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설 자리가 없다
지수는 싱크대 배수구에 붙은 쌀알을 손톱으로 걷어냈다. 물에 불어난 쌀알 세 개를 음식물 통에 털어 넣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사진에도 싱크대가 있었다. 수전 끝에 걸린 물방울과 지수가 내려놓은 밥솥까지 찍혀 있었다. 식기건조대 뒤에 끼워둔 노란 수세미가 보였다. 지수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접시 두 장에 가려지는 물건이었다.
지수는 손을 바지에 닦았다. 휴대전화를 가로로 들고 사진에 찍힌 높이까지 낮췄다. 수전과 밥솥의 위치를 맞추자 화면 왼쪽에서 식기건조대가 사라졌다. 한 걸음 옆으로 옮기면 건조대는 들어왔지만 밥솥이 수전을 가렸다.
싱크대 뒤에는 타일 벽이 있었다. 그 위로 보도와 높이가 같은 창이 나 있었다. 창살은 세로였고 방충망에는 지난해 칠한 흰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지수는 창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창살 하나가 수전을 가로질렀다. 휴대전화를 방충망에 붙이자 검은 격자가 화면을 채웠다.
받은 사진에는 둘 다 없었다.
지수는 명옥에게 사진을 보냈다. 이어서 짧게 적었다.
옆방에 누구 있어요.
사흘 전 오후, 태수는 짐을 뺀 옆방의 전기 사용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현관 안쪽 계량기의 숫자를 관리비 고지서 뒷면에 옮겼다. 명옥은 빈 바닥에 놓인 마지막 멀티탭을 뽑았다. 계량기 표시등은 간격을 두고 계속 깜빡였다.
“다 뺐는데도 쓰네요.”
태수는 고지서를 창턱에 놓았다. 방 안에는 공구 가방과 접은 이불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는 사는 동안 장롱으로 가려놓았던 철제 덮개를 열었다. 덮개 안쪽에서 배관 두 줄이 위아래로 지나갔다. 배관과 벽돌 사이로 손을 넣을 수 있었다.
명옥이 덮개 뒷면의 종이를 떼었다. 모서리가 삭아 손가락에 묻었다. 연필 글씨는 두 줄이었다.
벽 안에서는 불 끌 것. 눈으로 찾지 말고 손으로 할 것.
“수첩에도 이게 있었어요.”
명옥은 종이를 고지서 밑에 끼웠다. 태수는 작업등을 바닥에 눕혔다. 빛이 배관 아래로 들어갔다. 설비벽 두께는 24센티미터였다. 반대쪽 지수의 부엌 벽까지 자를 밀어 넣어도 그 안에 사람이 설 자리는 생기지 않았다.
벽돌에 고정된 콘센트가 하나 있었다. 낡은 휴대전화가 충전기에 연결돼 있었다. 투명 케이스는 누렇게 변했고 충전 단자 옆에는 검은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태수가 전화를 꺼내자 계량기 표시등이 멎었다.
현재의 저녁, 명옥의 답장은 사진 없이 왔다.
태수 씨 사흘 전에 방 뺐어. 열쇠는 나한테 있고.
지수는 싱크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창 아래, 싱크대 턱에서 손바닥 하나쯤 높은 곳에 가로로 긴 환기구가 있었다. 금속판 가운데로 좁은 틈 하나가 나 있었다. 양 끝의 나사에는 벽을 칠할 때 묻은 페인트가 남아 있었다.
휴대전화 렌즈를 틈 앞에 놓았다. 화면에는 부엌 반대편 냉장고가 들어왔다. 받은 사진과 같은 방향이었다. 다만 밥솥이 너무 컸다. 렌즈를 더 뒤로 보내야 수전과 건조대의 간격이 맞았다. 지수는 전화 모서리를 금속판에 대고 멈췄다. 그 뒤는 타일과 벽 속이었다.
두 번째 사진이 도착했다.
밥솥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수전이 조금 커졌고 사진 가장자리에 걸려 있던 냉장고 손잡이가 잘렸다. 물방울은 수전에서 떨어진 뒤였다. 첫 사진에는 없던 지수의 무릎이 싱크대 아래에 찍혀 있었다.
지수는 두 사진을 번갈아 열었다. 사진 전체를 늘린 것과는 달랐다. 수전이 커진 만큼 뒤쪽 냉장고가 커지지는 않았다. 건조대 철사 사이로 보이는 타일 줄눈도 옆으로 옮겨가 있었다.
그녀는 환기구 앞에 손바닥을 댔다. 바람은 나오지 않았다. 손을 아래로 내리자 싱크대 뒤쪽 틈에서 가는 선이 만져졌다. 선을 집어 올렸다. 먼지가 묻은 충전선이었다. 한쪽 끝은 환기구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사흘 전, 태수는 낡은 전화의 화면을 켰다. 잠금번호를 묻지 않았다. 화면 위에는 통신 신호와 충전 표시가 떠 있었다. 카메라를 열어 벽 안으로 넣었다. 작업등은 손목에 가려져 안쪽까지 비추지 못했다. 화면에는 배관 표면과 검은 공간이 나왔다.
태수는 사진을 찍어 확대했다. 배관 뒤에 붙은 흰 조각을 손톱 두 개 크기로 늘렸다. 확대된 화면 안에서 검은 부분이 배관의 윤곽을 덮었다. 벽 안에 넣은 왼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팔을 당겼다. 손목의 시곗줄이 배관에 걸려 있었다. 버클을 밀어도 손이 빠지지 않았다. 배관에 붙은 붉은 페인트 조각은 처음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
태수는 전화를 오른손으로 바꿔 잡았다. 왼손목을 찍었다. 사진에는 배관과 피부 사이에 간격이 있었다. 그 부분을 확대하자 손목이 배관 쪽으로 더 붙었다. 시계 유리가 깨졌다. 유리 조각 하나가 작업구 밖으로 떨어졌다.
그는 오른쪽 엄지와 검지를 화면에 대고 벌렸다.
왼쪽 어깨가 작업구 안으로 들어갔다. 작업복 솔기가 배관에 쓸려 터졌다. 철제 덮개의 경첩도, 벽돌 사이에 굳은 모르타르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가 들어간 자리로 가슴이 눌려 들어갔다. 공구 가방이 무릎에 밀려 벽에서 멀어졌다.
전화 화면에서 배관은 가늘어지지 않았다. 검은 부분만 넓어졌다.
명옥이 지수의 방에 왔을 때 세 번째 사진이 도착했다. 지수는 열지 않은 채 휴대전화를 식탁에 놓았다. 명옥은 열쇠 꾸러미와 작은 수첩을 꺼냈다. 수첩 표지에는 집수리라고 적혀 있었다. 보일러 교체 날짜 사이에 누런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날 이걸 찾으러 올라갔어요. 내려오니까 방이 비어 있더라고.”
명옥은 손가락으로 종이를 폈다. 공구 가방도 이불도 그대로 있었고 태수의 신발은 현관에 없었다고 했다. 열쇠는 원래 돌려놓기로 한 창턱에 놓여 있었다.
지수는 수첩을 식탁 위로 끌어왔다. 종이 위쪽에는 어둑시니라고 쓰여 있었다. 그 아래 글씨는 앞장의 수리 내역과 달리 세로로 길었다.
쳐다볼수록 자리를 더 차지한다. 벽돌을 밀지 않고 관을 굽히지 않는다. 들어간 몸이 그만큼 눌린다.
다음 줄 옆에는 나중에 쓴 작은 글씨가 있었다.
사진으로 보아도 같음.
“밑에도 있어요.”
지수가 수첩을 돌렸다. 명옥은 접힌 종이 아래쪽을 폈다. 벽 속 일을 할 때는 조명을 끄고 손으로만 더듬으라는 문장이 있었다. 몸이 걸렸을 때 어디를 풀어야 하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식탁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사진 밑에 글자가 붙었다.
선 놓지 마세요.
지수는 화면을 엎어놓았다.
사흘 전 밤, 빈방 작업구에서 손 하나가 나왔다. 손등의 작업복 소매가 찢어져 있었다. 손은 바닥을 쓸어 공구 가방의 끈을 걸었다. 가방이 벽에 닿을 때까지 조금씩 끌어왔다.
손가락 두 개가 옆주머니를 열었다. 접힌 수리 접수표가 나왔다. 맨 위에는 지수의 방 번호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싱크대 옆 콘센트에서 플러그가 자꾸 빠진다는 문장 아래에 태수가 그어놓은 밑줄이 있었다.
종이가 작업구 안으로 접혀 들어갔다.
잠시 뒤 같은 손이 가방에서 충전 연장선을 꺼냈다. 손은 벽 안에서 나온 짧은 선 끝을 바닥에 놓고 연장선의 홈을 맞췄다. 한 번 빠진 단자를 다시 끼웠다. 접속 부위에 검은 테이프를 감았다. 테이프를 끊을 때는 가방 지퍼의 금속 모서리를 썼다.
작업구 안으로 당겨진 선은 반대편으로 옮겨갔다. 지수의 부엌 환기구 안쪽에서 낡은 전화의 렌즈가 틈에 닿았다. 화면에 부엌이 나왔다. 렌즈를 금속판에 바짝 붙이자 위아래 테두리가 사진에서 빠졌다.
이튿날에도 선은 조금씩 움직였다. 부엌 쪽으로 밀려나온 부분이 싱크대 뒤에 늘어졌다. 전화 모서리가 금속에 닿을 때마다 짧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렌즈가 틈 가운데로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의 저녁, 명옥이 옆방 문을 열었다. 지수는 식탁에 전화를 두고 따라갔다. 바닥에는 깨진 시계 유리가 있었다. 열린 공구 가방 옆으로 충전선이 이어졌다.
작업구 안에는 배관이 있었다. 두 관 사이에 손을 옆으로 세워 넣을 만한 틈이 났다. 지수는 손가락을 넣었다가 첫 마디에서 멈췄다. 손등이 관에 닿고 손톱이 벽돌에 닿았다. 철제 덮개를 더 열어도 그 간격은 달라지지 않았다.
명옥이 벽 스위치에 손을 얹었다.
“여기서 당겨요?”
“선이 부엌으로 갔어요.”
지수는 가방에서 금속 자를 꺼냈다. 부엌으로 돌아와 환기구에 댔다. 가로는 70센티미터였다. 위아래 간격은 18밀리미터였다. 자를 왼쪽과 가운데와 오른쪽으로 옮겨도 높이는 같았다.
금속판의 나사 홈에는 페인트가 메워져 있었다. 지수는 자를 싱크대에 놓았다. 건조대를 식탁으로 옮기고 밥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른 행주로 싱크대 턱의 물을 닦았다. 명옥은 옆방에 남은 이불을 가져와 싱크대 위에 접어 깔았다.
“불 꺼주세요. 옆방도요.”
천장등이 꺼졌다. 이어서 옆방 문 아래의 빛도 없어졌다. 창으로 가로등 빛이 들어왔다. 지수는 창에 걸려 있던 가림막을 내려 양 끝을 창틀에 끼웠다. 식탁의 전화는 계속 엎어져 있었다.
지수는 싱크대 턱을 짚고 환기구 아래로 손을 넣었다. 충전선을 찾았다. 손가락 사이로 선을 통과시키며 위로 더듬었다. 금속 틈 앞에서 케이스의 벌어진 모서리가 걸렸다. 그녀는 선을 당기지 않고 전화 양옆을 집었다.
벽 안의 손이 전화를 가로로 밀었다.
전화가 금속판을 빠져나오자 뒤에 붙어 있던 손가락이 지수의 손바닥에 닿았다. 손톱 끝이 깨져 있었다. 지수는 전화를 옆으로 내려놓고 그 손가락을 감쌌다. 벽 안에서 밀어내던 손과 밖에서 받치는 손 사이에 틈이 없어졌다.
“잡았어요.”
지수는 손목을 꺾지 않았다. 잡은 손을 싱크대와 나란히 당겼다. 명옥이 옆에 서서 이불의 접힌 부분을 폈다. 천이 금속판 아래까지 닿았다.
팔이 나오는 동안 지수는 손을 두 번 바꿔 잡았다. 손가락으로 아래를 받치고 엄지로 위를 눌렀다. 손목 안쪽에서 맥박이 닿았다. 그녀는 맥박이 뛰는 자리를 피해 소매를 잡았다. 젖은 천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환기구 안에서 다른 손이 나와 싱크대 턱을 두드렸다. 두 번씩 같은 간격이었다. 명옥이 그 손을 받았다. 두 사람은 팔꿈치를 뒤로 빼며 같은 높이로 당겼다.
천이 금속에 걸리면 지수는 당기는 손을 멈췄다. 빈손의 손톱을 틈에 넣어 작업복을 떼었다. 명옥은 밖으로 나온 부분 밑에 이불을 밀었다. 두드리는 소리는 천 위에서도 이어졌다.
지수는 상체를 뒤로 젖히지 않고 발만 반 걸음 물렸다. 싱크대에 놓인 무게가 늘어날 때마다 손바닥을 벽 쪽으로 옮겼다. 위쪽 금속판과 아래쪽 금속판 사이에 손가락이 들어갈 여유는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닿는 옷의 주름만 펴서 통과시켰다.
바지 허리의 단추가 걸렸다. 지수는 단추를 풀고 천을 양옆으로 벌렸다. 명옥이 받친 쪽으로 조금 더 밀어낸 다음 다시 수평으로 당겼다. 바지 밑단이 손에 닿았다. 양말은 젖어 있었다. 발뒤꿈치가 금속판에서 떨어질 때까지 지수는 손을 낮추지 않았다.
배관에 눌린 태수의 머리와 흉곽과 골반은 모두 같은 두께가 되어 있었고, 살아 있는 성인 남자의 몸 전체가 나사를 풀지 않은 높이 18밀리미터의 환기구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