. 여기서.”

“아침 언제요.”

“생선 수레 올 때요. 돈이 모자라서 나머지는 오늘 준다고 했는데.”

장수는 동전을 탁자에 한 줄로 놓았다. 연주는 세 개씩 밀어 모았다. 장수의 오른쪽 소매 끝은 젖어 있었다. 서기가 우물에 갔느냐고 묻자 장수는 겉옷 안에 입은 셔츠를 당겨 보였다.

“물이 새서 젖었어요. 물통 이쪽 손잡이 아래가 터졌더군요.”

연주는 장부의 ‘누런 옷’ 옆에 헌옷 장수라고 적었다. 우물집 여자가 눌러 놓은 손톱 자국 때문에 펜촉이 한 번 걸렸다. 장수는 옷자락을 털고, 남은 옷은 언제 가져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연주는 널판을 가리키지 않고 세탁대 아래의 빈 바구니를 밀어 넣었다.

“오늘은 없어요.”

서기는 신고 접수 시각을 확인했다. 어제 오후 세 시였다. 그는 장부의 옷값 옆에 아침이라고 쓰고, 신청서의 시각 아래에 짧은 선을 그었다.

“신고 전에 파셨네요.”

“맡긴 게 있었어요.”

연주는 장부를 돌려 미납 세탁비 칸을 보여 주었다. 덕수의 이름 아래로 작은 금액이 이어졌다. 몇 줄은 먹을 덧칠해 굵었다. 서기는 옷값을 따로 종이에 옮긴 다음 세탁비를 더했다. 손가락 끝의 죽 부스러기는 이미 떨어져 없었다.

장수가 가져온 신문에는 유럽의 전쟁을 알리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접힌 면을 펴자 봉쇄된 항구들의 이름이 세로로 나왔다. 연주는 신문을 반으로 찢어 한쪽은 젖은 탁자에 깔고 다른 쪽으로 다 마른 속옷을 쌌다. 항구 이름 하나가 꾸러미 안으로 접혔다.

서기는 시에서 주문한 검은 천도 확인했다. 연주는 벽에 걸린 표본을 내려 주었다. 서기가 창 앞에 겹쳐 들자 해가 비치는 곳에 작은 구멍들이 나타났다.

“두 겹으로 해야겠습니다. 창 치수는 일꾼 편에 보낼 겁니다.”

연주는 표본을 접어 세탁 장부 밑에 넣었다. 등화관제에 쓸 천은 삶지 말라는 말에, 솥 옆으로 옮겨 두었던 빈 대야를 다시 벽 쪽에 세웠다. 죽솥에서는 뚜껑 테두리를 따라 물이 조금씩 흘렀다.

장례용 천은 오후에 왔다. 서기는 보조비 총액에서 미납 세탁비를 빼고 나머지를 세어 주었다. 연주는 동전과 지폐를 나누어 받았다. 세탁비 칸에 서기가 가로줄을 긋고, 수습 영수증에는 연주가 손도장을 찍었다.

앞선 영수증 두 장에도 같은 자리에 손도장이 있었다. 아래쪽에 지급을 마쳤다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서기는 새 영수증을 그 위에 겹쳤다. 연주는 장부에서 덕수의 누런 겉옷 옆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다리와 우물에서 발견된 두 사람의 옷에도 찍혀 있는 표시였다.

“찾아올 사람은 더 없습니까.”

“여기로는 온 적 없어요.”

서기는 문밖에서 수레를 기다렸다. 연주는 세탁대 위를 비우고 미지근한 물 한 대야를 널판 옆에 가져갔다. 널판 다리 아래에는 접은 헝겊을 괴었다. 물이 바닥으로 흐르면 출입문 쪽으로 가는 기울기였다.

덕수의 입술 양쪽에 죽이 말라 붙어 있었다. 연주는 젖은 헝겊을 오른쪽 입가에 대고 잠시 눌렀다. 헝겊을 옮기자 피부 위로 불어난 쌀알이 드러났다. 숟가락의 둥근 끝으로 그것을 떼어 양철통에 넣었다. 아침에 소매에서 긁은 부스러기 위로 젖은 덩어리가 떨어졌다.

왼쪽 입가에도 같은 순서로 했다. 물을 묻히고, 누르고, 떼어 냈다. 턱 밑을 닦을 때는 머리가 옆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귀 아래에 접은 수건을 끼웠다. 목에서 나온 물은 쇄골의 오목한 곳에 고였다. 연주는 헝겊의 마른 모서리로 그 물을 받았다.

작업복은 널판 발치에 놓여 있었다. 아침에 긁어 둔 소매를 펴자 접힌 곳에서 작은 덩어리가 하나 더 나왔다. 연주는 엄지손톱으로 그것을 밀어 양철통에 떨어뜨렸다. 입을 닦은 헝겊도 통에 넣었다. 통 가장자리에 얹은 숟가락의 손잡이가 바깥으로 나와 있어 안쪽으로 돌려 놓았다.

덕수의 손톱 밑에는 검은 때가 있었다. 연주는 손가락 사이에 물을 흘리고 손등을 닦았다. 손바닥의 굳은살에는 물이 오래 남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힐 때 팔꿈치가 굽혀지지 않아 소매를 어깨 가까이까지 걷어 모은 다음 손부터 넣었다. 새 천은 덕수의 발끝보다 한 뼘 길었다.

수레꾼이 들어와 널판의 머리 쪽을 들었다. 연주는 발 쪽을 들었다. 둘은 널판을 가로로 돌려 문턱을 넘겼다. 수레에 싣고 나서야 연주는 문틀에 묻은 젖은 손자국을 앞치마로 닦았다. 서기는 신청서 세 장을 가방에 넣고 수레 옆으로 걸어갔다.

수레바퀴가 공동우물 앞을 지났다. 우물집 여자가 물통을 옆으로 비켰다. 수레는 창고 쪽으로 꺾였고 가게에서는 뒤쪽 바퀴 하나가 잠시 보였다. 연주는 널판이 있던 바닥에 물을 붓고 문 쪽으로 쓸어 냈다. 문턱 틈의 쌀알이 빗자루에 붙어 나왔다.

해가 기울 때 새 일꾼이 검은 천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다. 어깨에 밧줄 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시에서 보냈다는 쪽지를 내놓고 꾸러미를 세탁대에 올렸다. 연주는 쪽지에 적힌 천의 길이를 장부에 옮겼다. 일꾼은 문 옆에 서서 밧줄을 감았다.

“주소는요.”

“오늘 내려왔어요. 잘 데는 아직 없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은요.”

“혼자 왔습니다.”

연주는 이름을 받아 적고 그 아래에 빈칸 두 개를 남겼다. 검은 천을 조금 풀어 창 치수 쪽지와 나란히 놓은 다음 일꾼에게 의자를 내주었다. 밧줄은 그의 두 발 사이에 둥글게 놓였다.

솥뚜껑을 여니 안쪽에 맺힌 물이 죽 위로 떨어졌다. 연주는 바닥에 푸른 테두리가 있는 그릇에 죽을 떴다. 그릇 바깥으로 흐른 것은 엄지로 닦았다. 일꾼 앞에 그릇을 놓고 서랍에서 숟가락과 접힌 종이봉지를 꺼냈다. 숟가락은 그릇 오른편에 가지런히 놓였다.

연주는 ‘쥐약’이라고 인쇄된 봉지의 가루를 그 그릇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