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번호

도시락 통에 물을 부어 밥알을 떼고, 창턱에 엎어 두었습니다. 통 밑에서 물이 떨어지는 동안 인계 편지의 첫 장을 씁니다.

박 관리인께. 1934년 10월 11일, 경성 동쪽 사무동의 인계 서기 정문수입니다. 세입자는 어제 모두 나갔습니다. 책상 여섯 개와 빈 서류함은 인수인에게 넘기고, 마지막 장부 한 궤짝은 제가 일층으로 내립니다. 서쪽 별동은 석 달 전에 철거되었으므로 이번 인계 목록에는 터와 담장만 올렸습니다. 이하에서는 장부의 표기대로 두 건물을 동동과 서동으로 적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삼층 서무실에서 썼습니다. 지금은 승강기 안입니다. 내려가던 카가 이층과 삼층 사이에서 멎었습니다. 남쪽 문을 조금 벌리니 이층 층문의 윗부분이 보입니다. 층문 위 가로틀과 카 바닥의 높이 차이는 제 무릎 아래까지입니다. 문을 두드리자 일층에 계시던 관리인께서 올라와 대답하셨습니다.

문틈으로 먼저 내민 열쇠 꾸러미는 받으셨습니다. 장부 궤짝은 틈보다 큽니다. 저는 궤짝 위에 편지를 놓고, 보내 드릴 서류의 목록을 이어 적습니다. 전등은 켜져 있습니다. 운전 손잡이는 아래로 내려간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계 서류 가운데 이 승강기와 관계된 자료 세 개를 붙입니다. 원본은 궤짝 안에 있습니다. 층문 틈을 지나는 것은 종이이므로 우선 해당 부분만 옮겨 적습니다.

첨부 하나. 동동 승강기 도면. 전임 관리실 보관본이며, 남쪽 출입문 하나가 그려져 있습니다. 북쪽에는 승객이 여닫는 문이 없습니다. 다만 카 바깥에서 나사를 풀어 떼는 정비판이 있습니다. 카 내부의 동서 너비는 백오십 센티미터, 남북 깊이는 백팔십 센티미터입니다. 정비판 뒤에는 승강로 벽의 점검구가 있고, 그 밖으로 사람이 서는 좁은 정비 통로가 이어집니다.

첨부 둘. 서동 철거대장. 철거 반장 최씨가 지난달 관리실에 넘긴 등본입니다. 승강기 한 대의 고유번호가 ‘서동 칠호’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현재 제 오른쪽 벽에 붙은 황동판에도 같은 글자가 있습니다. 판의 왼쪽 아래에는 반달 모양으로 깨진 자리가 있습니다. 대장에 끼운 번호판 탁본에서도 그 부분의 먹이 비어 있습니다.

첨부 셋. 서동 철거 당시의 구조 기록과 사진 설명. 최씨가 제출한 기록에는 ‘대상 한 명, 남문으로 인계, 현장 이상 없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시각은 7월 11일 오전 열한 시 이십 분입니다. 뒤에 붙은 사진은 번호판 이전을 맡았던 무당 연화가 보관하던 인화지입니다. 사진 뒷면의 글씨도 연화의 것입니다.

‘철거 전 북쪽 점검문. 문을 가로지른 흰 무명 세 줄. 문 옆 의자 두 개. 오른쪽은 옥분 자리. 왼쪽은 비워 둘 것.’

인화지에는 접힌 자국이 문 한가운데를 지납니다. 두 의자는 나란하고, 등받이는 없습니다. 같은 높이의 네모난 좌판 아래로 짧은 다리가 보입니다. 무명은 문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것이 아니라 좌우를 가로질러 묶었습니다. 매듭은 이 사진에 나오지 않습니다.

연화가 인화지를 넣어 보낸 봉투에는 굿 장부의 해당 장도 들어 있습니다. 첫머리에 건물주의 지시가 적혀 있습니다. ‘서동 관리 종료. 동동으로 관리 이전. 서동의 것을 번호판에 받아 옮길 것.’ 그 아래에는 성인 조수 옥분의 품삯과 밥 두 그릇의 값이 따로 올라 있습니다. 한 그릇은 옥분, 한 그릇은 빈 옆자리의 몫입니다.

절차는 다음 순서입니다. 옥분이 북쪽 문 안에서 무명 세 줄을 묶습니다. 두 자리에 밥을 놓습니다. 연화가 남문으로 나와 이전을 고합니다. 옥분이 안에서 매듭을 풉니다. 이후 번호판을 떼어 동동으로 가져갑니다. 마지막 두 줄 사이에는 ‘옥분이 풀기 전에는 떼지 말 것’이라는 문장이 한 번 더 들어 있습니다.

철거대장 가장자리에는 실제 작업 시각이 있습니다. 번호판 분리, 오전 열한 시 십팔 분. 서동 밖으로 반출, 열한 시 이십사 분. 동동 카에 부착, 열두 시 오 분. 매듭을 푼 시각은 없습니다. 빈칸의 길이는 다른 항목과 같습니다.

관리인께서 층문 밖에서 번호판을 잘못 붙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장까지 접어서 틈으로 밀었습니다. 연화와 최씨의 주소는 인계 봉투 겉면에 있습니다. 두 분에게 확인할 항목을 붉은 연필로 표시했습니다. 남문으로 나온 사람이 누구였는지, 북쪽 문은 어디에 있었는지, 번호판을 뗄 때 옥분이 나와 있었는지입니다.

10월 12일 아침에 덧붙입니다. 관리인께서 기다란 자와 물병, 주먹밥을 문틈으로 넣어 주셨습니다. 접은 답장은 자에 실로 묶여 왔습니다. 종이를 빼고 같은 실에 빈 물병을 묶어 돌려드렸습니다. 아래에는 관리인께서 받아 적은 두 사람의 답을 문장 그대로 옮깁니다.

최씨의 답. ‘그날 여자를 남문으로 꺼냈습니다. 우리 인부 둘이 받았습니다. 그 뒤 빈 카를 해체했습니다. 북쪽 문은 작업에 쓰지 않았습니다. 번호판은 먼저 가져가라는 사람이 있어서 떼었습니다.’

연화의 답. ‘열한 시 이십 분에 옥분은 북쪽 문 안에 있었습니다. 문 안에서 무명을 묶고 있었습니다. 스물여덟 살이고 혼자 매듭을 짓던 사람입니다. 그날 이후 제집으로도 굿하는 곳으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번호판을 언제 뗐는지는 철거대장을 받고 보았습니다.’

관리인께서는 답장 아래에 두 문장을 더 적으셨습니다. 연화는 시각을 어떻게 확인했느냐는 물음에, 남문 밖에 서 있던 최씨의 회중시계를 보았다고 답했습니다. 최씨 역시 구조 기록의 시각을 자신의 시계로 적었다고 답했습니다. 두 진술의 시각은 서로 다른 시계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옥분이 북쪽 문 안에 있었다는 항목과 여자를 남문으로 꺼냈다는 항목은 같은 시각에 놓입니다. 기록에는 대상이 한 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의 이름을 적는 칸은 없습니다. 저는 최씨의 첫 진술에 밑줄을 두 군데 그었습니다. ‘여자’와 ‘빈 카’입니다. 이 말들을 누가 확인했는지 다시 물어 주십시오.

카를 쟀습니다. 동서 너비는 도면대로 백오십 센티미터입니다. 남쪽 문턱 안쪽부터 북쪽 벽까지는 백사십 센티미터입니다. 장부 궤짝을 옆으로 밀고 바닥에서도 쟀습니다. 궤짝 위에 올라가 천장 가까이에서도 쟀습니다. 세 번 모두 백사십입니다. 도면보다 사십 센티미터 짧습니다.

북쪽 벽에는 덧댄 판이 있습니다. 양 끝의 세로 이음매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집니다. 옆벽의 걸레받이는 그 이음매에서 잘렸고, 잘린 단면에 칠이 없습니다. 나사 네 개는 판의 모서리에 있습니다. 남쪽 문틀과 양옆 벽의 나사는 검게 칠했는데, 이 네 개의 홈에는 흰 가루가 끼어 있습니다.

종이 아래에 실측 평면을 그렸습니다. 남문을 아래에 놓고, 그로부터 백사십 센티미터 되는 자리에 실선을 그었습니다. 도면의 북쪽 정비판은 실선보다 사십 센티미터 위에 점선으로 표시했습니다. 실선과 점선 사이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번호판의 글자만 바꾸어서는 이 간격이 생기지 않습니다.

관리인께서는 오후에 기계공과 함께 돌아오셨습니다. 기계공은 전원을 끊고 카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했다고 층문 밖에서 말했습니다. 전등도 꺼졌으므로 관리인께서 건전지 전등을 넣어 주셨습니다. 밧줄로 궤짝을 먼저 꺼내려 했으나 문 위 가로틀에 걸렸습니다. 가로틀을 떼는 작업은 다음 날로 미뤄졌습니다. 물병 두 개와 빈 통 하나를 더 받았습니다.

북쪽 정비 통로에서도 관리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관리인께서는 점검구를 통해 카 바깥의 정비판을 만졌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안쪽 덧벽을 세 번 두드렸습니다. 밖에서는 소리가 들리지만 판이 손에 울리지는 않는다고 답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관리인께서 정비판을 두드렸습니다. 제 손바닥을 댄 덧벽에서는 나사 머리만 작게 떨렸습니다.

두 판의 위치를 각각 도면에 적었습니다. 관리인께서는 자신이 만진 판에 남아 있는 제작소 표찰도 베껴 주셨습니다. 동동 승강기 준공 서류의 제작소와 같습니다. 제가 탄 공간에는 서동의 번호가 붙어 있고, 바깥 판에는 동동의 제작소가 남아 있습니다.

10월 13일. 오전에 받은 최씨의 원본 진술을 첨부합니다. 어제의 답은 관리인께서 물은 세 항목에 대한 답이고, 이것은 철거 당일 사무원이 받아 적어 최씨의 도장을 받은 종이입니다. 구조 기록과 같은 봉투에 있었으나 종이 두 장이 풀로 붙어 있어 처음에는 뒤쪽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연화가 굿을 마치고 남문 밖으로 나와 문 쪽을 가리켰다. 저 여자를 받아 달라고 하여 인부 둘이 문턱에서 팔을 잡고 밖으로 옮겼다. 나는 인부 뒤에 있었다. 카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없다. 연화에게 더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기록하지 못했다. 남문 앞에서 현장 이상 없음을 적고 해체를 지시했다.’

아래에는 사무원의 물음이 남아 있습니다. ‘여자인 것은 누가 확인하였는가.’ 최씨의 답은 ‘연화가 그렇게 불렀다’입니다. 인계한 대상의 얼굴을 확인했다는 문장은 없습니다. 옥분의 이름도 없습니다. 현장 이상 없음은 카 내부를 살핀 결과가 아니라 남문 앞에서 작성한 항목입니다.

연화의 답장도 왔습니다. 관리인께서 원본 진술을 펼쳐 놓고 물으셨으므로 문답에 쓰인 ‘그 여자’는 최씨의 기록에 있는 대상을 가리킵니다.

‘남문으로 내보낸 여자가 옥분입니까.’

‘옥분에게는 북문 안에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남문에서 받아 달라고 한 사람에게 옥분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북문 안에 있다는 것은 문을 등지고 카에 서 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진에 의자 둘을 놓은 쪽입니다. 옥분은 오른쪽 의자에 앉아서 묶습니다. 문은 그 자리에서 닫습니다. 손잡이와 매듭도 그쪽에 있습니다.’

사진 설명에서 ‘문 옆’이라고 적은 자리에 연화가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돌려보냈습니다. 사진을 찍은 쪽과 옥분이 앉는 쪽은 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합니다. 동동 도면에는 그 문도, 두 의자를 놓는 자리도 없습니다. 제 실측 그림에서는 덧벽 뒤 사십 센티미터가 아직 표시되지 않은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굿 장부의 절차와 철거대장의 시각을 한 장에 나란히 옮겼습니다. 옥분이 매듭을 풀어야 번호판을 떼는 순서입니다. 실제로는 번호판이 떨어진 뒤에도 옥분이 문 안에서 무명을 묶고 있었습니다. 건물주가 요구한 관리 이전은 열두 시 오 분에 번호판을 동동에 붙인 것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서동의 카는 그날 해체한 것으로 마감되었습니다. 두 마감 사이에 옥분을 인계한 기록은 없습니다.

번호판을 먼저 떼었다는 항목 옆에 현재의 실측을 적었습니다. 서동 칠호, 백사십 센티미터. 그 바깥에는 동동의 백팔십 센티미터가 있습니다. 연화의 장부에서 번호판에 받는다고 쓴 대상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서동의 것’입니다. 저는 그 네 글자를 따로 베끼지 않고 두 평면의 겹친 부분에 그대로 옮겼습니다.

오후 세 시, 관리인께서 북쪽 점검구로 다시 들어오셨습니다. 통로 바닥에서 발을 옮기는 소리와 공구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깥 정비판을 풀기 전에 제 위치를 물으셨습니다. 저는 궤짝을 남문 쪽으로 밀어 두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전등은 오른쪽 옆벽과 궤짝 사이에 끼웠습니다. 빛은 덧벽 아래까지 닿습니다.

바깥 나사가 빠질 때마다 관리인께서 수를 불렀습니다. 안쪽에서는 건네받은 나사돌리개로 덧벽의 나사를 뺐습니다. 셋째 나사를 빼자 판의 아래가 조금 들렸습니다. 틈으로 보이는 것은 나무의 단면입니다. 동동 도면에 적힌 정비판의 재료는 철판입니다. 사진 속 북쪽 점검문에는 같은 폭의 나무 테가 있습니다.

마지막 나사는 절반만 남겨 두었습니다. 관리인께서는 바깥 판을 통로 쪽으로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편지의 앞 장들을 번호순으로 포갰습니다. 답장과 실측 그림을 그 아래에 놓았습니다. 이 장은 궤짝 위에 펼쳐 두었습니다. 관리인께서 하나, 둘을 부르면 각자 판을 당기기로 했습니다.

열린 북문 안에는 사진 속 두 의자가 그대로 있었고, 빈 의자 옆 옥분의 손목뼈에서 나온 무명 세 줄이 문 안쪽 손잡이에 묶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