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발인 뒤에 남은 사람
회수 장부에서 화환대 대여료를 지웠어요. 돈은 학교 소사가 치렀고, 구리 표식 열일곱 번만 아직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932년 9월 12일. 당신에게.
윤선 선생의 발인이 오늘 아침에 끝났어요. 오후 네 시에 여학교 강당으로 갔습니다. 소사는 창문을 닫고 있었어요. 바닥에는 짚신에서 떨어진 흙이 있었고, 교탁에는 영정이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화환대는 강당 끝에 있었어요. 다른 꽃집에서는 점심 전에 다녀갔다고 했습니다. 구리 표식을 닦아 번호를 읽고, 아래쪽 가로대를 잡았습니다. 꽃 뒤로 여자가 보였어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윤선 선생과 왼쪽 눈 밑의 점까지 같았어요.
“틀을 빼겠습니다.”
여자는 비켜서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반 자쯤 당겼어요. 꽃잎이 저고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뒤따라 나온 나무 가로대는 가슴 한가운데를 지났어요. 저고리에 걸리지도 않았고, 여자의 몸이 밀리지도 않았습니다. 목 아래 드러난 피부에는 나무 가시가 긁은 자국도 없었어요.
시든 꽃을 떼어 소사가 가져온 물통에 넣었습니다. 철사를 풀 때마다 여자의 얼굴이 빈 자리에 조금씩 더 드러났어요. 눈은 떠 있었고, 입술 사이에는 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꽃을 모두 떼어도 여자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물통을 문 옆에 옮겨 놓고 돌아와 틀을 끌었습니다. 나는 출입문 쪽으로 뒷걸음질했고 소사는 옆에서 받침 끝이 마룻장 틈에 걸리지 않게 들어 주었어요. 여자의 얼굴은 내 쪽을 향했습니다. 강당 끝에 있던 여자가 출입문까지 왔습니다. 나와 여자 사이에는 꽃을 떼어 낸 가로대가 있었어요.
문을 지나기에는 받침다리가 넓었습니다. 양쪽을 모으고 끈으로 묶었어요. 여자의 얼굴이 가로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나는 허리를 굽혀 여자의 턱 밑에서 끈 끝을 찾았어요. 소사가 내 손을 한 번 가리켰습니다.
“거기는 두 번 감으세요.”
틀은 문 안쪽에 두었습니다. 당신이 쓰는 손수레는 바퀴 축에 기름을 쳐 놓았어요. 내일 아침에 가져가겠습니다. 소사가 써 준 종이를 이 편지에 넣습니다.
동봉 — 화환대 회수 확인서 첫째 장. 9월 12일 오후 네 시. 구리 표식 십칠 호. 대여료 수령 확인. 꽃은 물통 한 개에 분리함. 틀은 강당 출입문 안에 보관함.
정희 씨는 여자가 걸어서 문까지 왔다고 말했으나, 옆에서 본 동안 발을 번갈아 내딛은 일은 없었음. 오른발과 왼발이 각각 나무 받침 끝에 겹쳐 있었음. 틀을 끌 때 두 발도 같은 길이만큼 끌림. 문 앞에서 받침을 좁히자 여자의 두 무릎이 굽었음. 정희 씨가 끈을 한 번 풀었을 때 무릎도 조금 펴졌다가, 다시 묶을 때 굽었음. 학교 소사 박만수.
1932년 9월 13일. 당신에게.
오전 열 시에 화환대를 처마 밑으로 옮겼습니다. 소사가 손수레 뒤를 받쳐 주었어요. 틀을 실을 때 받침이 벌어지지 않도록 어제 맨 끈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빈 물통도 돌려주었어요.
여자는 문밖 세 걸음 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문턱에서 발뒤꿈치를 붙이고 여자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어요. 세 걸음째에 신발 앞코가 치마 밑단에 들어갔습니다. 밑단은 들리지 않았고 신발에도 천이 쓸리는 감촉은 없었습니다.
틀이 처마 밖으로 나와 비를 맞겠기에 창고로 옮기려 했어요. 받침을 조금 더 좁혀야 문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문턱에 앉아 끈을 풀고 앞쪽 나무를 무릎으로 받쳤어요. 뒤쪽 받침을 당기자 여자의 얼굴이 내려왔습니다. 턱이 내 발목 높이에 놓였어요. 두 눈은 문턱 바로 위에서 보였습니다.
얼굴까지 한 걸음이 남았습니다. 나는 일어나 그 사이를 재고 다시 앉았어요. 받침을 손바닥 하나 너비만큼 벌리자 얼굴이 위로 올라가며 문에서 멀어졌습니다. 다시 좁혔을 때는 같은 문턱 높이까지 내려왔어요. 그 사이에 여자가 발을 옮기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내 앞에는 얼굴과 치마의 주름이 있었고, 발이 놓인 쪽은 나무에 가려졌어요.
점심 전에 학교에서 굿을 맡았던 무당이 왔습니다. 소사의 둘째 확인서를 가져왔어요. 종이와 함께 가늘게 접은 흰 천을 내놓았습니다. 끝에는 철사에 꿰였던 구멍이 두 개 있었습니다. 천을 펴니 윤선 선생의 이름 옆에 십칠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어요.
“번호는 내가 보고 적었어요. 다른 틀과 바뀌면 안 되니까.”
장례 때 이 천을 받침 사이에 매었다고 했습니다. 굿을 하는 동안 죽은 교사가 서 있을 자리로 우리 틀을 썼다고 했어요. 나는 천의 구멍에 남은 철사를 뽑아 접시에 놓았습니다.
“천도 가져가세요.”
무당은 천을 접어 소매에 넣었습니다. 틀의 얼굴 높이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받침을 조금 벌려 끈을 다시 맸습니다. 가게 문은 닫혔습니다. 창고 문은 틀이 걸려 반쯤 열린 채입니다.
동봉 — 화환대 회수 확인서 둘째 장. 9월 13일 오전 열 시. 구리 표식 십칠 호를 정희 씨 꽃집 처마 아래 인도함. 가로대 한 곳에 철사 자국이 있으나 목재 파손은 없음.
여자는 손수레에 실을 때부터 틀에 포개져 있었음. 수레 위에서는 치마가 바퀴 쪽으로 늘어졌고, 내릴 때는 나무 받침 끝과 두 발이 함께 땅에 닿았음. 정희 씨는 문밖에 서 있다고 적었으나, 옆에서는 허리가 접히고 무릎이 벌어진 자세였음. 문턱에서 받침을 좁힐 때 발은 나무 끝을 따라 끌리고 상체는 문 쪽으로 숙여졌음. 받침을 벌리자 무릎과 허리도 함께 펴졌음. 학교 소사 박만수.
1932년 9월 14일. 당신에게.
오후 두 시에 창고 선반을 쟀습니다. 아래 칸은 당신이 비워 둔 그대로였어요. 화환대를 눕혀 넣으면 긴 쪽은 맞지만, 위아래로 포개질 나무판 사이가 한 뼘 이하여야 들어갑니다. 처마 아래 둔 상태로는 두 뼘이 넘었어요.
소사가 마지막 확인을 하러 왔습니다. 내가 위쪽을 들고 소사가 두 받침 끝을 들어 작업대에 눕혔어요. 작업대 높이는 내 허리까지입니다. 여자의 얼굴도 틀과 함께 누웠습니다. 머리카락은 작업대 아래로 처졌어요. 끝에 묻은 흙이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소사에게 아래 판을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경첩 옆에 서서 위 판을 눌렀어요. 여자의 턱이 가슴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입술은 닫혀 있었고 코끝은 내가 누르는 손 가까이 왔어요. 판 사이에 남아 있던 철사 한 토막을 집게로 뺐습니다. 집게 끝은 여자의 뺨을 통과했고, 철사는 물릴 때 짧은 소리를 냈습니다.
조금 더 누르자 얼굴이 손등에 닿았습니다. 피부는 손등을 밀지 않았어요. 내 손톱이 여자의 아랫입술 안에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경첩에 힘이 실리지 않아 손을 옆으로 옮겼습니다. 엄지 두 개를 경첩 양옆에 대고 눌렀어요. 위 판이 아래 판과 나란해졌습니다.
보관용 끈은 두 군데에 맸습니다. 하나는 구리 표식 아래, 하나는 받침 끝에서 한 자 위입니다. 소사가 판을 놓은 뒤에도 사이가 벌어지지 않았어요. 매듭 끝은 길이를 맞춰 잘랐습니다. 사흘 치 편지와 확인서를 한 봉투에 넣어 보냅니다.
동봉 — 화환대 회수 확인서 셋째 장. 9월 14일 오후 두 시. 구리 표식 십칠 호. 접이 경첩 작동 확인. 보관용 끈 두 곳 결속 확인. 아래 판을 잡고 있는 동안 정희 씨가 위 판을 눌렀으며, 나무가 부러지거나 경첩이 빠진 곳은 없음.
결속 뒤 작업대 끝에서 판 사이를 확인함. 정희 씨가 묶은 화환대의 위아래 판 사이에서 여자의 머리와 두 발이 맞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