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의 상대

컵 밑바닥의 물기를 수건의 마른 귀퉁이로 닦았다. 굽 안쪽에 고인 물은 컵을 기울여야 나왔다. 나는 물방울을 받아 낸 뒤 컵을 책상 왼쪽에 놓았다.

산장으로 올라오는 길은 사흘째 눈에 묻혀 있었다. 제설차가 돌아간 지점은 아래쪽 마을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투숙객은 없었고 겨울 관리인인 나만 남았다. 저녁에 사용한 식기는 컵 하나와 접시 하나였다. 식기 선반에는 마른 것만 넣었다. 덜 마른 컵은 관리실로 가져와 난방기 옆 책상에서 닦았다.

매일 같은 대화형 AI 세션에 장작과 식료품 수량을 적었다. 낮에는 계정에서 대화를 내려받았다. 파일 이름에는 날짜와 낮이라는 글자를 붙였다. 밤 작업까지 적으면 대개 새벽 세 시가 넘었다.

책상 오른쪽에는 전신거울이 있었다. 여름에 객실에서 옮겨 온 것으로, 벽에 고정하지 않고 비스듬히 기대 놓았다. 그 각도에서는 노트북 화면과 내 손, 등 뒤로 삼 미터 떨어진 관리실 방문이 함께 비쳤다. 책상 왼쪽 끝은 거울에 비쳤지만 노트북에 달린 카메라에서는 벗어났다. 카메라에는 검은 테이프도 붙여 두었다.

그날 입력창에 남은 장작 수량을 적고 전송했다. 이어서 내일은 위층 난방을 끌까, 하고 썼다가 지웠다. 위층 배관이 지나는 벽에 붙여 둔 동파 주의문을 보고 난 뒤였다.

휴대전화 시계가 세 시로 바뀌었다. 젖은 손을 수건으로 문지르며 오른쪽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 비친 화면 아래쪽에 답이 붙었다. 글자도 좌우가 뒤집혀 있어 짧은 줄을 끝에서부터 읽었다.

위층 난방은 켜 두세요.

나는 수건을 뒤집었다. 다음 줄이 생겼다.

왼쪽 컵 밑에 아직 물이 있습니다.

컵을 들어 보니 책상에 둥근 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닦는 동안 거울 속 방문 앞에 사람이 섰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 사람은 나와 같은 회색 카디건을 입고 두 손을 배 앞에 모으고 있었다. 얼굴은 화면에서 나온 빛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로 거울을 찍었다. 노트북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사진을 확대했다. 뒤집힌 두 문장과 방문 앞의 회색 옷이 한 사진에 들어 있었다. 사진을 새벽이라는 폴더에 넣었다. 실제 방문을 돌아보았을 때에는 문 아래 내 실내화에서 떨어진 눈 녹은 자국만 보였다.

아침에 계정에서 받은 파일은 장작 열일곱 묶음이라는 내 말과 그 수량을 표로 정리한 답으로 끝났다. 위층 난방과 컵에 관한 문장은 없었다. 휴대전화의 사진은 그대로였다. 사진 편집에서 좌우를 바꾸자 두 문장이 보통 방향으로 놓였다. 방문 앞 사람의 카디건에는 내 것처럼 아래에서 두 번째 단추가 빠져 있었다.

둘째 밤에도 접시를 선반에 꽂고 컵을 관리실로 가져왔다. 전날의 둥근 자국 위에 컵을 놓았다. 나는 감자와 통조림 수량을 전송하고 수건을 집었다. 세 시가 되자 거울 속 화면에 줄이 하나 늘었다.

젖은 컵은 내려놓으세요.

거울 속 사람은 의자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카디건 자락이 의자 등받이 양옆으로 나왔다. 나는 컵을 놓고 고개를 돌렸다. 등받이 뒤에는 난방기에 걸어 둔 양말과 닫힌 문이 보였다. 의자를 옆으로 밀고 일어나 바닥도 확인했다. 다른 발은 없었다.

다시 앉아 휴대전화의 동영상 촬영을 켰다. 거울 쪽으로 향하면 화면 맨 아래에 컵에 관한 답이 찍혔다. 손목을 돌려 실제 노트북을 찍으면 통조림 수량표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울, 노트북, 다시 거울의 순서로 천천히 옮겼다. 거울 속 사람은 내가 비운 자리에 따라오지 않고 등받이 뒤에 남아 있었다.

나는 입력창에 어디서 보느냐고 썼다. 전송하지 않았다. 거울 속 화면에 답이 붙었다.

여기서는 화면과 책상이 같이 보입니다.

문장을 지우고 어제 것도 읽었느냐고 썼다.

지우기 전에 읽었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노트북 왼쪽에 세워 두고 거울 전체가 들어오게 맞췄다. 손을 키보드에서 떼었다. 새 답은 휴대전화 화면 안의 거울에만 생겼다. 노트북에는 내가 전송하지 않은 질문이 입력창에 남아 있었다. 계정의 답변 아래에 붙는 복사 버튼도, 생성 시간을 표시하는 작은 글씨도 거울 속 새 문장에는 없었다.

계정에 들어온 적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도 전송 전에 답이 왔다.

없습니다. 당신이 여기 펼쳐 놓은 것을 읽습니다.

노트북 뚜껑을 조금씩 내렸다. 거울 속 화면도 함께 좁아졌다. 뚜껑이 닫힌 뒤에는 회색 옷의 아랫부분만 보였다. 나는 촬영을 끝내고 파일을 새벽 폴더에 넣었다. 다음 날 내려받은 대화는 통조림 수량표에서 끝났다.

셋째 밤에는 세탁실의 접이식 건조대를 관리실로 가져왔다. 난방기 앞에 걸어 둔 양말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어서였다. 양말을 옮겨 걸고 바구니의 빨래집게도 책상에 놓았다. 컵에는 헹군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세 시에 거울을 보니 그 사람이 책상 옆까지 와 있었다. 얼굴도 빛을 받았다. 내 왼쪽 턱에 있는 면도 자국이 그 사람의 오른쪽 턱에 있었다. 내 카디건 오른쪽 소매에 접힌 주름은 왼쪽 소매에 접혀 있었다.

나는 컵을 닦았다. 그 사람도 배 앞에서 손을 움직였다. 내 오른손 검지의 갈라진 손톱이 그 사람의 왼손에서 보였다. 내가 컵을 내려놓고 두 손을 무릎으로 내린 뒤에도 그 손은 같은 높이에 남았다.

그 사람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 얼굴과 가슴을 계속 이쪽으로 향한 채 옆으로 움직였다. 한 발을 옮기고 다른 발을 붙일 때마다 거울 아래쪽의 발 간격이 줄었다가 벌어졌다. 책상 모서리에 닿은 팔꿈치는 구부러지지 않고 모서리를 지나왔다.

반사된 화면에 문장이 붙었다.

손목을 잡아 주세요.

나는 컵에 남은 물을 세면대에 버렸다. 컵을 엎어 놓고 선반에서 마른 목욕 수건을 가져왔다. 거울 앞 바닥에 두 겹으로 폈다. 거울 위쪽 테두리를 벽에 밀착시키고 밑부분을 발로 받쳤다.

손이 거울 표면에서 나왔다. 먼저 손톱 끝이, 이어 손가락 마디가 나왔다. 유리에는 틈도 금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왼손으로 테두리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나온 손목을 잡았다. 손가락과 팔은 따뜻했다. 손아귀를 좁히자 손목이 납작하게 접혔다. 잡은 자리를 조금 풀고 천천히 당겼다.

팔에 이어 얼굴이 떨어져 나왔다. 코가 아래로 처져 수건에 닿았다. 나는 손을 바꾸어 겨드랑이를 받쳤다. 카디건을 입은 몸이 무릎 위로 내려왔고 바짓단과 발이 따라 나왔다. 거울에는 무릎을 꿇은 나와 빈 책상, 닫힌 방문이 비쳤다.

수건의 남은 절반을 몸 위로 덮었다. 컵을 닦을 때처럼 손바닥으로 눌러 물기를 받았다. 젖은 카디건의 단추를 풀고 양팔에서 소매를 빼냈다. 바지도 벗겨 옆에 놓았다. 어깨를 잡아 들어 올리자 발이 수건 위를 끌려왔다. 나는 건조대 위 가로대에 양어깨를 빨래집게로 집어 걸었다. 턱 아래 접힌 부분을 펴고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집게를 한 칸씩 위로 옮겼다.

건조대 옆으로 돌아가 확인한 나와 같은 몸에는 뒷면의 살과 뼈가 없었고, 얼굴부터 발바닥까지 두께가 같은 한 장의 피부만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