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증거

미정은 현관 열쇠 구멍에 실을 꿰어 약국 이름표를 묶었다. 종이 뒷면에는 사택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었다. 일주일 동안 열쇠를 세 번 놓쳤다. 한 번은 약국 계산대 밑에서 나왔고, 두 번은 계단에서 이웃이 주워 주었다.

태수가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주머니에 넣어. 손에 들고 다니지 말고.”

미정은 왼손으로 실을 잡고 오른손으로 매듭을 당겼다. 왼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실이 빠졌다. 두 번째에는 실을 중지에 감았다.

“여보, 치과에서 전화 오면 금요일에 간다고 해줘.”

“어제 예약 아니었어?”

“갔는데 세탁소였어.”

냉장고에는 치과 예약증이 붙어 있었다. 1996년 10월 9일, 오후 세 시. 그 옆의 주간 일정표에는 같은 시각에 세탁소 주소가 적혀 있었다. 미정은 예약증을 떼어 식탁에 놓았다. 태수는 두 종이를 나란히 펴고 일정표의 날짜 밑에 자로 선을 그었다.

사택 아래층은 택시회사 차고였다. 태수는 그곳에서 시험차량을 정비했다. 식탁 창문을 열면 차고 입구와 세차장 사이의 통로가 보였다. 막차가 들어오는 밤에는 세제가 섞인 물이 통로 배수구까지 흘렀다.

목요일마다 태수는 저녁을 함께 먹고 다시 내려갔다. 미정이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차고 작업등이 켜져 있었다. 지난주에는 막차가 들어간 뒤 여자가 왔다. 여자는 태수와 시험차에 탔고, 차는 차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미정은 식탁 달력의 다음 목요일에 동그라미를 그었다.

그날 밤 장롱에서 카메라 가방을 꺼냈다. 안에는 필름카메라와 긴 렌즈, 빈 건전지 포장이 들어 있었다. 미정은 다음 날 역 앞 사진관에서 필름과 건전지를 샀다.

“어두운 데서 사람도 찍혀요?”

주인은 렌즈 옆면의 숫자를 확인했다.

“등이 있으면요. 흔들리지 않게 받치세요.”

그는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감기 레버를 두 번 당겼다. 미정은 주인이 적어 준 셔터 속도와 조리개 숫자를 가방 주머니에 넣었다.

첫 목요일, 미정은 밤 열두 시 반에 사택을 나왔다. 차고 통로 건너편에는 사용하지 않는 매표소가 있었다. 유리창 하나가 빠져 있었다. 미정은 창틀에 접은 수건을 깔고 카메라를 올렸다. 시험차까지는 여섯 걸음 폭의 통로를 건너면 됐다. 조수석 쪽 문이 정면으로 보였다.

마지막 택시가 세차장을 지나갔다. 태수가 시험차를 밀어 앞바퀴를 노란 정지선에 맞췄다. 지붕에 세운 작은 번호판에는 17이라고 적혀 있었다. 차고 벽의 시계는 열두 시 사십 분을 가리켰다.

여자는 회색 치마 정장을 입고 있었다. 태수가 조수석 문을 열어 주자 여자는 시트에 앉았다. 뒷좌석에는 두꺼운 모니터가 고정돼 있었다. 화면의 흰 줄이 아래에서 위로 움직였다. 앞 유리 안쪽에 끼운 운행표의 제목은 ‘신경망 주행학습’이었다.

태수가 여자의 머리카락을 들었다. 손가락 두 개가 목덜미에 닿았다. 여자는 턱을 조금 내렸다. 미정은 셔터를 누르고 레버를 당겼다. 태수의 손이 같은 자리에 있는 동안 두 장을 더 찍었다.

시험차가 차고로 들어간 뒤 미정은 사택으로 올라왔다. 카메라를 장롱에 넣고 현관 열쇠를 식탁 위에 놓았다. 약국 이름표의 모서리가 젖어 있었다.

토요일 아침, 사진관 주인은 인화한 사진을 건조대에서 꺼냈다. 대부분 열린 차 문과 남녀가 찍힌 사진이었다. 그는 노출이 어두운 한 장을 다시 인화했다. 여자의 목에 댄 남자의 손이 두 번째 인화지에서는 손가락까지 구분됐다.

미정은 봉투에서 그 사진을 골랐다.

“뒤쪽 화면도 찍혔네요.”

“차 안에 등이 있어서요.”

주인은 필름을 여섯 칸씩 잘라 보관용 비닐에 넣었다. 미정이 사진 뒷면에 날짜를 쓰는 동안 그는 새 필름을 카메라에 끼웠다.

그날 저녁 태수는 미정이 떨어뜨린 숟가락을 주웠다. 숟가락은 식탁 다리 옆에 있었다. 미정의 왼손은 밥그릇 위에서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멈춰 있었다.

“펴 봐.”

미정이 손을 폈다. 태수는 검지 끝을 누르고 첫째 마디를 두 번 굽혔다. 작업복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숫자를 적었다.

“오른손으로 먹어.”

“목요일에는 몇 시에 끝나?”

“시험 끝나야 알아.”

“같이 타는 사람도 직원이야?”

태수는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차 옆에 오지 마. 통로로도 들어오지 말고.”

미정은 오른손으로 새 숟가락을 꺼냈다. 식사 뒤 태수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사진 봉투를 찬장 맨 위 칸에 넣었다.

두 번째 목요일에도 미정은 매표소 창틀에 수건을 깔았다. 마지막 택시가 세차장을 통과했다. 태수는 지붕에 17번 번호판을 단 차를 노란 선에 맞췄다. 벽시계의 긴 바늘이 8에 닿았다.

회색 정장의 여자가 조수석에 앉았다. 이번에는 태수가 문을 닫지 않았다. 여자의 상체가 앞으로 숙여졌다. 이마가 대시보드 가까이 내려갔다. 태수는 머리카락을 걷고 목덜미에서 검은 선을 잡아당겼다.

선 끝에 네모난 부분이 달려 있었다. 태수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남은 선은 조수석 등받이 옆을 지나 뒷좌석 모니터 아래로 이어졌다. 미정은 손이 목에서 떨어지는 순간과 선을 좌석에 내려놓는 순간을 각각 찍었다.

카메라 가방을 집어 들다가 왼손에서 끈이 빠졌다. 가방 바닥이 매표소 바닥에 닿았다. 태수가 열린 차 문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미정은 창틀 아래에 쪼그려 앉았다. 시험차의 문이 닫혔고, 바퀴가 배수구 철판을 지나는 소리가 났다.

다음 날 사진관 주인은 두 번째 필름을 빛에 비춰 봤다. 남자의 손과 검은 선 사이에 빈 간격이 있었다. 그는 손이 움직인 앞뒤 세 칸을 차례로 인화했다.

“선 같은 게 있는데요.”

미정이 사진을 가리켰다.

“원판에도 있습니다.”

주인은 확대경을 건넸다. 미정은 작은 필름 위에 확대경을 대고 몸을 낮췄다. 머리카락 밑은 검게 뭉쳐 있었다.

“이 부분만 크게 뽑을 수 있어요?”

“가능합니다. 크면 입자가 보여요.”

미정은 사진 세 장을 겹쳐 봉투에 넣었다.

“다음 것까지 찍고 올게요.”

세 번째 목요일에는 비가 내렸다. 태수는 시험차 조수석 위에 차고의 이동식 처마를 당겨 놓았다. 번호판은 17, 앞바퀴는 노란 선, 벽시계는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미정은 앞선 사진 한 장을 창틀 옆에 놓고 같은 범위가 들어오도록 렌즈를 움직였다.

여자는 상체를 문 쪽으로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왼팔이 무릎 위를 가로질러 뻗어 있었고, 왼손은 문턱에 걸려 있었다. 태수가 여자의 어깨를 밀어 등받이에 붙였다. 팔은 당겨졌지만 손가락은 문턱의 고무 테두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태수가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미정은 그가 왼손을 들어 올리기 전에 셔터를 눌렀다. 여자의 소매가 팔꿈치 쪽으로 밀려 있었다. 손목 안쪽에는 피부와 다른 색의 작은 사각형이 보였다.

토요일 오전, 미정은 세 봉투의 사진을 식탁에 펼쳤다. 날짜별로 한 줄씩 놓았다. 태수가 밥그릇을 들고 서 있자 빈자리에 그릇을 놓으라고 손가락으로 짚었다.

“세 번 찍었어. 다른 날이라고 하지 마.”

태수는 의자를 빼고 앉았다. 첫 줄에서 지붕 번호판을, 둘째 줄에서 검은 선을 봤다. 셋째 줄의 사진은 식탁 끝으로 당겼다.

“필름은?”

“사진관에서 줬어.”

“어디 있어?”

미정은 사진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 사람하고 언제부터 만났어?”

태수는 밥그릇을 싱크대에 옮겼다. 안방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가져와 미정 앞에 놓았다. 법원 이름이 인쇄된 첫 장에 ‘판결’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사건명은 동산 인도였다. 원고는 택시회사, 피고는 강태수였다.

미정은 첫 장을 넘겼다. 별지의 보관 장소에는 지금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사택 주소가 적혀 있었다. 대상 물건은 사람 형태의 학습형 운전 보조장치 한 기였다. 그 아래에 키 161센티미터, 체중 54킬로그램이라는 수치가 있었다.

미정은 식탁 아래로 발을 모았다. 종이를 사진 옆으로 밀었다.

“이걸 나한테 왜 줘?”

태수가 별지 아래쪽을 짚었다. 왼손 집게 구동부 수리 이력에 날짜가 네 개 적혀 있었다. 마지막 항목은 ‘마모로 인한 파지 누락 재발’이었다. 제조번호 아래에는 인수자 강태수, 운용명 미정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회사가 돌려달래.”

봉투에는 법원 문서 외에 회사의 시험대장 사본도 들어 있었다. 가정 시험과 도로 시험이 같은 표에 나란히 적혀 있었다. 가정 시험의 확인 칸에는 공동 식사, 배우자 호칭, 생활 일정 수행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미정은 ‘여보’라고 적힌 호칭 예시 위에 손가락을 놓았다.

주행 일정 항목에는 매주 목요일 기존 자료를 덮어쓴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 밑의 수정 요청란에는 생활 일정의 목적지까지 함께 바뀐 사례가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치과 예약증과 같은 날짜 옆에 세탁소 주소가 있었다.

“목요일에 타는 여자는?”

“후속 시험기.”

“얼굴이 다르잖아.”

태수는 대장 두 번째 장을 넘겼다. 외피 변경이라는 항목 옆에 조수석 여자의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다. 미정은 그 장을 덮고 첫 번째 사진을 앞으로 당겼다.

“우리가 부부라는 서류를 줘.”

태수는 봉투에서 손을 뺐다.

“회사 종이 말고. 혼인신고 한 서류.”

태수는 서랍을 열지 않았다. 벽에 걸린 차고 열쇠를 집어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미정은 사진 세 장과 필름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어디 가?”

“회수 상자 가지러.”

태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차고의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미정은 판결문을 식탁에 남겨 두고 집을 나섰다. 차고 통로 반대쪽 계단을 내려가 큰길로 나왔다. 사진관까지 두 블록이었다.

사진관 주인은 필름 봉투에 적힌 날짜를 먼저 봤다. 미정이 고른 장면은 두 번째 목요일의 목덜미와 세 번째 목요일의 손목이었다. 그는 비닐에서 필름을 빼 가장자리의 연속 번호를 확인했다. 앞뒤 칸에도 같은 차와 열린 문이 이어져 있었다.

“여기하고 여기요. 가장 크게요.”

주인은 확대기에 필름을 걸었다. 목덜미를 인화지 가운데 맞추고 초점을 조절했다. 다음 필름에서는 문턱에 놓인 손목을 골랐다. 미정은 카운터 앞에 서서 기다렸다. 가방 끈을 오른쪽 어깨에 걸고 왼손은 카운터 위에 폈다.

주인이 마른 인화지 두 장을 건넸다. 숙인 여자의 목 아래에 둥근 접속구가 있었다. 검은 선 끝의 돌기가 들어갈 홈이 가장자리에 나 있었다. 손목 안쪽의 사각형은 작은 검사창이었다. 한쪽 모서리에 열쇠 끝 정도가 들어갈 틈이 있었고, 창 안에는 금속판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미정은 왼손 소매를 걷었다. 손목 안쪽을 엄지로 문질렀다. 주인은 카운터 위의 필름을 비닐에 도로 넣고 봉투를 밀어 주었다. 미정은 인화지가 접히지 않도록 가방 바깥에서 들고 나갔다.

사택으로 돌아왔을 때 차고 안에서는 판재를 끄는 소리가 났다. 통로 끝에 긴 상자의 한쪽 면이 세워져 있었다. 미정은 들어온 쪽 계단으로 올라갔다. 오른손으로 현관을 열고 식탁까지 걸어갔다.

판결문은 사진 사이에 펼쳐져 있었다. 미정은 확대 사진을 그 옆에 놓았다. 왼팔을 식탁에 대고 손바닥을 위로 돌렸다. 사진 속 검사창과 같은 위치에 가느다란 테두리가 있었다. 열쇠 끝을 테두리 모서리에 넣자 약국 이름표가 손등에 닿았다.

열쇠를 돌리자 덮개 한쪽이 들렸다. 미정은 오른손 검지로 덮개를 젖히고 별지를 손목 옆으로 당겼다. 판결문 별지의 제조번호 MJ-02-941106과 미정의 손목 안쪽 금속에 새겨진 번호는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