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퍼 보이는 사람

정수는 약사발 안쪽에 붙은 갈색 찌꺼기를 엄지로 밀어냈다. 우물물 위에 얇은 조각이 떴다. 사발을 엎자 테두리에서 물이 세 줄로 떨어졌다. 한 줄은 이가 빠진 곳을 따라 흘렀다.

부엌 벽에는 노인의 몸무게를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순임은 아버지를 저울에 앉힐 때마다 침상에서 쓰는 방석을 함께 달았다. 방석 무게는 맨 위에 따로 적혀 있었다. 정수는 그 수치를 빼고 아래 칸을 채웠다.

1910년 10월 23일, 열두 관 이백 돈. 11월 22일, 열 관 백오십 돈. 12월 22일, 여덟 관 이백 돈. 1911년 1월 30일, 일곱 관 백 돈.

마지막 수치를 적을 때 순임은 노인의 무릎을 붙들고 있었다. 두 무릎 사이에 방석의 가운데 봉제선이 드러났다. 노인의 오른쪽 귀는 귓바퀴 아래가 없었다. 왼쪽 정강이는 중간에서 한 번 꺾였다가 발목으로 이어졌다. 저울에서 내려놓으면 그 발이 먼저 바닥을 짚었다.

정수는 읍내 사무소에서 사망 신고를 정서했다. 하숙비 대신 순임네 약을 받아 오고 집안에서 필요한 문서를 썼다. 순임은 식사와 투약을 맡았다. 아침에는 죽을, 저녁에는 약을 주었다. 죽 위에는 접은 종이에서 털어 낸 흰 가루가 얹혔다. 순임은 숟가락 바닥으로 덩어리를 눌러 풀었다.

약봉지에 딸린 진단 쪽지는 석 장이었다. 첫 의원은 위병이라고 썼다. 두 번째 의원은 폐병이라고 쓰고 약재 두 가지에 먹줄을 그었다. 마지막 의원의 쪽지에는 노쇠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정수는 날짜순으로 포개어 벽에 꽂았다. 종이 크기가 달라 세 진단이 모두 보였다.

그날 저녁 노인은 약을 입안에 담은 채 삼키지 않았다. 순임이 턱 아래 헝겊을 댔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약이 헝겊의 접힌 골을 적셨다. 순임은 사발을 내려놓고 노인의 코 밑에 손등을 대었다. 이어 정수에게 종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사망자 강문조. 주소 읍내 남문 밖 십칠 번지. 식사 및 투약 담당 강순임. 최초 신고자 강순임.

정수는 날짜와 시각을 쓰고 붓을 건넸다. 순임의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 서명 옆에 물이 묻자 정수는 마른 종이 귀퉁이로 빨아냈다. 순임은 붓을 돌려주고 아버지의 턱을 헝겊으로 묶었다. 매듭은 오른쪽 귀 아래에 놓였다.

다음 날 사무소에서 주소별 묶음에 신고서를 끼우다가 같은 이름을 보았다. 정수는 끈을 풀었다. 지난해 사월 초닷새, 칠월 열나흘, 시월 스무이틀에 제출된 신고가 나왔다. 세 장 모두 강문조였다. 정수는 오늘 가져온 신고를 책상 오른쪽에 놓고 앞의 세 장을 나란히 폈다.

사망자에게 붙은 신체 기록도 같았다. 왼쪽 정강이에 오래된 골절 자국. 오른쪽 귀 아래 일부 결손. 식사와 투약을 맡은 사람은 강순임, 최초 신고자도 강순임이었다. 서명에서 순 자의 마지막 획이 임 자 밑까지 뻗었다. 네 장의 획이 같은 곳에서 끝났다.

맨 앞 신고의 나이는 뒤의 것보다 한 살 적었다. 주소의 십 자 위에는 빗물이 떨어진 자국이 있었다. 종이마다 접힌 방향과 얼룩이 달랐다. 정수는 신고 날짜를 작은 종이에 옮겨 적었다. 시월 스무이틀에서 어제까지 날짜를 세어 백이라고 썼다. 다른 두 간격에도 같은 수가 들어갔다.

하숙집에 돌아오자 대문 옆에 빈 널빤지 두 장이 세워져 있었다. 마당에는 굵기가 같은 나무 굴대 셋이 놓였다. 순임은 정수에게 뒤편 방앗간까지 걸음을 재 달라고 했다. 출발점은 노인이 누운 침상의 머리 쪽 다리였다. 방문을 나가 부엌 바깥을 돌고 뒤뜰을 건너면 방앗간 문이 나왔다.

정수는 마흔 걸음을 세었다. 방앗간 바닥에는 작은 철제 분쇄기가 있었다. 무릎 정도 높이였고, 몸통 한쪽에 손잡이와 둥근 축이 붙어 있었다. 밑에는 널빤지를 끼울 만큼 틈이 났다. 배출구 아래에 흰 가루가 떨어져 있었다. 순임은 솔로 가루를 종이 위에 모았다. 젖은 부분은 칼끝으로 긁었다.

“이것도 아버지 것이에요?”

“침대하고 같이 받았어.”

순임은 종이를 네 번 접어 소매에 넣었다. 정수에게 준 종이에는 운반표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첫 줄에 일월 삼십일일, 뒤 방앗간, 침상에서 마흔 걸음이라고 썼다. 옮긴 곳을 쓰는 칸은 비워 두었다. 순임은 기계 아래에 들어갈 널빤지의 폭을 재고 방으로 돌아갔다.

밤에는 노인의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정수는 문턱 바깥에 놓인 물동이 옆에 섰다. 순임은 침상 아래에 항아리를 놓고 노인의 저고리를 벗겼다. 턱의 헝겊은 풀지 않았다. 등잔을 머리맡에서 가슴 옆으로 옮기자 갈비뼈 사이의 홈에 그림자가 생겼다.

칼은 가슴 왼쪽 피부를 따라 내려갔다. 순임은 벌어진 자리에 접은 천을 끼우고 짧은 톱을 넣었다. 톱질할 때마다 노인의 어깨가 침상 위에서 조금씩 움직였다. 순임은 팔꿈치로 어깨를 눌렀다. 꺼낸 갈비뼈에는 붉은 막이 붙어 있었다. 그것을 항아리에 넣고 다음 뼈를 잘랐다.

정수는 물동이 손잡이를 잡은 채 문 안으로 들어갔다. 순임이 손을 내밀었다. 정수는 바가지를 채워 건넸다. 순임은 손가락 사이를 씻고 칼과 톱을 대야에 담갔다. 항아리는 뚜껑을 덮어 복도 반대편 벽에 붙여 놓았다. 침상 위에는 갈비뼈가 빠진 가슴이 그대로 열려 있었다.

순임은 머리판의 놋쇠 장식을 옆으로 밀었다. 안쪽 홈에서 짧은 열쇠가 나왔다. 손잡이에는 닳은 실이 감겨 있었다. 순임은 그것을 들고 뒤뜰로 갔다. 정수는 부엌 바깥 모서리까지 따라갔다. 그 자리에서는 열린 방문과 방앗간 문이 함께 보였다.

등잔을 기계 위에 놓은 순임이 축 끝에 열쇠를 꽂았다. 손잡이가 낮에 돌던 방향과 반대로 움직였다. 한 바퀴를 채우자 금속이 맞닿는 소리가 났다. 그동안 정수는 방문 안을 보고 있었다. 노인의 저고리가 침상 가장자리에서 떨어졌다. 노인은 두 팔을 짚고 상체를 세웠다. 가슴에는 절개도 봉합 자국도 없었다.

“일찍 나가나.”

처음 하숙하러 왔을 때 노인이 건넨 인사였다. 턱에 묶었던 헝겊이 목으로 내려와 있었다. 오른쪽 귀 아래는 여전히 없었고, 침상 밖으로 내린 왼쪽 정강이도 꺾여 있었다. 정수는 달력을 보았다. 일월 삼십일일이었다. 복도 항아리의 뚜껑을 들자 잘라 낸 뼈가 젖은 채 포개져 있었다.

순임은 노인의 등을 닦고 새 저고리를 입혔다. 정수는 저울을 방으로 가져왔다. 방석을 빼고 열두 관 이백 돈이었다. 시월 스무사흘 칸에 적힌 수치와 같았다. 순임은 빈 체중표를 벽에 붙였다. 정수의 손에는 물동이를 들다 벗겨진 피부가 남아 있었다. 오래된 약사발의 이 빠진 자리도 그대로였다.

“몸만 백 일 돌아가.”

순임은 젖은 수건을 짜며 말했다. 정수는 첫 줄에 날짜를 적었다. 순임은 죽을 데웠다. 노인은 숟가락을 오른손으로 잡았고, 세 숟갈을 먹은 뒤 사발을 왼쪽으로 돌렸다. 정수는 전날 제출한 신고서의 먹물이 손목에 묻어 있는 것을 물로 문질렀다.

1월 31일, 열두 관 이백 돈. 3월 2일, 열 관 백오십 돈. 4월 1일, 여덟 관 이백 돈. 5월 10일, 일곱 관 백 돈.

그 사이 정수는 약을 타러 세 의원을 차례로 다녔다. 첫 의원에게는 진단 쪽지를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의원은 지난 약봉지에 날짜를 고쳐 썼다. 세 번째 의원은 약을 더 짓지 않았다. 정수는 돌아와 벽의 쪽지 아래에 새 날짜를 적었다. 순임은 매일 같은 크기의 종이를 펴고 죽에 흰 가루를 털었다.

오월 열흘 밤 노인은 다시 약을 삼키지 않았다. 정수는 사망 신고서의 주소를 먼저 썼다. 순임이 헝겊으로 턱을 묶은 뒤 붓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노인이 침상에 앉아 있었다. 복도의 항아리가 하나 늘었다. 두 항아리에는 종이 끈이 둘러져 있었고, 순임이 매듭을 묶은 자리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운반표 둘째 줄. 오월 십일일. 뒤 방앗간에서 부엌으로. 침상에서 열 걸음.

두 사람은 분쇄기 밑에 널빤지를 넣고 나무 굴대를 받쳤다. 정수가 뒤의 굴대를 빼서 앞으로 옮기면 순임이 널빤지를 밀었다. 뒤뜰의 낮은 돌은 쇠지레로 넘겼다. 부엌에서는 아궁이 반대쪽 벽에 붙였다. 배출구가 통로 쪽으로 나왔다. 순임은 바닥에 무명천을 깔았다.

밤에 기계가 돌면 부엌 찬장의 사발끼리 닿았다. 정수는 종이를 접어 사발 사이에 끼웠다. 노인은 아침마다 일찍 나가느냐고 물었다. 정수가 내놓은 새 약사발은 침상 오른쪽 기둥에 부딪혀 이가 나갔다. 지난 사발과 같은 높이, 같은 폭이었다. 정수는 그다음 사발의 굽 안쪽에 오월 십삼일이라고 새겼다.

노인은 그 사발로도 약을 먹었다. 빈 사발을 돌려줄 때 손등이 기둥에 닿았다. 정수는 씻을 때마다 바닥을 뒤집었다. 날짜 사이에 낀 때를 대꼬챙이로 팠다. 깨진 사발 둘은 버리지 않고 부엌 선반 아래 나란히 두었다. 하나에는 날짜가 없었다.

5월 11일, 열두 관 이백 돈. 6월 10일, 열 관 백오십 돈. 7월 10일, 여덟 관 이백 돈. 8월 18일, 일곱 관 백 돈.

팔월의 신고서에도 순임이 서명했다. 정수는 종이가 마르는 동안 복도 항아리에 날짜표를 붙였다. 순임이 새 항아리를 내려놓고 물을 가지러 간 사이, 가장 위의 갈비뼈 조각을 꺼냈다. 손가락 두 마디 길이였다. 살이 벗겨진 단단한 면에 송곳으로 팔월 십팔일을 새겼다. 끝의 일 자는 뼈 가장자리에 걸쳐 한 획이 짧았다. 정수는 조각을 같은 자리에 놓고 뚜껑을 덮었다.

운반표 셋째 줄. 팔월 십구일. 부엌에서 방문 문턱 밖으로. 침상에서 세 걸음.

부엌과 복도 사이 바닥에 흰 가루가 길게 떨어져 있었다. 순임은 천을 무릎 아래 깔고 쓸어 담았다. 분쇄기를 옮길 때는 굴대 두 개만 썼다. 문턱 앞에서 널빤지를 빼자 철제 다리가 바닥에 네모난 자국을 눌렀다. 정수는 방문을 끝까지 열어 벽에 묶었다. 기계 손잡이가 문짝에 걸리지 않았다.

노인은 침상에서 그 작업을 보았다. 새 저고리의 소매가 손목 위로 올라가 있었다. 순임은 저고리를 내려 주고 죽그릇을 놓았다. 정수는 날짜를 새긴 약사발을 부엌으로 가져갔다. 굽의 글자는 남아 있었다. 복도에서는 손잡이가 한 번 돌 때마다 정수의 문 아래로 길고 짧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8월 19일, 열두 관 이백 돈. 9월 18일, 열 관 백오십 돈. 10월 18일, 여덟 관 이백 돈. 11월 26일, 일곱 관 백 돈.

십일월 스무엿새에는 붓끝이 갈라졌다. 정수는 손톱으로 털을 모아 강순임의 이름 옆에 최초 신고자라고 썼다. 순임이 서명하는 동안 노인의 입에서 약이 흘렀다. 턱 아래에는 오월에 쓰던 헝겊이 깔려 있었다. 여러 번 삶아서 가장자리의 실이 풀려 있었다.

다음 날 밤 운반표 마지막 칸이 채워졌다. 십일월 이십칠일. 문턱 밖에서 침상 왼편으로. 간격 없음.

정수는 문턱 위에 널빤지를 걸쳤다. 순임이 밀자 굴대가 방 안으로 떨어졌다. 기계는 침상 옆에서 멈췄다. 배출구는 침상 모서리보다 조금 낮았다. 순임은 흔들리는 철제 다리 아래에 접은 운반표를 끼웠다. 정수가 널빤지를 치우는 동안 새 항아리 안에서 젖은 뼈끼리 닿는 소리가 났다.

순임은 가슴을 열어 둔 노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열쇠를 돌렸다. 정수는 침상 발치에 서 있었다. 가슴의 벌어진 가장자리가 없어지고 노인의 팔이 굵어졌다. 노인은 팔꿈치로 몸을 받쳐 앉았다. 순임은 열쇠를 뽑아 머리판에 넣었다. 침상 밖의 항아리와 대야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첫 죽을 데울 때 정수는 문을 열어 두었다. 순임은 팔월 십팔일 표가 붙은 항아리를 가져왔다. 뚜껑 안쪽에 마른 막이 붙어 있었다. 순임은 그 안에서 짧은 갈비뼈 조각을 집어 분쇄기 투입구에 넣었다. 정수가 새긴 날짜가 위를 향했다. 가장자리에서 짧아진 일 자의 획이 철판 밑으로 들어갔다.

순임은 배출구 아래에 밥사발을 받치고 손잡이를 돌렸다. 뼈가 부서질 때마다 축이 잠깐 멎었다가 움직였다. 흰 가루가 사발 바닥에 쌓였다. 순임은 거기에 데운 죽을 붓고 숟가락으로 바닥까지 저었다. 노인이 받아먹는 죽에는 지난번 자기 시신에서 꺼낸 갈비뼈 가루가 섞여 있었다.